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 03권
천신 03권
천신
03
김강현
천신 03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천신 03권
Chapter 01.
발터스의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훈련을 받아왔다. 처음 레긴이 그들의 주인이었을 때에는 검술 훈련보다는 흑마법을 이용해서 몸에 마력을 쌓는 방식으로 강해졌다. 당연히 진짜로 강해진 게 아니었다.
지금은 레이엘의 도움으로 그때 쌓았던 흑마력을 모조리 배출했다. 그리고 조금씩 몸에 순수한 자연의 기운을 쌓기 시작했다. 아주 미미한 양이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당시 가졌던 모든 흑마력을 버리긴 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아예 도움이 안 되었느냐하면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물론 흑마력을 버리지 않았다면 더 강해졌겠지만, 이지를 상실한 데스나이트가 되어 살육에 미쳐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흑마력을 잔뜩 몸에 쌓았던 경험 덕분에 다른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도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당시 강했던 기억 때문에 강해지기 위한 가까운 목표를 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다져진 기반에 레이엘이 전수한 검술이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혹독한 훈련이 뒤따랐다.
레이엘은 결코 봐주는 법이 없었다. 얼마나 훈련이 혹독했느냐 하면, 병사들이 초기에 이지가 제대로 잡혀 있었다면 절대 따라가지 못했을 정도로 심했다.
병사들은 흑마력을 모두 배출한 뒤에도 한동안 레이엘을 주인으로 인식하고 절대복종했다. 그래서 레이엘이 죽으라고 하면 당장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충성심을 발휘했다.
레이엘은 그 시기를 아주 적절히 이용했다. 인간으로서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병사들은 그것을 완벽하게 버텨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후 차차 자아가 강해져서 레이엘이 주인이라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그때 몸에 새겨진 기억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자신들을 이렇게 성장시켜준 레이엘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남았다.
병사들의 뇌리에 남은 것은 영지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레이엘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였다. 그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레이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이 레이엘에게 배운 검술은 난이도가 높은 고급 검술이었다. 하지만 일단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굉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레이엘에게 마나를 이용한 몸놀림을 여러 가지 배웠다.
그리고 지금 그것들이 병사들의 몸에서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100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돌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3000명에 달하는 큰 병력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막아! 어떻게든 막으란 말이다! 마법사! 마법사는 뭐 하고 있나! 궁병들은 활을 쏴라!”
말튼이 다급히 소리쳤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마법사를 안전히 보호했다. 몇몇은 화살에 맞아 중태에 빠지거나 죽었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를 안전하게 지켜냈다. 물론 그 때문에 기사와 병사들의 희생이 조금 커졌지만 말이다.
쉬쉬쉬쉬쉭!
수많은 화살이 하늘을 수놓았다. 사실 3000의 병력 중에서 궁병은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모든 병사들이 활을 들게 했다. 궁병을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병사가 동시에 활을 쏘면 그 위력이 오히려 적은 수의 궁병을 키우는 것보다 더 대단하다고 판단했다.
말튼은 하늘을 수놓은 화살비를 보며 다급히 고개를 돌려 마법사들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화살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마법사들이 어서 마법을 날려 줘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젠장. 기사들이 그렇게 맥없이 당할 줄이야.’
처음 화살 공격에서 100명에 달하던 기사의 절반을 잃었고, 그 뒤로 연이어 떨어진 화살 때문에 남은 기사들도 큰 타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기사들이 있는 곳에 정확히 화살을 날릴 수 있었는지가 의문일 정도로 기사들과 그 주변의 병사들만이 철저하게 당했다.
‘빠르다!’
달려오는 발터스의 병사들을 힐끗 쳐다본 말튼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그저 달려오는 것일 뿐인데도 너무 빨랐다. 병사들이 날린 화살이 계속해서 그들의 뒤에 꽂혔다. 병사들이 쏘는 화살은 중구난방이었다. 제대로 적에게 떨어지는 것도 상당히 많았지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뭐, 뭐야! 마법사들은 아직 멀었는가!”
말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바린의 병사들은 절반 정도를 후미에 배치해 놓긴 했지만 나머지 병사들은 곳곳에 적절히 섞어 두었다. 자칫 100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달려들어 난전으로 발전하면 괜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말튼은 아직까지 자신이 패배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강병이라 하더라도 고작 100명이서 3000명을 상대해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도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여야지.’
일단 마법사들로 일차적인 피해를 입히고 나면 나머지는 바린을 제외한 네 영지의 병사들을 적절히 이용해 막아낼 계획이었다. 군데군데 섞어놓은 바린의 병사들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다.
“마법사들은 아직 멀었느냐! 벌써 적이 저기까지 다가왔단 말이다!”
말튼은 짜증이 났다. 평소에는 돈만 잔뜩 잡아먹는 것들이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늑장을 부리니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에 그는 아연했다.
“마법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뭐야!”
“[안티 매직 필드]가 펼쳐진 듯합니다!”
말튼은 어이가 없어 멍한 눈으로 마법사들을 쳐다봤다. 마법사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적의 마법사는 고작 4클래스다!”
[안티 매직 필드]는 전술적으로 워낙 유명한 마법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수행할 수도 있는 귀족들이 꽤 잘 알고 있는 마법이었다. 당연히 말튼도 그러했다.
[안티 매직 필드]를 펼치려면 최소한 5클래스의 마법사가 필요하며, 이렇게 광범위한 곳에 펼치려면 6클래스의 마법사 열 명이 필요하다. 아니, 처음 발터스 병사들이 있던 곳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마법사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모두들 가벼운 패닉 상태에 빠진 순간, 100명의 발터스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콰과과광!
“크아악!”
“아악!”
100명의 병사들이 3000에 달하는 병사들에게 부딪치는 광경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했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는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쐐기 모양으로 진형을 짠 발터스의 병사들이 그대로 영지 연합군 진형을 파고들었다. 발터스의 병사들은 손에 든 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처음 파고드는 힘은 강했지만 워낙 연합군의 수가 많아서 절반쯤 파고드니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쯤 패닉에 빠졌던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말튼도 그 중 하나였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포위해서 몽땅 죽여 버려!”
말튼은 말을 몰아 조금 높은 지대로 이동했다. 대부분이 평지였지만 그래도 바닥의 굴곡이 있었기에 약간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말을 타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시선이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대략적이나마 전황을 살필 수 있었다.
“이런……!”
말튼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발터스의 병사들이 어느새 진형을 바꾸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발터스의 병사들은 둥근 진형으로 철저히 수비에 집중하며 이동 중이었다. 한데 이동 방향에 있는 병사들이 바린의 병사들이었다.
“뭣들 하는 거냐! 저놈들은 고작 100명밖에 안 된단 말이다! 기사들은 뭘 하고 있나!”
기사들이 처음 화살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20여명은 멀쩡했다. 말튼의 명에 기사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그렇게 기사들이 도착할 무렵 발터스 병사들은 단 한 명의 피해도 없이 적진을 돌파했다. 그리고 다시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연합군을 빙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말튼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외쳤다.
“기사들은 뭘 하는 거냐! 저놈들을 쫓아라!”
남은 기사들은 아직까지 그나마 멀쩡한 말을 타고 있었다. 기사들이 모는 말발굽 소리가 울리며 점차 멀어졌다.
말튼은 기사들이 탄 말이 발터스 병사들을 빠르게 따라잡는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약간 안도했다.
“지독한 놈들.”
영지 연합군의 피해는 막심했다. 마법사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병사들은 한 번의 돌파로 수백이나 죽었다. 발터스 병사들의 검은 정말로 무서웠다.
‘확실히 숫자보다는 질에 투자한 모양이군.’
처음 발터스 병사들이 100명밖에 없다고 했을 때는 믿지 않았다. 광산을 운영하면 벌어들인 돈을 군사력 증강에 전혀 쓰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한데 아무리 정보를 수집하고 뒤를 파 봐도 100명의 병사 외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오늘 보니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발터스의 병사들은 정예 중의 정예병이었다.
‘이거 쉽게 생각하다간 당할 수도 있겠어.’
말튼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사들이 발터스의 병사들을 거의 따라잡은 광경을 지켜봤다. 말튼은 말을 탄 기사들이 그들을 유린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말탄 병사를 일반 보병이 상대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불가능했다. 그 보명이 창병이 아니라면 말이다.
“좋아! 다 따라잡았다!”
기사들이 손에 든 것은 긴 창이었다. 그걸로 발터스 병사들을 쫓아 쿡쿡 찔러 상처를 입히는 게 목적이었다. 발터스 병사들이 워낙 빨라 돌파를 하며 피해를 입히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막 기사들이 창을 내지르려는 찰나, 발터스 병사들이 일제히 창을 피하며 방향을 반대로 틀었다. 그 전환이 어찌나 빨랐는지 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의 검이 말의 옆구리를 푹푹 파고들었다. 발터스 병사들은 그저 가볍게 검을 한 번 내지르고 다시 달렸다. 하지만 병사들의 수는 100명이나 되었고, 기사들은 고작 20명이었다. 말 하나당 다섯 번의 칼이 박혔다.
“히히힝!”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다. 기사들은 그것을 다독이려 애썼지만 몇몇은 낙마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간신히 말을 다스렸을 때, 언제 다가왔는지 발터스 병사들이 그들을 덮쳤다.
말튼은 망연한 눈으로 남은 20명의 기사들이 손도 못 쓰고 짚단처럼 툭툭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발터스의 병사들은 그가 보기에 악귀 같았다. 훌쩍 뛰어 올라 말에 앉은 기사들의 목을 뎅겅뎅겅 잘라냈다. 같은 기사라도 보여주기 쉽지 않은 능력이었다.
말튼의 시선이 이번에는 처음 발터스 병사들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세 사람이 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제니아와 사라, 그리고 바이런이었다. 말튼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득였다.
“제3대부터 6대까지는 저 악귀들을 막아라!”
말튼의 명에 따라 남은 병사들 중 대부분이 몸을 돌려 달려오는 발터스 병사들을 향해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말튼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나머지 병사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진격! 거치적거리는 것들은 내버려두고 달려라! 목표는 저기 있는 자들이다!”
병사들은 말튼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말튼이 선정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내달렸다. 말튼은 말을 달려 다른 병사들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먼저 나섰다가 병사들의 목표가 되면 곤란했다.
하지만 다른 소영주들은 그렇지 않았다. 쉘터는 소영주들을 부추기며 말을 달렸다. 쉘터가 보기에도 제니아만 사로잡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문제는 아직 거리가 좀 멀다는 점이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군요.”
바이런의 말에 제니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사라를 바라봤다.
사라는 심호흡을 하고는 마법진의 중앙에 정확히 섰다. 그곳은 마정석이 박힌 곳이었는데, 제니아가 발을 디딜 자리까지 마법진 안에 구현되어 있었다.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안티 매직 필드]가 깨질 수도 있으니까.”
“알고 있어요. 스승님.”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주변에 휘몰아치는 마나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으니 오히려 더 마나의 흐름이 선명해졌다. 사라는 조용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현재 사라가 서 있는 곳이 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 처음부터 마법진을 그런 식으로 설계했다. 물론 마법진을 그리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고 심력도 많이 소모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제니아와 바이런이 초조한 눈으로 사라를 바라봤다. 어느새 말을 탄 다섯 명의 사내들이 수백 미터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마법을 완성하지 않으면 끝장이었다. 제니아는 품에 숨겨둔 단검의 손잡이를 꾹 쥐었다. 그냥 당할 생각은 없었다. 검을 한 번이라도 휘둘러보고 당할 것이다. 제니아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사라의 입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이어 밤]!”
사라의 머리 위에 작은 불꽃 하나가 생겨났다. 그리고 달려오는 다섯 소영주들을 향해 너울너울 날아갔다.
쉘터는 가장 앞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쉘터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불꽃을 단숨에 갈라 버렸다.
퍼어엉! 화르륵!
쉘터의 검이 불꽃을 자르는 순간, 불꽃이 폭발하며 거대한 불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불길은 다섯 소영주를 단숨에 삼켜 버렸다.
“으아악!”
“뭐야!”
“히히히힝!”
소영주들은 물론이고 말들도 놀라 마구 날뛰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사실 [파이어 밤]은 그다지 파괴력이나 살상력이 뛰어난 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놀라게 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마법이었다.
쉘터를 비롯한 소영주들은 말에서 떨어지며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를 향해 사라가 날린 [마나볼]이 작렬했다.
* * *
“하아. 다행이네요.”
사라가 털썩 주저앉았다. 연달아 마법을 쓰는 바람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다가온 위협을 자신이 막아냈다는 사실에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잘했어. 사라. 이제 좀 쉬어.”
“허허허.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
두 사람의 칭찬에 사라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막 적병들의 뒤로 들이쳐 그들을 산산이 와해시키고 있는 발터스의 용맹한 병사들을 바라봤다.
“이제 대충 싸움이 끝나 가네요.”
사라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상황이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저들이 피해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달려온다면 아무리 강력한 병사들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사라는 마법을 다시 써야 한다.
‘쉽고 강력한 마법이 있었으면 좋겠어.’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주변 마나의 흐름을 관조하며 명상을 시작했다.
말튼은 미칠 지경이었다. 방금 쉘터를 비롯한 소영주들을 무너뜨린 건 마법이 분명했다. 이곳에는 [안티 매직 필드]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도 마법을 썼다는 건, 마법사가 6클래스 이상이거나, 아니면 마법진을 정교하게 다듬어 마법을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밖에는 없었다.
‘어느 쪽이건 6클래스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뜻이로군.’
그런 마법진을 구성하려면 6클래스 중에서도 거의 끝자락에 있거나 아니면 굉장히 뛰어난 마법사라야만 한다. 고작 4클래스의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말튼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마법사가 있다지만 이렇게 많은 병사들을 상대로는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말튼은 병사들을 더 독려해 속도를 올렸다. 아직도 남은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발터스의 병사들은 정말로 악귀처럼 강했다. 그리고 지독했다. 그들은 달려드는 연합군 병사들을 짚단처럼 베며 다시 전진을 했다. 이번에는 진형이고 뭐고 없이 그냥 달려들었다. 창을 피하며 검을 내질러 급소를 꿰뚫는 정교한 검술에 연합군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발터스의 병사들은 굳이 적을 섬멸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돌파하려 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연합군 병사들은 발터스 병을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웠다. 어찌나 빠른지 잠시 상대한다 싶으면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으니 어떻게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때는 이미 자신의 급소를 칼이 훑고 지나간 후이니, 그야말로 유령들과 싸우는 듯했다.
발터스 병은 연합군을 돌파하며 마법사들을 처리했다. 마법사들은 복장부터가 달랐고, 움직임이 굼떴기에 너무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 마법을 못 쓰는 마법사는 허약한 일반인보다도 못했다.
마법사를 몽땅 처리한 발터스 군은 그대로 연합군을 돌파해 다시 빠르게 달려갔다. 그들을 상대한 연합군은 체력이 바닥나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저 숨이 조금 거칠어졌을 뿐이었다.
발터스 군은 제니아를 향해 몰려가는 병력의 뒤를 그대로 몰아쳤다. 말튼이 이끄는 연합군의 후위가 순식간에 무너졌고, 병사들이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버렸다.
일부는 앞으로 내달렸고, 일부는 혼전을 만들며 정신없이 싸웠다. 하지만 발터스 군은 그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마치 돌파하듯 관통해 버렸다.
말튼은 발터스 군이 뒤를 급습한 순간, 말을 버렸다. 그리고 병사들을 방패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발터스 군이 굳이 싸우려 하지 않고 돌파를 목표로 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말튼은 어느새 그들을 돌파한 후, 멀어져 가는 발터스 군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봤다. 발터스 군은 돌아가는 중간에 널브러져 있던 다섯 소영주들을 사로잡은 후 달려가 버렸다.
말튼은 일단 다시 진형을 정비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처참할 정도로 적었다. 처음 3000명이 왔는데, 이제 살아남은 건 고작 1000명에 불과했다. 그래도 발터스보다는 열 배나 많은 수였지만, 전혀 희망이 생기지 않았다.
‘졌다. 완전히 졌어.’
이대로 싸워도 이길 수 없을 판에 소영주들까지 사로잡혔다. 더 이상 남은 희망이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서 일단 진을 친다. 그리고 전령을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