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 좀비 면역자 09권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9권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9
흙과불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9권
차례
Chapter 01. 새 식구들. - 2
Chapter 02. 성탄절 준비.
Chapter 03. 메리 크리스마스.
Chapter 04. 고요한 밤, 거룩한 밤.
Chapter 05. 이번엔 이쪽도 힘으로 간다.
Chapter 06. 기생충.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9권
Chapter 01. 새 식구들. - 2
투투투투투투―!!
보물과도 같은 1기의 공격헬기.
연료가 3분의 1정도 남았지만 그렇다고 쉴 수 있나.
할 일이 많은 만큼 기꺼이 비행에 오르는 우 차장이다.
오늘 조수석엔 최 중령이 탑승했고, 뒷좌석엔 정재호 사장이 직접 올랐다.
어디 물자를 수급하러 갈 것도 아니고, 연료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니 필요한 인원만 탑승한 것.
첫 번째 목적지는 잠실이었다.
빠르게 고척돔과 한강 라인, 잠실까지 훑은 공격헬기.
헬기의 머리를 틀며 무전 하는 우 차장이다.
“목적지까지 특이사항 없습니다, 선배님.”
―오케이, 독수리! 이따 저녁에 보자고. 안전!
“안전! 선배님도 수고하십쇼! 송신 끝.”
그제 전투 후 사람들을 구조해서 돌아오느라 카이온 서비스 용병들의 물자들을 챙겨오지 못했다.
지상의 마철용팀 에스코트도 마쳤으니 이젠 김포 공항으로 가야 한다.
좀비 사태 첫날부터 사용했던 공항 내 봉쇄된 격납고.
지붕 개폐식이니 그간 안전하게 연료를 보충할 수 있었다.
“연료 얼마나 남았지? 격납고에.”
뒷좌석에서 느긋하게 아래를 내려보던 정재호가 물었다.
“제 기억으로는… 이 녀석 다섯 번 정도? 만땅 채우면 끝이지 싶습니다. 아, 회장님 탈출용 헬기와 전세기는 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공격헬기는 연료통이 넉넉지 않다.
조금이라도 탄약을 더 실을 수 있게 만들어진 만큼 빠르게 지원하고 물러나는 용도로 만들어진 헬기다.
물론 서울처럼 빽빽한 도시에서는 그 쓰임새가 다양하긴 하겠지만, 내년 여름까지 써먹기엔 아쉬운 게 사실이다.
“최 중령님. 제가 왜 이 자리에 모셨는지 이해되시죠?”
“어… 예.”
얼굴이 붉게 상기된 최 중령.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더니.
부하들도 없이 혼자인 지금 조금은 풀이 죽은 모습이다.
아니 이번에 구조가 되면서 사람이 180도 바뀐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또 제 밑에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말을 잘 들을 것 같다.
구룡이 그나마 건재하던 몇 주 전.
최 중령은 자신의 부하들을 이용해 경기도와 서울의 국군 부대는 물론 미군 부대의 물자들을 탈취해서 숨겨두었다.
꼭 반역을 꾀한다기보다는 겁 많고 생각 많은 리더의 부지런함 이리라.
정재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눈치 보면서 하느라 제대로 하지도 못하셨잖습니까. 양도 시원찮은 것으로 들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삽시다. 시원하게 한탕 해서 다 같이 살아보잔 말입니다. 우리, 총 들 사람 많아요.”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강제징병의 장점이 이런 점 아니겠나.
평화로울 때야 군대라면 진저리가 났더라도 지금은 도움이 된다.
2개월이 지난 만큼 생존자의 대부분은 성인 남성.
그중 9할 이상은 총을 쏴본 경험이 있다.
이놈의 대한민국은 현역이 아니더라도 4주 이상의 군사훈련은 물론, 예비군 훈련까지 지독하게 부려 먹던 나라였으니까.
“예… 우선은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아직 정신이 없어서 잠시 정리 좀….”
정재호가 부드럽게 웃으며 최 중령의 어깨를 두드렸다.
헬기는 빠르게 공항 쪽으로 날아간다.
앞으로 3분이면 도착할 터.
연료를 채우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을 테니 그 안에 결정을 하란 뜻이리라.
숨겨둔 포인트를 전부 풀고, 부대 위치와 물자 위치에 대해 아는 것 또한 전부 오픈하라는 뜻.
최 중령도 이 상황에 숨길 생각은 없다.
다만.
“저기… 일전에 말씀하신….”
“일전에요?”
“그 있잖습니까. 섬….”
“아~ 섬?”
“……예….”
“진짜 섬에 들어가고 싶으신 겁니까?”
최 중령은 입을 다물었다.
그게 뭘 뜻하겠나. 협조는 하되 뭔가 하나라도 꼭 받아내겠다는 것이지.
이런 상황에도 이 새끼는 참 대단한 새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정재호는 인내심을 발휘한다.
“섬, 그까짓 거 뭐가 대수라고. 근데 여의도를 수복하면 방송국도 돌릴 수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조하고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데… 그 기회를 놓치고 섬에서 탱자 탱자 쉬시려고요?”
“어… 예?”
“용산에서 박 사장님 가까이 계셨으니 잘 아실 거 아닙니까. 미국에선 이미 백신을 만든 것 같고… 어쨌든, 여름 내에 정리가 될 것 같은데. 서울이야 워낙 빽빽한 곳이라 그렇지, 지방에는 아직 생존자가 많지 않겠어요?”
“그거야… 그렇지요.”
“체감상 몇 년은 고생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이제 2달 됐을 뿐입니다. 동네에 편의점이 몇 개씩 있는 우리나라 아닙니까? 분명 집안에서 버티는 생존자들이 한둘이 아닐 거예요. 쉽진 않겠지만, 우린 분명히 여의도를 거점 삼아 일어날 수 있어요. 좀비들을 몰아서 사냥하는 방법도 알아냈으니까?”
“예? 몰이사냥… 말씀입니까?”
이건 뜻밖이라는 듯 고개까지 돌려 묻는 최 중령이다.
정재호가 여유 있게 미소 지었다.
“엊그제까지 죽을 뻔했던 적이 한두 번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제가 회장님 모시고 안 도망친 거 보면 답 안 나와요?”
꿀꺽 더운 침을 삼키는 정재호.
제 딴에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지만 정재호의 눈엔 욕심 많은 군인일 뿐이다.
어쩌겠나.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
생존에 필요하다면 똥 막대기라도 써먹을 수 있으면 써먹어야지.
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정재호가 덧붙인다.
“사람이 어느 정도 늘어나면 구룡의 물자를 전부 되찾을 겁니다. 아시죠? 구룡 계열사 중에 호텔이며 건설, 식품, 자동차, 무역 등등. 한둘이 아닌 거. 금괴가 됐든, 달러가 됐든, 건물이 됐든. 그만한 값은 쳐드릴 겁니다. 어쩌면 섬보다 나을 수도 있어요.”
이틀 전에 들었다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며 타박을 했을 텐데.
지금은 또 상황이 바뀌었다.
CDC와 가케츠의 용병 때문에 망할 줄 알았던 구룡은 기적처럼 살아났고, 지금은 500명에 달하는 생존자 그룹과 함께하고 있다.
인재도 많고, 식량도 아직은 넉넉하다.
이들이라면 뭐든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최 중령은 중대한 결정을 한다는 듯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연료 채우고 나면 경기도부터 돕시다. 해 저물기 전에 들를 곳이 꽤 많아요.”
정재호가 입술을 길게 늘여 웃었다.
“그러시죠, 중령님.”
* * *
“히야… 살발하다, 살발해.”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도로 집어넣는 마철용.
쓴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본다.
잠실 종합체육관.
이틀 전 새벽, 그야말로 불벼락을 맞았던 종합체육관 내부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현장이었다.
조금 전 도착하자마자 한 거라곤 배회하던 좀비 20여 마리를 처리한 게 다다.
그것도 절반은 몸이 불에 타거나 부러지고 뜯겨 겨우 기어 다니는 놈들이었다.
헬기에서 날린 로켓포와 발칸포로 이곳에 있던 헬기들이 연쇄 폭발했고, 기름통을 10개나 터뜨린 덕에 용병들과 좀비들은 모조리 타죽고 말았다.
불 끄랴, 좀비 막으랴, 하늘의 헬기 잡으랴.
그날 새벽, 아군에겐 시원한 승리였지만, 이곳에 있던 용병들과 가케츠의 연구진에겐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었으리라.
적이기는 해도. 이런 걸 보면 입맛이 쓴 게 사실이다.
어쩌겠나. 현재는 전쟁 중인데.
죽은 건 죽은 거고.
용병들이 쓰던 총기와 탄약, 장비들은 빠짐없이 챙겨야 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구석에 있던 컨테이너는 겉만 조금 탄 것 같으니 내용물은 멀쩡할 것 같다.
“형님.”
마철용이 굳은 얼굴로 끔찍한 참상을 감상하던 그때 기상태 부장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후… 그려. 상태야, 이쪽은 네가 수습해라. 저기 컨테이너 문 따보고 쓸만한 건 다 챙겨. 나는 돔 구장으로 갈라니까.”
“예, 형님. 조심하시고요. 안전!”
“그래, 너도 방심하지 말고. 안전.”
가볍게 경례한 후 트럭에 오르는 마철용.
기상태 부장은 버스 팀과 함께 남는다.
마철용은 두 대의 장갑 트럭과 함께 잠실 돔구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왔을 때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넵.”
시원하게 박살 난 입구. 굳이 트럭을 밖에 세워둘 필요는 없으니 그대로 밀고 들어간다.
두 대의 장갑 트럭이 후진으로 들어왔고, 차례대로 내렸다.
“태훈아, 어때?”
“조용해요. 좀비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구먼. 호철이랑 장수는 여기 남고 나머지만 움직이자고.”
만약을 대비해 장갑 트럭 한 대에 한 명씩만 남기고 모두가 움직인다.
물론 오늘도 에반은 함께다.
부서진 앞니 치료도 받았고, 옷도 깨끗하게 갈아입었으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에반.
미안하지만 어쩌겠나.
여태 써먹고 잔인하게 머리를 날려버리겠나, 아니면 일반인도 아닌 용병 출신의 그를 함부로 풀어주겠나.
괜히 풀어줬다가 앙심을 품고 약탈자들과 연합해 게릴라전이라도 펼치면 그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으니.
오늘까지 톡톡히 써먹은 뒤에 적당한 방법을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