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한번 무지하게 좋네.”'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지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루 종일 잔뜩 흐렸던 어제와 달리 오늘의 날씨는 매우 맑고 화창했다. 두 눈을 살포시 감은 지수는 모처럼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 좋다.”'간밤에 잠을 설친 탓일까. 얼굴에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을 받으니 저절로 졸음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바로 옆에서 길거리 역술인에게 사주를 보며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고 있는 친구 미선의 목소리가 점점 가물가물하게 들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고개도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8월, 9월, 특히 조심하세요.”'“네, 네. 감사합니다. 지수야, 넌 안 봐?”'사주를 다 봤는지 역술인에게 인사를 마친 미선이 고개를 돌려 지수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지금 눈앞에 있는 지수를 본 미선의 얼굴엔 금세 황당한 빛이 떠올랐다.'“어머, 얘를 어쩜 좋아. 설마 여기서 잠이 든 거야? 야, 지수야. 류지수?”'미선은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역술인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보인 후, 제집인 양 머리를 아래로 푹 숙인 채 잠들어 있는 지수를 흔들어 깨웠다.'“어, 어.”'지수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동안이지만 불편한 자세로 앉아서 잤더니 목과 어깨가 뻐근했다.'“참내. 어떻게 여기 앉아서 잠을 잘 수가 있냐?”'미선이 지수를 향해 눈을 흘기며 타박했다. 지수가 뻐근해진 어깨를 한 손으로 주무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아, 미안. 밤에 잠을 설쳐서. 사주 다 봤어?”'“그래, 끝났다.”'“그럼 그만 가자.”'“넌 안 볼 거야?”'미선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지수의 팔목을 잡았다.'“응. 난 사주 몇 번 본 적 있어. 다 똑같더라 뭐.”'“한 번 더 보면 어때. 이분 잘 보시는 것 같아.”'“그렇게 해요. 기왕 앉은 거 보고 가요.”'조용하게 지켜보던 역술인이 미선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지수는 잠시 고민을 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역술인이 사주를 얼마나 잘 보기에 미선이 이렇게 나오는지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음, 그래요. 그럼 봐주세요.”'사주를 보기로 결정한 지수가 미선과 자리를 바꿔 여자 역술인과 마주 보고 앉았다.'“이름이?”'“류지수요.”'“생년월일은?” '“79년 3월 13일.”'“양력인가요?”'“네.”'“태어난 시간 혹시 알고 있어요?”'“오전 여덟 시 삼십 분이요.”'지수의 대답을 끝으로 역술인은 책자를 보며 노트에 알아보지 못할 글씨체로 뭔가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음.”'역술인이 들고 있던 펜의 움직임이 일순간에 탁 멈췄다. 그리고 본인이 노트에 적은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짧은 신음을 흘렸다. '“잠시 친구 분 나가 계시라고 할까요?”'“왜요?”'뜬금없는 소리에 지수가 고개를 들어 역술인을 쳐다봤다. 사주가 안 좋게 나온 것일까? 역술인의 표정은 과히 좋지 않았다.'뭐가 얼마나 안 좋게 나왔기에 미선에게 나가 있으라고까지 하는 거지? 지수는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졌다.'“지수야, 나 나가 있을까?”'분위기에 휩쓸려 덩달아 심각해진 미선이 지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아니야, 그냥 있어. 어차피 내가 다 말할 텐데 뭘.”'지수는 애써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했다.'“이 친구는 있어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말해 주세요.”'“알았어요. 음, 사주로 봤을 때 지수 씨에겐 결혼 운이 없어요.”'“네에?”'역술인이 내뱉은 말에 지수의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나에게 결혼 운이 없다니……. 그럼 내가 시집을 못 간다는 말이야, 지금?'“겨, 결혼 운이 없다고요? 저한테?”'놀란 가슴을 다스린 지수가 역술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네. 결혼 운이 없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이상한 건요?”'“결혼 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주에 자식은 둘이나 있다고 나오네요.”'“뭐라고요?”'이건 또 무슨 괴상망측한 소리인가. 결혼 운이 없는데 자식이 둘이나 있다니. 당최 무슨 말인지, 지수는 역술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결혼을 못하는데 어떻게 자식이 있죠?”'조금씩 짜증이 밀려든 지수가 역술인에게 따지듯 물었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면 짜증이 나기 마련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연거푸 듣게 된 지금 기분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음. 결혼 운이 없다고 했지, 결혼을 못한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결혼을 하긴 하는데 남편을 잘못 만나서 결혼 운이 없다고 한 거예요.”'와아, 이 역술인 그새 말 바꾸는 것 좀 봐. 분명 방금 전엔 결혼 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자식은 둘이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