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표국-死別後愛 02권
자운표국-死別後愛 02권
자운표국-死別後愛
02
자운
자운표국-死別後愛 02권
차례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자운표국-死別後愛 02권
제6장.
“몇 번 놀라다가 말 것인지 언제까지 놀라려고 그래?”
피식 웃으며 석지환이 말했다.
“아니. 그래도 대단하잖아요.”
오하란은 기분이 좋은 듯 계속 웃었다.
“사매는 걱정되지도 않아? 아까 그자가 한 얘기 전부 들었잖아? 보표를 잃어도 걱정이 안 돼? 연호필이라는 놈이 무슨 이유로 그런 간계를 꾸민 건지 모르는 거야?”
오하란에게 연호필이 너를 노리고 그러는 거라고 말을 해 줘야 하는 건가 하다가 결국 석지환이 마음을 정했다. 사실을 알게 되면 불쾌하고 무서울 수는 있겠지만 알 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석지환이 정확히 경고를 하는 동안 오하란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끈적한 뱀이 몸을 감는 것처럼 불쾌하고 화가 났다.
“가만 놔두지 않으실 거죠?”
석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좋은 것 같기도 해요.”
“뭐가?”
“자운표국을 무시하니까 이런 일도 함부로 꾸밀 수 있는 거잖아요. 지금의 자운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커나가는 건 어렵고 시간이 걸리니까 이럴 때는 제물이 있는 게 좋잖아요? 큰 제물일수록 좋을 텐데 화민표국이라면 제격이죠.”
석지환은 멍한 얼굴로 오하란을 보았다. 이런 상황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하란뿐일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오하란을 제대로 알았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했다.
“돌아가지.”
“네, 사형.”
자운표국으로 가면서 석지환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꾸 힐끔거리는 것을 보며 오하란은 그가 자기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사자문에 대한 것이리라.
석지환은 자기가 원래의 오하란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런 표정을 지었다.
말하지 않으면 혼자서 상상할 테고, 그러다 보면 무슨 오해를 하게 될지 몰라 오하란은 일단 말을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뭐라도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올 때 뭐라고 하면 좋을지.
“할아버지를 뵈러 많은 사람들이 오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을 소개받고 인사해요.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니까 저는 인사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혼자 노는 경우가 많은데 경내를 오가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가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들은 것 같아요. 자세하지는 않아요. 오래돼서 기억이 희미하거든요.”
석지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오하란이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어떻게 알게 됐는지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가끔 그렇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맞는 건지 확실하지 않아서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기도 해요. 틀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석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좀 돼. 함께 검증해나가면 되니 서로 편하게 얘기하도록 하자.”
“네, 사형.”
일단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전보다 훨씬 누그러진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오하란은 마음을 놓았다.
* * *
자운표국으로 돌아간 석지환은 곧장 부친과 사부, 강 총관을 모시고, 자객을 만난 일을 보고했다.
그들은 연호필이 그렇게까지 간악하고 집요하게 일을 꾸몄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특히나 국주는 석지환을 걱정하며 이제 어찌 해야 한다는 거냐고 물었다.
그나마 패도선과 강 총관이 조금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나가려 애쓰고 있었다.
“한성서원의 학장님께 말씀드리고 함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국주님?”
강 총관의 말에 국주가 석지환을 보았다. 한성서원에서 돌아오는 길이니 거기에 대해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눴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석지환은 학장도 연호필은 어려운 것 같더라고 솔직하게 말했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시름이 깊어졌다.
“그러면 이 일을 어찌 하면 좋다는 말이냐? 화민표국이 작정하고 우리를 핍박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화민표국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게다가 연호필이라는 작자가 나서서 성주님까지 압박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가장 믿었던 구석은 오태산이 성주에게 힘을 써줄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그 인맥을 화민표국에서는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 사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게 되는 것이다.
오고 가는 이야기를 듣던 석지환이 입을 열었다.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면 어떨까요?”
“그게 무슨 말이냐?”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남의 집에 불을 놓으려고 기웃거릴 정신이 없겠지요.”
석지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기만 못 알아들은 건가 했던 것이다.
“화민표국의 총표두가 연호필의 설득에 넘어간 것은 지금 화민표국이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그들은 흔들리고 크게 타격을 받게 될 텐데 그것을 피하려고 자운표국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지요. 일단 그것을 피하기만 하면 화민표국은 원래대로 넘어갈 겁니다.”
“그렇기는 하다만.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
패도선이 묻자 석지환이 그를 보았다.
“그자들이 저를 가두기 전에 제가 이곳을 떠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갇힐 필요도 없고 그 안에서 죽을 염려도 없지요. 제가 급한 임무로 표행을 떠난 것으로 하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화민표국에 들어가서 그자들과 연호필의 관계를 밝히는 겁니다. 그 와중에 화민표국에 직접 타격을 안길 방법도 찾고요. 장부 같은 것을 훔치거나 불태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국주는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집으로 물이 밀려오는 것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아들이 그 물길을 돌려놓으려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겠느냐?”
패도선의 말에 석지환이 해야 하는 일이라 답하고 오하란을 부탁했다.
“그것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패도선이 그렇게 말을 하면 석지환은 정말 걱정하지 않았다. 사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바뀌기 전에 빨리 떠나는 것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연호필과 화민표국도 부지런히 움직일 테니요.”
석지환의 말에 국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강 총관을 바라보았다.
“같이 한번 애써보지.”
“예, 국주님.”
두 사람의 얼굴이 의지로 빛났다.
* * *
석지환이 표행을 떠났다는 말을 들은 북온창은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저도 모르게 내력이 실리는 바람에 탁자에 금이 갔다.
다행히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북온창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 그에게 북조한이 들어왔다.
북조한은 요즘 꽤나 불안한 행보를 하고 있었다.
화민표국의 권력을 잡기 위해 숙부를 배제하고 싶으나 숙부 없이 혼자서 사람들을 규합하고 일처리를 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매 순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북온창은 조카가 조바심 내는 것이 안타까웠고, 자기가 전적으로 도와줄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복조한은 여전히 그를 믿지 못하는 듯했다.
지금 찾아온 것도 뭔가 얻어들을 것이 있을까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북온창은 자기가 연호필과 나눈 이야기를 북조한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일이 잘못될 경우 북조한은 그것을 모르는 것으로 하고 끌어들이지 않으려 함이었는데 만약 북조한이 알게 되면 어떤 오해를 할지 몰랐다.
“숙부, 언제까지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숙부는 아버님이 오욕을 뒤집어쓰고 돌아가신 게 안타깝지도 않습니까?”
“너는 표국의 업무를 정상화하는 것에 신경 쓰도록 하거라. 다른 일들은 이 숙부가 해결하마.”
“해결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실제로 그리 하시라는 말입니다. 말로 하는 걸 누가 못한답니까?”
“네 마음도 조급하겠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일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우선 차근차근 풀어나가자.”
북조한이 불만스럽게 나가자 북온창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석지환이 낀 표행단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조사해서 알아오라고 시켰다.
그들은 절대 그 표행단을 발견하지 못할 터였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북온창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 일어섰다.
표사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확인해보기 위해 우선 연무장에 가볼 생각이었다.
그가 갔을 때 연무장에서는 훈련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있는 것이 한눈에 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우렁찬 기합 소리가 나와야 할 때도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동작에도 힘이 실리지 않았다.
모두 건성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있는 듯했다.
‘빨리 석지환을 잡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퍼져나가는 소문이 전부 거짓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믿게 해야 한다.’
조바심 내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하던 북온창이었지만 연무장에서 훈련하는 표사들을 보고 그 역시 평정을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뭔가 해야 한다. 이렇게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하며 집무실에 돌아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갑자기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져서 희한하다는 생각에 북온창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기가 거기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날 찾았을 것 같은데.”
천장에서 고개만 내민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터무니없이 젊은 남자였다.
북온창은 석지환을 그렇게나 애타게 찾았으면서도 정작 석지환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석지환이 젊고 대단히 준수하게 생겼다는 말은 들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석지환 말고는 없을 듯했다.
“네놈이 석지환이냐?”
북온창이 놀라움을 애써 감추고 물었다.
“그래야 하지 않겠나? 당신이 찾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나? 다른 사람도 잡아다가 옥에서 죽게 할 생각이었나? 연호필이랑 그사이에 더 많은 계획을 세운 거야? 그렇게 자주 만나다가 정분이라도 나는 건 아니고?”
젊은 놈의 입심이 대단했다.
북온창은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그 구도에 화가 났다.
“할 말이 있거든 내려와서 하거라!”
“왜? 내려다보고 말하니까 좋은데?”
북온창은 언제까지 석지환이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구는지 보겠다는 듯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는 사람들을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웬만하면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석지환 하나를 상대하는 데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지 않고 자기 혼자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만약 그렇기만 하다면 여러 사람과 비밀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 * *
충직한 수하라고 해도 상황이 급변하면 주인의 비밀을 무기로 삼아서 거래를 하려 들 수도 있었다.
은밀히 관에 가서 고변하면 지금의 상황에서 화민표국은 아주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 생각에 북온창은 최대한 은밀히 끝내려 하며 대단한 무공도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 시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무장에 있거나 밖에서 각자의 일을 보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자기가 있는 건물에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최대한 조심하려 하는 거였다.
석지환은 결국 별수 없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얌전히 내려온 것은 아니고 북온창을 향해 암기를 날렸다.
북온창은 여기까지 숨어든 놈이 아무 준비도 없이 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기에 대비했지만 아무래도 대비가 충분치 않았던 것 같았다.
수십 개의 암기가 북온창의 위로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그것을 쳐내기 위해 검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북온창은 자기가 석지환을 과소평가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 생각은 처음부터 했어야 옳았다. 냉혈검을 죽인 자가 석지환이라 하지 않았나.
그 말을 듣고도 그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인정하지 못했던 듯했다. 너무나 믿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지만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사실, 감당하기 너무 위험한 진실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자운표국의 평범한 표사고 당신은 화민표국의 총표두지. 우리 표국의 명성을 추락시키겠다는 이유로 우리가 지키는 고객을 납치해서 연호필 같은 추잡한 늙은이에게 내주기로 한 죄를 가볍다고 하지는 못하겠지?”
석지환의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고 그래서 더 소름 끼치게 들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북온창은 석지환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연호필과 그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감을 펼쳐서 다른 이가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했기에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들을 전부 다 알 수 있다는 것인가.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