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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 유비 3권
삼고초려
다음 날 아침, 유비는 다시 제갈현의 진형을 방문했다.
입구의 병사에게 무기를 주려 하니 병사가 우물쭈물하며 받으려 하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다.
투구 속 얼굴에 큰 멍이 있다.
“자네 혹시 어제도 내 무기 맡았었나?”
“그렇습니다.”
“저런, 내 급해서 실례한 것 사과하네.”
“괘, 괜찮습니다.”
유비는 다시 쌍검을 내밀었고, 병사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혹시 또 같은 상황이 되면 내 살살 칠 테니 버티지 말고 쓰러지게.”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병사는 어제 유비의 무기를 들고 있다가 한 방에 기절했었다.
얻어맞을 때 느낌은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지금도 얼굴 반쪽이 잘 움직이지 않았는데, 때린 장본인인 유비가 앞에 있으니,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래도 유비가 친근하게 농담까지 하니 조금 긴장이 풀어져서 무기를 맡을 수 있었다.
병사는 유비가 다른 손에 들고 있는 목함을 보며 물었다.
“그건 무엇입니까?”
“어제 난동을 부린 자의 목일세. 확인하겠나?”
“아닙니다. 직접 태수님께 보여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유비는 제갈현의 집무실로 들어가 인사를 하고 목함을 내려놓았다.
“이자가 제갈가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살려서 데려오지 못하고 목만 가져와서 죄송합니다.”
제갈현이 듣기에 이게 사죄인지 협박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목소리는 사근사근하니 친근해 보이려고 하는 것 같긴 하다.
제갈현은 얼른 착융의 머리를 확인하고 목함의 뚜껑을 닫았다.
어젯밤에 유비가 싸우는 것을 본 이후로, 제갈현은 유비 앞에서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오늘 다시 그가 사람 목을 선물로 들고 온 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자와는 절대 싸우면 안 된다.’
사람 좋은 얼굴에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사람 목을 선물한다.
화를 내며 칼을 뽑아 드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서로 싸울 마음이 없으니, 대화가 시작되었다.
유비는 재차 서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그러나 제갈현은 고개를 저었다.
“내 유현덕공의 말에 옳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수춘에 아직 가문 사람들이 남아있으니, 그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노중한귀 원공로가 인질을 잡았군요. 그렇다면….”
유비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 일은 저 혼자 결정하기 어렵고, 수하들과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유비의 두 번째 방문은 짧게 끝났다.
남긴 것은 착융의 머리뿐이다.
제갈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착융의 머리를 묻으라 명했다.
*
다음 날, 유비는 세 번째로 제갈현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감녕을 동행시켰다.
유비는 제갈현에게 감녕을 소개한 후 말했다.
“사람이 잡혀있다면 구하면 될 것입니다. 제갈가주께서 허락하신다면 같이 수춘으로 가시지요.”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까?”
감녕이 벌떡 일어나 어젯밤 유비와 세운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제 부하들이 천 명 정도 됩니다. 저희는 원술군의 복장을 한 채 패잔병으로 분장하겠습니다. 제갈가주께서는 저희와 함께 수춘으로 돌아가서 패배하고 돌아온 것으로 보고하시면 됩니다.”
“허,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제갈가주께서는 유현덕공과 함께 원공로에게 보고를 하러 수춘에 가실 것입니다. 저희는 항구에 남아 대기하고 있다가, 3일 후에 난동을 피우겠습니다.”
“난동을 피운다고?”
유비는 지니고 온 지도를 펼쳤다. 
이것은 정교한 지도는 아니고 대략적인 해안선에 주유 도시와 항구만 찍어놓은 것이지만 방향과 위치는 얼추 맞았다.
“우리는 유수항에 내릴 것입니다. 수춘과 유수항은 꽤 거리가 있어서 최소 3일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수춘의 약점 중 하나다.
항구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강을 접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내륙도시다.
그래서 조조는 나중에 수춘과 유수항 사이에 합비성을 새로 짓는다.
오군이 쳐들어오면 바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수춘은 유수항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그러면 원공로의 이목이 우리 쪽에 쏠릴 것이고, 병사를 보내 난을 진압하려 할 것입니다. 그 사이 제갈가주께서는 유현덕공과 가족과 함께 수춘을 벗어나시면 됩니다.”
“으음, 가능할지 모르겠소. 또 가족들을 구출한다 해도 유수항으로 돌아가려면 원공로의 진압군을 만나지 않겠소?”
“항구로 오지 않으시면 됩니다. 북쪽으로 향하셔서 패국으로 가십시오. 그쪽이 빠르고 경계도 덜할 것입니다.”
유비가 덧붙였다.
“패국의 소패성에는 제 동생들이 있습니다. 이미 사람을 보내 놓았으니, 패국 경계에 지원군이 대기할 것입니다.”
이른바 성동격서 작전이다.
수춘은 유수항에서 꽤 거리가 있으니 원술이 병사를 보내면 오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그 사이 제갈세가 사람들은 조용히 수춘을 빠져나가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원술은 제갈세가 사람들이 도망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패배를 한 후에 도망가지 않고 돌아와서 죄를 청하는 상황이다.
원술은 제갈현이 완전히 자신에게 귀부했다고 여길 가능성이 크다.
“수춘에서 소패까지는 과거 저와 유현덕 공이 한 번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유비도 말했다.
“만약 추적대가 온다고 해도 큰 규모는 아닐 것입니다. 그 정도는 제가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작전의 가장 중요한 사항은 바로 유비의 무력이다.
유비는 십여 명의 가장 뛰어난 수하들만 데리고 제갈현과 동행할 것이다.
제갈세가 사람들이 무장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대로 된 군벌은 아니다. 
사병이 있어도 백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추적대도 기껏해야 삼백 명 정도?
장군 등급인 교위가 직접 수천 명 동원해서 쫓아올 가능성이 매우 적다.
중대 규모인 둔, 기껏해야 대대 규모인 곡 정도 수준일 것이다.
유비가 호언장담했다.
“몇백 명 정도는 나 유현덕이 단신으로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제갈현은 어제 본 것이 있으니, 유비의 말을 허언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확실히 추적대 몇백 명 정도는 유비를 선두로 싸우면 막아낼 것 같았다.
“좋소. 유현덕공이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이니, 우리 제갈세가의 운명은 모두 유현덕공에게 맡기겠소.”
제갈현은 크게 감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상에 누가 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단 말인가!
유현덕의 덕이 이렇게 높으니, 선비라면 마땅히 유현덕에게 귀부함이 도리일 것이다.
‘역시 세 번 찾아오면 영입할 수 있는 거군. 역사는 역사야.’
이런 건 격식이 중요하다.
강제력이 어떤 식으로 발동할지 모르니, 할 수 있는 한 역사 상황에 맞추는 게 좋다.
유비는 계획한 대로 삼고초려로 제갈세가를 얻을 수 있었다.
제갈량 한 명이 아닌 세가 전체를 얻었다.
*
주호와 설례에게도 상황을 설명한 뒤, 유비는 제갈현 일행과 함께 남창을 떠났다.
제갈현이 이끄는 원술군은 모두 항복시켜서 주호에게 맡겼다.
주호는 원래 데리고 있던 이천에 다시 이천을 더해 도합 사천의 군세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 위에 유비군이 타고 온 대선 세 척 중 두 척을 주호에게 주기로 했다. 이를 따르는 소선 수십 척도 같이 넘겼다.
대신 유비군은 원술군의 배를 타니 신품을 주고 중고를 받은 격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미축이 유비 타라고 내준 초호화 대선은 주호가 나중에 사람을 시켜 강도항까지 운반해 주기로 했다.
그건 미축이 유비를 위해 정성 들여 꾸민 것이니 쉽게 남에게 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주태수께서는 이곳에서 연병을 하다, 원공로가 주제도 모르고 다시 강동을 탐하면 그때 군을 일으켜 도와주십시오.”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양주목께 충성할 것이고, 결코 두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의 주력이 완전히 강동으로 넘어간 이후 군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봉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보급을 끊는 것이 더 큰 공일 것입니다.”
“전투에 관한 한 유현덕 공의 말씀이 무조건 옳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응, 손책 주유의 주력과 강 위에서 싸우면 무조건 발려.
그거 버티려면 몽충 있어야 해.
보급만 끊어.
그럼, 뒤는 내가 정리하든가 할게.
유비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호와 작별했다.
이것으로 예장 지역은 완전히 유요의 세력권으로 굳어졌다.
원술군은 쉽게 강동으로 넘어갈 수 없으리라.
손책 역시 마찬가지.
유비가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력을 다해 손책의 강동진출을 막으려 해도 운명은 모른다.
꿀벌 한 마리로 새장가를 가게 된 유비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다면 손책이 넘어가도 힘을 얻기 전에 처리한다.
주호가 뒤를 끊고, 유비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끌고 강도항에서 곡아항으로 넘어간다.
유요도 예장 문제로 전력을 잃지 않고 보존했으니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한 판 승부로 손책과 주유를 제거할 수 있다면 이는 실행할 가치가 있다.
‘손책, 주유, 넘어오려면 넘어와 봐라. 내 소패왕과 원조패왕의 차이점을 확실히 가르쳐주지.’
유비는 속으로 새삼 다짐하며 수춘으로 향했다.
*
수춘 유수항의 방비는 그렇게 철저하지 않았다.
적이 강을 건너오는 것을 대비할 준비는 되어 있다.
하지만 제갈현은 원술군이다.
항구에 도착하니 유수항을 관리하는 진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진기는 부서진 배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고 내리는 자들의 초라한 행색에 혀를 찼다.
제갈현은 진기에게 유요가 원군을 4천이나 보내 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패군지장의 변은 듣기 싫소. 배와 남은 병사들은 놔두고 측근만 데리고 수춘에 가서 좌장군께 죄를 청하시오.”
원술은 얼마 전에 좌장군의 직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