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4.
5.
6.
4.
‘문이 안 열린다고……?’
수아가 상황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여러 번 끔뻑였다. 그때 한창 이름이 나열되던 스크린이 뚝 꺼지며 온 사방이 시커메졌다.
주변이 온통 컴컴해지자 사람들은 더 난리 법석을 피워 댔다.
지금껏 꾹 참고 영화를 봐 오던 어린애들도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불은 왜 꺼져! 당장 문 안 열어!?”
관람객들은 더욱 거칠게 문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한순간에 혼돈의 카오스가 돼 버린 현장.
그런 와중에 곳곳에서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아주 강력한 진동음이나 ‘삐―’ 소리가 연달아서 났다.
그건 수아의 휴대폰도 마찬가지였다. 수아는 반사적으로 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이후 시간이 멈춘 듯 호흡마저 멈춰 버리게 되었다.

【-위급재난문자: [균열관리부] 오늘 19시 09분 서울특별시 중구 A-3 구역에서 균열이 감지되었습니다. (https://상세주소.kr/) 해당 구역에 계신 시민분들은 신속히 대피하여 주시기 바라며,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쟁이나 균열이 감지됐을 때만 보내지는 위급 재난 문자.
떨리는 손으로 URL을 눌렀다. 그러자 바로 관리국에서 제작한 지도 앱이 활성화됐다.
‘화, 확대…….’
위치를 보기 위해 화면을 줌 시켰다.
“…….”
그리고 당황으로 되레 입을 굳게 다물었다. 좌표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현재 자리하고 있는 영화관과 일치했다.
곳곳에서 절망 어린 소리가 들려왔다. 수아와 같이 좌표를 확인한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수아야, 괜찮을―”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 왔지만 그건 수아에게 닿지 못했다.

* * *

“응? 뭐지? 그냥 잠깐 정전이었나?”
컴컴했던 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켜졌고, 스크린은 다시 켜져 수많은 이름과 기업명을 도로 나열하기 시작했다.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던 사람들도 행동을 멈췄다. 영화관 직원이 깜짝 놀란 듯한 얼굴로 문을 열어 줬기 때문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빠르게 영화관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장소에 있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하지만 그곳에 있던 세 명은 발이 붙박인 듯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아……야?”
“……봉수아.”
“부장이…….”
그들 앞에 있던 수아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 *

“뭐……야, 이게.”
수아는 벙벙한 얼굴로 제 앞에 세워진 건물을 보았다. 영화 속에서 보던 폐교와 흡사한 형태를 지닌 건물이다.
여긴 모래가 풀풀 날리는 운동장 한가운데.
왜 이곳에 서게 된 걸까.
수아가 혼란스러워하며 멀건 눈을 뜰 때였다.
“젠장! 균열에 휘말린 거예요, 우리!”
누군가의 절망스러운 외침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수아의 눈에 초점이 미약하게 돌아왔다.
‘균열? 여기가 균열 속이라고? 그러니까…… 던전이야, 여기가?’
충격적인 사실에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왔다.
수아가 마지막으로 던전에 들어왔던 건 어렸을 적 부모님을 잃었을 때다.
전 아카데미가 균열로 폐교가 돼 버렸지만, 그건 모두 주말 동안 벌어진 일이어서 균열에 휘말리진 않았다.
그러니 기억이 정상 작동한 이래로는 처음 있는 일이란 소리.
수아가 조용히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던 그때였다.
몇몇 행동력 있는 사람들이 ‘균열’을 언급한 사람에게 다가가 입을 뗐다.
“그럼 우리 모두 여기서 죽는단 거예요?”
“저야 모르죠. 일단 던전 창부터 나와야…….”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수아를 비롯한 이들 앞에 무언가 띄워졌다. 반투명한 형태의 던전 창이었다.

「오싹한 기숙사 생활(E)」

그걸 보며 수아는 제 손바닥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던전 창…….’
기억을 잃어 처음 보는 것에 가깝지만, 마치 과거의 끔찍한 무언가가 자꾸 오버랩되는 기묘함이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리며 식은땀이 차오르는 걸 애써 무시한 채, 수아는 창에 적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오싹한 기숙사 생활(E)
당신은 그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당신을 시험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친구를 선호합니다. 선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순간 당신은 그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면 당신은 죽게 될 것입니다.」

‘이게 뭔 삽소리야!’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다. 창에서 언급한 ‘그’가 누구고 ‘시험’은 왜 하는 거며 ‘친구’의 기준이 어째서 ‘말 잘 듣는 사람’인 건지.
하지만 까딱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이해됐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수아뿐만이 아니었는지, 곳곳에서 경악 어린 음성을 흘렸다.
“다 끝났어……! 흐윽!”
“으아앙! 엄마아아! 후에엥…….”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가진 한두 사람은 있는 법. 누군가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뗐다.
“그래도 E등급 정도면 괜찮아요. 창이 요구하는 대로만 지키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겁니다.”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깔끔한 인상의 남자가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기우솔이나 황규호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못났단 소리는 절대 듣지 않을 법한 이미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치 그가 언급해 주길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던전 창이 뜬 것이다.

「- 클리어 조건: 그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생활하십시오.
- 주의사항: 그의 눈에 띄면 당신의 영혼은 전시됩니다.
- Tip: 소개 책자를 참고하시오.」

“책자……?”
수아는 그 단어에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 폐교도 꼭 이전에 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낯익었다.
던전 창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때, 차분한 목소리를 냈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죠. 우선 어떤 조건으로 우리만 들어오게 된 건지 파악해야 됩니다. 이리 모여 보실까요?”
그의 말에 사람들은 군말 없이 둥그런 원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눈에 들어왔다.
‘인원이…… 적네?’
수아는 조금 놀란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초반에 정신이 없어서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었다.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영화관에 있던 관람객이 모두 온 게 아니다. 그의 말대로 뭔가 조건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써 수아는 부원 3인과도 떨어진 상태란 걸 깨달았다.
‘미……친.’
여기 던전이잖아. 그 3명 중 2명이 S급 에스퍼인데?
왔어야 할 사람들은 오지 않았고, F급 다음은 G급이지 않냐는 소리를 들었던 자신만 와 있다.
잠깐 패닉 상태에 빠지려던 그 순간, 사람들을 모두 모은 남자가 한 사람씩 아이 콘택트를 해 왔다. 그 인원엔 당연 수아도 포함됐다.
수아는 어쩐지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의 아이 콘택트가 지나가길 바랐다.
‘꼭 저렇게 침착해 보이는 사람이 흑막이란 말이지?’
이런 클리셰가 떠올랐던 탓이다.
그저 정신력이 좋은 것일 수 있겠지만, 모두가 신경을 곤두서고 있는 상황. 수아 또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내 한 사람씩 모두 돌아본 그가 의미심장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영화를 혼자 봤습니다. 그리고… 유명 뉴튜버인 ‘사색의 눈’은 이 영화를 혼자 보지 말라고 했죠. 혹시 영화를 혼자 보신 분이 계실까요?”
그에 사람들은 눈을 키우며 한마디씩 했다.
“엇? 맞아요. 저 오늘 친구랑 약속 펑크 나서 그냥 혼자 봤어요.”
“저는 원래 영화 혼자 보는 거 좋아해서…….”
“초기에 개봉했을 땐 친구랑 보러 왔다가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이번엔 혼자 왔어요.”
그러나 변수는 있는 법.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가 망설이는 듯 입을 달싹이더니 입을 뗐다.
“저, 저는 엄마랑 보고 있었는데요……?”
사람들의 눈이 일시에 저에게 향하는 게 무서웠는지, 아이는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차분한 남자는 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달래듯 말했다.
“오늘 엄마와 떨어졌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니?”
아이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처, 처음에요!”
“영화가 시작하고 처음?”
“네! 그…… 목이 돌아간 사람 나올 때, 엄마가 갑자기 전화 왔다고 나갔어요.”
아이는 당시 띄워진 스크린 화면을 떠올렸는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징그럽긴 했지.’
수아도 긴장한 채 보던 장면이었으니, 아마 아이 혼자서 보기엔 더욱 끔찍했을 거다.
“흠, 역시.”
남자는 아이의 대답을 곱씹어 보듯 혼잣말을 하더니 입을 마저 뗐다.
“아무래도 그 여학생이 나오는 순간에 혼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끌려온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납득한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아무도 의견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그럴듯한 가설은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던전 클리어 조건만 참고하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아, 그리고 저는 D급 각성자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탄성을 흘려 댔다.
“오―! 주여!”
“하, 다행이다……!”
“살아서 나갈 수 있어!”
그리고 탄성을 흘리고 싶은 건 수아 또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