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문 좀 열어 주세요. 흑흑. 자…… 잘못…… 했어요.”'불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창고의 문에 매달려 작고 지친 몸을 간신히 추슬러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높은 벽 위에 작은 창이 있었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밤이라 전혀 빛이 새어들지 않았다.'“제발…… 문…… 열어…… 주세요…… 엉엉…… 잘…… 못…… 했어…… 요. 흑.”'울며 작은 주먹으로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포기한 듯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흑흑, 아빠…… 아빠…… 나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아빠…….”'짧은 순간 번쩍이는 빛이 주위를 밝혔다.'“무…… 무서워…… 어…… 엄마.”'창고에 이리저리 쌓여 있는 물건들이 찰나의 순간 아이의 눈에 기괴한 형상으로 비추고 사라졌다. 아이는 오들오들 떨며 차가운 철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잔뜩 몸을 웅크려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고막을 터트릴 듯한 천둥소리에 아이는 귀를 막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아악…… 엄마…… 엄마…… 엄마…….”'계속되는 천둥번개에 얇은 원피스 잠옷 차림의 가냘픈 아이는 엄마를 목이 터져라 소리쳐 부르고 있었지만 그 처절한 외침은 쏟아지는 폭우 소리에 묻혀 버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여름이지만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와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리는 아이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같은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자…… 잘, 잘못…… 했어…… 어…… 엄마…… 무…… 무서…… 워.”''“어…… 엄마…… 엄마…… 엄마?”'괴로운 듯 고운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허공에 팔을 뻗어 뭔가를 잡으려는 듯 허공을 헤매던 스스로의 몸부림과 비명에 놀라 눈을 떴다. 환하게 빛을 발하며 방 안을 밝히고 있는 조명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어둠을 참지 못하는 수아는 언제나 불을 환하게 밝힌 채 잠이 들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악몽을 꾼 것이다. 온몸이 땀에 푹 젖어 있었다. 보송보송하게 새로 바꾼 시트도 베개도 온통 축축하게 젖어 온몸에 불쾌함을 전하고 있었다.'“하아. 미치겠군.”'신경질적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수아는 베갯잇과 시트를 걷어내 바닥에 던져 버리고 잠옷과 속옷을 벗어 그 위에 던져두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아래에 서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다.'“도대체 언제까지…….”'고인 눈물이 흐르지 못하게 아프도록 입술을 짓이기는 치아에 기어이 생채기가 난 여린 입술이 비릿한 피 맛을 전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난 수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나신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등의 중간까지 흘러내린 까만 머리카락이 우윳빛 하얀 피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고 늘씬하다 못해 마른 듯한 몸은 가느다란 허리선과 긴 다리와 팔이 늘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몸에 비해 풍만한 가슴은 모양 좋게 자신을 뽐내고 있었고 어디 한 곳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외모였지만 수아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하아.”'수아의 커다란 눈에서 기어이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거칠게 손으로 털어내도 멈추지 않는 눈물에 수아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위로 올리고 등을 거울에 비추었다. '“훗. 여전히 멋지군.” '냉소를 머금은 수아의 눈은 거울에 비친 새하얀 등 위에 있는 붉은 흉터를 보고 있었다. 악몽을 꾸어서 그런지 더 진한 붉은 빛을 띠는 듯한 오래된 흉터가 욱신거리며 아파오는 것 같았다.'“정말 지독하네. 하하.”'공허한 수아의 목소리가 욕실에 울려 퍼졌다.'욕실에서 나온 수아는 새 잠옷을 꺼내 입고 시계를 보았다.'5시.'다시 잠을 청하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다시 잠들 수도 없겠지만.'“후우. 일이나 하자.”'세탁기를 돌려놓고 커피를 진하게 내려 큰 컵에 가득 채워 든 수아는 서재로 들어갔다.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진한 커피는 수아의 머리를 맑게 깨워 주었지만 비어 있는 위장은 약간의 쓰린 통증을 호소했다.'“자. 시작해 볼까?”'두 손을 깍지 껴 앞으로 쭈욱 뻗어 스트레칭을 하고서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한 수아는 두 시간이 다 되도록 꼼짝도 하지 않고 서류에 파묻혀 있었다.'8시 20분'하얀 목 폴라에 감색 바지 정장을 입고 머리를 하나로 틀어 올린 수아는 서류 가방을 들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었다. '“좋은 아침.”'“좋은 아침입니다. 윤 변호사님. 와! 오늘은 더 멋지세요.”'사무실의 전반적인 일들을 책임지고 있는 영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3년 전 사무실을 개업할 때부터 함께 손발을 맞춰 온 영지는 귀여운 인상의 성격 좋은 27살 아가씨였다. 타고난 친화력으로 언제나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수아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신문을 집어 들고 소파에 앉았다.'“일찍 나왔네?”'윤&박 변호사 사무실의 대표이자 수아의 선배인 진우였다.'“선배도 일찍 나왔네요. 혜주가 늦잠을 안 잤나 봐요?”'“말도 마라. 결혼하고 나서 아침 밥 한번을 제대로 못 얻어먹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일찍 일어났기에 웬일이냐고 했더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자, 이거.”'진우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가방을 수아에게 불쑥 내밀었다. 수아는 영문도 모른 채 받아들었다.'“이게 뭐예요?”'“권혜주 표 특제 샌드위치란다. 돈 벌러 나가는 남편을 위한 게 아니라 매번 아침을 거르는 윤수아 변호사님 건강이 걱정되셔서 새벽부터 준비하셨단다. 쳇. 이거 어디 서러워서 살겠냐?”'“후후. 그럴 리가 있어요? 선배 먹이려고 하는 김에 저는 곁다리로 끼워 주는 거겠죠.”'“혜주가 너라면 얼마나 끔찍이 생각하는지 알면서 그러냐? 아무튼 너 이거 다 먹어. 혜주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부스러기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 알았지?”'“풋. 고마워요, 선배. 하나 안 남기고 다 먹을게요.”'말은 저렇게 해도 자신을 친동생처럼 챙기는 진우였다. 수아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인 혜주의 남편이기도 한 진우는 언제나 수아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했다. 혜주와 진우는 수아에게 가족이었다. 수아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