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챕터 7
챕터 8
챕터 9
챕터 7





어쨌든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른 결과 일행들은 모두 고무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딜러들이 이탈할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은 바다에 풍덩 빠져 배에 올랐지만, 그들이 보트에 오르는 동안 하민이 지원 사격을 해 줘 다행히 무사할 수 있었다.

“……출발!! 출발!!!”

일행들이 보트 위에 무사히 오른 것을 확인한 후 해양 경찰이 무전기를 들고 급하게 외쳤다. 하민이 지원 사격을 하고 있다곤 하나 좀비의 수가 수다 보니 금방이라도 배 위로 달려들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좀비들이 고무보트에 올라타기 전 보트가 먼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비들은 한층 자극적인 소리에 눈을 벌겋게 뜨고 좀 전보다 더 격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들이 달려든 곳에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밑바닥을 모르는 깊이를 가진 바다였다.

풍덩!!

앞서 달려오던 좀비 한 마리가 바다에 빠지는 것과 동시에 좀비들이 우르르 바다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곳이 사지인 줄도 모르고 우르르 달려드는 꼴이 장관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일행들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그중에는 환성을 지르고 휘파람을 부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일행들 일부에서 시작된 작은 축제가 모두에게 전염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일행들은 모두 바다로 풍덩풍덩 뛰어드는 좀비를 보며 달뜬 얼굴로 야유하고, 환호했다.
환성을 지르거나 휘파람은 불지 않았지만 기분이 들뜨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속이 다 시원하네!’

게임으로 할 때야 버그는 버그지, 망할 운영진 새끼들아! 하고 욕을 했지만.
이렇게 현실에서 직접 놈들이 바다 저편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니 기분이 색달랐다.
어떤 느낌이냐면, 지금까지 놈들에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괴롭힘당한 스트레스가 바다를 향해 우르르 쏟아지는 좀비들의 다이빙과 함께 싹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 * *

우리 일행이 월미도 주둔지에 복귀한 것은 이미 해가 져 사방이 컴컴해진 시각이었다.
거리상으로 봤을 때 이렇게 오래 걸릴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수로 보트를 육지에 너무 가까이 붙여 좌초되거나, 먼 바다에 나가면 곤란하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히 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해가 뜨기 전에 온 것도 운전자가 근처를 잘 아는 덕분이지.’

아니었으면 바다에서 길을 잃거나 해가 떠 육지가 보일 때까지 바다 위에 동동 떠 있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고생 끝에 월미도 주둔지에 도착한 일행들은 한껏 지친 얼굴로 보트에서 내렸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어두운 밤에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는 사실에 꽤 긴장했던 모양인지 육지로 내려가는 다리가 은근히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압권은 이동윤이었는데, 일행 중 가장 뱃멀미를 심하게 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분명 배에 타기 전에 멀미약을 먹어 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약발이 전혀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동윤은 고무보트를 타고 오는 동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속에 있는 걸 다 털어 내고도 모자라 헛구역질까지 해댔다. 얼마나 힘들게 구토를 해대는지 차라리 기절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안전장치도 없는 고무보트에서 기절하면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아무도 도울 수 없으니 기절이라는 수단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뱃멀미에 한참 시달린 이동윤은 일행들의 손에 끌려 올라오다시피 육지로 올라오곤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더 이상 서 있을 기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한편, 이동윤과 반대로 밝은 얼굴을 하고 고무보트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하민과 박진우였다.

“와아! 완전 재미있었어요!!”

분명 나이와 뱃멀미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 텐데. 하민은 탄성을 지르며 보트에서 폴짝폴짝 뛰어 내려왔고, 박진우도 은근하게 들뜬 표정으로 보트에서 내려왔다. 둘 다 뱃멀미는커녕 밤바다 보트 여행을 실컷 즐긴 얼굴이었다.
보트 타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타 볼걸 그랬다고 말하는 하민과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박진우를 이동윤이 텅 빈 동태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둘의 튼튼한 신경이 부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푹 퍼진 이동윤의 곁으로 다가가 인벤토리에서 몰래 꺼낸 이온 음료를 건넸다.
오는 동안 구토를 그렇게 했으니 수분 보충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이온 음료를 흔드니 이동윤이 끄영차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그대로 누워서 먹어도 아무 말 안 할 텐데 번거롭게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다니. 하여튼 빡빡한 놈이었다.
내 손에서 페트병을 받아 든 이동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이온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엄청 목말랐나 보네.’

그래도 병 크기가 손 한 뼘은 되는 사이즈였는데. 목을 젖히고 마시기 시작한다 생각한 시점에 이미 페트병이 비어 있었다.
아주 물먹는 하마가 따로 없었다.
순식간에 텅 빈 페트병을 탈탈 털어 남은 한 방울까지 다 마신 이동윤은 그제야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 큼! 합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아니, 뭘. 그보다 걸을 수 있겠어? 여기서 숙소까지 그래도 꽤 걸어가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걷는 덴 문제 없습니다.”

내 걱정에 단호하게 답한 이동윤은 삐걱삐걱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치긴 지쳤는지 아직 걸음이 좀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숙소까지 걸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럼 이제 짐을 옮겨 볼까?”
“얼른 가서 쉬고 싶으니까 서두르죠!”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일껏 구해 온 물건들을 이렇게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거야 밤이 늦었으니 내일 해도 된다고 해도, 가뜩이나 물자가 부족한 곳에 낚싯대라는 군침 흐르는 먹이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지만 만약 아침이 되기 전에 피난민에게 발견되기라도 했다간 그대로 털릴 게 분명했다. 피난민 스스로 먹을 걸 구할 수 있게 한다는 면에서는 같은 결과지만, 그렇게 되면 군대에서 식량 사정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거기다 특정 인물이 물건을 차지하게 되면 결국 전체적인 식량 상황에 큰 변화는 가져올 수 없을 테고. 그렇게 되면 일껏 고생해 놓고 오히려 주둔지 내의 통제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다른 일행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피곤한 얼굴을 하고도 하나씩 짐을 들쳐 메었다.
나도 다른 일행과 마찬가지로 짐을 어깨에 메고 일행들의 앞에 섰다. 군인들이 있는 창고까지 가려면 거의 월미도 끄트머리까지 가야 하는 데다, 평소라면 도로를 환하게 비추고 있을 가로등의 빛도 없어 자칫 길에 널려 있는 쓰레기에 걸려 넘어질 위험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밤중에 이동할 때는 도시 안이라고 해도 전등 빛에 의지해 삼삼오오 다 같이 뭉쳐서 이동해야 했다.
최대한 발밑을 조심하며 걸어가고 있자니 바로 옆에 붙은 김호진이 말을 걸어왔다.

“…형, 동윤이는 어디 갔어요?”
“아, 너무 힘들어 보이길래 먼저 보냈어. 애가 방패도 안 들고 있는데 비틀거리더라.”
“아이구, 걔도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네요. 평소였으면 형 거까지 자기가 들겠다고 나설 놈이.”
“하하, 그러게.”

아닌 게 아니라 이동윤은 툭 하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곤 했다. 그 대상이 나일 때도 있고 김호진이나 다른 사람일 때도 있었는데, 김호진의 말에 의하면 옛날부터 좀 그런 성격이었다고 한다. 위로 누나만 두 명이 있어서 뭐 힘쓸 일이 있으면 나서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나.

‘내 생각엔 원인이 그것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지만 말이지.’

내가 생각했을 때 이동윤의 행동은 이전부터 이어져 온 습관이라기보단 월미도에 와서 처음 격리되었을 때 홀로 주변을 경계하던 행동의 연장선 같았다. 전부 혼자 짊어지려 하고, 그게 안 되면 답지 않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니까.
그저 습관일 뿐이라면 도움을 거절당했다고 해서 안절부절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스스로 할 수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지. 하지만 이동윤은 도움을 거절하면 그것만으로도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일행 중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동윤이 무언가를 도와준다고 하면 어지간히 그의 상태가 안 좋은 게 아니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빙 돌려서 물 좀 한 잔 달라거나 제일 가벼운 짐을 콕 집어서 들어 달라고 하면서 더 쉬운 부탁을 하면 했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 보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있자니, 김호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쨌든 동윤이가 쉬러 갔으면 이건 그냥 제가 들고 가야겠네요.”

김호진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그제야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김호진의 등 뒤가 눈에 들어왔다.
각자 하나씩 짐을 든 다른 일행들과 달리 김호진은 무려 짐을 두 묶음이나 들고 있었다. 나중에 한 번 더 와서 옮기면 될 거라 생각하고 이동윤의 몫을 그냥 뒀더니 그걸 김호진이 챙겨 온 모양이었다. 아마 이동윤을 발견하면 넘길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이동윤은 이미 한참 전에 숙소로 출발해서 그럴 수도 없어졌으니 김호진의 몫이 두 배가 되었다.
이동윤이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는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 일어난 사태에 슬그머니 죄책감이 머리를 들었다.

“…안 무거워? 반은 내가 들까?”
“형도 참. 형이 짐을 나눠 들면 랜턴은 누가 들어요. 운동하는 셈치고 들고 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그래도….”
“괜찮다니까요. 그냥 발밑이나 잘 비춰 주세요.”
“……그래. 내가 발밑은 아주 기깔나게 비춰 줄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김호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조명을 고쳐 들었다.
김호진에게 말은 안 했지만, 지금 나도 상태가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만석동까지 가서 낚싯대를 구해 오고, 또 고무보트를 타고 오는 와중 생각보다 오염도가 많이 올랐던 것이다. 만석동으로 출발하기 전에 약수터까지 가서 깨끗한 물을 구해 와 비누칠까지 벅벅 해 가며 오염도를 떨어트려 놨는데. 지금은 거의 기절 직전까지 오른 것이다. 현재 오염도는 71. 앞으로 오염도가 9 정도 더 올라가면 꼼짝없이 기절이었다.
오염도 50을 한참 전에 넘겼으므로 지금 나는 당연히 페널티까지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당첨된 페널티는 근력 저하.

[일정 이상의 오염도 축적으로 랜덤 페널티가 부가됩니다.]
[페널티로 근력 저하 상태에 빠졌습니다.]

무리하면 짐 하나 더 드는 것까진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창고까지 혼자서 들고 갈 수 있냐고 물으면 자신이 없었다.
하필 근력 저하 페널티에 걸린 덕분에 지금 나는 만석동에서 땀 하나 안 흘리고 짐을 옮겼을 때와 달리 짐 하나 드는 데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이 하도 어두워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보이는 모양이라 다행이지만, 나는 관자놀이와 등을 타고 흐르는 땀에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목표로 했던 창고에 도착했을 때 나는 땀에 푹 전 옷과 슬그머니 올라오는 뻐근함에 어깨를 아래로 늘어트리고 혀를 찼다.

‘이거 내일 근육통 확정인데….’

자기 전에 오염도를 확 떨궈서 페널티를 없애거나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내일이 피곤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트레칭을 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창고 앞을 지키고 있던 군인에게 다가가 보고를 했다.

“부탁받은 낚싯대 100개 모아 왔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각을 잡고 경례한 군인이 같이 경계를 서던 군인과 함께 바닥에 차곡차곡 쌓인 낚싯대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후. 군인들은 확인이 끝났다고 말하며 창고 구석에서 바싹 마른 오징어 몇 개와 소주병 두 개를 꺼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