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9권
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9권
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9
흑푸우
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9권
차례
Chapter 01. 노환.
Chapter 02. 장례.
Chapter 03. 유언장.
Chapter 04. 유산.
Chapter 05. 유류분.
Chapter 06. 추적.
Chapter 07. 마지막 일.
Chapter 08. 김규일.
Chapter 09. 두 번째 유언장.
Chapter 10. 이강자.
Chapter 11. 유언장.
Chapter 12. 임원.
Chapter 13. 기회.
Chapter 14. 전권.
Chapter 15. 숙제.
Chapter 16. 압박.
Chapter 17. 대행.
Chapter 18. 관세.
Chapter 19. 대리인.
Chapter 20. 연기.
Chapter 21. 착각.
Chapter 22. 합.
Chapter 23. 규제.
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9권
Chapter 01. 노환.
삐이삐이.
적막한 중환자실에 전파 소리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환자실에는 본처, 숙부, 숙모, 고모, 고모부가 있다.
사촌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나는 혼외자라고 해도 종손이었기에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급을 나누는 재벌의 모습에 실소가 흘러나온다.
이미 중환자실에서 한바탕했는지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숙부가 앞으로 나와 조용히 말한다.
“조금 전에 주치의가 다녀갔다. 아버님 상황이 좋지 않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단다.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해라. 우리도 지금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함께 파주에 다녀온 밤 안았을 때 왜소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더 왜소해져 있다.
이른바 코끼리 코라는 것으로 입을 감싸고 억지로 숨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뼈만 남은 손을 잡았다.
올해로 구순이 되셨는데 조금만 더 버티시지. 나랑 드라이브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수정이랑 결혼하는 모습도 보시고.
“병명은 뭐라고 합니까?”
이번에도 숙부가 대답한다.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정밀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신체 기능이 모두 떨어진 상황이라 병명을 딱히 뭐라고 하질 못하더라. 노환이라고 하면서 평소에 앓고 있던 심장 질환이 원인이 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아흔이면 많이 사셨지. 이제 돌아가실 때도 되었어.”
눈치 없는 고모가 끼어들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눈칫밥을 먹었다.
“내가 못 할 말 했어? 누가 아빠 죽는 걸 원해서 하는 말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고모 목소리가 커진다.
“병실이다. 조용히 해라.”
숙부가 한마디 하자 입술을 쭉 빼 밀더니 고모부의 한쪽 팔을 붙들고 돌아선다.
백화점 경영에서도 멀어진 고모.
본처나 숙부와 처지가 다를 것이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가 깨어나서 그룹 경영에 관해 정리해 주시기를 바랄 거고 고모는 상관없다는 입장이겠지.
나는 묵묵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예상한 거는 아니다.
내 마음을 열고 함께한 시간이 너무 적었다.
진짜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같이 있을 때는 어리광을 부리듯 농담하곤 했었는데.
이게 조손 관계구나, 마음속에 새로운 감정이 신선했고 따뜻했었는데.
이제야 진짜 가족이 생겼다고 좋아했었는데.
얼마 전에 할아버지와 파주에 함께 가지 않았다면 너무 아쉬웠을 것 같다.
조금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이제야 가족 같은 가족을 만나서 생긴 내 욕심이었고 고모 말대로 나이를 많이 드셨고, 숙부가 전한 말대로, 노환으로 신체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머리로는 정리가 되었는데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조금만 힘을 내 주세요. 오래 버티시고 함께 좋은 데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수정이랑 결혼하는 모습도 보여 드리고 싶은데 제 욕심이겠죠. 오래 버티시라고까지는 안 할게요. 눈만 떠 주세요. 우리 인사는 하고 떠나셔야죠.’
할아버지가 눈을 뜨신다면 말씀을 드릴 작정이다.
최소한 내게 마음을 여신 분에게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말씀드리고 싶다.
‘저는 한준수가 아니에요. 이상이에요.’라고.
* * *
경제지는 물론이고 모든 언론이 들썩였다.
언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술렁거렸다.
[선전 한강 회장 쓰러져.]
자막을 띄우고 뉴스 채널에서는,
「선전을 이끌고 대한민국의 큰 축이 된 반도체의 아버지 한강 회장이 어제 오후 5시경 쓰러져 선전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였다고 전해졌습니다.
선전에서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은 상황이며 원인은 노환으로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라고 알려졌습니다.
위급한 상황으로 전문가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의견입니다.
전문의이신 고려 병원 중증 외상 센터 백순일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노환으로 신체 기능이 떨어졌다면 위험한 상황입니다. 심장 질환이 있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입니다. 한강 회장이 올해로 90세이니 지병으로 심장 질환이 있었고 신체 기능 저하가 원인이라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다만, 선전 병원 의료진은 국내 최고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한강 회장의 병세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만약 사망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선전을 경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강 회장의 부재는 선전에도 한국 경제에도 변수가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다음은 선전 병원에 나가 있는 이시원 기자가 현장 상황을 전하겠습니다.
“지금 선전 병원에는 취재진이 몰려 있습니다.
취재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전 병원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파장이 심각해질 수 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중환자실에는 의료진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병원장도 어젯밤 선전 병원을 떠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 선전 병원은 조용한 가운데 모든 상황을 대비하는 모습입니다.
이상 선전 병원에서 이시원이었습니다.”
“병원장도 퇴근하지 않았다면 심각한 상황이라고 봐야겠지요.”
앵커의 말에 의사 가운을 입은 전문의가 답한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전 병원장님이 퇴근하지 않았다는 건 응급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강 회장이 이대로 죽는다면 한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어떨 것으로 보십니까?”
“심각합니다. 선전은 아직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정은 회장이 있지 않습니까?”
“최근 파운드리 실적 저조로 선전 전자만 경영하고 있습니다. 한광수 부회장도 있기 때문에 한강 회장 사후 누가 경영권을 차지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선전은 물론 한국 경제를 위해서 바라지 않는 일이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 심각해지겠죠.”
“선전은 대한민국 제일 그룹입니다.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다면 글로벌 사모펀드나 특정 국가의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모펀드는 몇 번의 경험이 있으니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국가가 기업을 노린다니 의외인데요?”
“선전 그룹의 기술이 문제입니다. 반도체는 물론이고, 스마트폰, 조선업, 자동차용 이차 전지, MLCC 등 현재 1위 기술을 다수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선진국에서도 기술을 노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말씀을 들으니 심각한 상황인데 선전이나 정부에서는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요?”
“정부에서는…….”」
뉴스 채널에서는 각계의 전문가를 앵커 룸에 데려다 놓고 24시간 특별 방송을 편성해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다른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뉴스를 쏟아 내고 있었고, 너튜브에서도 경제 전문 채널을 비롯해 다수의 크리에이터가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한국뿐이 아니었다.
인접국인 일본, 중국은 물론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남미의 언론에서도 한강 회장이 쓰러졌다는 보도를 했다.
내전으로 정신없는 아프리카 언론에서도 보도를 내보내는 실정이었고, 북한에서도 소식을 전했다.
주식 시장은 요동쳤고, 주식 갤러리에서는 난리가 났다.
한국 주식 시장이 빠진 건 물론이고 일본 니케이에 미국 에스앤피와 나스닥까지 빠졌다.
[한강 회장님, 일어나세요. 한국 주식 망해요.]
[아직도 동학 개미가 남아 있네. 바퀴벌레냐? 끈질기네.]
[한강 회장이 쓰러졌는데 나스닥은 왜 빠지냐고?]
└ 메모리 반도체 공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AI를 비롯해 서버랑 스마트폰을 제작하는 M7 주식 다 빠졌음.
[마스크 주식은 왜 빠지는데.]
└ 응, 그건 한강 회장과 관계없이 마스크 리스크. 회사 일은 안 하고 다른 일에 빠져서 그럼.
[난 먹고 빠짐. 크하하하.]
└ 꺼져.
라엠월드에 몰려든 구독자들도 댓글로 한강 회장의 상태를 물어보거나 사후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지 걱정했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한강 회장님 돌아가시는 거 아니야?”
“나이가 많이 드셨으니 그럴 만도 하긴 한데, 왜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해 놓지 않아서 이 사달이냐고.”
“정했었지. 큰아들. 이름이 뭐였더라?”
“한광국.”
“맞아, 한광국 사장. 교통사고로 죽었지, 아마.”
“그게 언젠데.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뭐 했냐는 거지.”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었다.
* * *
중환자실에서 밤을 새우고, 급한 일은 전화로 지시하면서 할아버지 옆자리를 지켰다.
다른 사람들은 중환자실을 벗어나 쉬기도 하고 일 처리도 하곤 했는데 나는 중환자실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벗어나지 않았다.
혹시 깨어나시면 말을 전할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에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