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연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검게 변한 하늘만큼 불길한 느낌에 지연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며칠 전 정훈과 연락이 안 되서 그저 바쁘려니 생각하며 지나갔다. 하지만 그의 전화를 받고 확실히 그의 목소리가 예전과 다름을 느꼈다. 항상 밝은 분위기로 상대방을 잘 배려하는 그였는데, 이상하게 목소리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가끔 극도로 피곤할 때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 정훈은 그녀를 배신할 남자가 아니었다. 만나는 동안 한 번도 그녀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그는 착한 남자였다.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가끔씩 마음 한구석에 불거지는 불안감이 그녀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서서히 고개 드는 불안한 마음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를 믿고 싶었다.' “지연아, 미안하다. 더 이상 널 속일 수가 없어. 나 여자 생겼어.”' “……!”' 쿵! 사정없이 발등 찍히는 소리. 역시나! 말로만 듣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 순하디 순한 남자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다니…… 그녀가 느낀 막연한 불안감의 정체가 서서히 표면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하는 그가, 그리고 진부한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이 순간이 전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 지연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카페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창가에 앉은 그들의 모습이 더욱 눈에 띄었다. 커피 잔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그의 얼굴에 끼얹고 싶었다. 혹은 당장 가방 안을 뒤져 담배를 찾아내 피우고 싶었다. 한동안 끊었던 담배인데 지금 이 순간 간절히 생각났다. 하지만 그녀는 커피를 끼얹지도 담배를 피워 물지도 않았다. 그랬다가는 정말 진부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출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는 그저 그녀의 시선을 피한 정훈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 “뭐라고? 장난하지 마. 정훈이, 너 그럴 놈 못되는 거 알아!”' 지연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자, 정훈은 답답한 마음에 낮은 한숨을 쉬었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거짓말 못하는 그의 투명한 눈동자였다. 그의 맑은 눈동자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 지연은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해졌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전화가 점점 줄어들고 그의 목소리에 활력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주말에 그녀와 같이 할 수 없는 그의 핑계거리가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진즉 느끼고 있었지만 표면으로 가시화될 때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확인 사살이 필요했던 것일까? ' “농담 아니야. 6개월 됐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