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성좌를 키운다 06권
회귀자는 성좌를 키운다 06권
회귀자는 성좌를 키운다
06
별거느릴
회귀자는 성좌를 키운다 06권
차례
Chapter 01. 다시 아르데니아
Chapter 02. 유적 공략
Chapter 03. 원점으로
Chapter 04. 광혈공 구출
Chapter 05. 두 번째 이름
Chapter 06. 혼■
Chapter 07. 태고의 수행
Chapter 08. 사도의 힘
Chapter 09. 이계로
Chapter 10. 약속
Chapter 11. 진실
Chapter 12. 박진철
Chapter 13. 초위 각성자
Chapter 14. 박성철
Chapter 15. 해동파
Chapter 16. 네 개의 신물
Chapter 17. 기린승천문
Chapter 18. 펜리르 vs 라이칸
Chapter 19. 봉황오음계
Chapter 20. 신역
Chapter 21. 홍예칠성단
Chapter 22. 신역 수집
Chapter 23. 마야
Chapter 24. 성좌 강림
회귀자는 성좌를 키운다 06권
Chapter 01. 다시 아르데니아
슥슥―
사상의 지평선 안에 봉인된 블룬델 앞에 홀로 남은 다크 나이트가 얼굴을 몇 번 쓰다듬자,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이중 신분이 사르르 벗겨진다.
다시 어릿광대의 모습을 되찾은 러프. 그는 시간이 멈춘 듯 미동조차 없는 블룬델을 바라보았다.
“후우, 아르탈리아 대륙의 재앙을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재앙은 아르펠기아 대륙의 광혈공 뿐이군요.”
문제는 광혈공이 있는 아르펠기아로 곧바로 이어지는 요정의 길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요정의 길을 만들려면 우선 도착할 시대에 등대가 되어줄 영령이 존재해야 한다.
한데 아르펠기아의 영령 중 우탕카와 헨리에타는 이미 역사개변이 종료되어 합동 역사개변에서 빠진 상황이니.
“…아르펠기아로 돌아가려면, 원래 제가 있던 시간대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단 말이죠.”
이미 러프가 떠나왔다고는 하나 원래 그의 기록이었던 만큼, 도착지로 설정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러프와 그의 시대가 엮인 인과가 곧 길잡이가 되어줄 테니까.
곤란한 건 그 시대가 지금 있는 시간보다 과거라는 점이다.
전륜성좌의 기록이나 천살성좌의 기록처럼 예외가 아닌 이상 시간의 역행은 불가능한 법.
다만 이번 합동 역사개변에서 가장 과거 시점이던 우탕카의 기록이 빠진 덕분에 러프의 기록이 가장 과거의 시점이 됐으니.
우탕카의 시대로 넘어갔을 때처럼 리안이 있는 북극성좌의 기록을 경유하여 끝에서 시작을 잇는 식으로 요정의 길을 만들면 러프도 원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여 이한성은 리안의 기록으로 통하는 요정의 길을 만들었다.
한스의 지옥로를 끌어들인 것처럼 블룬델을 봉인한 사상의 지평선까지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요정의 길을 말이다.
‘광혈공을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준신급 전력이 필요할 테니까. 일단 블룬델을 붙여주는 게 좋겠지?’
봉인을 푸는 건 리안의 마법을 통하면 어떻게든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주와아아앙!
그렇게 봉인된 블룬델과 함께 가장 미래의 시점에 존재하는 리안의 역사로 향하는 러프.
저벅.
한데 요정의 길과 블룬델의 사상의 지평선이 맞닿은 순간이었다.
슈와아악―
안정되어 있던 봉인이 흔들리며 무상검마갑을 감싼 사상의 지평선이 압축되기 시작했다.
갑옷에서 몸 안으로.
몸 안에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내면의 소우주로!
두근!
직후, 세찬 심장 박동과 함께.
[조건을 충족하여 고유스킬 <가상 축퇴로(縮退爐)>가 개화합니다.]
블랙홀을 연료로 삼는 노심(爐心)이 블룬델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4성의 희귀스킬 슬롯 두 개를 모두 채우며 생겨난 고유스킬.
가상 축퇴로.
쿠구구구구!
내면의 별빛이 입자화된 영자가 가상 축퇴로를 거치며 압축을 거듭한 끝에 축퇴물질로.
축퇴 상태의 영자에서 뿜어지는 막대한 별빛이 솟구치고 있었다.
마치 팔요적멸이 떠오르는 별빛의 출력!
“…으음.”
그 강렬한 별빛에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블룬델이 눈을 뜬다.
“여기는…?”
“시공간의 바깥을 지나는 요정의 길입니다.”
“내가 왜 여기에… 아니, 잠시만.”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하던 블룬델은 이내 무상검마갑에서 흘러드는 기억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에게 무상검마갑을 보내 역사를 바꾸려는 존재가 다시금 그의 도움을 빌리려 하고 있으며.
지금 이 길의 끝에서 무상검마갑이 패배했던 아수라와 비슷한 존재와 싸우게 되리란 것을 말이다.
평범한 약초꾼이던 시절의 그였다면 절대 이런 위험한 일에 끼어들지 않았겠지만.
마을에서 떠나고 고독 속에서 지냈던 블룬델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을 느꼈다.
“그보다 아수라는 어떻게 했죠? 그놈이 절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을 텐데. 이 요정의 길이란 능력으로 절 데리고 도망친 겁니까?”
“무언가 오해한 모양인데. 아수라라면 다른 조력자의 도움으로 이미 처치했답니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상대를 이미 다른 누군가가 처리했다는 사실에 블룬델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앞서 한 번 실패한 자신이 이한성의 눈 밖에 나지 않았을까, 걱정된 까닭이다.
“이미 처치했다고요….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이번에도 지면 어떻게 하죠? 아, 차라리 아수라를 처치했다는 조력자에게 대신 도움을 구하는 건….”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존감이 땅바닥을 파고들어가는 블룬델의 움츠린 어깨를 러프가 세게 붙잡았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연히 도움이 되고 말고요. 아수라를 쓰러트릴 수 있던 것도 당신이 상대의 능력을 밝혀낸 덕분인걸요.”
“…정말입니까?”
“그럼요. 자신을 믿으세요. 지금 당신은 초월 신기의 주인이잖아요? 정 당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초월 신기를 당신에게 보낸 그분을 믿으세요.”
“알겠습니다.”
그제야 조금 눈빛이 살아난 블룬델을 보며 러프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요정의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저벅저벅.
철컥철컥.
두 사람의 걸음 소리가 겹쳐 울리는 가운데.
출렁―!
갑자기 요정의 길이 요동치더니, 이전 시간대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두 사람의 눈앞에 범람했다.
멸룡제 토벌 이후, 뒤처리를 맡았던 알터가 마침내 4성 승격을 완성하면서 그 여파가 아르데니아로 향하는 요정의 길에도 밀려온 것이었다.
파라라라―!
멸룡제 사후, 혼란에 빠진 아르데니아 제국의 모습이 여러 장면으로 드러난다.
멸룡제가 수호룡의 맹약을 이용하여 드래곤을 몰살했던 미래를 관측한 드래곤들이 맹약을 파기하고 제국을 떠나는 장면.
황위를 두고 다투는 황족들이 내전을 일으키는 장면.
거기에 더불어 드래곤이라는 억지력을 잃은 드워프 공장들이 살육기계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
그러한 혼란 속에서 금기를 어기고 영지민을 바쳐 고위 언데드로 거듭나는 귀족들을 비추는 장면.
그리고 혼란을 일으킨 황족과 드워프와 언데드 귀족들 모두가 드래곤들에 의해 차례대로 처리되며 제국이 멸망에 이르는 장면까지.
어째서인지 멸룡제를 쓰러트렸음에도 역사는 점점 리안이 말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멸룡제가 죽고 살아남은 드래곤들이 멸룡제의 역할을 맡아 역사를 본래와 가깝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걸 보며 이한성은 역사 자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복원력을 느꼈다.
‘역사의 인과율이 개변을 제한하고 있는 건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 거북선을 구현했을 때, 역사에 맞지 않는 화약 무기가 제한되었던 것처럼.
합동 역사개변으로 이어진 미래인 리안의 기록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인과율이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멸룡제 사후 40년 차인 제국력 1,032년.
본래 역사에서 그랬듯, 아르데니아 제국은 멸망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도 없지는 않았다.
그들이 본 모든 장면에는 알터가 본래라면 소실되었을 기록을 빼돌려 보존하는 장면이 덧붙여져 있었으니까.
제국의 중요한 지식들은 모두 알터의 기록 속에 남겨진 상태였다.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기록을 멈추지 않았던 알터는 어느덧 주름과 백발이 가득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시간에 비례하여 알터의 학문적 성취도 임계점에 다다랐다.
[조건을 충족하여 <유전학>과 <교육학>이 통합됩니다.]
[고유스킬 <순환론(循環論)>이 형성됩니다.]
생물학적인 번식을 통한 유전이나 교육을 통한 사상의 계승으로 세상에 두 번 나타난 것은 선대의 역사를 반복하기 마련이라는 깨달음.
그와 함께 해체론에 이어 두 번째 고유 등급의 지혜가 알터에게 깃들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는 이치가 담긴 지혜였다.
“내가 기록한 제국의 모든 지식을 이곳에 남긴다.”
그리고, 알터는 반평생 모아온 아르데니아 제국의 기록을 훗날 아르데니아를 재건할 리안을 위해 어느 유적에 숨겼으니.
[업적, ‘부흥을 위한 안배’를 달성하였습니다.]
[전륜성좌가 알터 굴즈의 업적과 개변된 역사를 기록합니다.]
[4차 각성기 《만물유전(萬物流轉)》이 개화합니다.]
…….
그것이 업적이 되어 알터의 4성 승격이 완성되고, 그의 역사개변이 종료된 거였다.
한데 이한성은 알터가 자취를 감춘 장소를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리안의 기억을 통해 본 적이 있었다.
‘고대 황제의 무덤!’
리안이 아르데니아의 옥새를 얻었던 묘실에서 이어지는 심부 비밀방에 알터의 유산이 남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