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 건스미스가 되었다 9권
천조국 건스미스가 되었다 9권
목차
201화 중화민국
202화 운명의 갈림길
203화 천만 달러 사나이
204화 프레디를 위하여
205화 대부의 대결(1)
206화 대부의 대결(2)
207화 친애하는 프랑스
208화 오토매틱 더블
209화 엘랑 비탈(1)
210화 엘랑 비탈(2)
211화 암울한 중국(1)
212화 암울한 중국(2)
213화 선택하시오 황제
214화 양키 고잉 다운(1)
215화 양키 고잉 다운(2)
216화 포드사의 성장
217화 굿바이 루즈벨트
218화 미군의 1910년대
219화 멕시코 문제(1)
220화 멕시코 문제(2)
221화 카이저의 아쉬움
222화 윌슨의 시대
223화 멕시코의 혼란
224화 대전쟁 준비(1)
225화 대전쟁 준비(2)
천조국 건스미스가 되었다 9권
201화 중화민국
- 1905년 1월 3일. 파예트빌, 노스캐롤라이나.
1년이 또 지나 1905년이 되었다. 이제 아서도 몇 달 있으면 7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고, 아마 내년쯤 초등학교에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들내미가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언제나 기분 좋다니깐…….’
심지어 올해 5월 경이면 캐시가 셋째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한마디로, 1905년은 여러 의미로 내게 기분 좋은 해라는 것이다만…….
중국 쪽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양군과 8성연합군의 통제를 벗어난 새로운 세력이 점차 등장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바로 어저께.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폭탄선언’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신년맞이 연설로 중화민국 설립을 선언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말이지…….’
원래 쑨원의 8성연합군은 명목상으론 청나라의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서구열강과의 외교관계를 맺을 때도 청나라의 적법한 신정부를 자처했다.
그러나 이젠 그 공식이 완전히 깨어지게 되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괴뢰국인 ‘만주인 국가’ 건설 작업이 시작된 상황이었기에, 쑨원으로선 망설일 시간이 없었을 터.
그래서 쑨원은 결단을 내렸다. 청나라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한족’을 위한 중화 국가의 설립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는 러시아의 만주인 국가 설립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야 말았다. 내가 듣기론 만주인 국가는 올해 여름이나 가을쯤 설립될 예정이었다만, 당연히도 이 계획은 틀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중국 쪽이 확실히 시끄러워지겠네, 램지 형. 청나라와의 단절이라니……. 이건 정말 엄청난 건데.”
“아무래도 러시아의 만주인 국가 건설 명분이 확실해진 거라고 봐야지, 이건. 청나라는 결국 만주인들이 지배하는 나라였거든.”
과거형인 이유는 더 이상 만주인들이 만주인이 아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수많은 만주인이 모국어를 잊어버리고 한족화되어 버린 마당에, 이민족 제국인 청나라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졌다.
애초에 중화민국 수립이 결국 예견된 일이었던 만큼, 위안스카이는 명분을 점차 잃어버리고 말 거다. 8성연합, 아니, 이제 중화민국과 러시아의 만주인 국가에 야금야금 뺏어 먹히겠지…….
‘위안스카이가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황제로 즉위하려 해도 청나라 곤룡포는 내 손에 있는데 말이지……! 뭐, 이거 한 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 동일 시각. 자금성, 베이징.
“한족 국가를 수립한 것을 넘어서 중화 국가의 정통성을 가져가겠다? 쑨원, 그걸 내가 가만히 두고 볼 거라고 생각한 건가!”
위안스카이는 꽤 언짢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렇게 된 이상, 민심은 위안스카이를 떠날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안스카이는 여전히 청나라의 정부이기를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쑨원이 선수 친 셈.
“황제도 도망간 마당에… 으으…….”
위안스카이는 여태껏 청나라 황제 자리를 사실상 공석으로 놔두며 섭정을 자처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계속해서 섭정 노릇 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황제를 재옹립하자니, 그것도 문제가 많았다. 그랬다간 민심을 확실히 잃을 가능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찌한담…….”
“차라리 하얼빈에 있는 황제보고 돌아오라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먹히겠나? 그 아이신기오로 놈팽이는 지금 러시아랑 짝짜꿍하고 있다고.”
위안스카이도 만주인 국가 건설 방안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상황에 엄청난 분노를 느끼는 것이었다.
“제길,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물러날 수 없다. 조만간 난징을 재공략한다.”
“예? 난징을 말입니까?”
북양군과 8성연합군은 1년 넘게 난징을 두고 혈투를 벌여왔다. 정확히는 초반 3개월만 혈투였고, 나머지 9개월 가까이는 지지부진한 공방전에 가까웠다.
최종적으로 8성연합군의 손에 난징이 떨어진 이래, 북양군은 난징에 대한 공세를 사실상 멈춘 상태였다. 계속 공격해봤자 얻을 게 없다는 주장이 현장 지휘부에서 계속해서 나온 까닭이었다.
“그래. 난징 말이다.”
그러나 난징에서 한족 국가 선포가 되어버린 지금, 위안스카이는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이러다간 명분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었기에.
“당장 난징에 20만 병력을 밀어 넣어라. 적어도 난징 외곽부까지는 확보해야 할 거 아닌가? 이건 제안이 아니고 명령이라는 걸 명심해라. 총사령관이 내리는 명령이라고!”
위안스카이가 심하게 역정을 내며 소리치자, 휘하 장군들은 알아서 기었다. 화난 위안스카이를 잘못 자극했다간 어떻게 되는지 모두 알고 있었기에.
“예, 총사령관. 1월 10일까지 공세를 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보겠습니다.”
- 1905년 1월 9일. 봉천, 러시아 점령하 만주.
“그러니까 이걸 읽으면 된다는 거요?”
광서제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포고문을 떠미는 니콜라이 유데니치 중장을 눈으로 훑었다. 6장 길이의 포고문은 전부 러시아 측에서 준비한 사항이었다.
“이 포고문을 읽으시면 전러시아의 임페라토르, 니콜라이 2세께서 친히 축사를 보내실 겁니다. 정 그러시다면 직접 일부 문장을 직접 수정하셔도 좋습니다.”
“됐소. 이대로 읽겠소. 적당히 좋은 내용이겠지…….”
괜히 러시아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니콜라이 2세는 광서제에게 확실한 약속을 해주었다.
외교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이 만주국의 황제, 광서제에게 있을 거라고. 만주국을 지킬 만주인 군대를 만들 수 있게 후원해 줄 것이며, 사법권 역시 러시아인의 치외법권을 확실히 보장하는 선에서 보장해 줄 것이라고.
그래서 광서제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오로지 러시아의 입맛대로 작성된 만주국 건국 포고문을 그대로 읽기로 했다. 당연하지만 포고문은 러시아어로 작성된 것이었다.
‘러시아어를 배워둬서 다행이긴 하다만…….’
어쩔 수 없었다. 광서제 본인도 자기에게 실권이 거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것만이 청 황실을 계속 유지할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고작 해봐야 3천 명이 모인 광장 앞으로 나섰다.
그마저도 절반은 러시아군 장병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이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한 만주족은 광서제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만주 제국’은 껍데기만 만주였다.
“만주 땅의 모든 인민에게 고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만세토록 불변했던 대청제국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청조는 망하지 않았다. 그저, 짐의 선대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만주라는 숭고한 이름을 다시 쓰게 될 뿐이다.”
광서제는 어설픈 러시아어로 전문을 읽어나갔다. 한족들은 러시아어를 알아들을 리 없었으므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고, 러시아 병사들은 이 모습이 만족스럽다는 듯 슬며시 미소 지었다.
“짐은 오늘, 대청제국의 정통을 이어, 이곳 봉천에서 만주제국을 선포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호로도에서 장춘까지, 이 강역을 만주제국의 강역으로 정하였다.”
만주제국의 영역은 지린(길림)성과 랴오닝(요녕)성에 한정되었다. 만주제국 선언을 기점으로 그 이북의 흑룡강(헤이룽장)성과 내몽골 지역은 러시아의 자치령으로 편입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짐은, 전러시아의 황제와 친선을 도모할 것이며, 러시아와 긴밀히 협조하여, 청조에 다시 영광이 드리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늘부로, 만주제국은 선포되었도다!”
형식적인 함성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선통제는 포고문의 두 번째 장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천천히 내용을 읽어나갔다.
“만주제국의 외교권은 전적으로 친선 관계에 있는 러시아에게 의탁하여…….”
- 1905년 1월 15일. 광저우, 중화민국.
“만주제국이라… 이건 뭔 흉측한 용어인가.”
쑨원은 만주제국 포고문을 차근차근 읽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도망간 광서제가 이렇게 부활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래도 중화민국은 수립이 선포된 지 사흘 만에 프랑스의 승인을 받았다. 머지않아 만주제국이 선포된 이후로는 러시아가 중화민국을 승인했다.
덕분에 위안스카이는 나머지 통치 명분 절반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로 인해 북양군의 난징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고, 8성연합군은 전투에서 크게 밀려 난징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버렸다.
“어르신, 이제 중화민국 중앙군을 편성하고 지휘권을 통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나 군벌 세력들에 전쟁을 의탁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나도 알고 있는 사항이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이제 우리는 국민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잖나.”
중화민국이 건국되었음에도 8성연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사실상 8성연합에서 이름만 중화민국으로 바뀐 것이었는데, 쑨원의 권한이 너무 미약한 것이 문제였다.
그나마 1904년 12월 15일에 기존의 흥중회 세력들을 기반으로 국민당을 창설하며 그 기반을 다졌지만, 쑨원에겐 군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국민당을 위한 군대를 만들어야 하네. 내가 국민당의 근간이 될 삼민주의를 갈고 닦을 테니, 자네들은 하던 대로 나를 보좌해주기만 하면 되네.”
“어르신의 뜻은 알겠지만…….”
“중화민국의 총통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을 기억하게. 알겠나?”
쑨원은 확실히 못 박았다.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은 쑨원이었고, 아무리 독립적인 군벌들이라 하더라도 이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전에 광서제랑 좀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 편지라도 보낼 순 없겠나?”
“그 만족 놈팽이랑 대화를 해보시겠다는 겁니까?”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만주제국과 그 주인인 러시아가 아니라 위안스카이의 북양정부라는 건 명백하고, 예로부터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고 하니, 그들과 협조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쑨원의 계획은 확실했다. 만주제국과 어느 정도 우호 관계를 쌓으면서 위안스카이를 남북으로 압박하겠다는 것. 급진적인 보좌관들도 쑨원의 이러한 계획의 철두철미함에는 반기를 들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젠 총통이라 부르게. 듣는 귀가 있잖나. 내가 권위를 따지고 싶진 않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총통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쑨원은 그렇게 말하곤 잠시 쉬어야겠다는 듯 정원으로 나섰다. 그러곤 수행인을 불러 검은 물을 가져오게 했다.
“요새 이거 마시는 게 낙이란 말이네. 러시아와 독일의 황제가 이 톡 쏘는 검은 물을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쑨원은 콜라 드링크가 든 유리병을 손에 쥐고 천천히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바로 그 순간, 따끔한 자본주의의 맛이 쑨원의 입안을 파괴적으로 강타했다.
“미국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터이니…….”
쑨원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언젠가 저 하늘은 삼민주의 아래 통일될 것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 꿀꺽.
“중국은 강해져야 한다. 중국은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
천조국 건스미스가 되었다 9권
202화 운명의 갈림길
- 1905년 1월 17일. 난징 전선.
“저 망할 북양군 놈들은 지치지도 않는 건가? 뭐 이리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건지…….”
1월 10일부로 북양군의 난징 공세가 다시 시작된 이래, 8성연합군은 끊임없이 몰려오는 북양군 정예 병력을 막아내야 했다.
“이거 하나는 인정해야겠군. 위안스카이, 그 근본 없는 놈이 용병술 하나는 좋다는 거 말이다…….”
8성연합군 역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싸워오며 나름 실전 경험을 쌓긴 했지만 오랜 기간 청 제국의 주축이었던 북양군의 경험치를 이길 순 없었다.
특히 휘하 장병들의 훈련도와 무장 상태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어떻게 쳐주더라도, 8성연합군에는 유능한 지휘관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여전히 ‘신전쟁’의 양상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병력을 밀어 넣기만 하는 흐리멍텅한 ‘똥별’들이 한가득한 것도 모자라 지휘계통도 꼬여 있는 군대가 잘 싸운다면 그게 이상한 것일 터. 오히려 그렇게나 강력하다는 북양군을 상대로 이 정도로 버텨준 것만 해도 높게 쳐줄 만하다는 평이 있을 정도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만주땅에 도망간 황제가 나라를 세웠다던데…….”
“중대장님, 그 소문… 진짜로 판명 난 지 좀 됐습니다. 러시아 놈들 따까리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한때는 중원을 통치하던 황제라는 작자가 말입니다…….”
“그거 참 기이한 일이군 그래. 천자가 오랑캐의 밑에 들어가다니……. 여하간, 방어 준비나 하자고. 망할 놈들이 또다시 몰려오기 시작했으니까.”
위안스카이의 바람과는 달리, 난징 전선의 상황은 북양군에게 마냥 좋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았다. 과감한 공세를 통해 난징 시가지까지 진입한 건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북양군 놈들도 이제 슬슬 포기할 때가 됐는데…….”
1월 14일부터 북양군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고, 고작 사흘 동안 2,500명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일선 지휘관들도 계속해서 난징에 병력을 밀어 넣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위안스카이의 난징 집착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위안스카이의 권위에 반기를 들 순 없었다. 그저 난징의 공동묘지에는 5만 명이 묻혀 있다고 돌려서 말할 뿐.
- 1905년 1월 19일. 자금성, 베이징.
“총사령관님, 헌법대강 최종본이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나왔군. 그래, 조항이 총 몇 개인가?”
“총 3장 50개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예전에 쓰던 것보단 두 배로 길군 그래.”
위안스카이는 만족스럽다는 듯 헌법대강 전문을 스윽 훑어보더니, 지체하지 말고 곧바로 내일 이 헌법대강을 반포하라고 지시했다. 최대한 빨리 이를 반포하지 않으면 자신의 통치 정당성에 흠집이 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망할 아이신기오로 놈팽이와는 완전히 연을 끊어낼 수 있게 됐군…….”
“헌법대강의 이름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최고헌법대강이라고 하게. 후우… 그래도 이걸로 이제 한 숨 놓을 수 있겠군.”
위안스카이의 지시로 급하게 만들어진 최고헌법대강이 내일 반포되는 순간, 북양정부는 기존의 청나라와는 완벽히 결별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