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항 청사 안에는 비행기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12월, 폭설이 내려 발이 묶인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승객들 대부분 악천후에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공항 직원들을 괴롭혔다.'“언제 출발할 수 있대요?”'“제주 공항만 벗어나면 되는 거 아닌가요?”'“서울에도 눈이 오고 있나요?”'그러나 공항 직원들은 시원한 대답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뭔가 즉각적인 해결책이 있으리라고 믿는 승객들은 거의 없었다. 공항 직원들이 신이 아닌 이상 날씨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깐.'북새통인 그 속에서 아무 말 없이 대기실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김준후, 준후는 이 상황이 별로 당황스럽지 않은 지 노트 북 컴퓨터를 꺼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준후의 눈에 보인 것은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여자의 매끈한 다리였다.'오호라! 제법인데?'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신체 조합, 하지만 서로 생긴 모양새는 달랐다.'남자들의 이목을 끄는 다리가 있는 가하면, 쳐다보기도 싫은 다리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요.'귀를 거슬리게 하는 사람들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아예 포기를 했는지 지 집 안방처럼 잠에 빠진 남자의 코 고는 소리가 진동을 하고, 창밖에 미친 듯이 내리는 눈밖에는 아무 것도 볼 게 없는 이 상황에서는 아주 좋은 구경거리였다.'준후의 시선은 조금 씩 조금 씩 올라갔다. '발목을 감싼 검은 앵클 부츠위로 늘씬하게 뻗어 올라간 길고 매끄러운 다리, 분명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검은 치마가 무릎 까지 덮었어, 그럼 허리, 남자의 두 손에 사뿐히 잡히겠는데? 다음은 가슴……. 어쭈 제법 풍만한데?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있어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없었다.'얼굴을 돌려라. 하고 준후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자 그의 기대에 응답이라도 하듯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랑 통화를 하는 그녀의 웅얼거리는 입술이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준후의 시선은 검은 머리칼이 이마를 살짝 가린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져 볼 수는 없지만 실크처럼 부드러울 것이고, 입술도 꿀같이 달콤할 것이다.'준후는 잠깐 그 여자의 외모에 끌리자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겉모습만 보고도 흔들린 경우는 처음이었다.'그런데….'일순간 공항 내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모두 귓가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