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화창한 5월.

은병은 손 안의 휴대전화를 뚱하게 봤다.

오늘은 전공 프레젠테이션 발표 준비로 빈 강의실에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세 명이 한 팀이었지만, 밤새 자료들을 준비해 온 은병과 달리, 다른 두 명은 30분 정도 늦는다고 톡을 보내왔다.

“이러다 또 독박 쓰게 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진짜 싫은데.”

학점에 30% 반영되는 프레젠테이션이라 걱정되면서도, 은병은 두 사람이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 같아 찜찜했다.

“30분 안에 온다고 했으니, 한 번은 믿고 기다려 주겠어.”

프레젠테이션 발표 팀의 톡 방을 향해 경고를 날린 은병은 포털 앱을 열었다.

실시간 검색과 새로운 기사 타이틀들이 사진들과 함께 주르륵 떴다.

그중 유독 도드라지는 제목 하나.

<칸을 빛낸 젠틀맨, 서준혁>

첫 기사 아래로, 서준혁을 칭찬하는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잘생긴 외모만큼 신사적인 배려가 돋보인, 서준혁>

<빗속에서 빛난 서준혁의 매너>

<우리나라 최고의 매너남, 서준혁>

<서준혁, 빗속에서 여심을 저격하다>

“서준혁이 뭘 했는데 그러지?”

호기심이 돋은 은병은 서준혁 동영상 목록을 찾았다. 그중 하나를 열자,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카메라로 가득한 레드 카펫이 보였다.

요즘 개최 중인 칸 국제 영화제.

빗속을 달려 막 도착한 검은색 의전 차량에서 크리스티앙 디올의 홀터넥 화이트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와 영화감독, 그리고 톰 포드의 턱시도를 입은 서준혁이 차례로 내렸다.

특히 턱시도 핏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주변을 느긋하게 돌아보는 서준혁은 단연코 기품 있게 섹시했다.

영화제 스태프들이 받쳐 든 검은 우산 아래에서, 그들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레드 카펫 위를 걷기 시작했다.

“와아!”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칸에 모인 사람들의 열띤 흥분과 환호가 넘쳤다. 여기저기서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와 눈부신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졌다.

포토타임을 갖고 돌아서는데 여배우가 비틀거렸다. 순간 서준혁이 그녀의 팔을 붙잡고 부축했다.

괜찮으냐고 묻는 듯한 눈빛.

실수로 굳어 버린 여배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준혁이 천천히 하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한쪽 팔을 내밀었다.

긴장이 풀린 여배우도 미소로 화답하며 준혁의 팔을 붙잡았다. 그에게 기댄 그녀는 다리에 감긴 치마를 자연스럽게 손바닥으로 쓸었다.

은병은 그때서야 비에 젖은 드레스 치마가 여배우의 다리에 달라붙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태프가 우산으로 막지 못한 비를 여배우의 곁에 선 준혁이 어깨를 적시며 막는 것도.

준혁이 드레스 정리가 끝난 여배우를 에스코트하며 레드 카펫 위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배우의 속도에 맞춰 여유롭게 걸으면서도, 그는 서늘한 빗속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어 좌중에게 젠틀한 매력을 흩뿌렸다.

“우와!”

잠시 주춤했던 환호성이 찌를 듯이 높아졌다. 준혁의 매혹적인 미소를 담아가려는 듯,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플래시가 불꽃처럼 마구 터졌다. 넘어질 뻔한 여배우의 실수는 사람들 뇌리에서 잊힌 지 오래.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는 영화 대사처럼, 진짜 서준혁은 매너 그 자체였다.

“우와. 서준혁, 심하게 멋진데.”

감동한 은병은 칸에 간 서준혁에 대해 검색했다. 칸 관련 여러 동영상을 본 그녀는 프레젠테이션은 잊고, 어느새 준혁에 관한 블로그들과 평가들까지 찾아 읽었다.

모두가 한결같았다.

성실함과 젠틀함으로 무장한 젊은 배우.

어떤 시나리오를 주어도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하는 연기파.

은병은 팬이라는 블로그에서 흑백사진 속 준혁의 옆모습을 봤다. 칸에서의 보인 부드러움과 달리, 조각 같은 얼굴선과 정면을 보는 눈빛이 매혹적이고 섹시했다.

부드러움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서준혁.

하아, 전생에 나라를 구하면 이런 남자를 만날 수 있을라나.

은병은 부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 서준혁과 사귀는 여자는 누군지 몰라도 인생 대박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