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8권
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8권
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8
흑푸우
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8권
차례
Chapter 01. 인정.
Chapter 02. 자격.
Chapter 03. 무게.
Chapter 04. 격.
Chapter 05. 방한.
Chapter 06. 회담.
Chapter 07. 협상.
Chapter 08. 이유.
Chapter 09. 욕심.
Chapter 10. 여파.
Chapter 11. 론칭.
Chapter 12. 김치 프리미엄.
Chapter 13. 반응.
Chapter 14. 시사회.
Chapter 15. 작품성.
Chapter 16. 권한 위임
Chapter 17. 무덤덤.
Chapter 18. 가격.
Chapter 19. 착각.
Chapter 20. 시나리오.
Chapter 21. 감각.
Chapter 22. 걱정.
Chapter 23. 남 탓.
Chapter 24. 행운.
Chapter 25. 불행.
재벌집 사생아로 사는 법 08권
Chapter 01. 인정.
“한국에서는 ‘야쿠자’를 한국 영화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논쟁을 위한 논쟁이었다.
‘야쿠자’가 칸 국제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대된 것을 두려워한 물타기 논쟁.
영진위에 한국 영화 인정 요청서를 제출하고 평가를 받으면 될 일이다.
칸에서 수상한 영화다.
한국 영화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여론에서 들끓어 오를 거다.
저 기자도 뒷돈을 먹었을 거다.
그래서 물었다.
“어느 언론사의 누구신지요?”
여태껏 인터뷰를 하면서 모든 기자가 출신과 이름을 밝히고 질문했다.
저 사람만 빼고.
“신라일보의 김중권입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한다.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히려 질문했을 때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니 출신과 이름을 밝힐 수밖에 없다.
다른 기자들이 다 말했는데 무슨 수로 발을 뺄 수 있을까?
“질문에 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웃었다.
그리고,
“굳이 한국 영화라고 인정을 받아야 하나요?”
웅성웅성.
김중권은 꼬투리를 잡았다는 생각에 입꼬리를 올리더니 다시 질문을 이어 간다.
“한국 영화라고 인정받지 않아도 흥행을 장담하는 데는 필요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렇게 오해하시면 안 되죠.”
나는 아직도 웅성거리는 기자들을 둘러보고는,
“남궁문 배우가 한국 배우로서 ‘야쿠자’에 출연해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이미 한국 영화인데 무슨 인정이 필요한가요?”
“감독은 외국인이며,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김중권은 끈질겼다.
“기자님께서 논쟁이 있다고 하셨는데 ‘야쿠자’를 한국 영화로 인정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영진위에서 말한 내용인가요?”
나는 질문에 질문으로 몰아붙였다.
김중권은 첫 번째 질문으로 곤란함에 빠졌다.
‘야쿠자’를 한국 영화로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의 이름을 공개하여 아군에게 화살을 날릴 것인가?
칸에서 수상한 영화를 한국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역적이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되기 때문이다.
입을 다물어 자신이 만든 논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머뭇거리고 있는 김중권에게 돌을 던진다.
“영진위에서 언급한 내용인가요?”
공식적인 기관에서 한국 영화인지 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냐고 물어보는 거다.
그럴 리가 없다.
영진위의 기준에 따르면 ‘야쿠자’는 한국 영화로 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 기관이 아닌 몇몇 비평가들이 떠드는 내용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김중권은 머뭇거리더니,
“대표적으로 이상우 비평가와 배일진 감독이 한국 영화로 인정할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결국 비겁함을 선택한다.
이런 자들의 특징이다.
의리도 없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선택을 한다.
더 이상 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두 분이 말씀을 하시면 논란이 되는 거군요. 저는 칸에서 수상한 자랑스러운 한국 영화에 관해 신라일보에서 논란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랑 같은 생각을 가지신 기자분들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생중계 중이다.
그걸 떠나서 계속 질문을 독점하는 김중권이 반가울 리가 없다.
기자 대부분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든다.
이례적으로 카메라가 인터뷰이가 아닌 기자들을 비춘다.
“최소한 둘 이상이네요. 신라일보에 논란이 생겼네요. 이 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카메라가 안색이 변한 김중권을 비춘다.
아군에게까지 총을 쏘는 비겁한 기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언론들은 내가 던진 돌을 집어 같이 던지기 시작했다.
종이 신문 1위 발행 언론이라고 뻐기던 신라일보를 좋게 보지 않았었는데 꼬투리를 잡은 거다.
[영진위 ‘야쿠자’는 이견 없는 한국 영화.]
[논란을 위한 논란 이대로 좋은가?]
[자랑스러운 한국 영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영화계는 물론 언론계도 자정 노력 필요.]
뿐만 아니었다.
신라일보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구독 취소가 잇달았다.
누가 종이 신문을 볼까 하지만 신라일보는 종이 신문 구독으로 유의미한 매출을 올리고 있던 언론사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물밀듯이 빠져나가는 구독자에 급기야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이랬다.
[기자 개인의 의견이었음. 신라일보는 한국 영화 ‘야쿠자’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열이 제대로 받은 영화인들을 비롯한 국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중권 기자가 쓴 인터넷 기사에 몰려가 댓글 테러를 진행하였고, 신문사에는 사과로만 그치지 말고 적절한 조처를 하라고 항의했다.
결국,
김중권 기자에게 정직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지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상우 비평가와 배일진 감독은 신라일보 사태를 보면서 조용히 은퇴를 선택했다.
아니, 정확히는 은퇴당했다.
그들을 부르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야쿠자’는 무리 없이 한국 영화로 인정받으면서 한국 영화제에도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 * *
‘야쿠자’의 한국 영화 인정 건은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났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레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남궁문 배우의 연기 경력에 새로운 장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궁문 배우가 이룬 업적이지 제가 한 일이 있나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실제 하고 싶은 말은 뒤에 있는 거 같은데요.”
[들켰나요? 몇 번을 말씀드려도 질리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바랍니다. 우리 앞으로도 이런 좋은 관계를 유지하죠.”
[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단순한 감사 인사였다.
레이는 남궁문 배우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느꼈고, 경영인으로 자세가 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감사 인사를 하면서도 향후를 위해 여지를 남겨 두는 말을 포함했다.
처음엔 잘못된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흥미 있는 사람이다.
[칸 영화제 수상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영혼 없는 축하에는 영혼 없는 감사가 따른다.
[네 인터뷰 덕분에 내가 곤란해졌다.]
“당신이 뒤에서 무언가를 하려 한 결과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칸에서 수상했다고 이미 결론이 났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개봉도 안 했어.]
“기대할게요. 저는 제 준비에도 바빠서 남 영화 신경 쓸 겨를이 없네요.”
전화가 끊겼다.
본처는 전화 예절부터 배워야 한다.
인터뷰가 파급력이 있기는 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