#22화

사랑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늦은 저녁 하얀이 잠드는 것을 보고 서재에 들어온 우혁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제 책상에 쌓인 서류들을 보곤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류들이 모두 반대편으로 옮겨가는 동안 그가 찾는 서류는 보이질 않았다. 그는 다시 서류들을 차근차근 살폈지만 역시나 그것은 없었다.

“김 비서. 그 서류가 없는데. 그거 말이야. 그거.”

그 날 잘 챙겨 우혁의 책상에 놓았다는 김 비서의 답은 그를 더 불안하게 했다.

“알겠어.”

이내 그의 기억 속 재하의 비서가 가지고 있던 반으로 접힌 서류가 떠올랐다.

“아…!”

망연자실의 탄성이었다. 우혁이 털썩 바닥의 턱에 주저앉았다. 재하가 서류를 가져갔다. 하얀에 관련된 것을 그가 알았단 것이다. 쌍둥이가 자신을 통해 재하를 제자리에 머물게 하려는 것까지 눈치챘을 것이다. 그간 쌍둥이 형들의 온갖 방해와 음모에 말려 들어가는 자신을 구해준 유일한 형을 내치는 이유가 여자 하나라는 사실까지 알아버렸다. 재하에겐 그의 고민조차 용납되기 힘들 수도 있다. 우혁이 초조함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때 하얀이 서재 문을 두드렸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하얀의 얼굴이 내밀어지고 이내 그녀가 주춤주춤 들어와 그의 곁에 앉았다.

“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가 도움이 되지 못하나 봐요.”

낮에 재하의 방문 이후 우혁은 줄곧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기 일쑤였다.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자신에겐 입을 꼭 다물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미소를 짓는 걸 보곤 고마움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도울 수 없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우혁은 여전히 착잡한 미소를 보이며 어색하게 이 상황을 넘어가 보려 했다. 역시나 그녀에게 숨긴 채 해결 방법을 찾아보려는 심산이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왜 안 자고 일어났어요?”

“대표님이 없어서요. 아직도 일이 많아요?”

하얀이 어지러운 책상 위를 힐끗 보았다. 우혁은 뻘쭘하게 뒷머리를 만지며 책상을 가렸다.

“뭐 찾으세요?”

“아, 김 비서가 서류를 하나 빼먹었나 봐요. 내일 회사 가서 찾으면 돼요.”

김 비서가 서류를 챙길 때 도운 게 그녀였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빠진 서류는 없었다. 그러나 하얀은 더 이상 그를 추궁할 수 없었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자리하자 우혁은 눈치를 보다가 벌떡 일어나 손을 뻗었다.

“가요.”

그의 손길에 느릿하게 일어난 하얀이 이끄는 손길을 따랐다.

“잡시다.”

하얀은 그가 골치 아픈 문제에 혼자 끙끙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병원에….”

“대표님! 괜찮아요. 얼른 출근하세요.”

평소와는 달리 출근준비를 마친 우혁과는 다르게 그녀의 복장이 편안했다. 아침 늦게까지 일어나질 못하는 하얀에 우혁은 서둘러 회사에 가 할 일이 있음에도 그녀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아직은 일을 하기에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우혁이 다시 병가를 허락한다며 출근을 마다하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그를 준비시켰다. 두 사람에겐 서로를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서로의 눈을 피할 시간 말이다.

“오전에 일 보고 오후에는….”

“아휴! 늦겠어요! 얼른 가세요. 저도 좀 더 늦잠자게요.”

“알겠어요. 나 정말 오전에 올 거니까. 한 숨 자고 있어요.”

“네. 대표님 올 때까지 자고 있으면 깨워주세요.”

우혁이 걱정을 놓지 못한 채 서둘러 차를 몰고 사라지자 그녀도 서둘러 나설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