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페이지
패왕 유비 10권
사례의 세 관문
동관의 함락은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조홍은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지만, 성문이 깨어지니 관문의 절반 이상이 마초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남은 부분에서 사람의 장벽을 쳤지만, 마초, 방덕은 말에서 내려서도 강했다.
결국 조홍은 대부분의 군사를 잃고, 겨우 목숨만 건져 남동쪽 무관으로 퇴각해야 했다.
마초는 동관을 완전히 점령한 후 방통에게 물었다.
“이걸로 아군은 원하는 바를 얻었군! 조조군은 숨통이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 장안성을 함락했어도 고립되어 결국 소멸될 것이다.”
방통은 미소를 지었다.
“장안성으로 간 조조군, 그러니까 조인군은 머릿속에서 지우셔도 됩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니 동관을 되찾기보다는 기성을 치거나, 우리가 온 남쪽 샛길로 빠져나가려 할 겁니다.”
“그렇겠지.”
“우리도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방군사.”
조운이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보급이 충분하지만, 이곳은 관문, 자체적인 소출이 없는 곳이니 곧 소모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천년만년 동관을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조장군.”
“오호, 이게 끝이 아니란 소리군.”
마초는 감을 잡았다는 듯 눈빛을 빛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동관을 점거하면 조조군을 엿 먹일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마초군이나 유비군에게 큰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상황이 안정되면 조조군이 앞뒤로 들이닥칠 수 있다.
보급선도 없으니 그냥 있어도 굶주릴 것이다.
방통은 말했다.
“동관은 하나의 점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동남쪽으로 가면 무관이 나옵니다.”
“그렇지, 척후가 말하길 조조군 잔당들이 그쪽으로 도망갔다더군.”
“그리고 동쪽으로 가면 함곡관이 나옵니다.”
“함곡관, 낙양을 지키는 관문이지.”
“그렇습니다. 아군은 조조군이 대비를 하기 전에 무관, 함곡관을 함락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를 더 먹으면 점이 선이 되고, 둘을 다 먹으면 선이 면이 되는 이치입니다.”
“무관과 함곡관을 다 점령하자고!”
“조조는 발석거가 아직 없습니다. 우리가 관문을 점령하고 굳건히 지키면, 결코 쉽게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통은 지도를 펴서 탁자 위에 올렸다.
장송이 이 지역은 대충 보기만 하고 만든 것이라 조잡한 지도였다.
하지만 세 관문과, 동관과 함곡관 사이에 있는 신풍항은 지도에 찍혀 있었다.
“이 세 관문을 모두 얻으면, 사이에 있는 지역의 소출은 아군이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풍항을 통해 황하를 건널 수 있습니다. 병주로 가도 되고, 유비군에게 지원을 요청해 황하의 밀수상인들로부터 필요한 물자를 어느 정도는 보급 받을 수도 있습니다.”
“흐, 과연, 세 관문을 얻으면 버틸 수도 있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군.”
마초는 과거 장안성을 함락한 후 병주를 통해 낙양을 직접 칠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방통이 신풍항을 가리키자 즉시 상황파악이 되었다.
함곡관만 얻어도 신풍항은 마초군의 관할이 된다.
즉, 언제든지 병주로 빠져나갈 수 있다.
무관까지 얻으면, 정말로 꽤 넓은 지역을 사실상 다스릴 수 있다.
낙양과 장안의 사이에 있는 지역은 의외로 넓다.
전국시대에는 진이 장안에 위치하고, 다른 나라를 침공했다.
그 바람에 이 지역은 항상 전장이었고, 수많은 큰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천하가 한에 의해 통일된 후, 이 지역에는 전쟁이 사라졌고, 수도권인 사례의 한 가운데 위치했기에 꽤 개발이 되었다.
“그러면, 아군은 이곳을 점령하고 근거지로 삼는 것입니까?”
방덕이 끼어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에서 계속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고 냉정히 생각했다.
방통도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여기서 딱 반년만 버티면, 조조군이 먼저 장안과 서량을 줄 테니 함곡관과 무관을 돌려 달라 제안하지 않겠습니까?”
“허엇, 정말로?”
“아니면 말고입니다. 아마 조조군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도 있으니...”
함곡관이 함락되면 낙양 일대가 혼란해진다.
최근 조조군이 심혈을 기울여 재건하고 있는 낙양재건이 멈추는 것이다.
무관이 함락되면 남양도 제대로 된 경제활동이 힘들어진다.
무관이 바로 남양을 지키는 관문이다.
병주는 또 어떤가?
원래 병주 서쪽 지역은 신풍항과 해현항의 무역에 의존해 물자를 확보했다.
그런데 신풍항이 막히면?
동쪽에 접한 기주를 통한 물류 이외에는 외부물자의 유입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병주서부가 된서리를 맞게 되는 것과 같다.
더군다나 해현항도 마초군의 도하를 항상 대비해야 한다.
반대로 마초군은 마음이 편해진다.
수틀리면 신풍항으로부터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 하양항으로 가면 된다.
그러면 바로 서량, 특히 마등의 근거지였던 안정, 무위로 바로 갈 수 있다.
배 한번 타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셈.
“우리는 조조군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큰 바람입니다. 어느 쪽으로 이동할지 모르니, 조조군 전체가 흔들릴 것입니다.”
함곡관을 통해 낙양을 칠 수 있다.
무관을 통해 남양을 치고, 아예 허도까지 가거나 또 강을 건너 양양을 쳐도 된다.
아니면 장안을 치고 서량까지 확보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어디로 불지 모르는 큰 바람!
태풍이다.
“좋아, 관문, 하나 먹어보니 별 거 없더군.”
“발석거의 힘이지요. 성벽을 바위를 날려 부수는 병기라니, 이는 이전에는 없던 것입니다. 마치 벼락을 떨어뜨려 성문을 부수는 것과 같습니다.”
황건적 발호 초기에 번진 소문이 있다.
대량학사 장각은 호풍환우가 가능한 신선이다.
벼락을 떨어뜨려 성문을 부술 수 있으니, 성에 숨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소문이 무성한 ‘낙뢰’라는 장각의 고유기다.
봤다는 사람은 많은데, 진짜 본 사람은 없는, 그런 환상속의 술법이자 기술이다.
그런데 방통이 보기에, 이 발석거는 현존하는 ‘낙뢰’와 같았다.
번개를 떨구든, 바위를 떨구든,
성벽과 성문을 부수는 것은 같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동관의 수비는 우리가 맡지요. 제 내자의 수하인 고장군이라면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운이 나섰다.
사실 조운군에는 여영기와 고순이 따라왔다.
여영기는 절대 조운 옆을 떨어지지 않는다.
고순도 여영기가 가는 대로 움직인다.
알고 보면 마초군은 단순한 기마군단이 아니다.
중원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고순의 강노부대가 붙어 있다.
평소에는 물자를 실은 수레를 관리한다.
보급대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최고 중의 최고다.
“좋아, 그럼 이 참에 제수씨에게 신세를 좀 지고, 우리는 다른 두 관문을 쳐야겠군.”
“동시에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 곳은 마장군께서, 다른 한 곳은 방장군께서 맡아 주십시오.”
회의는 착착 진행되었다.
결과는 마초가 함곡관을, 방덕이 무관을 친다.
조운군은 동관을 지키는 한편, 신풍항을 점거하고 세 관문 안쪽의 각 고을을 돌려 항복을 받아내는 역할이다.
조운군은 이 전쟁에서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관문을 쳐서 부수는 명성을 얻는 역할은 모두 마초, 방덕에게 돌렸다.
본인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공격하면, 다른 누군가는 얻은 땅을 안정시켜야 한다.
조운군은 모든 작전이 가능한 특수 정예부대로, 이번에는 점령지 안정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
작전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조조군은 결과적으로 운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남양에 주둔하고 있었어야 할 병력이 있다.
그런데 조조가 직접 와서 그 병력을 모두 끌고 한중으로 진격했다.
조조도 설마 동관이 함락당하고, 무관이 공격당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조홍은 무관으로 퇴각한 후, 군을 추스르기도 전에 마초군이 몰려온다는 말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거지같군. 저 늑대 같은 놈들이 적당히를 모르는구나!”
전투 상황 중 상대 쪽이 욕을 하면?
아군이 유리하다는 증거다. 
욕은 곧 칭찬이다.
방덕군은 두 대의 발석거로 무관을 공격했다.
조홍은 이전 전투에서 배운 바가 있기에 어떻게든 출격하여 발석거가 기동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하지만 병력이 없었다.
오히려 동관에서 퇴각하다가 마초군의 신속한 추격에 잡힌 조조군 병사들 중 일부가 마초군에 흡수되었다.
이 시대의 일반 병사들은 그저 밥을 주면 편을 갈아타기도 한다.
조조군은 그나마 훈련된 정병이 대부분이라 그런 면이 적긴 하다.
그래도 살기 위해 항복한 자들은 있었다.
결국 보름간의 공방 끝에 조홍은 이를 갈며 남양성으로 퇴각했다.
무관은 그렇게 방덕의 손에 의해 마초군에게 넘어갔다.
함곡관은 더 쉬웠다.
낙양 쪽에는 병력도 거의 없었다.
공사를 하던 인부들은 함곡관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모두 밤을 틈타 도망갔다.
이대로 머뭇거리면 강제징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치 빠르게 깨달았다.
사실은 방통이 먼저 들여보낸 몇몇 첩자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사실과 다를 바 없는 그럴듯한 상황이기에, 인부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 남은 소수의 인부들은 강제징병 당했다.
함곡관도 함락되었다.
조조군은 북으로는 하북을 치고, 서로는 장안을 치고, 남으로는 한중을 칠 장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어디선가 미꾸라지 같은 마초군이 꾸불꾸불 기어들어오더니, 중앙에 떡 하니 알박기를 해 버렸다.
미치고 환장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