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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 유비 6권
왕자의 난 시작
허도에는 유비의 사자인 손건이 와 있었다.
손건은 순욱과 둘이 담판을 짓는 중이었다.
“평원은 청주입니다.”
“알겠소이다. 어차피 유비군은 청주로부터 황하를 건너 평원으로 건너갈 거 같으니 그렇게 알고 있겠소.”
“유주는 유장군의 고향입니다. 유장군의 두 분 의제도 모두 유주 출신이지요.”
“끄응, 그것도 알겠소. 하지만 기주는 우리 조조군 것이오. 이 점에 이견은 없겠지요?”
“잠깐 대기.”
손건은 품속에 손을 넣어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그건?”
“발해 태수의 인장입니다. 일찍이 원본초가 공손백규 장군께 보낸 것이지요. 그러니 발해도 유주의 일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도 안 되오. 발해는 엄연히 기주인데, 어찌 유주의 일부라 하시오?”
“이는 황실에서 내린 정식 인장이니 권한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손건은 양보하지 않았다.
발해는 결코 조조군에게 넘길 수 없는 땅이다.
발해가 딱히 소출이 많거나 특산품이 있어서가 아니다.
발해가 없으면 유주는 고립된다.
유주-발해-평원 이렇게 이어지니 꼭 확보해야 한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며 둘은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순욱은 유주를 통으로 먹으면서 기주의 일부까지 먹으려는 유비측의 욕심이 과하다 했다.
어느 순간, 손건은 법정이 말해준 제안을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엇이오?”
“발해를 양보하는 대신, 우리 군은 양양을 취하겠습니다.”
아니, 거기서 양양이 왜 나와!
순욱은 순간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을 뻔 했다.
그러나 곧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그렇군. 이자들이 그동안 양양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다 꿍꿍이가 있는 거였군.’
조금 이상하긴 했다.
유비군은 지금 강릉을 점유하고 있다.
강릉에는 유비군의 2인자인 관우가 대군을 주둔시켜 단단히 지키고 있다.
그런데 관우는 지키기만 할 뿐, 양양을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
조조군이 몇 번이나 국지전을 일으켜 손책군의 화공전술을 파악, 분석할 때, 관우군이 협공을 가했다면 양양성은 결코 무사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조조군은 혹시 유비군이 양양성을 함락하고 회수 이남의 형주를 완전히 장악할까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 경우 유비군의 힘이 조조군을 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유비군은 지금까지 조용히 있다가 발해 문제에 양양을 꺼내든 것이다.
순욱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발해를 양보하면 양양을 우리에게 넘기겠다는 것이오?”
“양양은 손책군이 점유하고 있으니 우리가 어찌 넘기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유장군께서는 조장군과 친우였던 관계라 콩 한쪽도 나누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남형주 사군을 얻었는데, 양양까지 취하면 너무 나아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양양은 오랑캐도 없는 중화의 땅이니 유비군이 취할 명분도 없지요. 천자를 모시는 조조군이 다스리는 게 순리라 하셨습니다.”
“흐음. 내 이 일은 조장군과 상의를 해보겠소.”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손건은 유비가 왜 양양을 양보하면서까지 발해를 사전에 조율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힘으로 하면 양양도 발해도 다 유비것이 될 게 뻔하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유비군이 조조군보다 먼저 양양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발해 역시 유주의 민심이 유비에게 있고, 평원도 유비의 본거지였던 곳이니 사이에 낀 발해를 조조군이 얻기는 지난한 일이다.
그런데도 유비는 발해를 정식으로 유주로 이전하기 위해 양양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법정도 그게 좋겠다고 동의했다.
이 부분은 이해할 수 없지만, 시키면 시킨대로 할 뿐이다.
얼마 후, 순욱이 조조와 상의를 끝내고 돌아왔다.
“그렇게 합시다. 형주를 둘로 나누고, 하북도 둘로 나누니 조조군과 유비군의 우애는 변하지 않을 것이오.”
둘로 나누긴, 병주, 하내, 기주를 조조군이 먹고, 유비군은 유주 하나에 평원, 발해라는 자투리 지역 두 개만 얻는 것이다.
특히 업은 나머지 지역 전부를 합한 것만큼 가치가 있는 곳이니 하북 공략은 유비군이 하나를 얻는다면 조조군은 셋을 얻는다고 봐야 한다.
이 또한 손건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참에 조조군과 자웅을 겨루어 기주를 취하면, 하내와 병주는 결코 안정될 수 없다.
그러면 유비의 천하가 거의 굳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유비는 자꾸 중원 노른자위 땅을 조조에게 양보하고, 변방 땅만 취하려 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주군의 판단이니 틀림이 없을 것이다.’
손건은 유비를 믿었다.
그가 보아온 유비는 일견 알 수 없는 판단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게 가장 이익이었다고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일도 그 중 하나이리라.
손건은 생각을 정리하고 순욱과 협정서를 교환했다.
비밀유지 조항이 있는 협정서라 다른 세력들에게는 보일 수 없는 것이지만, 둘 사이에서는 착실하게 지켜지리라.
그것이 유비와 조조군의 관계이기에.
*
곽도는 원소의 사망 당시 유언을 날조하여 원담을 후계로 내세웠다.
관도전 패배 당시 곽도는 이날을 위해 미리 방해가 될 전풍과 저수를 제거했었다.
그러나 원래 원담의 군사였던 봉기가 원상 쪽으로 갈아타고, 전풍과 손발을 맞추어 공손찬을 공략했던 심배가 원상쪽에 붙으니 실전능력이 떨어지고 오직 정략만 능한 곽도로써는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원담은 이미 유비에게 패해 청주를 다 잃고 평원만 남은 상황이다.
신하들 대부분이 원담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원상은 아직까지 공은 없으나, 그래서 실패도 없다.
젊고, 잘 생기고, 성격도 좋고, 평소 원소가 총애하여 거의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원상 일당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니 원담과 곽도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업에서 나와 남쪽 지역인 여양에 자리를 잡았다.
“때가 되었군. 가자!”
조조군이 출군했다.
원담과 원상이 싸우는 상황, 이전에 여양을 공격했다면 원소군이 전부 몰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원담만 있는 상황, 원담군도 평원에 대부분 남아있고, 여양에는 일부만 지키고 있다.
조조군의 판단대로 여상은 원담이 공격당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원담은 급한 김에 원상에게 원군을 요청했지만 씹혔다.
이를 갈면서 혼자 싸워야 했다.
원담도 전쟁 경험이 적지 않은 터라, 처음에는 어떻게든 조조군을 막아내긴 했다.
유비군에게 강하게 단련 받은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조군은 파도처럼 계속 밀려왔다.
“나 여양 버리고 평원 가면, 업은 무사할 거 같으냐?”
원담의 두 번째로 원상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것은 협박이었다.
원상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지원군을 이끌고 여양으로 왔다.
그러나 서로 사이가 나쁜 두 개의 군세가 같이 싸운다고 전력이 비약적으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빈틈이 많아졌다.
결국 원담, 원상 연합군은 조조군에게 패해 여양에서 농성을 하게 되었다.
“서로 싸우던 쥐새끼 두 마리를 한 방에 몰아넣었군.”
“일단 여양성을 빼앗는 게 중요합니다. 그 후 우리가 물러나면 두 마리의 쥐는 패배의 원인을 서로에게 돌리며 더 싸울 것입니다.”
곽가는 조조에게 딱 여양만 먹고 일단 군을 빼자고 간헌했다.
유비와는 이미 협정을 맺었다.
경쟁하듯 기주를 빠르게 점령할 필요가 없다.
“그냥 업까지 쳐서 먹기는 힘들려나?”
“업은 하루아침에 깨기 힘든 성입니다. 형주쪽도 아직 정리가 안 되었으니 지금은 너무 한쪽에 힘을 쏟을 수는 없습니다.”
“끄응, 좋다. 어찌되었든 결국은 양양도 기주도 모두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 고생이 나중의 보람으로 돌아오겠지.”
조조군은 여양성을 맹공했다.
하북에 진출하고 약 6개월 만에 드디어 여양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원담과 원상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도망가서 업에 쳐박혔다.
업에서 조조군과 싸우기 위해 전력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조조군은 여양성만 먹고 군을 뺐다.
여양성의 방어준비만 철저히 했다고 척후가 보고했다.
“여양성을 되찾자!”
“우리가 지금 조조군을 공격할 힘이 남아 있을까? 지금은 참고 힘을 더 모을 때야.”
원담과 원상의 의견이 갈렸다.
원상은 급할 거 없었다.
기주가 자신의 것이고, 유주의 원희도 중립이라고 해도 약간은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반면 원담은 급했다.
그에게 남은 건 평원뿐이다. 
기껏해야 평원 북쪽 발해 정도까지만 힘을 쓸 수 있다.
시간은 원담의 편이 아니다.
“비겁한 놈, 적이 원가의 땅을 침범했는데 그냥 놔두겠다고? 네놈은 원가를 이을 자격이 없다.”
“여양을 억지로 취한 후 조조군에 헌납한 게 누구지? 너 같은 자 때문에 원가가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양기를 소모한 것이다.”
곽가의 예측대로 원담과 원상 둘은 싸웠다.
그리고 원상이 이겼다.
업은 이미 원상의 근거지이니 원담이 이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원담은 피눈물을 흘리며 평원으로 도망갔다.
기주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원담은 억울했다.
장자인 자신이, 이대로 기주를 원상에게 빼앗겨야 하는 것인가?
평원에 갇혀 이렇게 시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곽도가 말했다.
“안타깝지만 주군의 군세로는 원상군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는 타인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타인? 누굴 말하는 거지?”
“주군을 무재로 천거한 유현덕입니다.”
“유현덕에게 원군을 요청하자고?”
“그렇습니다. 유현덕은 땅을 탐하는 자가 아닙니다. 유현덕에게 원상이 북방 오랑캐와 손을 잡고 그들을 하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전하십시오. 그리고 주군께서는 유현덕과 함께 북방 오랑캐를 몰아내겠다고 약속하십시오. 그럼 주군께서는 다시 일어설 명분과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호!”
생각해보니 그렇다.
유비가 원가를 미워하게 된 것은 모두 북방 오랑캐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걸 원상 탓으로 밀어붙이고, 자신은 유비군에게 붙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