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第二十一章 수상전투(水上戰鬪)
第二十二章 개지신기(開地新基)
第二十三章 천고절명(千苦絶命)
第二十四章 사신구활(捨身求活)
第二十五章 삼지교차(三支交叉)

第二十一章 수상전투(水上戰鬪)
- 강물 위에서 처절한 싸움
지동서마는 숨을 죽였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여느 때보다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마천 마인이 검각 영토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없었다.
이것은 중대한 협정 위반이었다.
마천 백마는 검각 땅을 밟지 못한다.
검각 구십구검은 마천 땅을 밟지 못한다.
이는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불문율이자, 피로 쓰여진 약속이었다.
마천 마인이 검각 땅을 밟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스으으읏!
지동서마의 발걸음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진기는 최소한으로 억제되어 있었고, 호흡마저 완전히 차단하다시피 했다.
발자국 하나라도 잘못 남기면 전면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발각되면 끝이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의 존재가 드러난다면, 검각의 고수들은 즉시 암대 추적을 멈추고 자신을 쫓을 수도 있다.
오랜 숙적의 침입을 그냥 둘 리 없었다.
스읏!
그는 복우산 기슭의 그늘 속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위험한 관찰이지만, 이 정도는 자신있었다.
‘뭐지?’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검각 정예들이 암대에게 밀린다.
암대는 누가 봐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소규모 집단이다.
한데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다.
‘말도 안 되는데?’
지동서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검각 수비대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개개인이 모두 일당백의 검사들인데……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 암대 같은 부랑아 집단에게 밀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호기심이 그의 이성을 잠식했다. 더욱 자세히 보고 싶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켜보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더 가까이 가면 위험해.’
그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이토록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몹시 답답했다.
검각의 땅에서 마천 마인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
달빛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재빨리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완벽한 은신이었다.
‘뭔가 있어. 분명 뭔가가…….’
그의 날카로운 눈이 계속해서 암대를 좇았다.
이 기이한 상황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하는 욕망이 그의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청화균!
‘이건! 아!’
비로소 무릎이 탁! 쳐졌다.
검각 수비대가 형편없이 밀리는 원인을 찾아냈다.
지동서마와 지동언서는 땅속 생활을 즐긴다.
땅 위에서 사는 것보다 땅속에서 사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런 탓에 땅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안다.
청화균은 지동언서들이 주의해야 하는 독균 중에 하나다.
큰 위협은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진기가 약해지는 현상을 겪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후후! 검각이 한 대 크게 맞았네. 그런데……검각은 이런 걸 모르나? 모른다면 이거……잘 쓸 수 있겠는데? 괜히 알려줄 필요도 없고. 킥킥!’
지동서마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 * *
구르릉!
땅속 깊은 곳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지동서마는 호흡을 멈추고 그 진동에 집중했다.
그의 온몸이 하나의 감각기관이 되어 지면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있었다.
땅울림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뭔가 시작됐어!’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암대는 승리에 들떠있다. 오늘 밤은 이대로 조용히 지나갈 것 같다.
이미 충분히 시끄러웠다. 한데 그때, 땅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진동이 전해졌다.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절벽?’
지동언서의 눈이 번쩍 빛났다.
암대가 수직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탈출로였다.
또한 기쁨에 들떠서 피곤한 몸을 눕혀야 할 시기에 탈출이라니. 예상 밖이었다.
파파파팟!
그의 손가락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땅속으로 특별한 진동을 보냈다. 약속된 신호다.
이 신호는 중간중간 땅을 파고 숨어있는 지동언서에게 전달된다.
지동언서는 강 건너에 있는 천응마제에게 전갈을 전할 것이고……
매가 뜬다.
신호는 정확히 전달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천응마제의 매였다.
검은 날개를 펼친 맹금이 달빛 아래를 선회했다.
그 아래로 암대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너무 쉽게 도망가면 안 되지. 우릴 그만큼 골탕 먹였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안 그래? 큭큭!’
지동언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 * *
“저것은…….”
백호검왕의 날카로운 눈이 하늘을 향했다.
달빛 아래 검은 그림자가 떠 있었다.
천응마제의 매였다.
검각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그 오만한 모습에 백호검왕의 손가락이 절로 꿈틀거렸다.
평소였다면 즉시 화살을 날렸을 것이다.
마천 마인의 매가 감히 검각의 영토를 넘보다니.
‘참아야 한다.’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달랐다. 매가 노리는 것은 암대다.
원수지간인 마천 마인과 검각이 같은 적을 쫓고 있는 기묘한 상황.
“원수의 도움이라…….”
그의 목소리에 쓴맛이 배었다.
수십 년의 적대 관계가 하룻밤 사이 이렇게 뒤틀리다니.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매의 움직임이 암대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천응마제가 검각을 무시하고 매를 날린 게 아니다.
정확하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 안내를 해주고 있는 셈이다.
“저기 봐! 매가…….”
“산을 넘어가잖아?”
수비대원들의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젠장! 저놈들이 이동을!”
“저쪽은 뭐가 있지?”
백호검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매가 선회하는 방향은 그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
“옥산검곡이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기암괴석이 칼끝처럼 솟구친 계곡…….”
검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옥산검곡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달빛 아래 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마치 검각의 무인들을 조롱하듯 유유히 날갯짓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원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쓰디쓴 약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그 약이라도 삼켜야 할 때였다.
* * *
“과유불급이었소.”
청운검객의 말이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떨어졌다.
암영검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입가에 맺힌 쓴웃음이 달빛에 희미하게 비쳤다.
삼백 명.
그들은 그 숫자에 현혹되었다. 압도적인 병력이 승리를 보장할 것이라 믿었다.
암대 따위야 수적 우세로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좁은 산길은 그들의 오만을 비웃었다.
너무 많은 무인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검을 휘두를 공간조차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았고, 그들이 자랑하던 절정의 검술은 좁은 협로에서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무력화되었다.
그래서일까? 위력이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