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천검성 0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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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검성
02
말하는토템
역천검성 02권
차례
제7장. 허례와 허식. - 2
제8장. 막간.
제9장. 숭산, 소림.
제10장. 마음에 남은 것.
제11장. 청해행.
제12장. 서녕. - 1
역천검성 02권
제7장. 허례와 허식. - 2
내용은 짧았지만, 그 내용이 의미하는 것은 많았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확인은 되었습니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피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말라붙은 시체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허어. 그런 시체를 왜.”
“이유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문서를 다 읽은 팽가주는 맹주에게 질문했다.
“어디서 나온 정보입니까?”
맹주의 손가락이 문서의 끝을 가리켰다. 거기에 찍혀있는 것은 맹의 정보부인 비각의 직인. 그 직인을 확인한 팽가주의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청해로 직접 간 이들이 확인해 보낸 자료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왜 곤륜을 무너트리고 사천으로 쳐들어올 것처럼 위협했단 말입니까?”
“우리의 시선이 청해와 감숙으로 향하지 않도록. 무력 시위를 벌인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무력 시위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과격하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많은 피가 흘렀습니다.”
“그렇지만 효과는 확실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청해를 포기했으니.”
팽가주와는 달리, 문서를 꼼꼼하게 읽던 성준 도인의 입이 열렸다.
“거짓일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사람도 아닌 시체 하나를 찾기 위해 이렇게 오랜 기간을 사용한 것이 말이 됩니까.”
“거짓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용봉제를 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마교에게 정파가 겁먹었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은 우리 백도 무림 입장에서 좋지 않으니까요.”
“어차피 마교는 청해와 감숙에서 나오지 않을 테니?”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맹주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사천과 섬서.
“일 년 전 사천에서의 전투와 이번 섬서에서의 전투를 비교해 보십시오. 원래라면 보였어야 할 천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원래라면 천마가 뛰어들거나 대주 전체가 뛰어들었을 것인데. 대주들도 얼굴을 보이지 않은 이들도 많았지요.”
“천마는 검성과의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어 전장에 나올 수 없을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성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이지요.”
스승의 죽음을 가볍게 입에 담는 맹주의 모습을 정운이 보았다면 분개했겠지만. 하지만 팽가주와 성준 도인은 분노보다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용봉제를 여는 것에 부정적이십니까?”
“무림맹의 입장은 알겠습니다만. 저희에게는 저희의 입장이 있습니다. 조금 시간을 주시지요.”
팽가라는 세가의 장. 청성이라는 문파의 장. 그러니 저들은 무림맹의 기치를 세우는 것보다 세가와 문파의 이익을 우선하여 생각해야 했다.
무림맹이 주가 되어 개최하는 용봉제이니 연다고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문제가 생긴다면 맹주가 모든 것을 뒤집어쓸 테니. 성공한다면 맹주와 함께 일선에 선 청성과 팽가의 입지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안 할 이유는 없었지만 꺼림칙한 점은 분명히 있었다. 만약 용봉제가 열리는 동안 마교가 찾던 것을 마무리하고 사천으로 내려온다면? 특히 사천에 근거지를 둔 청성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맹주는 고민이 길어지자, 당기는 것을 멈추었다.
“고려하실 시간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바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문파로 돌아가기 전 알려주십시오.”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청성과의 약속은…….”
성준 도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맹주의 말이 나왔다.
“청성과의 약속은 이 사안과 무관하게 무조건 지켜드릴 겁니다.”
성준 도인은 생각에 빠진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맹주를 바라봤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안심하고 돌아가겠습니다. 하지만 맹주께서 약속을 잊으시는 일이 없으셔야 할 겁니다.”
“두 분이 계속해서 도움을 주신다면 제가 먼저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용봉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맹주의 다짐에 성준 도인도 긍정적인 말로 마무리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서 멀어지는 그의 모습.
맹주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옆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팽가주에게 말했다.
“팽가에서 제게 하실 말이 남으셨습니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팽가주의 말이 회의장을 울렸다.
“무엇이 말입니까?”
“몸을 숨겼던 마교가 섬서에 나타난 시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도 공교롭지 않습니까? 곤륜의 마지막 제자인 정운. 그는 곤륜이 망하고 일 년 동안 모습을 감추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가 나타나자마자 마교가 나타났습니다.”
“말인즉, 정운이 의심스럽다는 말입니까?”
맹주의 말에 팽가주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그리고 맹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요. 스승과 사문이 모두 마교에 의해 풍비박산이 난 말예가 제 원한을 모두 지우고 마교에 투신했다?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오히려.”
팽가주는 말을 덧붙이기 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음에 이어질 말은, 참으로 무거웠기에.
“정운 소협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입수한 누군가가, 마교에 사주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서류를 써 내려가던 맹주의 손이 잠시 멈췄다. 맹주의 시선이 서류에서 천천히 올라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팽가주의 시선과 마주했다.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이것이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리를.”
팽가주는 자신에게 쏠린 맹주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그런 팽가주의 모습에 맹주는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먼저 시선을 돌렸다. 맹주는 다시 시선을 내려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맹주님. 그럴듯한 추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팽가주께서는 저에 대한 신뢰가 없는 듯합니다.”
“신뢰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팽가주. 팽가주께서도 무림맹의 비각에 사람을 넣어 두었으니, 정운 소협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제가 아무리 빠르다고 하더라도 맹주님보다 빠를 수는 없지요.”
그 말에 맹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를 의심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심증뿐이지요.”
“그렇다면 여기까지 하시지요. 더 말한다고 의심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저는 마교와 연락을 취한 적이 없습니다. 팽가주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용봉제의 개막 때 얼굴을 보겠군요.”
“그때까지 의심받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맹주의 말에 웃으며 회의장을 나가는 팽가주. 서로 마주 웃던 두 사람은 문이 닫히는 순간 얼굴을 굳혔다.
* * *
회의실을 빠져나오자 붉게 물들 하늘이 보였다. 그 아래에 건물 그림자 사이에서 나를 기다리는 노개. 그리고 그의 뒤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제갈성과 독룡.
회의에서 했던 과격한 말 때문일까. 그들의 시선에는 조금의 걱정이 담겨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화경에 올랐으니. 오른 경지에 몸을 맞출 수 있도록 짧은 휴식을 취할 생각입니다.”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해진 것은 있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정해놓은 것은 있습니다만. 그런데 행선지를 물어보시는 것을 보니, 노개 어르신은 저를 따라오지 않으실 모양입니다?”
“자네를 따라가고 싶지만, 개방의 늙은이들이 나를 계속 불러서 한동안은 개방에 잡혀 있어야 할 듯하네. 자네도 한동안은 휴식기에 들어갈 테니 지금 개방의 일을 끝마쳐 두려고 하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지요?”
“왜 그러나?”
나는 손가락으로 내 앞에 있는 독룡과 제갈성을 가리켰다.
“모이기 어려운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모인 김에 다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나의 말에 독룡이 눈을 빛냈다.
“좋습니다. 안 그래도 섬서에서의 일이 궁금했는데. 식사는 제가 사겠습니다.”
“저도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잘되었군요.”
“어이구. 오늘 거지 입에 기름칠하겠군.”
“가시지요.”
우리는 빠르게 무림맹 건물을 벗어났다. 뒤에서 시선들이 따갑게 나의 뒤통수를 찔렀지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들어갔던 것과 같이 무림맹의 남문으로 나온 우리의 발걸음은 가장 커다란 객잔으로 향했다. 객잔의 점소이는 독룡의 얼굴을 보자 따로 묻지도 않고 바로 객잔의 가장 위로 우리를 안내했다.
“자주 오는 곳인가?”
“맹에 올 때마다 들리는 곳이지. 숙수가 내오는 음식이 다 기가 막히네.”
우리는 창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자 입을 연 제갈성.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
“여기서 좀 걸어가야 하네.”
“숙소를 옮겨야 할 걸세.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좋지 않겠나.”
아마도 오늘 밤이 지나고 어느 정도 계산이 선 그 이후에는 어중이떠중이들까지 전부 내가 머무는 곳으로 찾아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에게는 내가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닐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새롭게 떠오르는 나에게 얼굴을 한 번이라도 들이밀어 인연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일 테니.
그러니 지금 머물던 객잔에서 움직여야 했다. 지금 있는 객잔은 조용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맞이하기에는 작고 누가 다가오는 것을 막기에도 힘들었다.
내가 답을 하기 전 독룡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은 어떻겠나? 어차피 자네와 당가가 함께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어쭙잖은 핑계로 자네를 만나러 오는 어중이떠중이들은 당가의 이름이 걸러줄 걸세.”
“고맙네.”
“고맙기는 무슨. 가주님께서 항상 자네에게 도움이 되라고 한 것을 지킬 뿐일세.”
독룡이 허허 웃는 동안 객잔의 점소이가 뛰어왔다. 점소이는 과한 인사와 함께 깊게 허리를 숙여 주문을 받았다. 독룡의 주문은 간단했다.
“자신 있는 것으로, 음식이 남아도 좋으니 종류별로 겹치지 않게. 그리고 술도 몇 병.”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주문을 듣자 빠르게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오늘은 제가 사는 것이니 마음껏 드시지요.”
“당가의 씀씀이가 이 거지의 마음을 울리는군.”
가벼운 농담이 몇 차례 돌자, 점소이가 술과 가벼운 안줏거리를 먼저 올렸다. 점소이가 내려가자 가볍게 도는 술잔.
“섬서에서의 이야기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독룡의 말. 그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지금 모두의 이목이 쏠려있는 섬서. 그 자리에 없었던 독룡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제갈성도 독룡의 말을 받았다.
“저도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당시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거기다 노개 어르신과 정운은 만마와 끝까지 맞서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둘만 있었던 것이 아닐세. 회의에서 듣지 않았나. 귀객 어르신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몰랐네.”
나도 노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귀객 어르신이 없었다면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만마가 힘을 아끼지 않았다면 둘 다 섬서에 누워있었겠지요.”
귀객의 이야기가 나오자 독룡의 입이 다시 열렸다.
“분명 당가에서는 섬서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한다고 했는데. 귀객 어르신은 어떻게 그 정보를 알고 있는 건지…….”
“당가에서 알려준 것이 아닌가?”
노개의 질문에 독룡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귀객 어르신은 저희가 연락받았을 때 이미 당가에 있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 있으시다고 하고 훌쩍 떠났지요. 당가는 억울합니다.”
“당가에서 정보를 받은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받았을까.”
“당가가 아니라도 사천에 문파가 많지 않습니까. 청성이나 아미 쪽에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있지요. 거기다 귀객은 매우 오랜 기간 무림에 있었으니 다른 곳과 연줄이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