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표국-死別後愛 05권
자운표국-死別後愛 05권
자운표국-死別後愛
05
자운
자운표국-死別後愛 05권
차례
제21장.
제22장.
제23장.
제24장.
제25장.
자운표국-死別後愛 05권
제21장.
“할아버지, 정말 그래도 괜찮으신 거예요?”
오하란은 등에 날개를 다는 것처럼 오태산의 도움이 기쁘고 고마웠지만 오랫동안 터전으로 삼던 곳을 떠나도 괜찮은 건가 해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러나 오태산은 오히려 기대된다는 얼굴이었다.
“아란아, 이 할애비가 진작 신경 써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이 할애비에게 아란이 너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겠느냐? 아란이 너의 신랑감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갖추는 게 좋겠지. 지금도 석 공자는 아주 훌륭하지만 나는 거기에 날개를 몇 개건 달아줄 것이다. 알겠느냐? 감히 건방진 놈들이 내 귀한 손주 사위에게 허튼소리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 알겠느냐?”
오태산의 표정은 왠지 이상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무척이나 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하란은 오태산이 석지환을 손주 사위라고 말한 것에는 정작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를 보았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누가 사형에 대해 헛소리를 한 거예요? 누군데요? 누가 그랬어요? 어떤 건방진 놈들이 허튼소리를 한 건데요?”
오태산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했다가 손녀가 부끄러워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생각과 다르게 일이 돌아갔다.
“아니다. 감히 내 앞에서 누가 그런 소리를 하겠느냐?”
“할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그런 소리를 한 거군요? 그런데 지나가다가 할아버지가 그 말을 들으신 거고요? 누구예요? 아니, 뭐. 여쭤볼 필요도 없이 서생들이겠지요. 스스로 시험도 합격을 못 해서 서원이나 다니는 작자들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오태산의 기분을 상하게 할만한 말이었다. 오태산은 한성서원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는 손녀가 하는 말이라서 그런지 오태산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고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그래, 아란아. 그리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네 사람을 흉보면 가만있지 말고 그렇게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네가 석 공자를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제가 아주 잘할 자신이 있어요. 그런데 누가 그런 건지만 알려주세요.”
“내가 알려주면 뭘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놈들을 찾아가서 묵사발을 만들어버리려고 그러는 것이냐?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 서원에 오려 하지 않을 텐데 이 할애비는 뭘 먹고 살라고 그러는 것이냐?”
오태산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그러는 동안 석지환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득 자기가 죽음을 겪고 이곳에서 다시 깨어났던 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석지환은 다시는 오하란과 혼인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단순히 그렇게 마음먹은 것을 떠나서,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고 별렀다.
그러나 지금의 오하란은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전 생의 오하란을 비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오하란이 그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몸을 던져주었던 것이 수도 없었다.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 적은 거의 없고 매번 석지환이 다시 나서서 그 싸움을 정리해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석지환은 오하란이 매번 진심으로 나섰던 것임을 알고 있었다.
오태산은 자기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 때문에 석지환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를 힐끔 보았다.
그러나 석지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태산은 석지환도 역시 좋아하는 거라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석지환에게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들었던 오태산이었기에 그 표정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석 공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하는 평가는 신경 쓸 것도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니 말이다.”
지금까지 그 일로 화를 낸 사람은 자신인 것 같았지만 오태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딴소리를 했다.
“자, 그러면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한다? 우선은 내가 감숙으로 떠날 거라는 말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도 별로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질리게 봐 왔으니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볼 때도 되었지.”
그의 얼굴을 보면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기대가 되는 듯했다.
“자, 자. 어서들 돌아가봐.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 아주 많을 것 같으니.”
두 사람은 결국 그에게 떠밀리듯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 * *
사이연은 자기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이연은 건물을 하나 따로 배정받아서 지내오고 있었는데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며칠간 각에서 일하는 자들 빼고는 사람 구경을 하지 못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 들 법도 했지만 사이연은 그들을 경계했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성큼성큼 들어온 그들이 사이연에게 말했다.
“장로님은 이제 이 건물을 비워주셔야겠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여기에서 지냈는데 이제 와서 건물을 비워달라니. 그게 무슨 소리더냐? 여기를 비우고 날더러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
사이연이 상처 입은 맹수처럼 사납게 말했다.
가만히 있다가 따귀를 맞은 것처럼 자존심이 상했다.
사자문 내에서 자신의 지위가 계속 추락하고 세력이 사라진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바였다.
“거기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건물을 비워달라고 하면서 새로 갈 곳을 정해주지도 않았다는 게 아닌가.
사이연은 자기가 더 오래 이야기 나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며 듣지 못한 척했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부터 그리될 거라고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각자 사이연의 방에 있던 집기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방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집기를 가지고 나갔다. 그중에는 사이연이 오하란의 부친에게 받은 것도 많았고 그런 것들은 하나같이 진귀한 것들이었다.
사이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누가 감히 내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냐!”
그러면서 사이연이 그들을 막아서려 했지만 그들은 가볍게 사이연을 밀쳐냈다.
만약 싸우고 싶다면 자기들도 거절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사이연은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건가 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안 된다! 이것은 안 된다!”
사이연이 말하고 자기가 정말 아끼는 것들이 들어있는 서랍장을 붙들었다.
그러나 사자문의 무인들은 하찮다는 얼굴을 하고 사이연을 힐끔 보았을 뿐이었다.
사이연은 그들에게 대법을 시행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동안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대법을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각자가 혼자 있을 때를 기다려야 했다.
사이연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비척거리다가 자신의 옷을 챙겼다. 이러다가 옷도 전부 가지고 나가버리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뭣들 하느냐! 당장 들어와서 나를 돕지 않고!”
사이연은 밖에 있는 수하들을 불렀지만 그 말을 듣고 들어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그자들이 죽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을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물건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일단 자기가 챙기면 그것까지 뺏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사이연은 꼴사나운 짓을 벌였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물건을 찾아 그것을 욕심 사납게 꼭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사자문의 무인들은 그 자리에 사이연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누구도 사이연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이연의 옆으로 지나다니면서 집기를 빼버렸다.
호화롭고 사치스럽던 방이 휑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들이 떠나고 사이연은 자신의 꼴을 자각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에 옷가지와 보석과 전표를 끌어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부끄럽게 비참해보일 수가 없었다.
사이연은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우선 보석과 전표만 잘 챙긴 후에 설강을 찾아갔다.
설강은 사이연의 보살핌으로 이제 완전히 몸을 회복한 후였다.
그런 후에 그가 사이연을 찾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몸이 나은 후에는 사이연을 안으로 들이지도 않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사이연은 다시 울컥해졌다.
‘감히 나에게! 내가 사자문에 어찌했는데! 사자문이 이리된 게 누구 덕분인데?’
사이연은 역지사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자기에게 배신당한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사이연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장 설강을 찾아갔다.
그러나 설강을 만나는 일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설강의 처소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사이연의 처소에 들어온 이들과 다를 것 없는 표정과 태도를 보였다. 아예 사이연이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굴었던 것이다.
사이연은 화가 나서 설강의 집무실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그 안으로 들어갈 기세였지만 그 앞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머리를 올려 관으로 정리하고 도복을 입고 있었다.
운현.
무당의 일대제자이자 오랫동안 사자문을 위해 일해왔던 자였다.
중년 도인에게서는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풍겨났다.
사이연은 그자를 보면서 그도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과 입신양명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등에 날붙이를 찔러넣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사람.
수많은 사람의 피와 살점을 밟고 이 자리에 이른 사람.
살면서 그런 자를 마주하는 것은 절대로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오직 저만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데 저와 똑같은 포식자를 마주한 것이다.
사이연은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됐지만 겁먹은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운현은 그런 사이연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도우께서는 여기에 어쩐 일이십니까?”
운현의 말을 듣고 사이연은 발끈했다.
“어디서 함부로 말을 거는 것이냐! 누가 도우더냐! 나는 사자문의 장로니라!”
“아아…. 사자문에서 축출되는 장로가 있다더니….”
그러고는 운현이 사이연을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도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더럽고 탐욕스러운 시선이었다.
그가 지나가던 무인 하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장로님께 가서 내가 이 여인을 가져도 되는지 여쭈어보아라.”
사이연은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해서 치가 떨렸다.
* * *
평소의 성격대로 당장 손이 움직였지만 언제 빼든 것인지 모를 검이 사이연의 목에 닿았다.
단순히 겁만 주고 끝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 실제로 그 날카로운 쇠붙이가 목을 파고들었다.
사이연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이자는 자기보다 더한 독종이었다. 서로가 비슷한 사람들이었기에 그것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었다.
무인이 운현의 말을 듣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뒤에서 설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을 그따위로 하고 와서 여인을 탐하다니. 네놈이 아니라면 그렇게 뻔뻔한 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다.”
말을 하는 설강은 멈춰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 가는 길인지 그는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키면 그리하도록 하여라. 나와는 상관이 없으니 내 뜻을 물어볼 필요는 없다.”
그러고는 가던 길을 아주 가버렸다.
사이연은 설강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 손은 닿지도 않았다. 그러리라는 것을 알고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가버린 것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사이연의 머릿속에 그것들이 떠올랐다.
오래전 자신의 마음이 떠난 것을 알고 부군이 자신에게 보내던 눈빛이며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어!’
사이연은 그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그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 소름 끼치게 싫었을 뿐이었다.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네놈들! 내 덕분에 사자문을 이렇게 키운 것이면서 이제 모른 척하겠다는 것이냐! 그러고도 네놈들이 사람이란 말이냐!”
사이연이 어떤 짓을 하고 장로의 자리를 차지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 소리가 퍽 우스웠을 것이다.
“앙칼진 것은 좋은데 너무 시끄럽군.”
운현이 말하며 사이연의 손목을 잡으려 했을 때 사이연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여 운현의 마혈을 짚었다.
그것은 운현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실수였다.
사이연 자신도 자기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놀랐지만 다음에도 이와 같은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주위를 확인했다.
오가던 사람들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사이연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사이연을 보는 사람은 없었고 각자가 자기들이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사이연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공력을 실어 운현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려진 명령은 한 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