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8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8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8
백원도둑놈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8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8권
Chapter 01.
드워프 출장에서 돌아온 후.
나는 내 방에 돌아와 가방을 대충 내려놓으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엘리에게 물었다.
“엘리, 무슨 할 말 있었어? 서쪽 연병장까지 마중 나오고.”
서쪽 연병장은 내 방이 있는 중앙 궁궐과는 꽤 거리가 멀다.
걸어서 한 10,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니깐.
“아…… 아닙니다. 전하를 마중 나가는 것이 저의 역할이기에 그랬을 뿐입니다.”
엘리가 조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며 내 가방을 받아줬다. 예전에는 이런 사소한 배려가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졌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그게 딱 내 꼴이었다.
“드워프와의 이야기는 잘되셨습니까?”
“어, 잘됐어. 내 예상보다도 더. 왕국에는 별일 없었지?”
“예.”
평소에 나는 이런 사소한 얘기를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하고 있는 이유는, 왠지 모르게 엘리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던 탓이다.
‘내가 엘리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왠지 보인단 말이지.’
내가 생각하던 중.
엘리가 잔뜩 용기를 낸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전하. 출장 가시기 전에 약속하셨던 것 기억하십니까? 돌아오시면 이틀을 저에게 내어주시겠다고 하신 것.”
그랬었지.
“응, 기억해.”
“그, 그럼 바로 지금부터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금? 음…… 지금 바로는 힘들고 오늘 오후부터는 괜찮을 것 같아. 지금은 할 일이 있어서.”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엘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오후부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기대까지야.”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나는 내 책상에 있는 연락용 수정구를 조작해 로나크의 수정구에 연결했다.
우우웅―.
수정구가 짧게 진동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 전하. 로나크가 잠시 자리를 비워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
“롤로인가?”
「그렇습니다. 로나크가 돌아오면 전하께 다시 연락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잉글리드 해적단의 부단장이었던 롤로.
해적단 중에서도 가장 해적스러운 그였지만, 수년 동안 ‘기사’로서 활약하다 보니 이젠 말투가 제법 기사다워졌다.
‘여전히 외모는 해적 같아서 갭이 좀 있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롤로는 두건에 쌍검을 등에 X자로 교차해서 메고 다녔다.
나로서는 딱히 그들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렇게 뒀다.
“아니, 다시 연락하라고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이전에 말했던 것을 준비해서 서쪽 바다 조선소로 가라고 말해라. 그럼 알아들을 거다. 드워프들이 이미 가 있으니 최대한 빨리.”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이상이십니까?」
“그래, 수고해라.”
「감사합니다!」
팟―.
롤로와 통신을 끊은 후, 나는 다시 수정구를 조작했다.
이번엔 제르우스였다.
‘드워프들이 왕국에서 배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무기도 만들어준다고 했어. 왕국의 기술자들에게 기술도 알려준다고 했지. 그 이득을 120% 끌어낼 방법을 생각해야 해.’
그런 부분을 혼자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제르우스와 올리비아 둘을 불러서 회의를 하려 한다.
* * *
엘리.
그녀는 출장에 다녀오자마자 제르우스와 올리비아와 진지한 회의를 이어가고 있는 레오나르도를 바라봤다.
“드워프들이 다시 돌아가기 전에 가능한 많은 장인들이 그들의 기술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왕국 모든 도시와 마을에 있는 장인들을 왕도로 부를 수는 없으니…… 일단 각 도시와 마을의 최고 대장장이들을 부르겠습니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전하.”
“저도 동의합니다.”
막힘없이 회의를 하는 레오나르도에 엘리가 속으로 생각했다.
‘참…… 대단하시네. 나는 올리비아 언니랑 농담하는 것도 힘들던데.’
이처럼 엘리는 레오나르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불만도 있었다.
‘오후부터는 시간을 내어주신다고 하셨으면서…… 벌써 네 시인데.’
엘리의 기준에서 ‘오후부터’는 열두 시 정각 이후였다.
그런데 지금 레오나르도는 네 시가 지난 지금까지도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주 반가운 말이 들렸다.
“얼추 할 얘기는 다 한 것 같으니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올리비아는 조선소에 지원할 예산 산정이랑 드워프 대장간 건설 최대한 빠르게 해주고.”
“예, 알겠습니다. 오늘 밤까지 작성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오늘 밤―.”
레오나르도가 말하다가.
“내가 오늘이랑 내일은 ‘휴가’라서, 내일모레까지 해줘도 돼.”
“휴가…… 말씀이십니까? 전하께서?”
“어. 엘리가 꼭 쉬라고 해서.”
“아…… 그렇군요.”
올리비아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를 바라봤다. 둘이 눈으로 무슨 대화를 하는 것 같았지만, 레오나르도는 어떤 대화인지 알지 못했다.
“참, 단장님. 엘반도르 님과 얘기는 잘되셨습니까?”
“예, 전하. 다행히 결혼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잘됐네요. 결혼식도 올리실 거죠?”
“하하…… 전하께서도 다른 부하 기사들과 똑같은 걸 물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결혼식은 하지 않으려―.”
“하셔야죠. 다른 누구도 아닌 단장님의 결혼식인데. 무조건 할 겁니다. 명령이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알겠습니다. 대신 너무 화려하게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나이 먹고 결혼하는 것도 부끄러운데, 소소하게―.”
“화려하게 할 겁니다. 예산을 낭비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화려하게.”
주군이 두 번이나 자신의 말을 자르며 말하자, 제르우스가 멋쩍게 웃었다.
자신을 위해 결혼식을 올려준다는 것은 고마웠지만 솔직히 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제르우스가 말한 것처럼, 적은 나이에 하는 결혼이 아니었기에.
‘그래도 전하께서 배려해주시는 건데 받는 게 내 도리겠지.’
그리고.
‘기사단장직을 내려놓는다는 건…… 나중에 따로 말씀드려야겠군. 다른 둘이 있을 때 할 이야기는 아니니.’
“그럼 전하,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올리비아도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제르우스와 올리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순간을 누구보다도 기다렸던 엘리가 곧바로 방문을 열어주며 둘을 밖으로 배웅― ‘쫓아냈’다.
“두 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서 가서 쉬십시오!”
“……?”
“……?”
평소와 다른 엘리의 행동에 제르우스와 올리비아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드디어 레오나르도와 단둘이 남게 된 엘리.
“전하―.”
그녀는 오랜 회의에 지친 듯 목받이에 목을 기대고 있는 레오나르도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레오나르도를 보고는 말을 멈췄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욕심을 내보고 싶은데.’
하지만 자신은 여자이기 전에 왕의 건강과 생활을 책임지는 메이드장이었기에.
엘리는 결국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
“그래서, 엘리 너는 뭐 생각한 거 있어?”
“예?”
눈을 감은 채로 묻는 레오나르도에 엘리가 조금 놀라며 되물었다.
“이틀 동안 시간을 내달라고 했잖아. 하고 싶은 거나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 있어서 그런 것 아니야?”
“아…… 그게.”
엘리로서는 레오나르도와 하고 싶은 건 많았다.
예전처럼 별것 아닌 대화를 해 보고 싶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는 레오나르도를 보필하고 싶기도 했다.
그것 말고도 같이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나와 시간을 보내시는 것조차 업무로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네.’
그런 건 엘리는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욕심을 부려보자. 나도.’
“전하, 혹시 예전에 같이 시장을 갔던 걸 기억하십니까?”
“시장? 아, 어렸을 때 단장님이랑 같이 나갔을 때?”
“예. 전하께서 귀족들을 숙청하신 후에 왕도 시민들의 삶을 직접 보시겠다고 하셨을 때입니다.”
“기억나지. 기억나.”
레오나르도가 추억을 회상하듯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땐 정말 하루하루가 벼랑 끝인 느낌이었어. 네가 없었으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거야.”
“그런…… 가요? 저는 별로 전하께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제르우스 단장님처럼 전하의 검이 되어드리지도 못했고, 하인슈탱글 님이나 올리비아 님처럼 전하의 고민을 덜어드린 것도 아니어서.”
“그래도 옆에 있어 줬잖아. 내가 가장 힘들고 아무도 믿을 수 없었을 때.”
“…….”
“그때도, 지금도. 내가 아무 걱정 없이 내 곁에 둘 수 있는 너는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왕궁 관리도 잘해 주고 있고.”
레오나르도는 정말 별생각 없이 흘러가듯 말했다. 대수롭지 않게, 진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