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5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5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5
백원도둑놈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5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5권
Chapter 01.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는 몬스터들의 습성, 그리고 비밀이 있다.
몬스터는 평상시에는 각자 부락, 종족, 혹은 집단 단위로 생활한다. 인간과 비슷하게.
그러나 ‘강력한 몬스터’의 탄생이나 부활이 다가오면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그걸 느끼고 특정 지역에 집결한다.
강력한 몬스터의 탄생이나 부활을 앞두고 군소 몬스터들이 몬스터 산맥에 모이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강력한 몬스터에게 약한 몬스터들이 잘 보이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닐까― 라고 추측할 뿐이다.
레오나르도가 미스티 포트에서 왕도로 돌아왔을 때 관리들이 연회를 준비했던 것처럼 말이다.
* * *
필립 왕이 나무에 기대서 끔뻑끔뻑 졸고 있는 자신의 아들, 레오나르도를 바라봤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숏소드를 끌어안고 있었다.
‘만약 레오나르도가 미노타우로스의 부활을 막기 위해 그 던전을 공략하려는 것이었다면……. 레오나르도는 정말 마음이 무거웠었겠지.’
미노타우로스는 신화 속 몬스터다. 하나의 왕국, 아니 대륙 전체를 혼란과 절망에 휩싸이게 할 정도의 몬스터.
그 끔찍한 몬스터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냐면, 여러 종교의 성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신의 징벌’이라 불린다. 심지어 서로 배척하는 종교의 성전에서 조차 말이다.
‘그런 놈의 부활을 알고 있으면서 저렇게나 티를 내지 않다니……. 혼자 그 모든 걱정을 안고 있는 건가?’
왕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위기 속에서도 주위가 불안하지 않게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그런 덕목은 이미 완벽히 갖춘 것 같았다.
‘나는 미노타우로스 던전을 공략한 후 내가 제물이 되어 미노타우로스를 1,000년 동안 봉인하려 했다. 그게 내가 레오나르도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 생각했으니. 하지만…… 만약 미노타우로스가 부활하는 것이라면, 더욱 진지하게 임해야겠군.’
잠시 생각하던 필립 왕이 자신의 품속에 있는 얇디얇은 책을 어루만졌다.
그 책은 얼마 남지 않은 왕의 얇디얇은 <미래 일기>였다.
슥―.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 자리 좀 비우겠네.”
“어디 가나? 이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제르우스가 인상을 쓰자 왕이 제르우스가 거부할 수 없는 이유를 댔다.
“똥 싸고 오려고. 급하네.”
“……알겠네.”
생리현상이 급하다는데 제르우스는 차마 왕을 붙잡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르니 검은 가져가게. 주위에 몬스터는 없지만 야생 동물은 있을 수 있으니.”
“음.”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유독 달빛이 잘 드는 곳이었다.
그런 왕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르우스가 한심하다는 듯, 그러면서도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며 중얼댔다.
“중요한 얘기 할 때마다 똥 싸는 버릇은 여전하군. 젊었을 때 함께 모험할 때도 그러더니.”
* * *
약 10분 뒤.
왕이 풀숲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왕에게 제르우스가 물었다.
“시원하게 쌌나?”
“…….”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별 신경 쓰지 않고, 제르우스는 자신이 할 말을 계속 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만약 내 우려대로 강력한 몬스터의 탄생 때문에 몬스터들이 몬스터 산맥에 집결하고 있는 거라면 여간 큰일이 아닌데.”
“…….”
“필립, 묻잖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아까부터 왜 아무런 말이 없나?”
제르우스가 재차 물었지만 왕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게 답답해서 제르우스가 다시 물으려는 그때, 왕이 천천히 입을 뗐다.
“모르겠네.”
“모르겠다고?”
“그래. 아무것도 모르겠어.”
흘러가는 목소리로 말하던 왕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을 바꿨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네. 레오나르도는 어떤 위기든 헤쳐 나갈 거야.”
“……레오나르도 전하께서 알아서 하실 거라고 말하는 건가? 그게 무슨 무책임한 말인가. 그래도 아직까지 자네가 왕인데.’
“무책임한 게 아니네. 아들을 믿는 거지. 그게 무책임한 거라고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하네. 자네는 레오나르도를 믿지 않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르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믿지. 레오나르도 전하는 자네가 젊었을 때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대단하시니깐.”
“그럼 믿게. 나도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우리가 걱정하는 대로 몬스터들이 몬스터 산맥에 집결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면 레오나르도는 그걸 막을 걸세.”
“…….”
“어쩌면 내가 30년 전 ‘트리플 헤드 오우거’를 막기 위해 빅토리아, 바루트, 그롬브린달 그리고 자네를 만났던 것처럼…… 레오나르도는 자신을 도울 동료들을 만날지도 모르겠군.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니깐.”
왕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말하다가 이유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레오나르도에게 나의 검술을 전부 다 가르쳐주는 거라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건 미노타우로스를 봉인해주는 것뿐이네. 괜히 정해진 그것을 바꾸려다가 레오나르도에게 변수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
제르우스는 왕의 말이 얼핏 이해되면서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르우스는 왕에게 다른 질문을 더 할 수는 없었다. 왜냐, 왕의 목소리와 눈빛에 확신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어떤 시련이나 위기가 닥치더라도 레오나르도는 그걸 이겨내고 왕을 넘어선 무언가가 될 것이라는, 그런 확신이.
* * *
다음 날 아침.
푸르륵―!
근처에서 들리는 말의 투레질 소리에 잠에서 깼다. 부드럽게 얼굴에 햇살이 감도는 게 느껴진다.
“음…….”
다소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로 깨우며 눈을 떴다. 그러자 나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아니, 당혹스럽기보다는 그보다는 신비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저 동물들은 뭐지?’
나무 위에는 새와 다람쥐 비슷한 설치류들이 작은 견과류를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풀숲에는 토끼나 야생 고양이, 마멋……? 그런 동물들이 빼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멧돼지 같은 제법 커다란 동물도 멀찌감치에서 나를 구경하고 있다.
내 바로 옆에는 카르툼이 근엄하게 서 있었다. 주위의 동물들은 그런 카르툼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왠지 그렇게 느껴진다.
“일어났구나.”
내가 멍하니 주변을 살피던 중, 왕이 말했다.
“주위에 동물이 있는 게 신기하느냐?”
당연히 신기했다.
“어…… 네.”
“어제 내가 말해준, 너의 피에 흐르는 엘프의 능력 때문이다. 동물에게 사랑받는 능력.”
“아.”
말로만 들었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직접 보니 이해됐다.
“그런데 이전에 미스티 포트에 갈 때도 야영을 했는데, 그때는 동물들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야 그때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많았으니까. 아무리 동물들이 너를 찾아오고 싶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잡아먹힐 게 분명한데 바보처럼 다가오지는 않지.”
나도 고기 먹는데.
“그래서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오지 않는 거다. 아무리 엘프의 피가 흘러도 절반은 인간이니깐. 그래도 네가 군림하는 동안 그 땅의 동물들은 기쁘게 생활하며 살찔 것이다. 백성들이 좋아하겠지.”
나는 카르툼이 무서워서 다가오지 않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생각하던 중, 왕이 물었다.
“몸은 좀 어떠하느냐.”
바닥에서 일어나 몸을 뒤척여봤다. 어제 오랫동안 말을 타느라 불편했던 허리와 골반이 멀쩡하다.
허리와 골반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도 쌩쌩했다.
‘왕이 준 건강 목걸이 덕분인가?’
목에 느껴지는 목걸이를 슬쩍 보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편한 침대에서 잤을 때보다 더 잘 쉰 것 같습니다.”
“그럼 아침 훈련을 하도록 하자. 제르우스가 출발은 두 시간 뒤라고 했으니, 그때까지.”
“예.”
몸이 아팠으면 아침 훈련이 꺼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몸 상태가 완전했기에 나는 바로 검을 검집에서 뽑았다.
스릉―.
조금의 거슬리는 느낌도 없이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온다. 역시 명검이다.
내가 어색하지만 검을 잡고 자세를 갖추자 왕이 말했다.
“어제와 똑같은 훈련을 할 거다. 한 번은 네가 공격하고 한 번은 내가 공격하마. 하지만 어제보단 나은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라. 그리고 내 움직임을 눈이 아닌 감각으로 느끼도록 애써라. 다시 말하지만 흐름을 느껴야 한다.”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왕이 근처에 떨어진 두툼한 나뭇가지를 주웠다.
“시작하자. 공격해보거라.”
“예.”
나는 바로 검을 휘둘렀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보다 몸이 가볍고 힘이 넘친다. 목걸이가 닿는 가슴부터 전신으로 기력이 퍼지는 느낌이다.
* * *
왕도를 떠나 멸망의 황무지를 향한 지 벌써 4주가 지났다.
그동안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됐다. 아침에는 아침 훈련, 점심에는 말을 타고 이동하다 점심 훈련, 그리고 다시 말을 타고 이동하다 저녁 훈련을 했다.
그러나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4주, 대략 한 달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왕에게 검을 배운 덕분에 나는 제법 검에 익숙해졌다.
또, 나는 지난 4주 동안 몸에 신기할 정도로 근육이 많이 붙었다. 물론 제르우스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은 아니었다. 근육이 붙어봤자 열두 살짜리 어린애의 몸이 얼마나 달라졌겠나.
그래도 분명 몸이 튼튼해지는 게 물리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왕이 준 ‘건강 목걸이’ 덕분이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강행군을 하는데 몸이 멀쩡할 리가 없으니깐.’
내가 오른손에는 검을 쥔 채 왼손으로는 목걸이를 어루만지며 생각하던 중.
휙- 툭.
왕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멀리 던져 버리며 말했다.
“레오나르도, 이제 어느 정도 검에 익숙해진 것 같구나. 고생했다.”
“아…… 감사합니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눈으로 상대의 공격을 쫓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상대의 의도를 느끼고 이해해서 가장 효과적 대응해야 한다. 이건 비단 검술에서뿐만 아니다. 가신들과의 관계, 나아가 다른 왕국이나 제국과의 외교 관계에서도 그렇다. 세상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말할 때가 있다.”
“예.”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왕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나는 잠깐 볼일을 보고 오겠다. 제르우스가 사냥에서 돌아와서 어디 갔냐고 물으면, 그냥 금방 돌아온다고 했다고 하거라.”
볼일을 본다는 건 똥을 싸러 간다는 거겠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 오랜만에 혼자 있게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