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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게임 속 악역의 시한부 딸입니다 6권
 
지은이 : 김촉촉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 김촉촉, 2025
※ ISBN : 979-11-7408-075-2
※ 가격 : 3,500원
※ 발행일 : 2025년 05월 29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월족의 마을
 
 
의식을 되찾은 지도 반나절이 지났다. 겨우 체력을 회복한 나는 다소 긴장되는 얼굴로 백무현과 함께 왕야의 다실에 들어섰다.
내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이유는 단 하나.
백무현으로부터 왕야께서 내가 쓰러진 사이 남궁가에 연락을 취하려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출한 친우의 딸이 노숙하지 않도록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손님방까지 내어준 다정한 사람이다.
그러니 지하 사당에서 내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얼마나 크게 걱정해 주었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딸의 행방을 찾으며 염려하고 있을 자신의 친우에게 연락을 넣으려 하는 것쯤이야 정말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를 쫓는 가솔들의 시선을 피해 강호행을 속행하고자 하는 나에겐, 안타깝게도 그의 그런 배려가 오히려 방해물이었다.
그에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도록 짐을 모두 꾸린 뒤, 평소와는 달리 조금 공을 들여 꾸민 모습으로 왕야에게 대화를 청했다.
그건 아주 약간만이라도 더 건강해진 모습을 선보이려는 비장의 수였지만, 흠…… 글쎄.
그의 표정을 보건대 그리 큰 효과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몸은 좀 어떤가. 안휘로 연통을 넣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 많았네.”
나를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며 왕야가 조심스레 물었다.
다소 창백한 내 얼굴을 살펴보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했다.
“가끔 있는 일이에요. 지금은 괜찮아요.”
내가 앓아누워 있는 동안 안절부절못했다더니, 어지간히도 걱정해 준 모양이네.
약간의 피로감이 가미된 어조로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그가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 의원은 뭐라던가.”
혹시나 내가 상처받기라도 할까 염려한 것인지 꽤나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그에 괜히 짓궂은 마음이 들어 버린 나는 일부러 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환골탈태라도 하지 않는 한은 병을 고치긴 힘들다고 하시던데요?”
“환골탈태라… 화경의 경지를 이루라니. 사람 참, 말 한번 짓궂게 하는 양반이군.”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요, 뭐. 그래도 효과가 좋은 약을 먹고 있어서 병증의 진행 속도를 많이 늦춘 상태예요.”
비록 약값이 평범한 약첩의 몇 배씩 나가기는 해도 목숨값에 비하면 한참 저렴한 셈.
약선 할아버지를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에 찾아온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우연인지 아니면 내 속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했던 것인지, 왕야께서 불쑥 탄식하듯 읊조렸다.
“약선 어르신의 행방이라도 알게 되면 좋으련만.”
……뭐지. 독심술이라도 쓰신 건가?
아니면 설마 내가 약선의 제자가 되었다는 걸 그도 알고 있나?
하지만 그건 남궁가 내에서도 직계들 위주로만 알음알음 아는 비밀사항인데?
불안한 마음에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당황한 것을 티 내지 않으려 파들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말아 올렸다.
그러곤 일부러 더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야, 약선 어르신은 왜요?”
내 물음에 왕야께서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혹시 모르잖나. 그분의 의술은 감히 신선에 버금갈 정도라고들 하니까.”
뭐, 확실히 약선 어르신의 치료법은 이 시대의 의학치고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그게 단순히 의학적 지식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 ‘주술’이라는 생소한 비법이 첨가된 방식이라서 문제지.
‘아니 뭐, 물론 그 덕분에 내공을 다루는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일취월장하기는 했지만…….’
주술은 기본적으로 자연지기와 몸 안의 기운을 모두 사용하는 무공의 일종.
그렇기에 더더욱 내공을 활용하는 능력, 즉 내공 운용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으,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장난 아니었던 것 같아.’
약선 할아버지는 주술을 미심쩍어하는 내게 강한 동기 부여를 주겠다고 하시며 내 약에 쓰일 재료들에 대한 주술적 처리의 상당수를 내게 맡겼다.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다 주신 약재를 실수로 망쳐 버렸을 때의 그 기분이란…….
속상한 마음에 밤늦게 잠들지 못하고 훌쩍이기도 했었지.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고생이 지금의 이 가능성을 만든 것 같았다.
10년 전 목표했던 레벨 60을 찍기까지 앞으로 고작 네 단계.
이 형벌 같은 구음절맥을 벗어나기까지 딱 반년.
‘할 수…… 있겠지?’
문득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런 내 위태로움을 알아차린 것일까. 백무현이 탁자 아래에서 몰래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뒤이어 왕야께서도 다정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만약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해 주게.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다 줄 테니.”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막 엄청 비싼 약재를 부르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어떻게 하긴. 구해다 줘야지. 아무렴 내가 문파의 신물을 찾아 준 은인에게 그 정도도 못 하겠는가?”
왕야께서는 혹시라도 자신이 선물한 약재로 무사히 병증을 고칠 수 있게 되거든, 꼭 왕부에 놀러 와 달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딸과 아들이 강호의 협객들을 동경하는데, 그들에게 남궁가의 검술을 견식 시켜 달라고 말이다.
그러다 현의문이 아니라 남궁세가의 문외제자가 되고 싶어 하더라도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니, 잠깐 발끈하기도 하셨지만.
“그래도 의외로 순순히 우릴 보내 주셨네.”
“그러게. 귀한 약재도 한 보따리 챙겨 주시고.”
응? 약재를 챙겨 주셨다고?
왕야의 장원을 나오며 백무현이 하는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그가 내 쪽으로 몸을 슬쩍 붙여 오며 작게 귓속말을 해 왔다.
“동충하초와 인삼을 한 보따리나 주시던데. 혹시 모른다며 자소단도 하나 끼워 주셨어.”
……네?
아니, 동충하초나 인삼이야 황족이니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치자.
자소단도 하나 끼워 줘?
아니, 자소단이 무슨 동네 시장 바닥에서 파는 환약이냐고! 덤으로 하나 얹어 주게!
황당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자니, 백무현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한 번 쿡 찌르듯 가리켰다.
‘……그분께 바쳐진 영단이구나.’
하기야 화산파도 일단은 국가가 공인한 도관이니까 말이지.
제국이 아무리 중앙집권체제가 미흡한 나라라고 해도 한 무더기의 인간들이 세금을 걷을 수도 없는 ‘기부금’을 받으며 무력 집단을 양성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질 않나.
당연한 얘기지만 도관이 검문이나 도문을 겸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마도 귀하디귀한 약재들과 도사님들의 ‘신실한’ 연단법으로 만들어 낸 영단을 바치는 것일 테지.
어전에 국가 공인 도관들에서 보내져 온 영단들이 굴러다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우를 지극히 아끼는 황제 폐하의 성정에 그중 한둘을 왕야에게 양보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고.
‘괜히 로열 블러드가 아니라니까. 화산파 최고의 영단도 황족 앞에선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잖아.’
어쨌거나 내겐 더없는 행운. 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백무현이 메고 있던 보따리를 향해 가볍게 턱짓을 했다.
“좋아 그럼. 잉어 먼저 삶아 먹고 그다음엔 자소단으로 확실하게 굳히기 들어가는 거야.”
화기를 잔뜩 품은 만년화리의 내단은 귀한 약재기도 하지만 다소 독할지도 모를 노릇.
화려해 보이는 초식과 달리 조화와 균형을 문파의 근본으로 삼은 화산파의 자소단이라면 불안정해진 나의 내기를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그려 나가는 희망 회로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한껏 부푼 마음으로 강동지역을 가로지르기도 닷새쯤.
우리는 마침내 만년화리의 서식지로 추정되는 호수가 있다는 광주의 총화에 도착했다.
 
* * *
 
“만년화리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많이 커다랄까?”
“글쎄.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평범한 잉어도 10년을 키우면 서너 척까지 자란다는데, 녀석은 무려 만 년이나 살았을 테니까.”
서너 척이면 90에서 120센티미터던가?
그 정도면 내 어깨 정도까지 오는 길이니,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하네.
영물이 아닌 물고기도 고작 10년 만에 그렇게 자란다니. 자연이란 참으로 신비하지 싶었다.
하지만 말입니다, 백무현 씨.
“……왜 날 위아래로 훑어보는 거야?”
날카로운 나의 질문에 백무현이 눈썹 한쪽을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은근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 뭔데 진짜!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속으로 뜨끔한 표정을 짓는 건데?
그렇지 않아도 또래보다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던 나는 뺨을 복어처럼 부풀리며 새침하게 말했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나는 아직 한창 성장 중이야.”
“응.”
“약선 할아버지가 월족은 수명이 길어서 성장도 조금 느리다고 하셨다고.”
“그래.”
백무현이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빙긋 웃었다.
차라리 장난이라도 걸고 놀리기라도 했으면 대판 쏘아 주었을 텐데.
이렇게 순순히 인정하니까 할 말이 더 없잖아. 열받아.
입술을 댓 발 내밀고 신경질적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자니, 등 뒤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또 발끈해서 홱 고개를 돌리자, 그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네 말대로 너는 아직 성장 중이고, 키가 완전히 자라기까진 몇 년이나 남았잖아.”
“네가 놀리지만 않아도 조급해질 일은 없거든?”
“놀릴 생각은 없었어. 정말이야. 그냥… 네가 귀여워서 웃은 것뿐이야.”
으, 이 요망한 남자 같으니!
제가 잘생긴 줄은 알아서 얼굴부터 들이미는 것 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