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 좀비 면역자 03권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3권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3
흙과불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3권
차례
Chapter 01. 가랑비. - 2
Chapter 02. 동탄.
Chapter 03. 짐승 토벌.
Chapter 04. 다시 출발.
Chapter 05. 욕심과 명분 사이.
서울행 - 좀비 면역자 03권
Chapter 01. 가랑비. - 2
10평 남짓의 휴게실. 3 격리실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 방공호 직원들의 휴게실이었다.
그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소리쳤다.
“우영아!”
“누나!”
동생은 누나의 품에 안기고 누나는 동생을 꼭 안아준 뒤 얼굴을 살핀다.
“괜찮아? 아픈 데 없어?”
꼬박 하루 만에 만나게 된 동생이다.
발치가 제대로 됐고, 약도 잘 먹어서인지 우영이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녀석이 웃었다.
“이제 하나도 안 아파. 누나는? 누나는 괜찮아?”
“하아… 됐어. 누난 괜찮아.”
다시 꼬옥 안아주는 연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석만 교수가 흐뭇하게 웃었다.
“동생 보니까 마음이 놓여?”
연우가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한다. 그러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영이도 함께 인사한다. 박석만 교수가 고개를 주억이더니 옆의 간호사에게 말했다.
“격리 시간 얼마나 남았지?”
“23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흐음….”
연우의 얼굴에 걱정이 서린다. 다시 또 동생과 떨어지게 될까 봐.
박 교수가 입맛을 다셨다.
“아직 빈 방 많잖아. 그치? 둘 다 기본 검사는 했고. 별거 없잖아?”
“네, 선생님.”
“오늘부터 둘이 있게 해줘. 내일부턴 3 격리실에서 지내게 하고.”
“알겠습니다.”
간호사의 대답에 연우와 우영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박 교수가 아프게 웃었다.
“3 격리실은 여자들만 있는 곳이야. 사람은 많이 없어도 다들 어렵게 구조돼서 마음이 아픈 분들이 꽤 계신단다. 누나인 연우 네가 동생 잘 챙겨서 있어야 해.”
“네, 선생님. 저희 얌전히 잘 있을게요.”
“고맙다. 내일 지나서 컨디션 괜찮아지면 간단한 검사 좀 할 거야. 사진도 찍고, 피검사도 좀 하고. 어려운 건 아닌데 몸이 좀 힘들 수도 있어. 음식 남기지 말고, 밤에 잘 자고. 알겠니?”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검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다.
하지만 연우는 절대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다.
무슨 검사를 하는지 몰라도 저와 동생을 구해준 만큼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다.
나아가 제 부모님, 할아버지 또한 구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니까.
“저기….”
“응?”
“좀비가 되는지 안 되는지… 백신 같은 것에 도움이 될지 검사하는 거죠?”
연우의 물음에 박 교수가 의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셈이지. 왜, 무섭니?”
“아니요. 무섭진 않아요. 오히려…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아… 동생을 구해줘서?”
“그것도 그렇고….”
말끝을 흐리던 연우가 흘깃 눈치를 보더니 말을 잇는다.
“부모님하고 할아버지요. 아직 살아계실지도 몰라서요.”
“…….”
그냥 구해달라고 할 법도 하건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구조대를 파견하진 않을 터다.
그걸 아니까 이리 말하는 거겠지.
어린애답지 않다.
다른 어른들은 다시 가서 자기 애인, 가족, 반려동물을 놓고 왔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이들도 더러 있었건만.
이 방공호에서 유일한 10대 남녀가 이 둘인데. 상황 파악도 잘하고 참을성도 있다.
박 교수가 몸을 낮췄다. 연우와 눈을 마주하며 묻는다.
“부모님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데. 살아 계신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말하지 않았니.”
연우는 즉답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눈치를 살핀다.
박 교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제야 입을 연다.
“어려운 일이니까요. 나라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은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거니까요.”
“뭐…?”
10대 소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간호사도, 함께 따라온 군인들도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박 교수는 호감 가득한 얼굴로 연우와 우영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냥… 정부에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구조될 때부터. 협력한다고는 하는데… 방송도 그렇고 아저씨들 복장도 그렇고. 기업에서 필요에 의해 구조한다는 느낌이랄까.”
“…….”
“선생님.”
“응?”
“저하고 동생이 도움이 되면요. 저희 도와줄 수 있나요?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우선해 구조한 거잖아요. 그렇죠?”
박 교수가 쓰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꼭 그런 건 아니란다. 물론 구조팀이 상황에 따라 유리한 대로 움직이기는 하겠지만. 그나저나… 우리 막내가 연우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은데. 네가 더 언니 같구나. 그래… 부모님은 어디 계시는 줄 알아?”
연우가 동생의 손을 꼭 잡은 뒤 작은 입술을 뗐다.
“엄마는 할아버지 세탁소요. 제가 탈출한 빌라에서 멀지 않은 곳이에요. 진아 컴퓨터 세탁소. 할아버지가 엄마 이름을 붙였거든요. 아빠는… 멀리서 오고 계실 거예요.”
“그래, 연우야. 선생님이 구조대에게 말해두마. 강서구에 들리게 되면 한번 둘러보라고.”
지나가듯 하는 말이리라. 연우는 그것을 알았지만 따져 물을 생각은 없다.
어쨌든 도움이 되기 전엔 이들은 나서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기에.
강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연우다. 무엇보다 동생의 고통은 이제 한시름 덜었지 않나.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희 건강하게 잘 지낼게요. 검사도 잘 받구요.”
뭔가 뼈가 있는듯한 어조다. 박 교수가 아프게 웃으며 우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
.
.
똘똘해 보이는 연우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곧장 개인 방에 들어온 박석만 교수는 노트북을 켰다.
처음 아이들이 들어오자마자 피검사를 했었다.
그간 물렸음에도 인간으로서 버티다가 결국엔 좀비가 돼버린 샘플들.
그들에게서 뽑아낸 데이터와 비교해봐도 딱히 도움이 될만한 성질의 것은 없어 보인다.
그저 운이 좋아 랜덤발작을 피한 여느 어른과 비슷하다.
보이는 것만큼 평범한 건강한 10대 아이들이다.
앞으로 24시간이 더 지난 뒤 컨디션을 봐서 아이들의 피를 새로 뽑고 조직검사도 다시 하긴 할 거다.
아이들의 세포에 이런저런 실험을 더 할 것이고.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으로선 특별해 보일 게 하나 없다.
똘똘한 아이를 만났다는 의아함과는 별개로 데이터상 수치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미안하구나.”
부모님이 살아계실 거라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두 녀석을 실망하게 할 것 같아 미안한 박 교수다.
그때였다.
우우웅― 우우웅―
노트북 옆의 전화기가 울린다. 위성전화기로서 구룡에서 지급받은 거다.
어제 오전 구룡의 엔지니어가 위성 가동을 성공했고, 그것은 각 구룡의 방공호와 섬, 시추 섬과 연결이 된다.
물론 구룡의 방공호에서 반경 수 킬로미터 내에선 위성 전화 역시 사용 가능하고.
박 교수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이태호 회장이었다.
“박석만입니다, 회장님.”
―박 교수님.
“예, 회장님.”
―오늘은 그쪽에 계십니까?
“처음으로 아이가 구출돼서 말입니다. 이틀 정도는 더 있다가 넘어갈까 생각하는데. 혹시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위성을 가동하면서 구조 신호를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일품 제약의 제이슨 박이라는 연구원이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모르는 사람이다. 그저 용건이 있겠거니 추임새를 넣었을 뿐이다.
―그 사람을 구조해서 오는 길입니다. 4시간 뒤 도착인데 미팅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4시간요? 대체 어디에서 오기에….”
―정확한 포인트는 모르고. 태평양에서 오는 중입니다.
“태평양요?”
―동해에 구룡 소유의 배 몇 척이 있거든요. 헬기가 달린. 여하튼, 일품 제약 연구팀과 우리 연구팀까지 전부 모인다고 하니 교수님도 함께 오셨으면 해서요. 아무래도… 가닥이 잡힐 것 같습니다.
가닥이 잡힌다 라. 하면, 좀비 바이러스의 백신에 관한 것일까?
박 교수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알겠습니다. 바로 넘어가죠.”
* * *
통화를 마친 이태호. 그는 노트북의 화면을 켰다.
태평양에서 이곳 경기도 양주의 방공호로 오고 있는 붉은 점을 흡족하게 바라본다.
구룡 그룹의 산하, 덕산 무역의 대표. 용병들의 대장이며 이태호의 외삼촌인 정재호가 직접 직원들을 이끌고 구조해오는 남자는 제이슨 박.
한국 이름은 박재준.
CDC.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일하던 박사였으며 일품 제약의 혼외자다.
애초에 VIP 구조 명단에 있는 사람이기는 했으나 한국에 없던 만큼 포기하고 있었는데.
좀비 사태, 그리고 느닷없이 쏘아진 북의 미사일. 전시와도 같은 재난 상태에 따라 원자력, 국가 통신 시설이 자연스럽게 가동을 멈춘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