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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 유비 2권
손견의 최후
쾅!
이것이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란 말인가!
마치 공성추로 성문을 부수는 듯한 소리가 주변 공기를 격하게 흔들었다.
손견이 육박전 때 쓰는 칼은 무게 64근의 대감도다. 
그걸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에 방패를 든다.
쌍검과 도방패의 대결!
손견은 몸을 날려 체중과 전포, 방패의 무게까지 실어 도를 휘둘렀다.
유비는 그걸 초천검 한 자루로 막아냈다.
“이, 이놈, 무슨 힘이!”
“네놈은 자기가 세상에서 힘이 젤 센 줄 알지?”
유비는 차갑게 웃으며 왼손에 든 참사검을 휘둘렀다. 
손견이 급하게 방패로 막아 흘려냈지만 힘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었는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손견의 무위가 단순히 힘에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유비 역시 힘만 믿는 무부가 아니다.
“으랴!”
쾅, 쾅, 쾅, 콰쾅
위, 아래, 좌, 우측 건너뛰고 엇박자 위.
쌍검의 연속공격은 화려하고, 하나같이 태산을 뒤흔들 만큼 위력이 있었다.
손견은 모두 피하거나 막아냈지만, 다시 뒤로 두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치욕이다.
손견은 십 년 넘게 싸우면서 적과 맞서서 한 걸음은커녕 반걸음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손견의 눈이 뒤집혔다.
전신에서 인간이 아닌 맹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놈, 산산조각을 내주겠다!”
콰콰콰쾅!
힘 대 힘이 부딪쳤다.
둘은 물러서지 않고 두 다리를 땅에 박은 듯 버티며 계속 무기와 방패를 휘둘렀다.
유비는 손견이 어느 순간 미친 듯이 힘이 세지며 자신을 압도할 듯 강격을 가하자 깨달았다.
‘스킬이 발휘된 거군. 강동지호던가? 자기 힘도 세지고, 상대가 기에 눌려 못 움직이게 하는 사기 스킬.’
그런데 패왕유비는 기에 눌리지 않는다. 
손견보다 힘이 강하니 누르면 눌렀지, 눌릴 이유가 없다.
‘내가 더 세. 인마!’
자존심 싸움이다.
물러서지 않겠다. 
패왕이 호랑이 한 마리에 밀리면 어디 가서 패왕이라고 말하기 창피하다.
순간, 유비의 가슴 깊은 곳에서도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올라왔다.
[역발산기개세]!
쾅!
“어억!”
손견의 무기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워낙 칼날이 두꺼워 날이라기보다는 철괴에 가깝다는 평을 들었던 64근 대감도. 
하지만 초천검과 역발산기개세를 견뎌내지 못했다. 
파파팍 하고 철조각이 튀어 손견의 몸과 얼굴에 박혔다.
피투성이가 된 손견의 얼굴 사이로 빛나는 두 눈은 광기로 젖어있었다.
그러나 곧 제정신으로 돌아오는지 공포의 감정이 두 눈에 담겼다.
“잠깐!”
“문답무용!”
서걱.
손견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참사검의 횡격이 그대로 손견의 목을 베었다.
유비는 초천검을 머리 위로 치켜올리며 크게 외쳤다.
“역적 손견이 죽었다! 다들 쳐라!”
와아아아아!
감녕의 수하들은 크게 사기가 올라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돌진했다.
도망가던 황조의 부하들도 놀라 뒤돌아섰다. 
곧 그들은 상황을 깨닫고 감녕의 수하들과 같이 손견군을 역격하기 시작했다.
손견군은 언덕을 달려 내려오면서 황조군을 적지 않게 베었다.
내려올 때는 좋았는데, 손견이 죽어 퇴각하려 하니 언덕을 다시 올라가야 했다.
뒤에 내려오던 병사들이 쉽게 멈추지 못하니 물러서려는 자와 멈추지 못한 자들이 서로 엉겼다.
그걸 감녕의 수하들이 마구 베면서 전과를 확대했다.
전투가 끝난 후 전과를 확인하니 손견의 병사 오천 중 삼천의 죽음이 확인되었다.
대부분 감녕 수하 이백이 다 죽인 것으로 뒤를 따르는 황조군은 마무리 작업만 했다.
보리 이삭 줍듯 목만 베어 황조에게 바치니 황조군은 천오백의 수급을 취할 수 있었다.
손견의 부장인 황개, 정보, 한당, 주치 중 정보가 가장 뒤에서 버티며 한 명이라도 더 병사들을 살리려 했다.
그래서 이천이라도 살아 배를 탈 수 있었다.
대신 정보는 감녕에게 따라잡혀 등이 극에 찍혔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살았다고 한다.
그 뒤 정보는 폐에 난 상처 때문에 전장에 서지 못하고 연병을 담당하게 되었다.
대승, 
대패를 한 순간에 뒤집어 대승을 올렸다.
모두 유비가 손견을 벤 덕분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했다.
*
양양에서는 거의 한 달 내내 연회가 멈추지 않았다.
형주 전역에서 호족들이 찾아와 연회의 주인인 유표에게 인사를 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이 연회의 주빈은 유표를 구해낸 채씨 일족, 
손견을 막아낸 황조군, 
그리고 멀리서 단 이백 기로 유표를 돕기 위해 달려온 유비, 
세 명이었다. 
괴월, 괴량 형제는 이미 유표의 사마와 별가가 되어 주인에 해당되니 객이 아니었다.
논공행상은 채씨의 수장인 채모와 황조가 일등이고, 조력자인 유비는 이등이 되었다.
이는 유비가 유표에게 사양을 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평원의 태수로 임관하고 있음에도 이곳 형주에까지 온 것은 결코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왔다고 자랑할 수도 없고, 곧 떠나야 하는 몸이니 최대한 공을 줄여주십시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즉시 장안에 사자를 보내 역적 손견의 만행을 고발하고, 국주께서 역적을 토벌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손견은 관직을 받은 몸, 만약 원술이 꾀를 내어 역으로 국주를 고발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과연! 그렇구려.”
“탁월한 식견이십니다.”
“유 태수께서는 무용이 천하무쌍인데, 사물을 보는 식견이 이렇게 넓으니, 천하의 영웅이라 하겠습니다.”
유비가 순발력 있게 원술보다 먼저 조정에 보고하라고 고하니 괴월, 괴량도 즉시 찬성했다.
유표는 19로 제후에 참가하지 않았다. 
동탁에게 형주자사 직을 받고 동탁토벌군에 가담하지 않았으니 나름 의리를 지킨 것이라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황족이다. 
유표가 장안으로 천도한 동탁에게 먼저 예물과 사신을 보내면 크게 후대를 받을 것이다.
특히 동탁의 목 바로 밑까지 찔렀던 비수, 손견을 죽였다고 하면 기뻐할 수밖에 없다.
유비의 조언에 유표는 급히 공물을 준비해서 장안에 보냈다.
원술까지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괴씨 형제는 그건 득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원술은 아직 힘이 강하니 자극할 수 없다. 
오히려 원술이 손견만 손절하도록 이쪽에서 선을 그어 주는 게 상책이다.
장안에 보내는 보고서에는 유비의 이름이 빠졌다. 
19로 제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유비가 손견을 죽였다고 하면 동탁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를 토대로 논공행상하니 자연스럽게 유비는 1등이 아닌 2등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다 안다.
채모도, 황조도, 유비가 아니었다면 자신들은 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알면 됐다. 앞으로 잘해라. 지금도 잘하고.’
유비는 유유자적 양양 생활을 즐기며 유표에게 인사 오는 사람들과 교분을 다졌다.
형주는 중원의 화약고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이곳이 결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인맥과 평판작업을 해 놓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물며 채모와 황조는 유비의 무서움을 두 눈으로 보았다.
가능하면 척을 지지 않으려 할 거다.
“그런데, 황충을 어떻게 찾지?”
유비는 연회를 즐기는 내내 고민했다.
황충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긴, 지금 황충은 잘해야 하급 무관일 테니 국주가 여는 연회에 참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거 익주에서 유연이 여는 연회에 감녕이 참석했던 게 조금 이례적인 일인데, 이는 유언이 하급 무관까지 다 참석시키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표는 귀족주의적인 성격이라 호족의 대표급만 만난다. 
연회도 훨씬 화려하게 개최하니 호족들은 좋아한다.
황충은 찾아야 한다.
유비가 촉한을 세울 때, 군공 상위 세 명이 바로 장비 황충 위연인데, 많은 전문가들은 황충을 최고로 친다.
무려 하후연을 잡았으니까.
황충은 필요하다. 
가능하면 빨리 얻어서 노익장 타이틀 달 때까지 사골처럼 우려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형주까지 달려온 거다.
고민하던 어느 날, 유비는 한숨 돌릴 겸 양양 시가지에 나갔다.
그런데 유표의 치소를 벗어나자마자 앞쪽에 대기하고 있던 웬 남자가 유비를 알아보고 헐레벌떡 달려와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아 절을 한다.
“유 장군님, 소인을 수하로 받아 주십시오.”
아, 이놈의 인기란.
유비는 살짝 우쭐한 기분이 되어 상대를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머리였다.
머리가 없다. 아니, 머리카락이 없다. 완벽하게 없다.
민머리로 땅을 콩콩 박으며 절을 하니 절구로 땅을 찍는 거 같다.
뒤통수가 햇볕에 반사되어 환하게 빛난다.
문득 비슷한 광경을 얼마 전에 본 것이 기억났다.
“그대는 혹시 손견과 싸울 때 근처에 있던 병사가 아닌가?”
“소인을 기억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