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룡전 06권
마룡전 06권
마룡전
06
김강현
마룡전 06권
차례
제59장. 귀환
제60장. 위지세가로
제61장. 혼란의 시작
제62장. 혼란중첩
제63장. 해저동굴
제64장. 혈괴정
제65장. 독요대
제66장. 견철휘
제67장. 빙궁과 마인
제68장. 살황 천검웅
마룡전 06권
제59장. 귀환
언제부터일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서 있었다. 온통 새까만 공간에서 자신의 몸만 하얗게 빛이 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노인 한 명이 검무를 추고 있었다. 노인은 강하진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혁세광이라고 했던가?”
노인의 이름은 혁세광, 강하진과 죽기 살기로 싸웠던 사람이다. 그리고 강하진의 창에 심장이 꿰뚫려 죽은 사람이기도 했다. 한데 그 죽은 사람이 온통 시커먼 공간 속에서 검무를 추고 있었다. 혁세광의 몸 역시 강하진과 마찬가지로 하얗게 빛났다.
강하진은 혁세광의 검무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난자당하는 듯했다. 무시무시한 검이었다. 혁세광이 점점 강하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강하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느새 강하진의 손에는 창이 생겨났다. 마룡이었다. 창과 검이 격돌했다. 마치 약속한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읽으며 검과 창을 휘둘렀다.
강하진은 혁세광의 움직임을 미리 꿰뚫어보는데도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혁세광의 검은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뭔가가 달랐다. 한데 정확히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다른 점이 어마어마한 차이를 낳고 있었다.
‘내가 저런 사람을 죽였다고?’
강하진은 새삼 감탄했다. 어쩌면 우연에 우연이 중첩돼서 벌어진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강하진은 치열했고, 모든 걸 던져서 승리를 얻어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혁세광의 검을 마주하니 자신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혁세광은 압도적으로 강했다. 강하진은 그저 막는데 급급했다. 혁세광의 검이 강하진의 목과 심장을 꿰뚫었다. 강하진은 깜짝 놀랐지만 죽지 않았다.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실제로 강하진과 혁세광이 싸웠던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현실에서는 강하진이 엄청난 힘을 앞세워 실력의 차이를 어찌어찌 메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강하진은 내력을 끌어올렸다. 모든 힘을 창에 담았다. 안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나 쉽게 기운이 끌려왔다. 하지만 전세가 역전되지는 않았다. 혁세광 역시 그 하얗게 빛나는 검강을 뽑아낸 것이다.
그러자 오히려 강하진이 더욱 밀렸다. 혁세광의 검강은 강하진의 힘으로도 막아내기가 버거웠다. 힘으로 압도해야 간신히 버틸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손발이 더 어지러워졌다.
현실에서는 혁세광이 그것을 펼치는데 너무 많은 기운이 소모되어 오래 지속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혁세광은 아무렇지도 않게 백강을 쏟아냈다.
강하진은 온몸이 난자당했다. 혁세광에게 대체 몇 번이나 죽었는지 모른다. 물론 죽음은 없었다. 그저 팔다리가 잘리고, 심장이 박살 났으며, 머리가 터져 나갔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당하고도 죽지 않아 싸움은 끝없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강하진은 혁세광이 휘두르는 검의 움직임을 눈이 아니라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마음에 검을 담자, 자신과의 차이가 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강하진이 휘두르는 창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변했다.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달라졌다. 그 뒤로 강하진은 더 이상 혁세광의 검에 밀리지 않았다. 희열이 찾아왔다. 해냈다는 기쁨이 온몸을 적셨다.
그 순간, 강하진의 창에서 검붉은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혁세광의 것과는 다르지만 같은 강기였다. 강하진의 강기와 혁세광의 강기가 부딪쳐 서로를 밀어냈다.
그리고 화려하게 폭발했다.
강하진은 순식간에 무아에 빠져들었다. 온몸에서 검붉은 강기가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뭔가가 쑥 들어오는 걸 느꼈다. 그것은 단전에 자리를 잡더니 그대로 녹아 버렸다. 순간 단전에서 시작된 열기가 온몸을 태울 것처럼 사지백해로 뻗어 나갔다.
고통스러웠지만 시원했다. 가슴이, 머리가 뻥 뚫렸다. 그리고 그 느낌을 만끽하며 강하진이 눈을 번쩍 떴다.
“뭐지?”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자리에 누워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꼿꼿이 서 있었다. 온몸이 시원하고 상쾌한 것을 보니 부상은 말끔히 나은 모양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모양이군.’
눈을 뜬 순간, 깨달음을 얻었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자신의 심상에서 벌어졌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자신은 분명히 쓰러졌다. 그렇다면 누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발밑에 굴러다니는 창이 보였다. 강하진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혁세광과 싸웠던 장소가 아니었다. 주위가 폐허로 변해 있었지만 그건 아마 자신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저절로 일어난 강기가 만든 참상이리라.
“원래 집이 있었나?”
강하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려 한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노인 한 명과 어린 소녀 한 명이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짙게 배 있었다. 강하진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지금 벌거벗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바로 주저앉았다.
“옷 좀 구해다 주세요!”
강하진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노인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녀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보아하니 산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다.
노인, 염길홍은 손녀를 차마 말리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슬며시 강하진의 눈치를 살피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당하진은 그런 염길홍을 보며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녀가 없으니 이제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강하진은 놀란 염길홍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절 구해주신 모양이군요. 감사합니다.”
너무나 예의바른 모습이라 오히려 염길홍이 놀랄 지경이었다. 강하진이 조금 전에 한 일은 웬만한 무림인들은 꿈도 꾸지 못 할 경지였다. 보통 그 정도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면, 또 그런 사람이 강하진처럼 젊다면 오만한 법이다. 지금까지 염길홍이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창도 갖다 주시고, 정말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지금은 꼴이 이 모양이라서…….”
강하진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묘하게 친근감을 자아내자, 염길홍은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내게 고마워할 것 없소. 다 우리 손녀딸이 좋아서 한 일이오.”
“하하. 말씀 낮추십시오. 보아하니 연세도 제법 되시는 것 같은데.”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며 염길홍을 찬찬히 살폈다. 사냥꾼의 분위기가 났다. 또 약초꾼의 분위기도 났다. 어쨌든 도움을 받았으니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 자신이 집을 날려 버렸으니 그것도 보상을 해줘야만 했다. 아마 그 자리에 그냥 누워 있었다면 강하진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항주나 남창으로 가면 돈을 구할 수 있는 데가 있으니 돈으로라도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염길홍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강하진의 주머니에 있던 돈을 욕심냈던 일이 떠올라 조금 자책감이 들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며 대가를 바라는 건 사실 부끄러운 일 아닌가.
“됐네. 그러려고 구한 것도 아니고. 집이야 다시 지으면 그만이니. 대단한 집도 아니었고.”
강하진이 염길홍의 말에 씨익 웃었다. 왠지 말하다 보니 점점 마음에 들었다.
“그러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여행 한번 하시죠? 자랑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제 친구가 좀 잘 나가거든요? 가서 잘만 말하면 한 밑천 뜯어낼 수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같이 가시죠?”
염길홍은 묘한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어느새 말투가 살짝 변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어보니 영락없는 한량이다. 하지만 그게 또 싫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너무 산속에서 오래 살았는지도 모르지. 우리 혜아도 슬슬 사람들과 어울려서 친구들도 만들고 해야 하는데…….’
염길홍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강하진을 바라봤다.
“얼마나 떼어 줄 건가?”
강하진이 뜨악해서 염길홍을 쳐다봤다. 표정을 보니 장난이지만 또 그게 장난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으하하하! 뭐, 알아서 주겠지요. 그 친구 통이 좀 크니까 아마 기대해도 될 겁니다. 날 살려줬다고 하면 살고 있는 집이라도 달라고 하면 줄걸요?”
염길홍이 빙긋 웃었다.
“좋은 친구로군. 한데 살고 있는 집을 준다는 건 좀 과장이 심하지 않나?”
강하진이 눈을 크게 뜨며 대꾸했다.
“그게 왜 과장입니까? 나도 그런 일이 있다면 똑같이 할 건데.”
염길홍은 그저 허허 웃었다. 강하진의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다. 하지만 강하진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친구도 똑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아니, 보통은 그렇지 않다. 그게 세상이고, 가진 자들의 마음이다.
“알았네. 그래도 집을 달라는 건 좀 그러니, 적당히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만 조금 받겠네.”
강하진이 씨익 웃었다.
“그쯤이야 일도 아니죠. 원하는 장소만 말하면 다 해결해 주죠. 어딜 원해요? 항주? 남창? 아니면 무한?”
“어디든 괜찮나?”
항주에는 와행상단이 있고, 남창에는 진가장이 있다. 둘 중 어디를 가도 강하진이 힘을 써줄 수 있다. 그리고 무한에는 무림맹이 있다. 모르긴 해도 강하진이 가서 얼굴만 비춰도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지역이라도 상관없다. 와행상단이나 진가장의 힘이 미치기만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염길홍이 원하는 정도는 해결이 가능했다.
강하진은 그런 모든 배경을 다 고려할 정도로 염길홍과 그의 손녀인 염인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쨌든 목숨을 살려준 은인 아닌가.
그렇게 염길홍과 대화를 나누던 강하진은 염인혜가 다가오는 걸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 시야에는 없었다. 산이었기에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들이 많았다.
“그만! 거기 멈춰서 옷 던져라.”
강하진의 말에 염인혜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강하진은 지금 그녀의 시야 밖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염인혜의 귓가에 강하진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거기서 그냥 옷을 던져.”
염인혜는 원래 자신의 집이 있던 방향을 향해 손을 모아 소리쳤다.
“힘이 없어서 거기까지 못 던져요오오오오!”
말끝을 길게 늘이며 외쳤지만 돌아오는 답은 비슷했다.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다 들린다. 그러니까 그냥 옷을 던져. 아니면 내 몸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염인혜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하지만 그녀는 당차게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힘이 없어서 못 던진다니까요.”
“받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던져.”
염인혜는 더 해봐야 말싸움 밖에 안 된다는 걸 깨닫고 허공을 향해 옷을 힘차게 던져 버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조금 날아가던 옷이 바람을 타고 펄럭이다가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염인혜는 그것 보라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옷이 다시 바람을 타고 위로 쑥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너울너울 날아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훌쩍 넘어가 버렸다.
염인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는 서둘러 집이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어느새 옷을 차려입은 강하진과 그녀의 할아버지인 염길홍이 서서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염인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가 가본 곳은 지금 사는 집, 그러니까 황산의 봉우리 몇 개와 황산 아래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이 전부였다. 강하진의 옷을 구해온 것도 그 마을에서였다.
한데 이제 황산을 벗어나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렜다. 염인혜는 그 기분을 대부분 강하진에게 풀었다. 그녀는 강하진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계속 말을 걸었다.
강하진은 염인혜가 아무리 귀찮게 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다 받아주었다. 어쨌든 생명의 은인이었다. 또한 귀여운 여동생 같은 염인혜가 계속 말을 걸어주니 심심하지 않아 좋았다.
‘그 녀석은 잘 있으려나.’
염인혜를 보고 있으니 진가장에 있을 진하영이 떠올랐다. 어릴 때의 기억도 났다. 그때의 진하영은 강하진을 잘 따르는 귀여운 아이였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염인혜의 말에 강하진이 염길홍을 쳐다봤다. 결정은 염길홍이 해야 한다. 강하진은 이들을 거기까지 데려다 주고 자리를 잡도록 도와줄 것이다.
“남창으로 가자.”
“남창이요?”
염인혜가 이번에는 강하진을 바라봤다.
“거기 내 친구가 살거든. 돈 많은 친구가.”
염인혜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헤헷. 좋은 사람일 거 같아요.”
강하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녀석이지. 나 같은 놈보다 훨씬.”
“오라버니보다 더요? 그런 사람도 있어요?”
강하진이 염인혜의 머리를 헝클었다. 하는 말이나 행동이 너무나 귀엽고 마음에 쏙 들었다.
염인혜는 강하진이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자, 울상을 지으며 머리를 이리저리 피했다. 하지만 강하진의 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히잉. 이런 건 애들한테나 하는 거라고요. 저 같은 숙녀에게 이러는 거 실례예요.”
강하진이 갑자기 두리번거렸다. 물론 손은 여전히 염인혜의 머리를 헝클고 있었다.
“응? 숙녀가 어디 있는데? 내 눈에는 꼬맹이 하나밖에 안 보이는데?”
“이씨! 나 아저씨랑 말 안 해!”
염인혜의 말에 강하진이 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 오라버니라고 하더니 마음에 안 든다고 금세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강하진은 마지막으로 힘차게 머리를 잔뜩 헝클어 주고는 손을 뗐다. 그러고 보니 진하영의 머리도 이런 식으로 자주 헝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면 한 번 해줘야지. 생각해보니 이거 안 한 지도 꽤 됐잖아?’
그동안 강하진이 너무 밖으로 나돌아서 정작 진가장이나 거기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신경을 못 써줬다. 이번에 돌아가면 잔뜩 신경 써 주겠다는, 당사자가 들으면 오한이 들 법한 생각을 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황산을 벗어나 강서성으로 향했다.
* * *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명오는 위지세가에서 보낸 서찰을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날 노리는 자가 있다고? 위험하니 미리 조심하라고?”
제갈명오는 세가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제갈세가는 수십 개의 진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 중 다섯 개 이상을 제갈명오가 직접 설치하거나 손봤다.
“설사 우내사존 중 하나인 살황이 온다 해도 그것을 뚫을 수 없을 것이다.”
제갈명오는 그렇게 자신했다. 아니, 제갈명오뿐 아니었다. 제갈세가에 적을 두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만큼 제갈세가를 보호하는 진들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며 서찰을 읽던 제갈명오는 마지막에 쓰여 있는 글귀를 보고는 눈을 빛냈다.
“진가장주? 그 진유현을 말하는 건가?”
서찰 말미에 진가장주의 의견이라는 글이 있었다. 머리 쓰는 걸로 최고라는 제갈세가의 가주가 바로 제갈명오다. 당연히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정보에 능한 사람들을 잘 파악해 뒀다. 진가장주 진유현은 그런 사람들 중 첫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몇 달 전, 제갈명오는 무림맹을 방문했다. 의례적인 일이었고, 무림맹이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 크게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그때 제군영과 사석에서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군사에게 패배감을 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제군영은 정말로 대단한 인재였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제갈세가의 인재들도 한 수 접어줄 정도로 뛰어난 자였다. 그가 군사가 되었을 때, 초기에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은 모두가 인정하고 말았다. 그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물론 그때야 맹주의 입김이 좀 셌으니까.’
그런 제군영이 한 수 위라고 흔쾌히 인정할 만한 사람이 바로 진유현이었다. 제군영은 진유현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제군영의 말은 제갈명오에게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제군영은 능력이 뛰어난 만큼 지기 싫어한다. 그런 그가, 다른 건 몰라도 정보에 대한 모든 것은 진유현을 능가할 사람이 천하에 존재치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런 진유현이 한 말이니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갈명오는 다시 한 번 서찰을 차근차근 읽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현재 위지세가의 간략한 상황과 제갈세가주의 암습이 걱정된다는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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