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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힐링식당입니다 6권
봉공(鳳公)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남들이 가지 않는 길(2)
나만 몰랐던 이야기
환골탈태
애쓰지 않아도
견제
1
남들이 가지 않는 길(2)
갈비찜과 수제비.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선보이는 음식치고는 화려한 메뉴 선정은 아니었다.
물론 틀에 정해진 메뉴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화려한 음식을 만들어야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 테니까.
맛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비교적 흔하고, 경연 프로그램이 아닌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메뉴였기에.
한승주를 포함한 심사위원 셰프 3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갈비찜과 수제비…… 그게 어울리나요?”
황순자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자신 있습니다. 기대해 주시죠.”
하지만 당찬 내 답에 황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늘 1위를 놓치지 않는 태준성 셰프님이라 그런지, 믿음직스럽네요. 기대도 되고요.”
“감사합니다. 기대해 주시는 만큼, 맛있는 음식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정영욱은 내 조리대 위를 빠르게 훑으며 물었다.
“제가 아는 태준성 셰프라면, 일반적인 갈비찜보다 더 평범한 수제비를 내놓으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의 말에 나보다 빠르게 입을 연 천종원 심사위원.
“루비 님의 냉장고에서 가져온 재료를 보니, 주재료인 갈비찜용 고기가 보이고요. 그 외에 가져온 재료는…….”
천종원은 내 조리대 앞을 어슬렁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처음 태준성 셰프가 말했던 대로 트러플이 전부네요.”
“맞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많은 재료는 오히려 맛을 해칠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적은 재료가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네요.”
그의 말에 정영욱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분의 말씀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태준성 셰프의 말대로 루비 님의 냉장고 속 재료는 모두 자기주장이 강한 재료들이 들어 있습니다.”
정영욱은 화면에 뜬 루비의 냉장고 재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트러플, 푸아그라, 캐미아, 화이트 트러플 등. 세계 진미라 불리는 재료들인만큼, 향도 맛도 모두 강한 재료들이죠. 그 재료들끼리 섞였을 때, 시너지 효과가 아닌 오히려 서로의 향과 맛을 해칠 거라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황순자는 공감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천종원 셰프님의 말씀을 토대로 이야기 드리자면, 태준성 셰프가 가져온 주재료인 ‘트러플’. 향이 아주 강한 식재료입니다.”
화면에는 내 조리대 위에 올려진 트러플이 비춰졌다.
“이 재료가 음식에 들어가면 그 어떤 음식이든, 트러플 향과 맛이 강하게 나죠. 그러나 트러플 하나로 갈비찜, 수제비를 냈을 때…… 과연 모두를 사로잡는 맛이 날 거라는 건. 조금 의문입니다.”
정영욱의 말에 천종원이 바로 답을 보냈다.
“예. 제 말이 그 뜻이었습니다. 너무 맛과 향이 강한 재료이기 때문에, 트러플 하나로 승부를 보기에는 다소 힘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는 하네요.”
탁, 탁-.
나는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손으로는 재료 손질에 집중했다.
짧은 경연 시간.
모든 걸 내려놓은 채 그들의 대화에 합류한다면, 시간 내에 요리가 완성되지 못할 테니까.
“새로운 맛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말에 천종원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걱정은 되지만, 그만큼 아주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황순자도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내게 말했다.
“흔하지 않은 음식이라, 맛이 너무 기대가 되네요. 파이팅하세요!”
한승주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멘트를 던졌다.
“그럼 태준성 셰프님, 맛있는 대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의 말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흔하지 않은 음식…….
냉장고를 고르기 전, 내가 봤던 심사 기준.
‘흔하지 않은 요리 선택, 냉장고 난이도별 점수 상이’.
이 기준대로라면 벌써 두 가지를 충족한 셈.
냉장고 난이도별 점수 상이.
즉, 가장 난이도가 어려운 냉장고를 골랐을 시에 점수가 조금은 더 후할 거라는 것.
함께 출연하는 셰프들.
그리고 심사위원들 역시 가장 높은 난이도의 냉장고로 루비의 냉장고를 선택했었다.
그 냉장고를 선택한 건, 나였지.
거기에 흔하지 않은 음식 선정.
흔한 갈비찜과 수제비이기는 했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흔치 않아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모두 같았다.
흔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말한 것.
이미 심사 기준에 나온 것들을 충족했고.
내 요리는 맛있게만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 예상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들은 다른 조리대로 향했고.
나는 서둘러 요리에 몰두했다.
53:20
53:19
빠르게 줄어드는 시각.
힐끔힐끔 시간을 체크하며, 화구에 불을 올렸다.
루비의 냉장고에서 꺼내 온 갈비찜용 고기.
워낙 좋은 품질의 한우 고기를 구입해 둔 덕에 부드러움은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하는 갈비찜.
시간이 생명이었다.
적은 시간이기에, 나는 고기에 칼집은 여러 곳 내어 삶기 시작했다.
그사이.
빠르게 수제비 반죽을 만들었다.
밀가루와 계란, 물.
이 재료면 평범한 수제비 반죽이겠지만, 나는 여기에 트러플을 첨가했다.
통 안에 들어 있는 곱게 포장된 트러플.
트러플을 꺼내자마자 코끝에는 강한 트러플 향이 맴돌았다.
“와아…… 향 너무 좋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성.
그 향을 맡은 건 나뿐이 아니었다.
가장 뒤에 걸어가던 정영욱도 코를 벌름거리며 흘긋 나를, 아니 트러플을 바라보았다.
나는 트러플을 곱게 갈아 수제비 반죽에 함께 넣었고.
새하얀 밀가루 반죽에는 트러플 덕에 검은 점들이 수없이 보이고 있었다.
쫀득한 식감을 만들기 위해 팔이 아프도록 치댄 반죽.
“……됐다.”
나는 손목을 돌리며 반죽을 그릇에 담아 두었다.
이후 잘 익은 고기를 건져 낸 뒤, 갈비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예상한 대로 맛이 나와 줘야 할 텐데.”
나 역시 트러플을 이용한 갈비찜과 수제비는 처음이었다.
예전 식당에서 트러플을 이용한 요리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상태가 좋은 트러플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식당에서 손님에게 판매를 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최상급의 재료는 사용할 수가 없으니까.
조금은 상태가 좋지 않은 하급 트러플.
그마저도 아주 소량을 넣거나, 혹은 트러플 제스트를 이용해 향과 맛을 내고는 했다.
상상만으로 생각해 낸 음식을 만들기 위해.
최상의 맛을 만들기 위해 나는 내 요리에 집중하고 몰입했다.
***
29:30
29:29
29:28
“이제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30분이 지난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해 볼까요?”
한승주는 시간을 알려 주며, 마이크를 든 채 조리대 쪽으로 내려왔다.
이번에도 역시 심사위원들과 함께 이동하는 한승주의 모습.
“오늘 중간 평가는 없지만, 워낙 다른 종류의 요리들이 있기 때문에 촬영에 담아보려고 합니다.”
그는 카메라가 아닌 우리 셰프들을 향해 안내 멘트를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나를 포함한 셰프들은 한승주의 안내에 바로 답을 보냈지만.
“하아…….”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이 들려오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내 앞 조리대에 서 있는 서지인의 자리였다.
무언가 안 풀리는 모양.
연거푸 들려오는 한숨에 나는 그녀의 조리대를 기웃거렸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축 처진 그녀의 어깨와 동동거리는 발이 불안함을 보여 주고 있었지.
하지만 모든 이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절반이 넘어간 시각.
아직 그 누구도 완성된 요리는 없었으니까.
각자 자신의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역시나, 카메라와 함께 심사위원들은 내 앞으로 먼저 다가왔다.
“이거 뚜껑 한번 열어 봐도 될까요?”
황순자는 화구에 올려진 커다란 냄비를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네, 열어 보셔도 괜찮습니다. 열까요?”
내 답에 카메라는 냄비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고.
나는 곧장 냄비 뚜껑을 한 번에 열었다.
김이 피어오르는 갈비찜.
달큰한 향이 스튜디오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