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입니다만 검도 조금 7
§ contents §
타락한 신과 그 종들
고대의 신 헤리미안
시뮬레이터 훈련장
물의 신전
눈의 정령 설화
타락한 신과 그 종들
피란체바는 이스턴 후작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보좌해 줄 체플린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보티스 백작령으로 향했다.
보티스 백작령은 퍼거슨 란 보티스 백작이 관리하는 영지로 제조업과 과수원, 그리고 곡물 생산으로 유명했다.
특히 가내수공업의 발달로 인해서 제국의 유행을 만들어 내는 영지 중 한 곳이기도 했다.
“보티스 백작령에 가시면 구경거리가 정말 많을 겁니다. 본령뿐만 아니라 령에 속한 영지들도 각각의 특색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영지입니다.”
“구경거리?”
“가내수공업이 발달된 곳이라 온갖 것들을 만들어 파는데,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는 가방이나 손부채, 장신구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좋아하는 각종 도, 검, 창, 활 등도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 구경거리가 많은 곳은 음식이 맛있어야 하는데, 보티스 백작령의 음식은 먹을 만해?”
“음식이야 다 어딜 가도 비슷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긴…, 조미료와 향신료가 다양하지 않으면 재료에서 감칠맛을 뽑아내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언제 요리를 그렇게 배우신 겁니까?”
“배우긴…… 용병 생활하면서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절로 익힌 거지. 열한 살짜리가 용병들 틈에 섞여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아….”
“처음에는 다 그렇게 다른 용병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고.”
“그렇겠군요. 나쁜 용병들은 남색도 하고 그런다고 하던데…….”
말을 줄이면서 눈치를 살피는 체플린이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피란체바가 피식 웃었다.
“치근대는 놈들이 짜증 나서 내가 그 어린 나이에 전쟁 용병으로 전향했잖아.”
“전쟁터는 더 심한 거 아닙니까?”
“전쟁터에서 그렇게 치근대면 죽여 버리면 그만이거든.”
“도련님께서 그들을 죽이셨단 말씀입니까?”
“이거 왜 이래. 내가 전쟁터에서 크레이지 독이라 불렸어. 나 한번 물면 안 놓아주거든.”
“그렇습니까?”
“너 지금 비웃는 거야?”
“아니, 아닙니다.”
“뭐, 앞으로 크레이지한 모습을 많이 볼 테니까 차츰 믿으면 되겠지.”
“여기는 전쟁터가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했다간 도련님 이미지가 박살 날 겁니다.”
“아니긴 개뿔……. 목숨 걸고 적과 싸우는 곳은 다 전쟁터지.”
체플린은 투덜거리는 피란체바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고, 마법은 좀 익히고 있는 거야? 지난번처럼 어버버 하는 거 아니지?”
피란체바가 화제를 돌렸다.
“마법보다 체력과 체술, 그리고 단검술을 익히는 데 중점을 두고 훈련과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마법은 아침, 저녁으로 마나명상법으로 수련하는 게 전부입니다.”
피란체바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단검술은 왜? 장검이 편하지 않아?”
“싸우는 건 장검이 유리할지 몰라도 휴대하기에는 단검이 편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눈속임도 편하고요.”
“그럼 그에 따른 변화는?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처음에는 도련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겨 더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같네. 그럼 너 혹시 마법을 배우면서 비움과 채움에 대해서 들어 봤어?”
“비움과 채움 말입니까?”
“정확하게는 먼저 채운 후에 비우고, 다시 채우고, 또 비우고를 반복하는 건데.”
체플린의 눈빛이 반짝였다.
지금 피란체바는 일리야 백작령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새벽과 오후, 두 차례 기사, 마법사, 병사들과 함께 훈련하고, 오전과 이른 오후에는 피란체바를 찾아오는 마법사들의 문제점에 대한 조언을 해 주며 일리야 백작 가문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제국의 귀족들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개인 수련을 하고, 그렇게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을 청하는데 새벽에 기사, 병사들과 함께 훈련해야 하니 하루에 대략 3시간 정도 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체플린은 그런 피란체바에게 한마디의 조언을 듣는다는 게 얼마나 값진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육체는 마나를 담는 그릇이라고 말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그 그릇에 물이 다 차면 어떻게 돼?”
“흘러넘칩니다.”
“그럼 안 흘러넘치게 하려면?”
체플린은 잠시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더 큰 그릇으로 바꾸면 됩니다.”
“그렇지. 더 큰 그릇으로 바꾼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거지?”
“마나의 축복을 받아 육체의 재구성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론적으로는 그래.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렇습니다.”
“그럼 그릇에 가득 담긴 물은 다른 그릇에 비우면 어떻게 될까?”
“그릇을 비운다는 말씀입니까?”
피란체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체플린은 한동안 대답 없이 피란체바가 해 준 말을 골몰히 생각했다.
“마나서클을 두 개를 만들라는 말씀입니까?”
그 말에 조건반사처럼 피란체바의 주먹이 체플린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따아악!
체플린은 온갖 인상을 쓰며 억울한 표정으로 피란체바를 바라보았고,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마나서클을 어떻게 두 개 만들어.”
“신장에 만들었으니 간에 하나 더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만들어서 마나가 서로 충돌을 일으켜 마나 폭주가 일어나면?”
“도련님의 마나이론에 보면 상생과 상극이 있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럼 상생을 맞춰서 하나 더 만들면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하아……. 나무가 있어. 어느 정도 물을 주면 나무가 잘 자라겠지.”
“네.”
“그건 상생이야. 그럼 물이 필요 이상으로 많으면 나무가 살아, 죽어?”
“죽습니다.”
“그럼 상극이지.”
체플린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불에 나무를 넣으면 잘 타. 그렇지? 그런데 이제 불이 붙었는데 커다란 통나무를 넣었어. 그럼 통나무가 타? 불이 꺼져?”
“불이 꺼집니다.”
“그래. 물과 불의 관계처럼 상생하는 것도 과하면 그게 상극이 되는 거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과하면 넘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지.”
“그럼 어떻게 합니까?”
“기사들은 마나홀이 있는데 왜 육체의 곳곳에 마나를 모아서 보관할까?”
체플린은 눈을 깜빡이며 피란체바를 보았다.
“왜?”
“그러니까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다른 그릇에 비운다는 게 몸 전신에 마나는 퍼뜨려서 모아 두란 그런 뜻입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려.”
“하아…….”
“한숨은, 그냥 마나홀을 만들어. 마나홀을 만들어서 마나서클에 있는 마나를 마나홀로 보내.”
“아하.”
“그리고 마나서클, 마나홀에 마나가 다 차면 몸 전체에 보내고. 이리 쉬운 걸 그리 어렵게 생각하고 있어.”
피란체바가 핀잔을 주자, 체플린이 몸을 움츠렸다.
“똑똑한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네.”
“마나홀을 만들면 마나서클과 상충하지 않습니까?”
“엘리나는 멀쩡한데. 넌 엘리나를 보고 못 느꼈어?”
“아!”
“엘리나도 너처럼 신장에 마나서클을 만들었어. 그러니 너도 엘리나처럼 마나홀을 만들면 되지.”
“아, 그렇군요. 그럼 저도 엘리나 님처럼 검술과 마법이 가능하겠군요.”
“지금도 가능하잖아.”
“그렇긴 하지만 마나익스퍼트 기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갓 태어난 놈에게 기어다니는 법을 가르쳤더니 걸어 다니려고 하네.”
“그래도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그래. 너 알아서 해라. 뭔가 이상한 느낌이 오면 곧장 찾아와 묻거나 말하고.”
“감사합니다, 도련님.”
“내가 가르쳐 준 마나연공법은 계속해서 수련하고 있지?”
“그렇습니다.”
“꾸준히 생각하면서 수련해. 그럼 마나홀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있을 테니까.”
*    *    *
보티스 백작령의 본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령에 속한 영지를 몇 개 지나쳐야 하는데 그중 아루스 영지란 곳이 있고, 이곳에는 아루스 산이라는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 산이 있었다.
높고 험한 산이라 산 전체에 다양한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데 보티스 백작령의 본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산을 넘어가야 했다.
피란체바와 체플린은 아루스 영지에 있는 용병 길드에서 상단의 호위 의뢰를 받아 상단과 함께 이 아루스 산을 넘어가는데 대상단이라 그런지 고용한 용병의 수가 무려 오십 명이나 되었고, 짐수레가 팔십 대나 되었다.
“도련님.”
체플린이 나지막하게 피란체바를 불렀다.
“왜?”
“붉은 깃발 용병단은 제국의 5대 용병단 중 하나인데 그 명성만큼은 그리 대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단은 드래곤 이스타탄을 사냥하기 전까지는 제국에서 5대 용병단에 속할 만큼 대단한 용병단이었지만 이스타탄을 사냥하면서 용병단 단장을 비롯하여 실력 있는 용병들을 많이 잃어 지금은 그 명성이 무색해질 만큼 초라해 보였다.
“이스타탄을 사냥하면서 놈에게 호되게 당해서 그래.”
“아, 그렇군요. 도련님.”
“왜?”
“가는 길 심심한데 이스타탄과 싸운 이야기 좀 해 주시면 안 됩니까?
피란체바는 못 해 줄 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스타탄과 싸우는 이야기를 체플린에게 해 주었다.
“정말 무식한 놈이었지. 아무리 힘이 빠졌다고 하지만 드래곤의 입을 힘으로 막았으니 말이야.”
“그게 가능한 일이군요.”
“나도 그날 처음 알았어. 드래고니아란 종족이 얼마나 무식한 종족인지 말이야.”
“그럼 지금 도련님이랑 그 드래고니아 남매랑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당연히 지금은 내가 질걸. 그들은 본 실력을 꺼내지도 않았으니까.”
“거기, 뒤에 무슨 잡담이 그리 많나. 몬스터 출몰 지역에서는 소리를 줄여야 하는 걸 모르나?”
“아,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궁금한 게 많아 이래저래 설명해 준다고 그랬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피란체바가 얼른 대답하고는 ‘씨익.’ 웃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체계는 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