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뭐하는 겁니까?”

바다에 몸을 던지려는 여자의 허리를 겨우 잡아끈 시안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놔 주세요.”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했던 여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낮은 목소리였다.

“이봐요. 제정신이에요? 그렇게 목숨이 하찮습니까?”

바람과 같이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는 너무나 날카로웠지만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황급히 여자를 돌려세운 시안의 눈에 여기저기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는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누가 그런 겁니까?”

“참견하지 말아요.”

여자의 손목을 잡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이 여자는 벌써 어딘가로 가버렸을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경찰서에 가야 할 거 같군요. 이 멍, 얼마 되지 않은 거네요. 누가 때린 겁니까?”

“그만 내버려 두라고요.”

여자가 기어이 얼굴을 들었다. 여기저기 얼룩진 얼굴에 눈빛 또한 초점이 없었다.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거면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그런 겁니까? 아니면 남편?”

“…….”

여자의 얼굴에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안은 여자가 놓으라며 소리라도 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표정도 없이 눈물만 흘리는 여자가 그의 심장을 자극했다.

“아무래도 경찰서에 연락을 해야 할 거 같네요.”

여자가 어디라도 가버릴까 봐 한 손으로 여자의 손목을 잡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러지 마세요.”

“여보세요? 저기…….”

여자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그가 잡을 여유도 주지 않고 달려가 버렸다.

“이봐요?”

시안은 다시 소리 질러 봤지만 이미 여자는 저 멀리 가버린 후였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양양 경찰서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장난 전화는 아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 연락했는데 그냥 가버렸네요.”

시안은 여자가 사라져버린 방파제 길에서 눈을 떼지 않고 경찰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냥 보내면 안 되는데.”

친구들과 제대 기념으로 이곳을 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술을 깨기 위해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 방파제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오늘 여자의 목숨을 구하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시안은 자신의 손을 떠난 여자가 다시 이상한 생각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소연은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에서 구해준 것만으로도 남자에게 감사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자신의 처지가 그 누가 보아도 동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너무나 슬펐다. 어릴 적 이미 세상을 저버린 엄마가 죽은 건 소연 때문이라며 그녀가 눈에 보이기만 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녀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거.

“이 병신 같은 게 뭐 잘났다고 그 낯짝을 들고 다니는 거야? 누가 너를 좋아한다고 이 집에 들어와.”

아직도 아버지의 말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참을 수 있었다. 오히려 아버지와 떨어져 있던 시간이 그녀의 생애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매달 아버지의 결핵약을 타 가지고 오면서 소연은 오늘도 아버지의 폭력이 얼마나 심할까 생각해야만 했다.

“아버지 잘못했어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계속 미안하다고 했지만 한번 시작된 폭력은 그칠 줄 몰랐다.

“이 병신아, 내가 창피해서 어디를 못 다녀.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고 했지. 네년이 태어나서 네 애미도 일찍 죽은 거야.”

“아버지!”

다시 휘두르는 주먹에 이미 얼굴의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애미도 잡아먹은 병신 년이 이젠 나까지 잡아먹으려고?”

결핵이 있음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셔대는 아버지는 점점 말라만 갔고 그래서 더 날이 선 채 그녀를 대했다.

“죄송합니다.”

그녀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아버지에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정상적으로 태어나게 해주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원망하며 서서히 정신 잃어갔던 엄마를 위해서라도 소연은 아버지를 멈출 수 없었다.

“죄송? 지애미도 잡아먹은 년이 어디 입이 있다고 아무 소리나 내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