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챕터 1.
챕터 2.
챕터 3.
챕터 4.
챕터 5.
챕터 1.
이윽고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천천히 멈추었다. 그녀는 침울한 얼굴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의 눈길도 아이오델을 따라갔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낼 집을 확인한 순간, 그들의 표정은 도장으로 찍어 낸 듯 똑같이 찌그러졌다.
역시나 제일 먼저 흥분한 것은 셰넬이었다. 그녀는 즉시 마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허망한 눈길이 자신들이 오늘부터 지낼 집을 향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란 말이에요! 아니, 집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고요!”
셰넬이 잔뜩 화가 나선 길길이 날뛰었다. 이윽고 미케르젠과 프레이아 대공비 또한 천천히 마차 아래로 내려왔다.
두 사람 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제법 충격을 받은 듯 두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당연하지.’
아이오델이 입꼬리를 움찔움찔 떨며 그들을 따라 내려왔다.
놀랍지도 않은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셰넬의 말이 정확한 묘사기 때문이었다.
‘이걸 집이라고 할 수는 없지. 거지 소굴이라면 모를까.’
오두막이라고 칭하기도 미안할 만큼의 허름한 천막은 바람에 흔들려 너덜거리고, 기둥이랍시고 세운 나무 기둥은 뿌리부터 썩은 채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농가라도 있는지 거름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있었다.
“이런 데서 지낼 수는 없어요! 몸도 회복해야 하는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요!”
그녀는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아이오델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 드레스라도 팔아! 난 이런 곳에서 살 수 없단 말이야!”
성이 난 손길이 아이오델의 드레스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앗, 안 돼……!”
아이오델은 일부러 몸에 힘을 빼고 셰넬의 힘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몸은 힘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때마침 바닥에는 더러운 물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넘어진 아이오델은 몸을 살짝 옮겨 드레스를 더러운 물에 적셨다.
“당연히 이건 내 드레스가 아니란 말이야!”
“……뭐?”
“테티스 황녀 전하께서 빌려주신 거야! 아무리 정신이 열한 살이라지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드레스에 물든 더러운 물을 지우려 애썼다. 그러나 애를 쓰면 쓸수록 드레스는 오히려 더욱 더러워질 뿐이었다.
“내, 내가 뭘 어쨌다고……!”
당황한 셰넬이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 순간, 타이밍이 좋게도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졌다.
황실 마차까지 자리를 뜨자, 미케르젠은 비에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일단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 또한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안에 들어오니 더욱 가관이었다.
“허……!”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쥐와 바퀴벌레가 득실득실할 뿐만 아니라 거실은커녕 주방 하나에 방도 딱 두 개뿐이었다.
“잠깐만요…….”
프레이아 대공비가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럼 하녀도 없단 말이에요……?”
“하녀라뇨. 당장 봉급을 주실 순 있고요?”
아이오델은 조소를 감추고 차분하게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황제 폐하께서 이러실 수는 없어요! 당장 황성으로 가요. 적어도 다시 사업을 시작할 자금을 빌리고, 안정이 될 때까진 함께 지내게 해 주셔야죠! 저 아이에겐 그렇게 하셨잖아요!”
프레이아 대공비는 주방일까지 모두 자신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은 듯 소리를 내질렀다.
“저는 그때 고작 열 살이었어요, 어머니.”
완전히 패닉이 된 사람들 사이 온전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아이오델 한 사람뿐이었다.
“프레이아 대공 일가 전체가 의식을 잃고 저만 남았다는 사실이 사교계에 모두 퍼졌는데, 황제 폐하께서 어떻게 절 외면하실 수 있었겠어요?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셨겠지요.”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했으면, 이런 집에…….”
“사실은요.”
그녀는 보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품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아버지께서 의식을 잃고 계신 동안, 이런 것들이 적발되었어요.”
“적발?”
미케르젠이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빼앗아 들었다.
곧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이, 이건……!”
서류 속에는 지금껏 미케르젠이 저질렀던 온갖 비리들이 적혀 있었다.
“말도 안 돼!”
그가 서류를 당장에 구겨 바닥에 내팽개쳤다.
미케르젠이 해 왔던 사업 중에는 황실의 지원을 받는 사업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업적으로 몇몇 업체들과 유착 관계를 맺긴 했다. 뇌물도 받았고 접대도 받았다.
그거야 사업을 하면서 당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이런 걸 비리라고 한다면, 제국 전체에 비리로 안 걸릴 사람이 있을 것 같으냐!”
완전히 흥분한 미케르젠이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렸다. 그러나 화를 낸다고 돌이킬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비리는 맞죠. 결국에 청탁을 받고 원하는 작위를 구해 주기도 하셨고, 뇌물을 받고 사업상 유리한 위치의 선점을 미리 받기도 하셨잖아요?”
“넌 누구 편이길래……!”
그는 아이오델을 향해 소리를 지르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녀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하아.”
“이미 사교계에 아버지가 이런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게 전부 퍼졌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황제 폐하께서 대놓고 우리 일가를 도와줄 수 있겠어요. 이 일 때문에 저도 눈치가 보여서 재산을 다 드릴 수밖에 없던 거라고요.”
“제길…….”
미케르젠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허름한 소파 위에 걸터앉았다.
그 순간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소파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아악!”
뿌옇게 쌓인 먼지들 사이로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여보!”
프레이아 대공비가 빠르게 다가가 미케르젠을 부축했다. 셰넬은 벌게진 눈으로 그저 이 모든 것을 노려만 보고 있었다.
“아이오델, 이제 남은 건 너뿐이다!”
그는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프레이아 대공비를 거칠게 밀치곤 아이오델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마석을 만들어 다오!”
“마석이요?”
“그래. 일단은 네 마력으로 먼저 마석을 융통하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미케르젠이 횡설수설하며 중얼거렸다.
아이오델은 그런 그를 싸늘하게 바라보다, 이내 절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노력은 해 보겠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어렵다니! 네 마력을 이용하는 게 어째서……!”
“저는 지금 황성에서 지내고 있어요. 지금도 아마 황제 폐하의 감시를 받고 있을 거예요.”
“뭐? 이제 우리가 돌아왔는데 너만 황성에서 지내겠다는 말이냐?”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지금 마탑 소속이거든요. 아시잖아요. 마탑 소속의 마법사는 마법을 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하물며 마석은 더하지요. 더없이 귀하고 비싼 자원 중 하나잖아요.”
그녀의 말에 마지막 희망을 잃은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일단은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있잖아요.”
“무슨 수가 있단 말이냐! 네 마력만 믿고 있었는데…….”
“우선은, 제가 모아 놓은 금화가 좀 있어요. 황성에 있으니까 가져올게요. 그리고 셰넬.”
미케르젠에게 일말의 희망을 남겨 둔 아이오델은 이내 천천히 셰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황녀 전하의 드레스를 더럽혔으니 이걸 배상해야 할 거야.”
“허, 배상?”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 사촌 언니들이야.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할 리가 없잖아!”
“그건 그럼 전하들의 앞에서 네가 직접 이야기하도록 해.”
“아, 아이오델.”
그러자 프레이아 대공비가 말까지 더듬으며 끼어들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가도 되겠니……?”
속이 다 보이는 부탁이었다.
황제보다는 나이가 어린 황녀들에게 자신들의 의탁을 부탁하는 게 훨씬 더 쉬울 테니까.
아이오델은 환하게 웃으며 경쾌하게 답했다.
“그럼요. 어머니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 드려야죠! 오늘만 여기서 묵고, 내일은 저와 같이 황성으로 가요. 아셨지요?”
“……그래.”
“힘내세요! 좋은 날이 올 테니까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더러운 오두막 안의 허망한 얼굴들 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흡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 * *
“어머니, 저 정말 이런 곳에선 못 살겠어요!”
아침이 되자마자 엉망이 된 얼굴로 셰넬이 소리쳤다.
“여기가 사람 집이에요? 바퀴벌레, 쥐들의 집이지!”
“……그만하거라.”
밤새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은 프레이아 대공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미케르젠은 잠을 포기하고 이 근처 숲속만 하염없이 돌다 새벽에야 들어왔다.
동이 튼 뒤에야 잠이 든 그는 방 하나를 차지한 채 아직도 잠 속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오델이 자고 있을 방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걱정된다며 굳이 이곳에서 자고 간다던 그녀였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
어서 저것이 일어나야 황성에 가든지 말든지 할 텐데 말이었다.
잘난 척하던 어제의 모습을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서, 프레이아 대공비는 차라리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래도 오늘은 아이오델이 황성에 같이 데려가 준다고 했으니, 황녀 전하들께 부탁을 해 볼 수 있지 않겠니.”
“그럼요! 저와 얼마나 친했는데요. 분명 들어주실 거예요. 그리고.”
셰넬 또한 아이오델이 자고 있을 방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황자 전하 곁에 있던 그 빌어먹을 여자가 누군지도 알아내야겠지요.”
그때였다. 오두막의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벨이야.”
“뭐?”
“내 직속 하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아이오델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벨이 마탑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마법사란 사실은 쏙 빼고 말했다.
셰넬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황자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고작해야 하녀라니.
그녀는 당장이라도 소리를 내지르려는 듯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