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4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4권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4
백원도둑놈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4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이 세계의 황제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04권
Chapter 01.
“……본토다!”
갑판에 서 있던 해적, 롤로의 외침에 지쳐 쓰러져 있던 해적들이 억지로 힘을 내 일어났다. 롤로와 로나크를 제외한 모든 해적들은 지난 며칠 동안 폭풍을 뚫고 항해하느라 녹초가 된 후여서, 다들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본토?
―드, 드디어 도착한 건가?
―그 폭풍을 뚫고 정말 본토까지 오다니…….
―그것도 한 명도 죽지 않았어!
희망,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영양소인 그것이 주입되자 해적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어이! 제독! 로나크! 고맙다!!
―너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몇몇 해적들이 키를 잡고 있는 로나크에게 손짓하며 외쳤다. 그러나 로나크는 그들에게 답하는 대신 진중한 눈빛으로 본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폭풍을 뚫고 올 때 광기에 찼던 로나크는 사라지고, 이젠 평소의 신중한 성격의 로나크가 된 것이다.
‘본토에 왔다. 이제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역시 먹을 걸 구하는 것이었다. 폭풍을 뚫고 오면서 식량 대부분이 못 먹게 되거나 바다에 빠진 바람에 먹을 게 없던 것이다.
‘내가 정상적으로 항해했다는 가정하에, 저기 보이는 해안가는 미스티 포트의 중앙 해안일 거다. 중앙 해안에서 미스티 포트까지 멀지 않으니, 식량을 구하러 도시에 가도 되겠지만…….’
생각하다가, 로나크가 슬쩍 갑판에서 환호하고 있는 해적 동료들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우리 외형이나 차림새로는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겠지. 누가 봐도 약탈꾼으로 보일 테니까.’
운 좋게 어찌어찌 도시에 들어가더라도 로나크와 해적들에게는 식량을 살 돈이 없었다. 섬에서 본토로 떠날 때 꽤 많은 돈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것도 폭풍 때문에 바다 어딘가에 빠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폭풍에서 아무도 죽지 않은 게 기적이군. 운이 좋은 거려나.’
이처럼 로나크가 신중한 생각을 하던 중.
그의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해안가에서 자신들을 향해 서 있는 사람들이다.
마치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로나크가 눈에 힘을 줘서 해안가의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저건 기사들과 병사들인 것 같은데?’
그때였다.
“로나크― 아니, ‘제독’! 해안가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갑판에서 주위를 살피던 ‘부제독’ 롤로의 긴장 어린 외침에 롤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말에 해적선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몇몇은 자신의 무기를 쥐기도 한다.
해적들이 이처럼 긴장한 이유는 당연했다. 아무리 자신들이 쓰레기 귀족들과 악랄한 상인들만 습격했던 해적이라도, 결국 ‘해적’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대기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는 만큼, 해적들로서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을 대비해야만 했다.
쏴아아아―!
배가 바다를 가르고 점차 해안가에 가까워지자 해적들은 기사들과 병사들의 면면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로나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사 열 명, 병사 백 명 정도. 싸운다면 피해가 적지 않겠지만 이길 수는 있을 것 같군.’
하지만 로나크는 웬만하면 저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잉글리드 섬을 떠나 본토로 온 이유가 ‘백성을 위하는 왕세자’에 관한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고, 본토에서 평범한 백성으로 살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토에 오자마자 기사들과 병사들과 전투를 하면 어떻게 되겠나. 시작부터 왕국과 척을 지게 되는 것이다.
쿠웅……!
로나크의 배가 모래사장에 닿아 멈추고, 뒤따라 오던 다른 해적선들도 능숙하게 일렬로 해안가에 정박했다. 그러나 해적선에서 내리는 해적들은 없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의 눈치를 살핀다.
부제독 롤로도 슬쩍 자신의 등에 메고 있는 쌍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해야 한다면 검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의 실력이라면 웬만한 기사는 쉽게 이길 수 있고, 중급 이상의 기사도 이길 수 있으리라.
‘일단 내가 말을 걸어봐야겠군.’
로나크가 제독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갑판 끄트머리로 나갔다.
“나는―!”
로나크가 당당하고 크게 외치려 했으나.
로나크의 말보다 기사의 말이 더 빨랐다.
“레오나르도 왕세자 전하께서 여러분들을 손님으로 초대하셨다!”
“……?”
영문 모를 기사의 말에 로나크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왕세자가 우리를 초대했다고? 우리가 이곳에 올 건 어떻게 알고? 아니 그보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알고 초대한다는 거지?’
의문이 듦과 동시에 로나크는 의심도 됐다.
‘이곳은 왕국 최남단이다. 왕도는 왕국 중앙에 있고. 그러니 왕세자가 이곳에 와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것은―
‘어쩌면 계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적이라는 걸 알고 토벌하기 위해서 먼저 방심시키려는 거지.’
문득 그런 의심이 들어, 로나크도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끼에 손이 갔다.
자신의 의심대로 저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생각이라면, 로나크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싸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그와 동시에 로나크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아니지, 만약 우리를 방심시킬 생각이었다면 굳이 왕세자를 언급했을까? 그냥 영주가 초대했다고 하는 게 더 말이 맞지 않나?’
실제로 그러했다. 만약 자신들을 방심시킬 것이었다면 ‘왕세자가 초대했다’라고 하는 것보단 ‘영주가 초대했다’라거나, ‘우선 얘기를 하자’라고 하는 게 더 그럴싸 했다.
굳이 왕세자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정말 왕세자가 우리를 초대했다는 건가?’
로나크가 다시 고민을 반복하다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만약 우리를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배가 가까이 오기 전부터 공격했을 거다. 화살을 쏘든, 불화살을 쏘든. 그런데 저들은 가만히 우리를 기다렸다.’
일단…… 믿어볼까.
‘다른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으니 내가 혼자 가야겠군.’
“좋다! 그럼 내가 혼자 배에서 내릴 테니, 왕세자 전하께 나를 안내하라!”
홀로 배에서 내리겠다는 로나크의 말에 해적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왕세자의 초대’가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가는 것은 정말 위험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로나크! 혼자 가다니, 저게 함정이면 어쩌려고!”
롤로가 다른 해적들을 대표해서 우려를 표하자, 로나크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가벼운 미소라 크라켄에게 당한 흉터가 벌어지지 않아서 보기 좋은 미소였다.
“만약 저들이 우리를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배가 상륙하기 전에 공격했을 거다.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한데.”
“그리고 내가 함정에 빠져 허무하게 죽을 거였다면 바다를 건너면서 폭풍에 진작 죽었을 거다. 아니지. 애초에 수년 전에 크라켄이 나를 죽였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 본토를 밟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만약 정말 ‘왕세자’의 초대라면, 잉글리드 섬 해적단의 제독으로서 남자답게 응해야 하지 않겠나?”
역시 해적들이 제독으로 추대할 만한 인물이다. 동료지만 분명 자신들과는 다르다.
―라고 롤로가 로나크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보내주겠다. 하지만…… 만약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해적의 방식대로 복수할 거다. 본토의 놈들에게.”
* * *
―똑똑.
―전하. 전하께서 만나보겠다고 하신 신원 미상 선단의 대표가 오고 있습니다. 5분 정도 뒤면 도착할 겁니다.
마차에서 <미래 일기>를 읽던 중, 밖에서 제르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단장님. 잠시 뭐 좀 생각하고 나갈게요.”
―예, 알겠습니다.
마차 밖에 있는 제르우스에게 짧게 답하고, 나는 다시 <미래 일기>를 살폈다.
…….
미스티 포트 해안가에 나타난 해적선의 대표, ‘로나크’.
그는 별다른 저항 없이 내 초대에 응했다.
솔직히 나로서는 해적들이 순순히 응할지 걱정되었다. 내가 해적들을 ‘초대’하라고 했음에도 제르우스와 월터는 무려 기사 열 명과 병사 백 명을 해적들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내가 해적이었다면 「”저렇게 많은 병력을 보내다니, 나를 공격하려 하는 건가?”」라고 오해했을 터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다행스럽게도 해적들의 대표 로나크는 내 초대에 응했다.
당당하게, 혼자서.
과연 해적의 대표였다.
이게 <미래 일기>에 새로 쓰인 내용의 첫 부분이었다.
‘여기까지는 딱히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다음 장에 나와 있는 내용이지.’
썩 달가운 내용은 아니지만.
슥―.
다음 장을 펼쳐봤다.
…….
나무 그늘 아래에 펼쳐진 천막.
그 천막에서 로나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로나크에게 내 계획을 솔직히 말했다. 왕국의 해악인 도적들을 척결할 것이며, 거기에 로나크와 그의 해적단이 힘을 더해주기를 부탁했다.
내가 로나크에게 부탁한 것은 단순히 도적들을 척결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로나크의 해적단처럼 사는 게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도적들, 그중에서도 귀족들과 악랄한 상단만을 공격한 ‘선량한 도적들’을 찾아서 영입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말을 듣고 로나크는 「“……‘해적’인 저희를 용서해주시는 걸 넘어 부하로 삼아주시겠다는 겁니까?”」 ―라며 당황하면서도 놀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나크는 나에게 꽤나 우호적이었다.
이처럼 나는 로나크와 해적단을 영입하는 데에 비교적 쉽게 성공했다.
다만 어째서인지 다른 기사들과 병사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소리 없는 불만이 들리는 듯했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불만을 가졌다는, 마지막 내용이 거슬린다.
그러나 더욱 거슬리는 건 이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
로나크와 해적단을 영입한 그 날 밤.
나는 영주성에서 로나크와 해적단을 환영하는 환영회를 열어줬다. 아주 성대한 파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볍게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파티가 시작되고 얼마 후에 나는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개인적으로 파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고, 앞으로 왕국의 도적들을 척결하는 것에 관해 제르우스와 상의할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르우스와의 진중한 회의가 이어지던 중.
방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스티 포트까지 오면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눴던 병사의 목소리다.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그, 급히 말씀드릴 사안입니다!
밖에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문을 열어 병사를 들여보냈다.
그러자 병사가 보이는데…… 병사의 몸과 얼굴에 피가 튀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제르우스가 병사를 살피며 인상쓰며 묻자, 병사가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답했다.
“여, 연회장에서 기사님들과 해적들이 시비가 붙었습니다!”
‘시비’. 그러니까 싸움이 붙었다는 거다.
그런데 그 상황을 알리러 온 병사에게까지 피가 튀었다는 건…… 보통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내가 해적들을 영입했을 때 분위기가 안 좋더니, 결국 이렇게 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