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 건스미스가 되었다 8권
천조국 건스미스가 되었다 8권
목차
176화 시간은 흘렀다
177화 예상은 틀리지 않는다
178화 그날은 3월 3일
179화 러일전쟁의 시작(1)
180화 러일전쟁의 시작(2)
181화 대한제국의 길
182화 러일전쟁 특수
183화 잉커우에서의 싸움
184화 랴오둥의 주인
185화 러시아의 대대적인 반격
186화 미래를 예견하는 전쟁(1)
187화 미래를 예견하는 전쟁(2)
188화 정점에 선 맥도날드
189화 새해와 전쟁
190화 비긴 싸움
191화 균형추
192화 제물포 회담(1)
193화 제물포 회담(2)
194화 제물포 회담(3)
195화 극동경찰
196화 러일전쟁의 교훈(1)
197화 러일전쟁의 교훈(2)
198화 기관단총의 미래
199화 전반적인 점검
200화 1905년으로 가는 길
천조국 건스미스가 되었다 8권
176화 시간은 흘렀다
1902년 10월 15일.
M2 베르크만 라이플은 이제 완성체의 모습을 갖추었다. 러시아제 7.62㎜ 탄환 5발을 장전하는 이 라이플은 에드가의 설계에서 대략 25% 정도가 수정되었다.
‘뭐, 이 정도면 양호하네.’
25%나 뜯어고친 거라기보단, 25%밖에 수정할 사항이 없었다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세세하게 부품의 이동 간격과 맞물림을 계산하면서 살피는 것과 대충 눈으로 훑는 건 아무래도 차이가 크지 않겠는가.
그래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도 보이긴 했다. 그리고 덕분에 에드가 녀석이 생각보다 작동부 설계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결국에는 25%를 뜯어고쳐야 했고 설계의 첫발부터 헛걸음이 아닐까 싶긴 하다만… 결론적으로 이는 대략 1년 정도만 더 구르면 확실히 제대로 된 설계를 뽑아낼 수 있을 수준으로 에드가의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이야기일 터다.
‘이제 남은 건 이걸 만드는 건데. 지금 우리 생산 설비에 여유가 있었… 아참, 생겼지.’
맥도날드 제너럴 암즈는 대중국 수출 분량을 생산하느라 라이플 생산라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상하이 지부에서 차츰차츰 M94 세미놀 라이플을 만들기 시작한 덕분에, 내년에는 약간의 여유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공정이 완전히 다른 반자동 라이플을 볼트액션 생산라인에서 찍어낼 수는 없기에, 아주 전통적인 수작업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때마침 맥도날드-베르크만 기관단총 생산 설비가 꽤 한가한 상황이지. 수작업으로 만들면 체계화가 되지 않은 까닭에 속도는 느려도, 생산 품목 변경에 유연성이 있는 법이다.’
물론 수작업인 만큼 한 달에 100정에서 150정 남짓 만드는 게 한계일 가능성이 크긴 하다. 아무래도 1,000정 찍어낸다는 원대한 계획에는 약간 차질이 생기겠지만, 그 대신 품질은 기대할 만할 거다.
‘설계 자체가 결함이 있는 녀석이니, 만들기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그럭저럭 써먹을 만하겠지.’
그래도 전쟁이 1904년에 터진다고 가정하면 1,000정은 충분히 만들고도 남는다. 그리고 1,000정 정도면 유의미한 숫자라고 할 수 있는 물량이다.
‘다만 이걸 러시아군이 사주긴 해야 할 텐데…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지?’
수작업은 비싸다.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M2 베르크만 라이플은 아무래도 고가일 수밖에 없게 된다. 적어도 40달러는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겠지만, 문제는…….
‘정당 40달러 하는 라이플을 러시아 놈들이 순순히 사줄까?’
어느 군대가 안 그렇겠냐마는 러시아군은 돈에 있어선 꽤 까다로운 놈들이다. 품질이 낮아도 상관없으니 저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탑재한 놈들이기에.
‘괜히 물량의 나라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메뚜기도 그 정도 숫자는 안 나올 거다.’
반쯤 농담 삼아 러시아에선 군인이 필요하면 밭에서 무 뽑듯 사람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다. 러시아 놈들의 인구를 생각하면 말이지…….
“우흐으…….”
순간 몰려온 졸음을 기지개로 해결한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작업실 밖으로 나간 후 장난감 권총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서에게 다가갔다.
“3년만 기다려라, 아서…….”
대략 7살에서 8살 정도 된다면 실제 권총을 가지고 놀아도 무방하다곤 생각한다. 물론 평상시에는 손이 닿지 않는 데에 두고, 실탄 사격은 무조건 어른이 동반한 상황에서 해야겠지만.
총이라는 기계 장치에 일찍 익숙해질수록 이 녀석이 총기 개발자의 길을 걸을 확률도 올라갈 터다.
‘학교 갈 나이쯤이면 캐시도 이해해주겠지. 아쉽긴 하지만, 기다리자고.’
내 핏줄도 아닌 에드가 베르크만이 성장하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한데, 내 아들 놈이 총기 설계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기분 째지겠지. 흐흐…….
1902년 11월 8일. 모스크바, 러시아.
전쟁장관 알렉세이 쿠로파트킨은 맥도날드 제너럴 암즈에서 보내온 전보를 내려놓곤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자동도 아니고 수동도 아닌 반자동. 단어 자체를 들었을 때 그것은 이해하기 조금 난해한 개념이었다. 그래서 쿠로파트킨 장관은 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여하간 우리 군의 제식인 모신나강보다 화력이 3배 이상 강한 무기 체계라고는 하는데… 그만큼의 효용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 안 그렇나, 부관?”
“제 생각에는 탄약 낭비가 심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총수 한 명이 모신나강 라이플에 장전된 5발을 다 비우려면 적어도 5초는 걸립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1초 안에 다 비울 수도 있는 미친 무기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쿠로파트킨 장관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생각에도 반자동 라이플은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할 것 같았다.
다만, 반자동 라이플이 가진 순간 화력이 뛰어나다는 것만큼은 그도 부정할 수 없었다. 1초 안에 5발을 꽂아 넣을 수 있다면 근-중거리에서 굉장한 위력을 보일 것이었다.
“시험 삼아 도입하는 것 정도야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맥도날드 제너럴 암즈 측에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되, 100정에서 200정 정도만 시험적으로 주문하겠다고 전해두게.”
“예, 장관님.”
“일단 이 건은 이걸로 해결됐고… 일본 측하고의 교섭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일본과 러시아가 조만간 전면 충돌할 거라는 소문은 전 세계적으로 퍼진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일단 말이 통하긴 한다면 말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법. 잉커우 조차지 안보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던 니콜라이 2세는 쿠로파트킨 장관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부설 상황을 점검할 겸, 기차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일본군과 한번 회담을 가져보라는 것이었다.
“일본 측에서 동의했습니다. 날짜는 조정 중에 있으나, 12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가급적이면 크리스마스는 지나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1월 8일 이후로 날짜를 잡아보겠습니다.”
“1월 10일 이후로 잡게. 그렇다고 20일을 넘어가지는 말고. 알겠나?”
러시아를 비롯한 동방 정교회 권역에서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이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기간에 외교 회담을 벌이는 건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었던 고로, 회담은 내년으로 미루어 지게 되었다.
“일본 측에선 회담에 누가 온다고 하던가?”
“육군대장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해군대장 도고 헤이하치로가 참석한다고 합니다. 아마 2대1 회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대1이라……. 뭐, 일단 해보지. 안 될 게 뭐 있겠나. 일단 주요 협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고.”
가장 먼저 협의할 사항은 관동주에 대한 문제였다. 일본과 러시아가 충돌한 가장 큰 이유가 랴오둥 반도 지역에서의 패권 문제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대한제국에 대한 건이었다. 중간에 미국이 끼어든 까닭에 러시아와 일본의 영향력이 조금 줄어들긴 했으나, 두 나라의 입장에서 대한제국은 중간 지점이었다. 그래서 양측 모두 호시탐탐 넘보고 있었다.
세 번째는 중국 내전에 관한 사항이었다. 아직 양측이 직접적으로 내전에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의 내전이 격화될 경우 러시아와 일본 역시 자연스레 이 사태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결론적으로 양측의 충돌을 야기할 것이 분명했기에, 쿠로파트킨 장관은 이것 역시 어떻게든 논의하여 해결해야 했다.
“협상이 가능하긴 할까…….”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군은 아직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완공하지 못했다. 군데군데 완성되지 못한 구간이 존재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하려면 열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했다.
그런고로 본토 러시아에서 생산한 군수물자를 극동 지역에 원활히 공급하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시베리아가 항해할 수 있는 바다를 접하고 있다면 사정이 나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시베리아는 꽝꽝 얼어붙은 내륙이었다.
‘우리 러시아 제국군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일본 놈들 정도야 쉽사리 이길 수 있을 거다. 다만… 이건 보급이 잘 될 때 이야기다.’
러시아 육군은 굉장히 막강했다. 한때 나폴레옹도 이겨본 군대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영국과도 경쟁하고 있는 게 러시아였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천혜의 땅임과 동시에 커다란 장벽이었다. 그리고 이 장벽을 허물 철도는 아직 미완공 상태. 모두가 만약 전쟁이 터진다면 러시아가 이길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쿠로파트킨 장관의 머릿속은 조금 달랐다.
‘혹시나 모르는 일이지. 일본 놈들, 생각보다 나약하지는 않은 놈들이라고. 게다가 우리 주력인 발트 함대가 극동까지 가려면… 에라이, 생각을 말자.’
러시아의 주력 함대는 발트해와 흑해에 있었다. 그리고 이 함대가 극동으로 오려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영국과 친했고, 수에즈는 영국의 소유였다.
그 누가 미쳤다고 자기네 동맹국 공격하러 가는 군함들 지나가라고 운하를 열어주겠는가. 결국 이 함대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아프리카 대륙을 빙 둘러 가야만 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기착지인 희망봉 부근마저도 영국령 남아프리카라서 들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물론 쿠로파트킨 장관은 해군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게 많이 없었지만, 이것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공평한 전쟁이 아니다. 그러니… 말로 굴종시킬 수 있을 때 해야만 하는 거다. 칼보다 강한 건 펜이라고 하니…….’
쿠로파트킨 장관은 입술을 꽈직 깨물었다. 며칠 뒤면 그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이르쿠츠크까지 이동한 후, 바이칼호를 넘어 치타로 넘어간 뒤에 다시 기차에 올라타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해야 했다.
말 그대로 긴 여정이 될 것이었기에, 그는 조용히 먼 길을 갈 동안 즐길 거리를 챙겼다.
“부관, 음료수는 다 챙겼나?”
“콜라 말씀하시는 거라면 지시하신 대로 30병 전부 챙겨두었습니다.”
“좋아, 가는 길에 파손되지 않게 잘 관리하게. 그거 한 병이 너희들 나흘 치 급료랑 맞먹으니깐 말이다.”
미국에서 생산된 콜라 드링크는 러시아에서 굉장히 고급 음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크바스와 비슷하면서도 알코올이 전혀 없고, 달콤하면서도 크바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하얘지듯이 상쾌한 맛.
먼 길 떠나는 와중에 그런 콜라 드링크를 30병이나 챙길 정도로 쿠로파트킨 장관은 콜라를 좋아했다. 어쩌면 스스로 콜라 애호가라 칭할 정도의 니콜라이 2세보다도 더 좋아했다.
“회담장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지?”
“족히 한 달은 걸립니다, 장관님.”
“그러면 하루에 한 병 먹으면 딱이겠군. 아니지… 혹시나 모르니 이틀에 한 병 정도로 아껴먹어야 되려나. 흐흠! 아무튼,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준비를 마저 해주게.”
천조국 건스미스가 되었다 8권
177화 예상은 틀리지 않는다
- 1903년 1월 11일.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이틀 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야마가타 아리토모 육군대장과 도고 헤이하치로 해군대장은 홋카이도보다 추운 듯한 블라디보스토크의 매서운 날씨를 반강제로 음미하고 있었다.
“여기 정말로 춥군……. 안 그렇소, 야마가타 대장?”
“그래도 만주보단 덜 추울 겁니다, 제독. 거긴 내륙지방이라 시베리아만큼 춥거든요.”
“아무튼 날씨도 추운데 어서 회담장으로 들어갑시다. 러시아 제국 전쟁장관 알렉세이 쿠로파트킨이 이미 도착해 있다고 하더군요.”
잠시 후, 두 사람은 구형 리볼버로 무장한 일본군 헌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회담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알렉세이 쿠로파트킨 장관과 그 호위를 맡은 러시아 제국 헌병 3명이 자동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저놈들, 자동권총을 들고 있군요? 이런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리볼버 말고 자동권총으로 가져오는 건데.”
“상관 없습니다, 제독. 중요한 건 무기가 아니라 사람 마음가짐 아니겠습니까.”
야마가타 대장은 그렇게 말하곤 ‘프리비엣토’라고 짤막한 러시아어로 인사했다. 나름대로 뱃멀미를 이겨내며 공부해온 것이었지만, 쿠로파트킨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본군 여러분. 오늘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러시아 측 통역관이 일본어로 통변하자, 야마가타 대장은 잘 알고 있으며 의논할 게 대단히 많다는 눈치로 말했다. 이에 일본 측 통역관이 러시아어로 이를 전했으나, 이를 들은 러시아 통역관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장관님, 일본 녀석들 발음이 상당히 좋지 않아 그냥 저 혼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하겠다고 전하게.”
통역 문제는 기싸움의 시작에 불과했다. 일본 측은 어떻게든 억지를 부리며 자기네 통역관을 거치겠다고 했지만, 러시아 측은 이를 용인하지 않으려 했다.
양측의 언성이 높아지는 찰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육군대장을 말리면서 러시아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고 말했다.
“어차피 결렬될 협상인데, 그냥 대충 넘어갑시다. 괜히 러시아 땅에서 문제 일으키지 말자고요. 그리고 괜히 욕하지도 맙시다. 저놈 다 알아듣습니다.”
도고 제독이 러시아 측 통역관을 가리키며 말하자, 야마가타 대장은 일단은 알겠다는 듯 진정하곤 천천히 일본 측 요구사항을 쿠로파트킨 장관에게 전했다.
“우리 일본국 측에서 요구하는 사항은 간단합니다. 일본은 장기적으로 관동주의 영역을 관철하고, 이에 대한 영유권을 확실히 할 생각입니다. 우리 일본국은 두 차례의 청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이 권리를 획득했고, 여기에 대해선 러시아 측에서 불간섭해야 하는 바이나…….”
러시아는 이미 일본의 랴오둥 반도 진출을 저지한 바가 있다. 흔히 양국 간섭이라 불리는 사건. 그것은 일본과 러시아의 갈등이 시작된 계기였다.
“우리 일본 측은 러시아의 잉커우 조차지에 대해서 그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러시아 측도 일본이 관동주 보호를 위해 랴오둥 반도에 파병하는 것을 용인해주어야 합니다.”
“우선 일본 측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제국의 전쟁장관으로서 러시아 측 의견을 전해드리자면…….”
쿠로파트킨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만주는 정당한 청나라의 영토이고,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부설을 위해 만주 영토 일부를 사실상 조차 받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 소유의 철도와 그 경유지가 되는 영역들은 사실상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얼빈과 같은 도시가 대표적이었는데, 덕분에 북만주는 실질적으로 러시아의 통제하에 있었다.
쿠로파트킨 장관은 바로 이 부분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만주는 러시아의 영역이니, 일본이 이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관동주가 일본의 적법한 영역이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만, 반대로 만주도 우리의 적법한 영역이 될 곳입니다. 그리고 세력은 맞닿으면 충돌하는 법이죠. 랴오둥 반도를 완충지대로 두지 않는다면, 양국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말은 지금… 랴오둥 반도에서 철수하라는 이야기요?”
“양측 다 철수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랴오둥 반도는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절반 정도씩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랴오둥 반도를 원했다. 만약 러시아의 제안대로 랴오둥 반도를 비우게 된다면, 그건 일본에만 손해인 사항이었다.
메이지 천황이 단단히 일러둔 것이 있었으므로 야마가타 대장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아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쿠로파트킨 장관은 그러면 병력 규모라도 줄이자고 제안했다.
“러시아군은 1903년까지 20만 명이 넘는 병력을 남만주에 주둔시킬 계획인데, 괜찮겠습니까? 서로 합의해서 줄이자는 겁니다.”
“협박하지 마시오, 장관. 당신네 철도가 완공 안 된 걸 우리가 모를 줄 압니까? 20만 명을 운송할 수 있긴 한 것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