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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바이킹이 되었다 5권
미래소년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1
1장
제국과 왕국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선은 규모의 차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왕국이 단순히 한 지역의 패자라면, 제국은 각 지역의 패자들을 휘하에 여럿 거느린 공동체였다.
즉, 왕국은 단일민족 공동체라면 제국은 다민족 공동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외모와, 언어, 관습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이기 위해서는 아주 강력한 구심점을 필요로 했다.
그 첫 번째 구심점은 물론 라그나였다.
인간을 초월한 천상의 아름다움과, 초인적인 힘.
무엇보다 시대를 초월한 지식을 가진 존재로서 사람들은 라그나에게 강력한 끌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이 끌림이야말로 제국을 만드는 데 필요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라그나가 세운 제국은 지금 세상에서 생겨난 첫 번째 제국이었다.
하투샤나 이집트, 앗사르 같은 국가가 규모적으로 봤을 때 제국이라 부를만한 수준의 세력을 형성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들은 단일민족 국가로 왕국보다 커다란 대국이라 봐야 했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제국을 자칭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구심점은 공정하면서도 강력한 율법이었다.
법률이 아니라 율법인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사법 체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지켜야 하는 도덕적 관습과 행동원리까지도 포함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해야 한다.’는 내용도 법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범위의 문제였다.
세 번째 구심점은 문자와 언어였다.
같은 문자와 언어를 공유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하나로 묶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북부와 갈리아, 미케네와 아나톨리아에 이르기까지 같은 어족에 묶이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넓은 땅의 언어를 모두 통일한다는 것은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필요했다.
따라서 라그나는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제국의 첫 번째 칙령이자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율법과 문자, 언어를 교육시킨 신관들을 제국 각지에 파견하였다.
이때가 제국력 1년이었다.
신관들은 라그나가 만든 율법을 동판에 새겨 항상 품에 안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율법을 설파하고 다녔다.
“황제께서 말씀하셨으니…….”
황제가 즉위식을 거행한 날을 중심으로 천문을 계산하여 날짜와 요일을 나누었으니, 1년을 12달 365일로 정하고 즉위식 날을 ‘황제가 태양을 떨어트렸다가, 다시 부활시킨 날.’이라 하여 태양의 날 즉, 일요일(솔)이라 명하였다.
나머지 육일은 황제의 다른 페르소나들을 따와서, 부르, 료크, 포드, 아르도, 누르니르, 탕기르의 날로 명하였다.
각각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에 대응되는 명칭이었다.
12개월의 명칭은 황제 휘하의 12명의 왕들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1월은 프리기야, 2월은 베르타, 3월은 일레인으로 나머지 4월부터 12월까지도 니브고, 이로다 등의 왕들의 이름을 사용했다.
훗날 어찌 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년을 열두 달로 나누는 기준명칭이 된 것이었다.
12왕들의 나머지 이름은 4월부터 시작하여 각각, 투아르, 이로다, 니브고, 군릴, 펠리아스, 디모스, 알키스, 헤임리흐, 흐롤프였다.
또한 라그나는 이들 12왕들에게 각자를 상징하는 보석을 가드에 박아 넣은 신검을 선사했다.
이 검을 황제의 검이라 하여, ‘임페리오 시포스’라 하였는데, 이는 곧바로 12왕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명칭은 왕이었지만 어디까지나 황제의 권한을 대리하는 이들에 불과함으로, 제국은 강력한 제정일치 형태의 중앙집권형 국가라고 할 수 있었다.
12왕들의 곁에는 황제가 파견한 12사도들이 있었으니, 이들 12사도들이 매주 일요일마다 사람을 모아 율법이 새겨진 동판을 들고 사람들에게 계명을 교육했다.
계명의 내용은,
1. 황제의 명을 따라라.
2. 신을 믿지 마라.
3.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4. 황제의 즉위식 날을 지켜라.
5. 인신공양을 하지 마라.
6. 부모를 공경하라.
7. 함부로 살인하지 마라.
8. 남의 것을 빼앗지 마라.
9. 거짓말하지 마라.
10. 이웃을 사랑하라.
열 가지였다.
이 열 가지 계명은 제국이 제국으로 있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치였다.
이들 12사도들을 황제의 사도라하여 ‘임페리오 아포톨로’라 불렀다.
또한 아포칼립토는 계명이 새겨진 동판 자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라그나가 계명의 3번째 조항이기도 한 ‘인간을 이롭게 하라.’를 건국이념으로 삼은 것은, 아직 자유와 평등 같은 개념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라그나가 제국을 세우자마자 이러한 계명부터 바로 세운 것은 무엇보다 무질서와 야만이 판치는 세상에 기본적인 질서를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자신이 배가 고플 때 남의 것을 약탈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기본적인 생존 욕구조차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라그나가 인신공양을 근절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지만, 사람들은 라그나가 인신공양과 식인을 하지 말라 하여 그냥 따르는 것뿐이지 그게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 자체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신을 향한 최고의 찬사요, 경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기본적인 질서가 바로 서지 않으면 제아무리 제국이라는 이름 아래에 사람들을 모은다 한들, 서로를 잡아먹으며 마치 모래 위에 성을 지은 것처럼 허물어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 때문에 서둘러 계명을 만들어 배포한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한 것은 국경을 바로 세운 것이었다.
현대 사람들은 잘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몰라도, 이 시대 사람들은 국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어디가 살기 좋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곳으로 거리낌 없이 이주민들이 모여드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땅 위에 경계를 그어 함부로 다른 이들이 제국의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이 땅 위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놓은 일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제국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열심히 가꾸어 놓은 내 집안에 어느 날 얼굴도 모르는 자들이 쳐들어와 자기 집이라 우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제국을 다스리기 위한 법률을 세웠다.
법률은 계명보다 세세한 개념으로 계명에서 세운 규칙을 어기면 어떠한 처벌들을 내린다는 규정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제국의 심판권은 기본적으로 황제에게 속한 것이었지만, 12시포스들이 황제를 대신하여 그의 권위를 빌어 황제가 세운 법률을 집행하였다.
하지만 드넓은 제국의 땅을 열두 명이서 사법 집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12시포스들에게 권한을 부여받은 법무관들이 집행하였다.
그 밖에도 도시의 환경과 상하수도, 도로를 관리하는 조경관을 임명해 도시 전반의 생활을 관리하였다.
또한 재무관과 감찰관도 임명하였는데, 재무관은 도시의 소득과 인구, 그에 따른 조세를 관리하였고, 감찰관의 임무는 다른 관리들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는 호민관이 있었는데, 이들은 일종의 변호사들로, 다름이 아니라 귀족과 달리 자신을 변호할 힘이 없는 노예와 평민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황제의 이름으로 대리하여 수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관리들은 최초에 황제가 모두 임명하였으나, 후에는 선거를 통해 선출하였으며, 선거 권한은 군역을 치른 자들에게만 주어졌다.
때문에 모든 관리들은 전직 군인이거나, 현직 군인들로 이루어졌고, 관리가 되는 것을 대단한 명예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민들은 언제나 병사가 되고 싶어 하였지만, 병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무구와 병기들은 자신의 돈으로 직접 마련해야만 했다.
기마병이 되려면 값비싼 군마가 필요했다.
이렇게 안으로는 계명을 통해 법률을 세우고, 관리를 임명해 행정을 처리하였으며, 국경을 정해 외적의 침탈을 수호하니 유사 이래로 가장 살기 좋은 시대가 도래했다고 사람들은 노래하였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절은 언제나 그렇듯,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 *
메를리누스의 나이도 벌써 17세로, 성년이 된 후로도 2년이 더 지난 나이였다.
황제에게 직접 마법을 전수받기 시작한 지도 5년이나 지났음으로, 그 경지는 감히 다른 후발주자들이 짐작도 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해 있었다.
그런 메를리누스는 평소에 황제의 업무를 도왔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머리를 자랑했던 메를리누스는 제국의 행정 업무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아직 황제로부터 관직이 주어지지는 않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제국의 재상이나 다를 바 없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메를리누스는 하루에 주어진 업무가 끝나면 황제가 자신에게 전수해 준 마법을 개량하여 고대인의 혈통을 잇지 않은 인간들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고안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그중 몇 가지 방법은 효과가 있었는데, 바로 인간들이 가진 미약한 생명에너지를 끌어다가 마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에너지를 빌려다가 발현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거인들의 사악한 마술과 궤를 같이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괴물들이 사람의 육신과 영혼을 착취하여 마술을 발휘한다면, 메를리누스의 마법은 오히려 강력한 존재의 힘을 빌려 쓰는 방식이라는 점이었다.
그 강력한 존재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국의 지존이자, 지상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황제를 말함이었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생명에너지, 즉 마력을 지닌 황제라면 이러한 마법사들에게 힘을 빌려주고도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모든 연구는 황제의 허락을 받고 이루어지는 것이었음으로, 감히 황제에게 불경을 저지를 생각이란 추호도 없는 메를리누스였다.
그에게 있어서 황제는 비록 직접적으로 피는 이어져 있지 않더라도 아비이자, 그의 영혼을 바쳐 충성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모든 것이었으니까.
“멀린 형 도대체 언제 끝나~.”
연구에 골몰하고 있는 메를리누스의 뒤 소파에는 살라만과 시구르드가 지루하다는 듯 이리저리 발을 흔들고 있었다.
“금방 끝나.”
“형! 똑같은 대답만 벌써 열 번째인 거 몰라?”
이에 상대적으로 성격이 급한 시구르드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근데 그 고함이라는 것이 황제의 목청을 닮았는지 아직 어린애답지 않게 커다랬다.
연구에 몰두하던 메를리누스, 즉 멀린도 화들짝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연구일지와 펜을 떨어트렸을 지경이었다.
멀린이 쓰고 있는 이 볼펜이란 물건은 천계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멀린을 위해 황제가 직접 고안하여 만들어 준 것이었다.
따로 잉크를 끝에 묻혀 가며 사용해야 하는 펜과는 다르게 펜 끝에 동그란 형태의 구체가 박혀 있어서 그 볼을 종이에 가져가서 굴리면 잉크 심에서 조금씩 잉크가 새어 나오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도대체 폐하께서는 이런 기발한 생각들을 어떻게 떠올리시는 걸까?’
황제의 지식은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아 천재라고 부르는 멀린으로서도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범위 밖의 것이었다.
제국을 세우자마자 십계명을 만들어 배포하고, 학교를 만들어 지식인들을 양산하였으며, 관리들을 임명해 제국의 기틀을 세운 것만 해도 그랬다.
멀린이 생각하기에 황제는 인류의 부흥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 그 자체였다.
물론, 십계명에 따르자면 황제가 직접 신을 믿지 말라 하였으니 그런 생각 자체가 불경일 수 있었지만.
“살라만 저것 좀 봐. 우리가 불렀는데 또 딴생각에 빠져들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시구르드의 말에 동조하여 살라만도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을 부풀렸다.
그런 살라만과 시구르드의 나이도 벌써 여덟 살이었다.
들으라는 듯한 아이들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멀린이 푸욱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은 또 무슨 놀이를 생각해 왔니?”
멀린의 말에 두 아이의 눈에서 별빛이 반짝였다.
서로의 얼굴을 한 차례 마주 본 아이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수도 탐험!”
두 아이의 엉뚱한 말에 멀린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하수도 탐험? 그 냄새 나는 곳에 뭐 볼 게 있다고?
멀린에게 있어서 하수도는 전혀 신비한 곳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황제가 하수도 정비 사업을 벌일 때 그의 곁에서 황제가 그린 도면을 보고, 직접 공사 현장까지 다니던 것이 멀린이었으니까.
다만 아이들한테 있어서 어둡고 음침한 하수도가 매력적인 탐험지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황제는 지금 수도 천도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후보지로 할슈다르를 생각했지만 결국 선정된 곳은 할슈다르가 아니라, 미케네 지역에 있는 라티움이라는 지역이었다.
대륙에서 길쭉하게 튀어나온 반도 지역인 이곳은 아펜니노 반도라고도 불렀는데, 라티움은 그 아펜니노 반도에서도 중부에 위치한 60km 정도의 드넓은 평야지대를 가진 곳이었다.
그리고 그 평야에는 알바노라고 불리는 커다란 호수가 자리 잡고 있어서 이를 식수원으로 활용했다.
라티움 동쪽으로는 아펜니노 산맥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산맥을 넘으면 이올코스가 나왔다.
이올코스의 왕은 펠리아스라는 자로 황제의 12시포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런 라티움에서 배를 타고 네 시간 정도 내려가면 다름이 아니라 일대 최고의 곡창지대인 트리나크리아 섬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