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급하게 로비로 들어서던 효선은 이제 막 문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하고 무작정 뛰었다.'“잠깐만요! 잠깐만요!”'전속력으로 내달려 문이 닫히려는 찰나에 한쪽 발을 쑥 밀어 넣었다. 그러자 문이 다시 열리고 효선은 거친 숨을 내쉬며 안으로 쏙 들어갔다. 눈 끝에 힐끗 잡히는 인영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리며 ‘죄송합니다.’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장 7층 버튼을 누르고 정면을 바라보았다.'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스카이가 개발실로 직접 내려와 주간업무 현황을 보고받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단합대회를 다녀온 후 처음 출근하는 아침인데 첫날부터 지각하면 정신이 해이해졌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권명준 대표에게 그런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일요일 내내 그의 전화를 기다렸지만 결국 그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한껏 의기소침해진 상태였다. 게다가 오늘부터 마두환 대리와 함께 개발실 직원들을 속여야한다. 그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다. 누굴 속이는 것 자체도 자신이 없는데다가 개발실 직원들이 자신을 그런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후라 그들을 어떻게 봐야할지도 걱정스러웠다.'“휴우…….”'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직장생활이 어렵긴 하다. 왜 어른들이 공부할 때가 좋다고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월요일 아침부터 한숨이라……불량직원이군.”'흠칫. 효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익숙한 그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동시에 그녀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녀의 눈길이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남자에게로 향했다. 급하게 뛰어 들어오느라 누가 있는지도 몰랐었다. '맙소사, 권명준. 저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있다는 걸 몰랐다니.'효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그녀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바지 한쪽 주머니에 손 하나를 집어넣고 느긋하게 서있던 그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별로 안녕하지 못한데?”'효선의 미간이 모아졌다.'“네?”'얼핏, 그의 눈빛에 장난기가 스쳤다.'“주말 내내 내 볼일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가기 싫은 모임만 끌려 다녀서 피곤하거든.”'“아, 네에…….”'그 단순한 대답을 하면서 효선의 머리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말 내내 바빴던 모양이다. 그래서 전화를 못한 걸까? 그럼 전화할 마음은 있었던 걸까? 하지만 아무리 모임이 바빴다지만 전화 할 시간도 없었을까?'‘남자는 마음만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자에게 대시 해. 시간 없다, 여유 없다고 하는 건 순전히 핑계야.’'친구 혜주의 말이 생각났다. 연애 경험이 풍부한 혜주니까 그녀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효선은 슬그머니 기어오르려는 기대감을 억지로 눌러 가라앉혔다.'그래, 그가 마음만 있었다면 분명 짬을 내서 전화했을 거야. 애초에 나한테 전화할 마음이 없었던 거지.'효선은 그렇게 결론 내어 버리고 다시 몸을 돌려 정면을 쳐다보았다. 엘리베이터가 7층에 먼저 도착했다. 그녀는 권명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그럼 수고하세요.”'그리고 그대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그때였다.'“전화한다고 했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효선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그 말뜻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그는 하려고 했던 거야!'심장 박동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효선은 호흡하기가 곤란한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얼굴에 열기까지 몰려 볼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차마 그를 돌아보지 못하고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아뇨. 뭐…….”'“대신 내가 밥 사지.”'순간 효선은 자신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를 돌아보았다.'“아뇨, 안 그러셔도 돼요.”'그가 전화 일로 부담을 가지는 것이 싫었다.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그 말은 나하고 밥 먹기 싫다는 건가?”'아뇨! '효선은 말뜻이 그렇게 전달된 것에 당황했다. 그래서 뭐라고 대꾸해야할지를 몰라 머뭇거렸다. 그러자 그가 피식 웃었다.'“싫은가 보군.”'“아니! 아니에요.”'그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까봐 앞뒤 재는 것 없이 말이 튀어나가고 말았다. 효선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완전히 내 마음을 다 보이는 꼴이잖아. 이렇게 대책 없이 덤비는 꼴이라니.'“난 그러니까…….”'효선이 주저주저, 말을 더듬자 그가 다시 말했다.'“지금 그건, 나하고 밥 먹는 게 싫지 않다는 말인가?”'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그런 게 아니라……밥은 제가 사야죠. 휴게소에서도 그렇고 절에서도 그렇고, 자꾸 신세만 져서 제가 밥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그가 어깨를 으쓱했다.'“좋을 대로.”'흔쾌한 대답에 효선의 마음도 차츰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대신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가 자신과 밥을 함께 먹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자각되자 비실비실 웃음이 비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어쩔 수가 없었다.'“문효선 씨.”'권명준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효선은 표정을 바로 하며 그를 쳐다보았다.'“네?”'그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네?”'무슨 말인지를 몰라 되묻자 그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라고. 다른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고장 난 줄 알겠어.”'“아!”'효선은 그제야 자신이 엘리베이터 문틀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창피함이 극에 달한다. 놀라서 재빨리 비켜나자 그제야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닫히는 문틈으로 그가 웃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고 피식 웃는 것이 다 보였다. 덕분에 그녀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아, 문효선. 너무 바보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