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서준이 모습을 나타냈다. 예전의 부드럽던 인상과 달리 7년 만에 보는 서준은 많이 날카롭게 보였다. 일단은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든 동혁은 서준을 반갑게 맞았다. 휘는 아파하던 수련의 모습이 떠올라 복잡한 시선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어서 와라. 여기 저기 소문만 무성하더니 이제야 얼굴 보여 주는 거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동혁이 서준을 맞으며 꽉 끌어안았다.' “오호, 열렬한 환영이군. 반갑다.”' “그래, 진짜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뭐하다 이제 온 거야?”' “숨 좀 돌리자. 짜식, 뭐가 그리 급해서.”' 설핏 웃음을 지은 서준이 자리에 앉으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있었냐?”' “너, 뭐 하는 녀석이야?”' 서준은 여전히 잘난 놈이었다. 예전엔 웃음 많고 자신감이 넘치던 녀석이었는데 지금의 모습에는 웃음은 사라지고 차가움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만큼 상처가 큰 모양이었지만 휘에게는 그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서준이로 인해 아파하던 한 사람의 모습이 가시처럼 가슴 깊게 박혀 있어 그저 분노와 배신감에 어금니를 깨물었다. ' “자, 자. 진정하고 천천히 들어 보자. 아직 시간 많잖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얼굴 보자마자 이러는 건 아닌 거 같다. 일단 한 잔 하자.”' 분위기가 갑자기 차갑게 얼어붙은 듯해서 동혁이 서둘러 잔을 채웠다.' 동혁이 내민 잔을 한 손에 들고 빙글 빙글 돌리다 무심한 눈빛으로 휘를 쳐다보며 입을 떼었다.' “넌, 내가 온 게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너한테 우리가 친구이기는 했던 거냐? 갑자기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 사람 기함하게 만들더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로 나타나서 한다는 소리가 잘 있었냐? 하, 너 도대체 뭐하는 자식이야?”' “진짜 오랜만에 만나기는 했나보다. 그렇게 말없고 조용하기만 하던 녀석이 이리도 열을 내는 모습을 보니 세월이 많이 지나기는 했나보다.”' 서준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은 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복잡한 표정이 돌연 아련해지는 듯하다가 금세 차갑게 변했다.' “내 얘기는 나중에 하자. 오늘 무슨 빚 받으러 온 사람도 아니고 너희들이 다그친다고 지난 시간 동안의 이야기 한꺼번에 쏟아 낼 수도 없고 그냥 편하게 맞아 주면 안 되는 거냐?”'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듯이 싸늘한 시선으로 휘를 바라보며 서준은 입을 닫았다.' “좋아, 안 물을게.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말을 꺼내기 싫다면……, 그럼 이렇게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냐?”' “이유?”' “7년간 아무 소식도 없이 외국으로만 떠돌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들어오게 됐는지 그것도 말 못 하냐?”' “이유라…….”' 보일 듯 말 듯 한 쪽 입가를 살짝 올린 서준이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 이유가 있지, 7년을 떠돌면서도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잊히지 않았던 한 존재. 가끔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기도 했던 존재가 있었다. 이제 그 존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주된 이유였다.' “수련이……, 찾으러 왔다.” ' 갑자기 돌아온 이유를 묻는 물음에 서준이 답하자 휘의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어 버렸다.' “미친 새끼. 너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뭘 찾으러 와?”' 서준은 예상외로 격한 반응을 보이는 휘에게 냉담한 눈빛을 던졌다.' “너 반응이 좀 세다?”' “뭐? 수련이 찾으러 왔다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제 와서 수련이를 찾겠다고 나서? 그동안 수련이가 얼마나 아팠는지 네가 봤다면 그딴 소리 입에 담지 못할 거다. 너도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야. 이 새끼야.”' 휘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가 어려웠다. 너무나 뻔뻔스러운 서준의 행동에 자꾸 뻗어나가려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늘 점잖기만 했던 휘의 입에서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서준의 눈은 칼날을 머금은 듯 날카로운 빛을 띠었다. 동혁은 격한 반응을 보이는 휘를 보고 눈을 꼭 감아 버렸다. 휘의 아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자격이 있고 없고는 네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수련이이를 만나야겠지.”' “아니 만나지 마. 연락하지도 마. 이제야 겨우 안정 찾은 애 찾아서 흔들지 마. 그동안 많이 힘들어 했어. 너 때문에.”' “조금 우습다. 서문휘. 네가 수련이의 뭐라도 되는 듯한 그 발언. 조금 거슬려. 둘이 무슨 사이라도 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