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쇼호스트 02권
돌아온 쇼호스트 02권
돌아온 쇼호스트
02
정노자
돌아온 쇼호스트 02권
차례
Chapter 01. 제대 선물
Chapter 02. 뻐꾸기 둥지 위로 날다
Chapter 03. 매진도장 찍겠습니다
Chapter 04. 맞다, 내가 쇼호스트였지!
Chapter 05.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Chapter 06. 임신인가?
Chapter 07. S.O.S.
Chapter 08. 매진의 황태자
Chapter 09. 이제 재핑이다
Chapter 10. 월드컵과 썸띵스페셜
Chapter 11. 뻐꾸기시계와 수입차
Chapter 12. 소수의 법칙
Chapter 13. 양문형 냉장고의 매직
Chapter 14. 가장 무서운 적은 무능한 리더
Chapter 15. 위기의 순간
Chapter 16. 배고플 때 조기를 팔아라
Chapter 17. 계약 종료
Chapter 18. 독립
Chapter 19. 바버리 플래그십
Chapter 20. 개국 준비
Chapter 21. 홈쇼핑으로 리모델링하세요
Chapter 22. 음주측정기의 비극
Chapter 23. 이제 침구도 홈쇼핑입니다
Chapter 24. 다시 네 친구
Chapter 25. 얼음 요새를 공략하는 법
돌아온 쇼호스트 02권
Chapter 01. 제대 선물
당시 군대 안에서는 휴대폰 소지가 불가능했으므로, 외부인과 연락할 때는 공중전화로 연락하는 길밖에 없었다.
한솔PCS가 ‘원샷 018’ 서비스를 개통한 것이 1997년 9월 22일이었다.
‘드디어 모바일이 등장하는구나.’
철훈은 군대 가기 전, PCS폰을 계약하며 생각했다.
철훈은 그 PCS폰을 나현에게 선물했다.
지금은 소위 ‘냉장고폰’으로 불릴 정도로 고대의 유물이 돼 버린 폰이지만, 나현은 좋아했다.
“이거 어디든 꼭 가지고 다녀야 해. 내가 언제 전화할지 모르니까.”
철훈이 나현에게 말했다.
“그리고 군대 가는 날 나오지 마.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 싫으니까.”
“쫌!”
철훈의 아재 개그에 나현의 팔에 오소소 닭살이 올라와 있었다.
나현에게 맞은 등짝이 얼얼했다.
큭, 아프냐? 아프다.
그러나 개그 본능을 어쩌리.
1999년 6월 30일 새벽 0시 30분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씨랜드 화재 사건은 깊이 잠들어 있던 유치원생 19명, 인솔 교사와 강사 4명을 죽게 만든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씨랜드는 사설 수련시설이었는데 컨테이너부터 저가 제품을 사용했고, 짓는데 고작 15일밖에 안 걸린 날림 건물이었다.
컨테이너를 인화성이 강한 목재나 샌드위치 패널 등으로 감싼 것도 사고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
화재경보기는 작동을 멈췄고 소화기도 텅텅 비어 있어서 초동 진압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탈출한 사람들의 전언이었다.
“왜, 왜요? 왜 불이 난 건데요?”
철훈이 물었을 때, 나현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전기가 나갔다는 걸로 보아 누전이 있었던 것 같다고.
그러나 씨랜드의 원인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어디야?”
철훈은 1999년 6월 29일 일과가 끝나고 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언니 도와주러 화성에 왔어.”
“뭐?”
철훈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왜 그렇게 놀래? 선배 언니네 유치원 아이들이 수련회 가는 데 일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왔어.”
“너, 화성이라고 했어?”
알바하지 말라니깐!
알바는 유로파에서만 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철훈은 머리끝까지 피가 솟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나현, 잘 들어.”
철훈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왜 그래, 무섭게?”
“일단 오늘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얘기해 봐.”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얘기해 줘야 해.”
“알았어.”
나현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철훈은 이렇게 말했다.
“나현아, 오늘 정말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철훈은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갔고, 수화기 저편의 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제대 날, 철훈은 발걸음도 가볍게 부대를 벗어났다.
바깥 햇살이 눈부셨다.
군대 밖은 햇살도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클락션을 울렸다.
소리 난 곳을 보니 익숙한 트럭이 서 있었다.
“어이, 윤 병장!”
기범이 트럭을 끌고 마중 온 것이었다.
“윤철훈 병장, 아니 이제 민간인인가? 전역 축하해.”
기범은 18방위를 받아 이미 전역한 참이었다.
“어허, 상병이 병장한테 반말을! 다나까 모르나, 다나까?”
군대도 늦게 가고서 벌써 제대를 하다니, 쩝!
“어쩌냐, 내가 4대 독자인데.”
좋겠다. 4대 독자 아닌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자, 누가 왔는지 봐.”
기범이 턱으로 가리킨 곳에 보니, 나현이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었다.
“제대 축하해.”
철훈은 나현이 안겨준 꽃다발을 받고 얼떨떨해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웬 깜짝 이벤트?”
“보고 싶어서 달려왔지!”
기범은 닭살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고마워. 갈까?”
철훈이 웃으며 말했다.
철훈은 서울로 돌아오면서 나현으로부터 ‘그날’의 일을 소상히 들을 수 있었다.
나현은 철훈이 얘기한 대로 전기가 자꾸 깜박이자, 유치원 원장인 선배 언니에게 먼저 이 일에 대해 상의했다.
선배 언니도 어젯밤부터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지라 불안했던 참이었다고 한다.
선배 언니인 원장은 수련원에 온 타 학교와 타 유치원 인솔자들에게 이런 맥락에서 전원을 차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고 한다.
다른 학교 인솔자들도 곧 취침 시간인지라 모두 동의했다.
인솔자들이 두꺼비집을 찾아 전원을 내렸고, 나현과 선배 언니도 그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날 아이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이튿날 수련원에 입소했던 509명과 그 인솔자들이 씨랜드 측에 불만을 접수했다.
이후 긴급 점검이 이루어졌다.
전기 기술자가 살펴본 결과, 전기선이 노후화되고 관리가 부실하여 누전된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전기 기술자의 말에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유난 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 선생님과 학부모는 나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그런데….”
나현이 말했다.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날 왜 그렇게 놀랐던 거야?”
사건이 안 일어났으니 다행이지만, 그걸 설명해야 하는 철훈은 난감했다.
철훈은 이전에 진명이 순대국집에서 성수대교가 무너질 걸 알았느냐고 물었던 장면이 데자뷰됨을 느꼈다.
그때도 결심했지만,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얹어줄 필요는 없었다.
물끈 솟아오르던 그 큰 솥의 하얀 김처럼 사람들의 시야를 가로막고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그때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고 하길래 누전이 아닌가 했지. 고등학교 3년 내내 내가 기술가정은 100점이었거든. 내 전문이 안전기인 거 알지? 얘기 좀 해 봐.”
철훈이 백미러로 기범을 보고 말했다.
무슨 중요한 얘기라도 나올 줄 알고 귀를 쫑긋하고 있던 기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헐. 맞아요, 나현 씨. 얘가 기술가정은 3년 내리 100점에 1.1등급이었어요. 3년 내내 책상에 앉아서 기술가정책만 봤거든요. 아마 간단한 전등 설치는 눈감고도 할 걸요.”
철훈은 기범의 도움으로 나현의 질문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본부장니임.”
유로파에 입성하자 제일 먼저 달려 나온 사람은 정아였다.
“본부장님 안 계신 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한마디로 너무 재미없었어요.”
“허허, 제가 정아 씨에게 일만 시켰나 봅니다.”
명석도 껄껄 웃었다.
“회사에 갑작스럽게 활기가 넘치네요. 윤 본부장님, 제대 축하해요.”
세라도 말했다.
유로파로 돌아온 철훈을 모두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뜨거운 환영 감사합니다.”
철훈은 씩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심심치 않으실 거예요. 이제부터 달려볼 작정이니까요.”
1999년은 유례없는 실업난과 경제난을 뚫고 나오느라 힘들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