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시원하다. 바람이 부니까 좀 낫네.”'요 며칠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공기가 많이 답답했다. 기분까지 안 좋은데 시원한 바람이 불자 그녀는 일주일 동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녀를 찾아 올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자 바람을 타고 진한 라일락꽃 향이 그녀의 코끝을 스쳐지나갔다.''라일락꽃 향기.''맡고 싶었던, 그리워하던 향기였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가볍게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내뱉는 숨이 무겁게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익숙한 라일락꽃 향이 또다시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다. 잊으려고 노력해도 잊을 수 없게끔 말이다. 잊을 만하면 봄이 오고 잊을 만하면…… 여름의 달콤함이 그녀를 놓아 주지 않았다.''“후, 후훗.”''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또다시 가슴이 저릿하게 저려왔다.''‘왜 잊을 수 없는 거니? 왜!’''일주일 전 그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도 그런 멋진 사랑을 받았었지 하며 혼자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더 멋진 모습으로 위험하리만큼 남자다워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4년 만에 본 그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쿵. 그녀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를 떠올리다 보니 잘못 들은 것이 분명했다.''별걸 다 떠올린다 싶어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왜 이제 와서 흔들리는 것인지.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끼며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등 뒤로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호. 한민호 목소리였다. 그가…… 온 것이다. 일주일 동안 그가 오면 어쩌나 가슴 졸였던 것이 괜한 걱정이었다고 생각해 마음을 놓는 순간 그가 나타났다. 순간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차마 뒤돌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착각이 아니라 현실일까 두려웠다. 증기기관차가 본격적으로 속력을 내기 위해 준비하듯 그녀의 심장이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긴장감으로 두 손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송세경.”''천천히 몸을 돌려 뒤돌아보았다. 그가 나타나는 장면을 수십 번 상상했지만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엄청난 긴장감이 그녀를 덮쳐왔다. 서쪽으로 지고 있는 태양을 등지고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며 그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위협감을 느낀 그녀가 급하게 숨을 훅 들이마셨다.''“놀랬나?”''놀란 듯 한 손으로 가슴께를 누르며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그가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커지는 그녀의 눈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송세경. 단 한시도 잊지 못한 여자. 잊을 수 없었던 여자가 그의 앞에 서 있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마른침을 넘기는 것이 보였다. 그를 향해 해맑은 웃음을 가득 담았던 눈과 입술이 놀람과 긴장감을 담고 있었다. 그가 보일 듯 말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