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들이 내 음악을 너무 좋아함 04권
톱스타들이 내 음악을 너무 좋아함 04권
톱스타들이 내 음악을 너무 좋아함
04
악질러
톱스타들이 내 음악을 너무 좋아함 04권
차례
Chapter 01. 영감 제조기 - 2
Chapter 02. 드라마가 쓰러지지 않아!
Chapter 03. 고점 폭발
Chapter 04. 지키지 못한, 지키지 못할
Chapter 05. 가장 높은 곳에서
Chapter 06. 대마불사 - 1
톱스타들이 내 음악을 너무 좋아함 04권
Chapter 01. 영감 제조기 - 2
전날 술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난 강유희 작가가 기지개를 켰다.
몸은 시원했지만, 마음은 상당히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게, 어제 꽤 긁혔으니까.
‘오혜진 그 년…….’
은근히 이주윤을 돌리는 척하면서, 자신에게도 화살이 가도록 얘기했다.
특히, 한번 거하게 말아먹었던 드라마 얘기를 꺼냈을 땐 표정 관리가 안 될 뻔했다.
아침부터 눈살을 찌푸린 강유희가 침대 아래 있는 명품 실내 슬리퍼를 신었다. 폭신폭신한 털 감촉이 좋다. 그대로 거실로 나가, 값비싼 브랜드의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 먹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을 보며, 어차피 자신은 인생의 성공자라고 되뇐다.
그녀만의 멘탈 치유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는데…….
‘정청율 걘 대체 뭐야?!’
갑자기 솟구친 짜증에, 슬리퍼를 신은 채 바닥을 즈려밟았다.
정청율, 정청율…….
자신의 드라마 사운드 트랙을 맡는 건 거절해놓고, 무슨 이주윤 작가 같은 되도 않는 애한테 붙어?
“하! 어이가 없네 진짜.”
물론, 강유희가 먼저 박태우에게 맡긴다고 청율을 깐 거였지만.
그 뒤에 김명석 PD를 통해 연락하자, 청율이 매몰차게 거절했었다.
‘원래 박태우한테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고!’
박태우 소속사 대표가 KBC 드라마국장과 긴밀한 사이여서 업어간 거지, 원래는 정청율로 하려 했다.
그래서 더 아까웠다. 마치 이주윤에게 작곡가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
뭐, 그래도 괜찮은 작곡가는 널렸으니까.
강유희는 확인차 김명석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아 달칵, 하고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강 작가?
“응. 정청율 어떻게 됐어.”
정청율에 대해 묻자 한숨부터 나온다.
― 안 됐어. 주변에서 뭐 심폐소생 작곡가다 뭐다 하니까 어깨에 힘 빡 들어간 건지 뭔지…… 대박작 드라마에 음악 몇 개 실으면 홍보 효과가 몇인데. 걔는 왜 편한 길 두고 이상한 데 붙냐?
“됐어. 정청율 그냥 치워. 필요 없으니까. 그냥 다른 작곡가 알아 봐.”
― 알았어. 어차피 강 작가 드라마라고 하면 손 드는 작곡가 쌔고 쌨어. 정청율 그건 그냥 잊어버려.
“알았어. 일단 끊어.”
뚝, 하고 전화를 끊었다.
슬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 대본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강유희 작가는 노트북 앞에 앉기를 선택하는 대신,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이번에는 신호음이 길게 가더니,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 ……네, 작가님.
“너 지금 몇 신데 출근 안 하는 거니?”
― 지금 가는 중인―
“작품 픽스 되면 20분 일찍 출근하라고 내가 몇 번 말해! 말귀를 못 알아듣니 왜!”
―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끊어버린다.
새끼 작가들에게 으름장까지 한번 놓고 나서야 화가 좀 풀리는 것 같다.
강유희는 그렇게, 보조 작가들이 올 때까지 한강을 내려다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 * *
이주윤 작가의 노트북 타자기가 쉴 새 없이 두드려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각성 상태.
백찬우 PD는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요즘 작업할 때마다 정청율 작곡가 곡을 듣네.’
심지어, 다 완성되지도 않은 건데.
신기하게도 저 곡을 들을 땐 엄청나게 집중하는 것 같다. 옆에다가 무슨 메모까지 하는 걸 보면, 완전히 몰입한 것 같은데…….
백 PD가 이주윤 작가를 관찰하고 있는데, 그녀가 기지개를 켰다. 작업이 얼추 끝난 모양.
백찬우는 이주윤 작가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때, 오늘 작업 괜찮아?”
“와, 완전 좋아요. 이상하게 청율 씨 곡 들으면 영감이 샘솟는다고 해야 하나…? 청심환이나 안정제로도 이런 효과는 못 봤는데…….”
“뭐, 그럼 다행이고.”
백찬우가 팔짱을 끼며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이제 프리 끝나가는 거 알죠?”
“아, 알아요…….”
“대본리딩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그…….”
이주윤 작가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대본리딩.
어찌 보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당연히 거쳐가는 과정이었다.
작가는 배우들이 리딩하는 걸 보고,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와 다르다고 생각되면 수정을 요구한다. 캐릭터 해석 다시 하라고.
하지만, 그건 이주윤 작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제, 제가 틀렸다고 하면 상처받진 않겠죠?”
“하아…….”
백찬우 PD가 제 마빡을 탁, 하고 때린다. 그대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
이주윤 작가는 남에게 쓴소리 하나 하지 못하는, 극도로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사람들을 마주하지 않고 일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그런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고, 심지어 누군가에게 뭔가를 명령하는 자리는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이주윤이 손톱을 뜯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저, 피, 피디…님.”
“왜요.”
“리딩장에 정청율 작곡가님……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예? 그게 뭔…….”
리딩장에 사운드트랙 작곡가를 참여시킨다고?
아니, 안 될 건 없다.
안 될 건 없지만―
“굳이?”
“그, 그게…… 정 작곡가님이 만든 곡들을 보면, 정말 제 드라마를 깊게 이해한 티가 나서요. 옆에서 조언을 들을 수도 있는……거고요.”
“흠…….”
“그래야 제, 제 마음이 조금 더 편할 것 같아요…….”
“…….”
백찬우 PD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주윤을 쳐다봤다.
저게 무슨 캣닢 달라고 하는 고양이 같은 소리야.
정청율이 무슨 디퓨저나 토템도 아니고. 옆에 있는다고 뭐 나아지겠나.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면 뭐…….’
백찬우 PD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 작곡가님만 좋다면 참석시킵시다.”
* * *
나는 지금 다시 주크박스가 보여주는 환상 속에 들어와 있다.
어제 이주윤 작가의 멘탈이 개복치 중에서도 톱급 개복치인 걸 확인하고, 좀 더 작업을 해둬야 할 것 같아서.
환상을 본다기보단, 마치 빙의 현상 같다.
나는 또 김주원 형사가 돼 있었다.
희대의 연쇄 살인마 오춘배를 검거한 형사.
그런 내가 국밥을 먹고 있다. 앞에는 오춘배의 아들, 오치오가 앉아 있었다.
나는 지금 저 22살의 바르게 자란 청년, 오치오를 의심하고 있다.
“……먹을 만해? 맛집이라고 데려왔는데.”
“맛있어요. 그리고 사주시는데 당연히 인사 박고 그릇까지 핥아먹는 거죠! 하하!”
나는 피식 웃었다.
녀석, 이제는 저렇게 넉살도 부릴 줄 알고. 잘 컸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형사의 눈과 촉은 오치오를 면면히 훑고 있었다.
‘피해자가 어떻게 죽었더라?’
교살.
목이 졸려 죽었다. 등산용 밧줄로 아주 강하게 목이 졸렸다. 가해자는 아마 손에 상처가 있을 것이다.
아, 아니지. 보통 계획 범죄면 장갑을 착용하고 하니까, 상처가 없을 수도 있다.
맙소사. 너무나 공교롭다. 앞에 앉아 있는 오치오의 손에 긁힌 듯한 상처가 있다. 다리를 달달 떨었다. 나는 지금 내가 몇 년이나 내 애처럼 돌봐준 아이를 살인범으로 의심하고 있다. 미치겠다.
하지만, 형사의 촉은 멈추지 않는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이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저번 주쯤 뭐 했어?”
“저번 주요? 언제요?”
“화요일? 그때 학교에서 동아리 친구들이랑 술 마셨다고 했나?”
“맞아요. 어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뭐 그렇게 마시는지. 제가 걔 부축하느라 정말…… 봐요. 손에 상처. 이거 그때 다친 거예요.”
오치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 말을 믿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내 속에선 구렁이가 한 마리가 똬리를 튼다.
좀 더 떠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쳐든다.
맞다.
“그렇구나.”
나는 지금, 이 아이를 의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