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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 유비 8권
한중 공방전
장안은 공성이 시작되고 정확히 보름 만에 함락되었다.
한쪽 성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일대가 불바다가 되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조휴는 떨리는 목소리로 퇴각을 명했고, 조조군은 무관으로 물러났다.
“하하하하, 드디어 장안을 얻은 것인가!”
손책은 장안의 성주집무실에 앉아 크게 웃었다.
그동안 마초군의 것이었던 장안이 이제 손책의 것이 되었다.
장안을 손에 넣었으니 옹주와 서량도 따라온다.
유비군을 상대로 크게 한 번 졌지만, 반년도 안 되어 다시 세력을 회복한 셈이다.
주유는 들뜬 마음의 손책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습적으로 장안을 얻었지만, 이제 적은 발석거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무관에서는 대비를 할 것입니다.”
“크흠, 무관까지 점령하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저들이 대응하기 전에 당장 진군할 수는 없나?”
“장안처럼 큰 성을 얻은 후 바로 출군하는 것은 득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적이 당황하여 물러났지만, 군의 수는 사실 저들이 더 많습니다.”
조휴군이 10만, 손책군이 8만.
애초에 조휴군이 농성을 안 하고 계속 군의 일부를 내보내 국지전을 벌이며 시간을 끌었다면 장안 함락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휴군은 조조군 본대의 지원을 기다리며 무리를 안 하려 했기에 오히려 발석거라는 신무기에 당했다.
무관에서는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주유의 설명에 손책은 겨우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한번 공격하여 성공했으니, 이제는 수비를 해야 합니다. 조조군은 필시 한중을 노려 뒤를 끊으려 할 것입니다.”
“한중! 상용에서 오겠군.”
“다행히 장안에서 한중과 상용 사이로 나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과거 마초군이 지원을 온 길이니 지금 출병하여 그쪽으로 군을 이동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장안 성벽의 개구멍도 철저히 조사하여 다 막았다.
조조군은 아직 발석거가 없으니 그들의 원군이 와도 쉽게 장안을 함락시키진 못하리라.
주유는 이제 전장은 한중으로 옮겨간다고 판단했다.
옹주와 서량은 이미 무주공산이니 기성에 놔두었던 보충병들로도 충분히 장악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한중과 상용 쪽으로 철기를 보내야 그들이 옹주와 서량에 시선을 돌리지 못할 것입니다.”
손책군이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 그것은 바로 마초다.
마초는 분명히 옹주와 서량이 자기 땅이라 주장할 것이다.
장안은 몰라도 옹주와 서량은 마초가 가면 무조건 그에게 넘어간다.
즉, 마초와 마초의 병사들은 가능한 한 그쪽과 멀리 두어야 한다.
“이제 한중을 지키고 상용을 얻어야 합니다. 그쪽으로 철기와 마초군의 잔병들을 모두 투입할 것입니다.”
“좋군.”
“그리고 장장군이 재미있는 제안을 해 왔습니다.”
“장장군이? 무슨 제안이지? 포상을 더 달라고 하던가?”
무려 장료를 일기토로 이겼다.
손책이 손수 장웅을 치하하고 한중에 저택과 금은보화, 그리고 하인과 하녀까지 내주었다.
위연과 방덕도 포상을 받았지만, 장웅이 조금 더 받았다.
그만큼 장료를 일기토로 깼다는 업적은 컸다.
주유는 말했다.
“방장군이 장장군을 철기의 부장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장장군은 이 참에 철기의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오천 남은 철기를 일만까지 늘려야 한다는군요.”
“흐, 철기를 오천 더 늘리자고?”
이는 위험한 일이다.
철기는 마초군의 핵심, 만약 철기가 일만으로 늘어나면 유사시 그들을 쉽게 제압하기 어렵다.
그러나 주유는 재차 손책에게 말했다.
“늘어난 철기는 장장군이 지휘할 것입니다. 즉, 새로 구성되는 철기는 마초군 소속이 아닌, 우리 손책군 직속이 될 것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장장군이 알아서 잘해보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는 마맹기와도 친밀한 관계이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할 가치가 있군.”
손책군 직속의 철기.
그것도 자타가 공인하는 맹장 장웅이 수장이다.
이는 마초가 지휘하는 철기에 못하다고 볼 수 없다.
“좋아,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지원해 줘. 만약 이게 성공하면 더 이상 마맹기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겠군.”
손책은 결단을 내렸다.
이로 인해 손책군이 보유한 말 중 가장 뛰어난 품종들이 모두 장웅에게 넘어갔다.
마갑을 위한 질 좋은 소가죽과 철편들도 얼마든지 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병사들 중 신체능력이 좋고, 용감한 자들도 장웅이 맡았다.
장웅은 병사들을 일단 위연에게 맡겼다.
땅을 기는 법을 알아야 말을 달리는 법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위연군의 수와 정예도가 올라갔다.
*
손책군이 다시 출군했다.
목적지는 한중과 상용 사이, 그곳에 진영을 만들고 침공해 오는 조조군을 역격하기로 했다.
주장은 손책 본인이다.
군사는 주유.
장안은 노숙이 맡기로 했다.
노숙은 장안의 안정과 성벽의 보강을 맡았고, 유사시 방어도 할 것이다.
마초도 이번 전투에는 참여하기로 했다.
마초는 지금 한중에 있는데, 친위대와 함께 장안 쪽으로 와서 중간에 합류하라고 사람을 보냈다.
마초가 오면 철기의 주장은 마초가, 부장은 방덕과 장웅이 될 것이다.
지원보병대는 위연이 지휘한다.
오히려 예전 마초군보다 안정감이 있는 포진이다. 
단, 철기의 수는 이전보다 적다.
장안에 이만을 남기고 육만 명이 출병했다.
한중으로부터도 지원병이 사만 명 올 것이니 총 십만의 군세다.
지리적인 이점이 이쪽에 있으니 조조군의 수가 많아도 충분히 대적할 수 있다고 주유는 판단했다.
*
곽가가 조조에게 최종적으로 보고했다.
“아군의 총 군세는 삼십만이 조금 넘습니다. 손책군의 수는 아무리 많아도 십만을 넘을 수 없으니, 세 배의 수로 찍어 누를 것입니다.”
“하하하, 곽군사. 이번에는 과격하군.”
“시간이 흐르면 손책군은 옹주와 서량으로부터 병사들을 보충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십만도 가능해 집니다. 수로 찍어 누를 수 있는 기회는 지금밖에 없습니다.”
곽가는 냉정하게 계산했다.
손책군이 후방을 안정시키면 답이 없다.
십 년 이십 년을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 사이 유비군은 더욱 힘을 기르겠지.
곽가는 말했다.
“올해 안에 손책군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유비군과 자웅을 겨루는 데 전력을 집중합니다.”
“그래야겠지. 더 이상 후방에 시간을 끌 수는 없다. 단숨에 밀어붙인다!”
유비의 이름이 나오자 조조는 끓어올랐다.
평생의 적!
조조가 자신 이외에 유일하게 인정하는 영웅이다.
손책 따위에게 뒤를 잡혀 시간을 끌고 있을 수는 없다.
조조군은 가용가능한 모든 병사들을 동원했다.
양양은 물론이고 남양과 여남의 수비군들도 모두 뺐다.
이때 유비군이 뒤를 치면 치명적인 손실을 입으리라.
그러나 조조는 유비의 성격을 안다.
유비는 뒤를 치는 성격이 아니다.
상대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해도 빈틈을 보이는 것은 조조답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감수했다.
오직 손책을 일 년 내에 멸망시키기 위해서.
*
장안을 나온 손책군은 무사히 한중 동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한중의 병사들과 만나 합류하고, 북쪽 산악지대에 대규모 야영지 겸 방어목책성을 지었다.
위연이 이 공사를 진두지휘했다.
주유도 위연의 공사 감독 능력에 크게 감탄했다.
“위장군의 축성능력이 놀랍군. 내 노자경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 했는데...”
보통 장수는 축성에 대한 개념이 없다.
알아도 공병을 부리는 법도 잘 모르니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위연은 일만이 넘는 병사들을 수족처럼 부려 순식간에 목성을 쌓아올렸다.
대기하던 손책군 본대가 들어가 보고 하나같이 감탄할 정도의 완성도다.
사실은 밤마다 장웅이 골머리를 싸매며 설계도를 그리고, 위연은 오직 낮에 작업반장 역할만 한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위연이 그야말로 축성의 계에 통달한 명장으로 보였다.
“조조군이 도착할 때까지 목책산성을 두 개는 더 만들 수 있습니다. 저쪽 산기슭과 반대편 언덕에도 만들면 조조군은 쉽게 군을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위연은 장웅이 가르쳐 준 대로 주유에게 설명했다.
주유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거의 성에서 적을 맞이해 싸우는 격이다.
싸움이 몇 배는 쉬워지리라.
그 사이 장웅은 마초와 만났다.
방덕은 마초에게 자신이 장웅을 철기에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마초는 장웅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웅이니 인정하겠다는 투였다.
셋은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셨다.
그때 장웅이 물었다.
“마장군은 충과 효를 중시하시오? 아니면 의와 협을 중시하시오.”
“흠,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장장군이니 내 대답하지. 나는 의와 협을 더 중시하네. 유학자들이 중시하는 충과 효도 나쁘지 않지만, 대장부가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동료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나랑 같군. 그렇다면 내 말하겠소.”
장웅은 술을 한잔 들이키고는 말했다.
“손가는 마가가 옹주와 서량에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오.”
“크음, 역시 그런가?”
마초도 바보는 아니다.
손책이 자신을 견제하는 것은 이미 느껴왔다.
아마 장웅을 철기에 넣어 철기의 수를 불리려 하는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