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우산을 찾기 위해 가방을 뒤지던 민희의 얼굴이 금세 하얗게 질렸다. 작은 가방 안에 있어야 할 우산이 없었다. 등교하기 전에 가방을 열어 우산이 있는 걸 확인까지 했던 민희는 잔뜩 찌푸린 하늘을 걱정스런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엄청난 양의 비를 토해낼 것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가방 안을 뒤져봤지만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가방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민희는 오늘 아침 자신의 방에서 나오던 영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영숙은 복도에 서 있던 민희를 보자 얼른 등 뒤로 손을 감추었고 그런 영숙의 행동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휴…… 어쩔 수 없지, 뭐. 그냥 가는 수밖에.”'갑자기 내리는 비에 우산을 가지고 올 사람만 있어도 이런 사소한 문제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반 친구들처럼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교문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엄마를 기다리는 작은 행복만 있다면 그깟 우산쯤은 사라져도 얼마든지 괜찮았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우산을 가지고 온다면 평생 그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민희는 혼자였다.'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기댈 곳 하나 없는 고아였다. 그나마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오는 자원봉사자 아줌마들뿐이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민희를 예뻐해 주는 아줌마가 한 분 계셔서 그분이 올 때마다 민희는 마치 친엄마를 만난 것처럼 편하고 행복했다. 언제부터인가 민희는 그 아줌마를 엄마라고 불렀고 아줌마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태어나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는 엄마라는 말을 아줌마에게 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 특별한 느낌이 좋아 이제는 혼자 있을 때에도 엄마를 부르기도 한다.'“엄마, 어쩔 수가 없어요. 그냥 가는 수밖에. 늦게 가면 원장 수녀님께 혼나니까.”'하는 수없이 가방을 메고 학교를 빠져나와 교문 앞까지 갔을 때였다. 이마 위로 차가운 물이 떨어졌다. 깜짝 놀라 얼른 손으로 이마 위에 떨어진 물을 닦아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하나둘씩 하얀 눈송이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듯 내려오고 있었다. 민희는 걸음을 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한참을 서서 눈이 내려오는 걸 바라보았다. 얼굴에 닿기가 무섭게 사르르 녹아 작은 물방울이 되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은 차갑기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순간,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던 가슴 한 켠에 갑자기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고 그 온기가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스한 온기가 민희를 감싸 안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래, 난 눈이 좋아. 하얀 눈을 좋아할 거야.”'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사치스런 감정이었다. 모든 것이 턱 없이 부족하고 자신의 것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아원 생활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좋아할 수 있는 존재가 하늘에서 푸짐하게 내려주는 눈밖에 없다는 현실이 비참하고 서글펐지만 민희는 그 작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왠지 오늘은 기분 좋은 일들만 있을 것 같다는 설렘과 기대감에 고아원으로 향하는 민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