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김서운_외전.
기우솔_외전.
※ 본 외전은 본편의 IF(가정) 스토리로, 다른 인물과 이루어졌을 경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본편의 설정과 전개가 다를 수 있으니 혼동 없으시길 바랍니다.
김서운_외전
졸업 후에 삼인방과 멀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고 빠른, 시절 인연이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원했던 수아로서는 굳이 그들과의 사이를 정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그러나 삶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반드시 옵션으로 따라다니는 법.
소설의 클리셰에 걸림이 없어지자, 이젠 정말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Web발신
DDD기업-단순사무
면접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금번 면접은 불합격하셨습니다. 차후 더 나은 기회로 찾아뵙기를 바라며, 지원자님의 또 다른 건승을 바랍니다.]

“건승을 바라면 면접에 붙여야지!”
이번엔 꽤 분위기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 입장에선 영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아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거칠게 침대 위에 던져놓고 대자로 뻗어 누웠다.
‘이러다 인생 망하는 거 아니야?’
취준생으로 있은지 벌써 1년.
지금은 3월 말을 달려가고 있으니 엄연히 말하면 1년이 조금 넘었다.
졸업 후 조금만 더 쉬자, 하며 늦장을 부리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직장을 알아봤던 게 화근이었다.
그사이 수아는 21살이 되어 버렸고, 면접에 갈 때마다 왜 20살 때 취업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그나마 위안 삼고 있는 건, 전생과 달리 이번 생은 학력으로 스펙을 가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서 버거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냥 했던 거 해. 왜 굳이 힘들게 멀리 돌아가려고 그런담.”
오랜만에 만난 안지현이 오징어를 마요네즈에 찍으며 말했다.
그녀는 아카데미 졸업 이후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성인 아카데미를 다녔고, 여전히 주식을 했으며, 집안의 기둥 같은 딸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에 비해 수아는 집에 가면 ‘오늘은 이력서 몇 군데 넣었냐’는 이모의 질문 세례와 함께 백철연의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물론 각자 힘든 게 다를 거라지만, 이거 너무 클래스가 다른 거 아니냐고…….’
이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안지현의 말에 뒤늦은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럴 순 없지. 난 이제 던전이라면 치가 떨리니까.”
그녀가 꺼낸 ‘하던 거 해’라는 말은 길게 들어보지 않아도 ‘가이딩’에 대한 것이었다.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다 보니 길드에 들어가면 두 팔 벌려 환영하겠지만, 수아로서는 이젠 던전 비슷한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난 꼭 아이템 개발로 취업할 거야.”
“근데 진행이 안 되고 있잖아, 지금.”
“흠, 그건…….”
소주를 따르며 팩트를 날리던 안지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가이드 그거 돈 잘 번대. 복지 좋은 곳으로 들어가면 굳이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아 참고로 졸업 이후 가이딩 능력으로 각성한 사람들이 종종 나타났다.
그 수는 점점 많아져 이젠 100명이 조금 넘는 숫자라는 기사를 최근에 읽은 적도 있다.
이젠 가이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가이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맥의 흐름을 가이드 해 줘서 그렇다나 뭐라나.
하지만 수아는 이 사실을 듣고도 크게 마음의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 가이딩만 해 주는 건 솔깃하지만…….’
영 믿음이 안 생겼다.
자기네들 급하면 또 던전으로 밀어 넣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수아는 가이드로서의 삶을 거부했다.
분명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마음은 변함없을 거라 장담했다.

* * *

수아의 장담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한 건, 어제 오전에 생각지 못한 제안을 받은 이후부터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지 않으려 했지만, 면접 봤던 곳에서 온 것일 수도 있어서 받아봤다.
하지만 수아가 기대했던 내용의 전화는 아니었다.

- ‘네, 안녕하십니까. 각성자 관리국입니다.’
‘……네?’

관리국이라고 하길래 처음엔 경계를 했다.
혹시 모종의 이유(갑작스러운 돌발 균열이 생겼다던가)로 던전에 보내려는 건 아닐까 싶어서.

- ‘다름이 아니라, 현재 관리국 소속의 가이드를 모집하고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런 거라면 필요 없어요. 감사합니다. 끊을게요.’
- ‘혜, 혜택……!’
‘……혜택?’
- ‘후, 혜택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나 보시죠.’

그리하여 10분 정도의 통화가 이루어졌다.
긴 통화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직원이 뱉는 내용에 비하면 짧은 통화 시간이었다.
그는 통화가 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빠른 말로 핵심을 전달했다.
그가 혜택으로 꺼낸 것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9~18시 근무
· 대기업 과장 직급이 부럽지 않은 연봉
· 원한다면 숙소 마련이나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제공

하지만 수아의 입장에선 이것들이 큰 혜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9~18시간 보다 적게 일하고 싶었고, 급여는 평균만 받아도 상관없었다.
숙소나 식사도 필요 없었다. 집이 제일 좋으니까.
그러나 마지막 결정타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아이템개발 부서와 겸직 가능

가이드 부서와 아이템개발 부서에 함께 발을 걸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통화 내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직원은 ‘원하는 직군이나 혜택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때 수아는 ‘아이템 개발’쪽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후, 잠시 확인하고 오겠다던 직원은 곧 돌아와 답했다. 이번에 특별히 겸직 허가를 받았다고.
혹시 대충 끼워 넣으려는 행색만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경계했다.
하지만 관리국이기 때문에 그런 술수는 조심스러운 부분일 것이다.

‘흠……. 생각해 볼게요.’
-‘네, 생각해 보시고 답변 부탁드립니다. 기한은 내일까지라서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제안이어도 기한이 있다는 걸 두어 번 강조한 직원은 그렇게 통화를 끊었다.
‘어떡하지.’
그리하여 직원이 말했던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수아는 잠도 설쳐가며 이 일에 대해 긴 고민을 했다.
원했던 아이템 개발부서에 들어가는 건 좋지만 그와 함께 가이드 부서를 겸해야 한다는 게 걸렸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주변의 조언을 좀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아는 좁은 인간관계에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에게 통화를 걸었다.
뚜르르-
-“응, 웬일이야?”
“아, 나 궁금한 게 있어서.”
이번엔 안지현이 아니라 이소문이었다.


통화를 마친 수아는 멍하니 앉아 종이에 관리국이란 단어를 끄적였다.
이소문은 직업 특성 때문인지 가끔 안지현보다 더 냉정하게 팩트로 때릴 때가 있다.
그리고 수아는 이번에도 이소문의 팩트에 반박 한 번 하지 못했다. 전부 다 말이 되는 소리여서.

-‘네 나이가 많지도 않은데 10인 미만 회사에서조차 서류도 아닌 면접으로 자꾸 떨어지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봐. 그렇다고 네가 가이드로 갈 생각이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 어떤 길드에서도 그런 제안을 했단 기사는 본 적이 없……(중간 생략)……그러니까 기회가 들어올 때 잡는 게 좋다고 본다.’

‘맞지…….’
이대로 취업 못하고 또 한 해를 넘기느니 이렇게라도 취업하는 게 열 번, 아니, 백번 천 번 낫다.
더불어 이소문이 했던 말 중 ‘남들은 관리국 못 들어가서 안달인데,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야.’라는 문장이 수아의 심금을 울렸다.
생각해 보면 관리국은 대한민국에서 공무원급 직장으로 취급받는 곳이다. 퇴사 시 소정의 연금도 준다!
‘일단 다녀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그렇게 수아는 어느새 다니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 * *

‘되게 오랜만이네.’
현재 수아는 관리국에 왔다.
일전에 던전에 휘말려서 왔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졸업 이후 모든 이슈가 자신을 피해 가듯 했다. 올 일이 없었다.
‘9층이라고 했지?’
아무리 섭외이더라도 면담은 해야 한다는 게 입사 조건이었다.
물론 면접만큼 떨리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낯선 사람과 대면한다는 게 편하지만도 않았다.
손에 조금 찬 땀을 옷에 슥슥 닦으며 엘리베이터 층수를 눌렀다.
얼마 안 가 면담을 봐야 하는 층수까지 도달했다.
최신식 엘리베이터인지 올라가는 속도가 남달랐다.
그게 못내 아쉬웠다.
느린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나왔고, 문자에 적힌 호수를 확인하며 이동했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