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어린 날,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붉은색이다.'내 어머니를 떠올리면 난 태양보다 짙은 그 색을 눈앞에 그리게 되고 숨마저 죽이게 된다. '내게 붉은색은 오로지 따뜻함이고 아름다움이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행복함이 전부였었다. 그 생각은 마음 깊숙이 박힌 단호한 것이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으리라 확신했다.'내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였다. '노란 햇살을 받으면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던 어머니의 긴 검은 머리카락은 화사한 붉은색으로 찬란하게 물들어갔고, 나와 아버지는 매번 넋을 잃고 바라보고는 했다. '그리고 붉은 입술의 다정한 속삭임.''-우리 아가 사랑해.''어머니는 잊지 않고 달콤한 향기가 묻어나는 음성으로 말하며 작은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혀 아끼지 않는 아름다운 엄마는 천사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상한 미소를 띠우며 처음 대부분은 어머니와 나를 조용히 관망하는 것으로 소파에 점잖게 앉아 있지만, 곧 나를 따뜻하게 품고 있는 어머니를 그 넓은 가슴으로 꼭 안아들며 소형비행기가 되어 빙빙 거실을 날듯이 돌아다녔다.''-이 아빠가 얼마나 우리 두 아가씨를 사랑하는지 알아?''아버지의 사랑스런 물음에 우리는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그가 해주는 비행은 정신없을 정도로 엄마와 내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나 우리는 멋진 비행의 보답으로 아버지에게 최고로 사랑한다 말하며 키스세례를 퍼부었다. '행복이었다. '천사 같은 엄마와 장군 같은 아빠, 그리고 아가인 나. 그때는 이미 일곱 살이었고, 내게 ‘이유미’ 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곧잘 나를 ‘우리 아가’ 라 불렀다. '제법 세월이 흘렀어도 난 ‘아가’ 라는 단어에 내 이름보다 더 빠르게 반응을 하고는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나를 ‘아가’ 라 부르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부르지 않게 된 것이 아니다. 그날 이후 내가 원하지 않았고, 아버지 또한 그 이후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내 눈은 메말라 아무런 감동도 없다. 혹여 누군가 내게 제일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내 나이 일곱 살이었을 때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만은 행복이라는 단어 이상 적합한 말은 없으니까. '그러나 제일 불행했던 때가 언제였냐고 묻는다 해도, 난 내 나이 일곱 살 때라 말하지 않을까.''하얀 겨울.'아마 눈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본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전에도 눈은 왔었겠지만, 일곱 살 때보다 더 어렸을 때라 기억할 수 없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날 어머니는 편두통이 있는지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 누르며 ‘우리 어서 나가서 놀아요! 밖에 눈이 와요!’ 라고 몇 시간 전부터 엄마의 옷자락을 붙들고 보채는 나를, 내일 그렇게 하자며 살살 달랬었다. ''-싫어! 지금 나가 놀아요! 엄마, 지금! ''어머닌 ‘우리 아가는 누굴 닮아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네.’ 라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끝내 내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외출 준비를 했었다. 난 드디어 눈이 오는 밖에 나가 놀 수 있다는 기쁨에 입이 함박 벌어졌다. '망아지처럼 방방 뛰며 촐랑대는 날 보며, 엄마의 얼굴에 빙긋이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내게 주의라도 주는 듯 코끝을 아프지 않게 살짝 잡아당겼다가 놓으며, 직접 짠 분홍색 털모자와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주고는 예쁜 벙어리장갑까지 건넸다. 그리고 내가 장갑을 끼기 전, 어머니는 다짐을 받듯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우리 아가, 딱 한 시간만 노는 거야? 약속.''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런 내 얼굴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자연스럽게 물려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내 작은 손을 꼭 잡고 하얀 눈 세상이 펼쳐진 밖으로 나왔다.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