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1994년 서울. 공영남자고등학교.'분주히 교문을 들어서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 사이에서 머리 하나는 더 큰 남학생의 앞에 하얀 손이 불쑥 내밀어졌다.'“내놔.”'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소리로 말을 하는 준성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고2를 나타내주는 초록색의 명찰을 똑같이 가슴에 달고 마주하고 있는 그 둘은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대치를 하고 있었다.'“씨방새야. 뭘?”'“조금 전에 저 앞 골목에서 삥 뜯은 돈 말이야.”'‘네가 무슨 상관인데’라는 듯 질겅질겅 씹던 껌을 훅 불어 교문 앞에 뱉어낸 호석은 자신 앞에 손을 내민 준성을 향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봤어? 네가 봤냐고?”'“봤어.”'단호하면서도 분명하게 ‘봤어’라는 말에 호석의 얼굴은 똥 씹은 사람처럼 잔뜩 찌푸려졌다. '호석은 ‘이게 겁도 없이’라며 그를 죽일 듯 노려보다 꿈쩍도 하지 않는 준성의 강렬한 눈빛을 정면으로 차마 받아내지 못하고 기가 죽어 낭패 어린 눈으로 준성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결국은 슬그머니 모로 외면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아, 씨팔! 눈싸움에서 졌네.’'처음 맛보는 패배였다.'현재 학교 짱을 먹고 있는 호석에게 두려움이란 없었다. 잔뜩 일그러트린 험악한 표정과 찢어질 듯 위로 쭉 치켜 올라간 매서운 그의 눈매를 마주하면 겁 많은 후배와 동급생은 물론, 선배조차 슬슬 꽁무니를 빼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게 만드는 좋은 무기였다.'그러나 선도부라는 노란 완장을 팔뚝에 맵시 있게 단 준성은 태연하게 그런 그의 앞에 당당하게 손을 내민 채 서 있었다.'강렬한 눈빛을 빛내며 뺏은 돈을 내어놓으라는 준성을 노려보던 호석은 한 눈에 보기에도 ‘난 불량학생이다, 꼽냐!’라는 스티커를 이마 한가운데 떡 붙이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 속에 움켜쥐고 있는 돈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늠하는 것처럼 준성을 한참이나 그 험상궂은 얼굴로 노려보아야 했다. 그러다 결정을 했는지 ‘일진 사납네.’라고 중얼거리고는 준성이 내밀고 있던 손에 빼앗은 돈을 내던지듯이 건네고는 운동장을 향해 걸어갔다. '무스를 이용해 삐죽삐죽하게 한껏 세워 올려 밤송이를 연상시키는 머리며, 삐딱하게 매인 교복의 넥타이 등의 겉멋만 잔뜩 든 차림을 유심히 바라보던 준성이 툴툴거리며 멀어져가는 호석의 등에 대고 대담하게 말했다.'“잠깐 서!”'다 끝난 것처럼 투덜거리며 걷던 호석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화가 난 듯 어깨가 굳어진 것도 잠시, 눈에 쌍지팡이를 켜며 몸을 돌렸다.'“뭐가 또, 씨팔!”'한번 들어간 호석의 양손은 바지주머니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복장불량, 두발불량.”'위아래를 훑어보며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차갑게 준성이 말을 하자 호석의 목소리가 짜증스럽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