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서혜는 우울했다. 점심시간이 갓 지난 오후 햇살은 투명한 유리창에 반사되어 그녀의 꼭 감은 두 눈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나는 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일까? 지금의 이 시간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안겨주는 거지?’ '교단에서 떠드는 선생님의 말소리가 그녀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서혜는 자신이 만든 정적 속에 묻혀 그 정적을 감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 눈 감고 있는 학생! 일어나봐!” '필기를 하다말고 선생님이 그녀를 향해 들고 있던 분필을 힘껏 던졌다. 몽땅 연필처럼 조그마한 하얀색 분필은 그녀의 머리를 맞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서야 서혜는 창밖으로 던졌던 시선을 선생님에게로 옮기면서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그녀는 선생님의 갑작스런 지적에 놀라거나 창피해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태연스레 선생님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잖아!” '선생님은 그녀 때문에 수업을 방해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차갑게 내뱉었다. 서혜는 의자를 뒤로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지금 눈 감고 뭐 생각했어? 눈을 감으면 중간고사 시험문제가 나오기라도 한대?” '선생님은 들고 있던 국어책을 교단 책상위에 신경질적으로 엎어놨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모아졌다. 서혜는 반 아이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선생님을 매섭게 쏘아 보았다. '“너 지금 뭘 잘했다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거야? 건방지게시리. 이리 나와!” '서혜는 아무런 대꾸 없이 교단 앞으로 나갔다. '“난 내 수업시간에 딴 짓하는 것은 절대 용서 못한다. 그리고 나한테 반항하는 것도. 눈 감고 무슨 생각했어? 몰래 졸고 있었던 거야? 아니면 집에 두고 온 엿이라도 생각했던 거였어? 말해봐! 무슨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러나 그녀는 선생님의 물음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혜의 그런 태도가 선생님으로서는 못마땅하고 화를 더욱 돋구었다. '“이서혜! 선생님 말이 안 들려? 너 벙어리야?” '선생님은 그녀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힐끗 보면서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묵묵부답 이었다. '“안 되겠군. 당장 복도로 나가 무릎 꿇고 반성하고 있어!” '서혜는 잠시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교실을 나가는 그녀의 등 뒤로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쟤 오늘 또 걸렸네.” '“그게 쟤 하루 일과 아니냐. 정말 재수 없어. 누가 무당 딸 아니랄까 봐서 티내는 거야, 뭐야?” '서혜는 눈을 감아 버렸다. 꼭 감은 두 눈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그녀의 두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