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룡전 04권
마룡전 04권
마룡전
04
김강현
마룡전 04권
차례
제36장. 진화루
제37장. 참마단의 귀환
제38장. 무림맹주
제39장. 감찰대
제40장. 새로운 시작
제41장. 와행상단(蝸行商團)
제42장. 전쟁(錢爭)
제43장. 환검대 그리고 환마
제44장. 칠절혈무진
제45장. 몰락
제46장. 흑웅마군 - 1
마룡전 04권
제36장. 진화루
강하진은 참마단을 이끌고 전혀 길이 나지 않은 곳을 통해 무한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유현의 신신당부가 있었기에 최대한 들키지 않게 움직였다. 물론 경험이 있었기에 그쯤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참마단도 서른 명밖에 안 된다. 또한 예전보다 실력도 높다. 들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정지.”
강하진의 명령에 참마단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참마단의 몸에서는 칼날 같은 기세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번에 복귀하면서 상당한 수련을 했지만, 충분히 견딜 만했다. 수련의 강도는 오히려 높아졌지만 참마단의 경지가 예전에 비해 훨씬 대단해졌기에 그 정도 수련으로는 이제 끄떡없었다.
“잠깐 쉬었다가 간다. 운기조식을 해서 체력과 내력을 충분히 채워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강하진의 말에 참마단이 긴장했다. 강하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갈고 닦은 그들의 감이 맹렬히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부단주님의 태도가 지나치게 평온한데?’
막오장과 변왕수는 동시에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너무나 평온한 강하진의 태도 때문에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졌다.
“부단주님, 조금 서두르시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응? 서둘러? 왜?”
“그게…….”
막오장은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서 뒷말을 흐렸다. 그러자 변왕수가 나섰다.
“감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낭인 생활이 지금으로 꼭 20년째인데, 이런 느낌이 들 때마다 뭔가 일이 터지더라 이 말입니다.”
강하진의 표정이 굳었다. 사실 강하진도 계속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굳이 쉬면서 시간을 끈 이유는 진유현의 부탁 때문이었다. 진유현은 참마단이 무한에 들어설 시기를 정해주었다. 힘들지도 않은데 지금 쉬는 건, 그 시기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강하진은 잠시 고민했다. 진유현이 그 시기에 맞춰서 들어오라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진유현이 미리 준비해 놓은 뭔가가 틀어질 게 뻔하다.
‘하지만 이 감을 무시할 순 없는데…….’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 막오장과 변왕수도 동시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하니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이다.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
“너희들은 좀 더 쉬다가 와라. 나 먼저 가야겠다.”
“예?”
강하진의 말에 막오장과 변왕수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지금부터 정확히 다섯 시진 후에 출발해라. 속도는 전과 동일하다. 그 동안 잠깐 자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강하진의 말에 막오장과 변왕수는 크게 긴장했다. 본능적으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무림맹에 도착하거든 아무도 믿지 마라. 누구의 명령도 들을 필요 없다. 너희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참마단주와 나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막오장과 변왕수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그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사람은 바로 강하진이었으니까.
강하진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진유현이 자신에게 부탁했던 것을 참마단에게 설명했다. 참마단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강하진의 말을 모두 들은 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으면 난 간다.”
강하진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막오장과 변왕수는 눈을 크게 뜨고 방금 전까지 강하진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 어떤 기척이나 낌새도 느끼지 못했는데 사라져 버렸다. 정말로 놀라운 사람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참마단은 이내 자리에 주저앉아 쉬기 시작했다. 강하진의 명령을 지키려면 남은 다섯 시진 동안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어 둬야만 한다.
막오장과 변왕수는 쉬면서 계속 강하진이 사라진 곳을 힐끔거렸다. 두 사람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들은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잔유현은 진화루의 최상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 예상대로 그곳에 진화루를 움직이는 기관의 중추가 있었다. 물론 그 기관은 완전히 개조되어 진화루 안에 있는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진유현은 기관의 중추를 가만히 살피다가 몇 군데를 가볍게 만졌다. 기관이든 진법이든 그 기본적인 원리는 다 비슷하다. 또한 어떤 분야든 기본을 완벽히 통달하면 뭐든 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동안 기관을 살피던 진유현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어렸다.
“원래 안팎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거로군.”
진유현은 간단한 조작을 통해 지금 그가 있는 방의 위험을 제거했다. 일단 그거면 충분했다. 진화루 외부로 향하는 기관이 모두 내부로 방향을 바꾼 상태다. 아마 누군가 이 안으로 들어오면 낭패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진유현은 다시 기관을 살폈다. 그리고 새까만 광택을 머금은 쇠줄 하나를 끊었다. 어찌나 단단한지 웬만한 힘으로는 끊을 수 없었지만 진유현이 가져온 비수 또한 만만치 않은 기물이었기에 어찌어찌 간신히 끊을 수 있었다.
“이제 준비가 끝났군.”
진유현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어졌다.
진화루 근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현재 무림맹의 정보망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무한에 수많은 마인들이 득실거리는데도 무림맹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많은 마인들이 모두 진화루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모든 마인들을 움직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비룡각주 원명환이었다. 원명환은 진화루가 똑똑히 보이는 곳에 앉아 마인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진화루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청와루라는 이름의 주루였다.
청와루는 삼 층부터 손님에게 따로 방을 제공한다. 그 방에서 오고가는 대화나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일체의 비밀을 보장하는 곳이었기에 높으신 분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원명환은 청와루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방에 앉아 창을 통해 진화루를 바라봤다.
“일단 저 안에 들어간 두 놈이야 문제될 거 없고……. 참마단이 문제로군.”
참마단은 와룡장의 비밀문서들을 잔뜩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격전의 와중에 불타버렸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훨씬 컸다. 일단 참마단을 잡아 그 비밀문서들을 확보하는 것이 안전했다. 참마단이 곧장 맹주를 찾아가면 정말로 골치 아파진다.
“그렇다고 내가 맹주를 두려워하는 건 아니지만…….”
원명환은 왠지 이런 상황이 불쾌하고 짜증이 치밀었다. 참마단 하나 때문에 일이 이 지경으로 꼬였다고 생각하니 그놈들을 잘근잘근 밟아주고 싶었다.
원명환의 시선이 다시 진화루로 향했다. 진화루 근처에 있는 마인들이 너무 눈에 잘 들어왔다.
“쯧쯧, 아무리 정보를 차단했다고 하지만 저래서야…….”
모든 일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다. 아마 이번 일도 조만간 여기저기 알려질 것이다. 또한 맹주의 귀에도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마인들이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를 최소화 하고, 그들을 움직인 게 자신이라는 증거만 없애 버린다면 모든 일은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나저나 참마단이 어서 와야 하는데…….”
참마단의 이동 경로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지만, 그들에게 내려준 지난 몇 번의 임무를 통해 참마단이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참마단은 늦어도 내일까지는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중간에 딴 짓만 안 한다면 말이다.
“딴 짓을 할 리 없지. 증거를 하루라도 빨리 넘겨야 할 테니까.”
현재 참마단의 수는 서른 명에 불과하다. 원명환은 처음 참마단의 대부분이 금화장에 남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속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나 뻔한 얘기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참마단의 현재 인원이 서른 명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또한 그 서른 명으로도 충분히 강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서른 명이 백이십 명이었을 때보다는 훨씬 약할 게 분명했다.
“낭인들을 또 모집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그 전에 처리하는 게 좋겠지.”
낭인을 새로 뽑아서 다시 기존의 참마단과 비슷한 수준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참마보나 참마검진을 수련하면 되지만 그것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갖은 조치를 취할 계획이었다. 결단코 참마단은 더 이상 예전의 힘을 가지지 못한다. 원명환은 그 점 하나만큼은 자신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남은 참마단 서른 명을 깨끗이 정리해 버린다면 더 이상 참마단으로 인해 속 끓일 일은 없을 것이다. 원명환은 그것을 노리고 있기에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진화루 내부의 기관이 작동해 안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또한 그 뒤에 마인들을 투입하면 용케 그 안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명환은 그 죽음의 잔치에 참마단도 함께 참여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원명환이 주루에서 때를 기다리며 가볍게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누군가 방으로 다가왔다. 원명환은 그 기척을 느끼고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누군가?”
문이 서서히 열리며 비룡각의 요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비룡각에서 원명환의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요원 중 하나였다. 또한 지금 이렇게 이곳에 찾아와선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원명환이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네가 맡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단 말이냐!”
원명환의 호통에 요원이 다급히 대답했다.
“중요하기 때문에 왔습니다. 각주님, 큰일입니다. 선이 끊어졌습니다.”
원명환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 끊어졌다니! 그럼 기관이 작동했단 말이냐?”
“아닙니다. 기관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안에서 의도적으로 끊은 것 같습니다.”
원명환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가장 크고 효과적인 무기 하나를 그냥 날려 버린 셈이다. 아니, 어쩌면 그 무기가 자신들을 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대로 확인했느냐?”
“갑자기 선이 느슨해져서 조심스럽게 당겼더니 이렇게 끌려나와 버렸습니다.”
요원이 검은 광택이 흐르는 철선 하나를 내밀었다. 상당히 길었지만 둘둘 감아서 가져왔기 때문에 한눈에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끊어진 부분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잘라냈군. 내가 참마단주를 너무 얕봤어.”
설마 기관을 파악할 능력을 가진 줄은 몰랐다. 아니, 그런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쉽게 기관을 간파할 수 있을 리 없다. 이는 참마단주가 기관 쪽으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진화루의 기관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원명환이 신호를 보내면 이 요원이 선을 당겨 기관을 작동시키기로 되어 있었다. 사실 그 선은 원래 기관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진화루의 주인이 나가면서 새로 연결한 것이었다. 외부에서 기관을 작동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한데 그것이 쓸모없어졌으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마인들만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그나저나 그놈이 안에서 기관을 이용하면 곤란한데…….”
무한에 온 마인의 수는 엄청나다. 게다가 상당한 고수들도 포함되어 있다. 마군 정도는 아니지만 마인들 사이에서 칠귀(七鬼)라 불리는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칠귀는 무림인들로 치면 십대고수쯤에 해당하는 자들이다. 그런 칠귀 중 두 명이 포함되어 있으니 전력은 확실했다. 다만 기관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원명환은 고민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응? 무슨 일이지?”
원명환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진화루를 바라봤다. 진화루 근처에 있던 마인들이 한데로 모여들고 있었다. 원명환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건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역시 마인 놈들은 믿을 수가 없어. 저렇게 제멋대로 행동을 하니…… 쯧.”
원명환은 초조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마인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저렇게 멋대로 움직이면 곤란했다. 일을 이렇게 크게 키웠는데, 실패한다면 타격이 만만치 않았다.
‘최악의 경우 각주 자리를 내놔야 할지도 모르지.’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무림맹의 공적이 될 수도 있었다. 마인들과 손잡고 무림맹의 주요 인사를 죽이려 했으니 그것이 들통 나면 목숨을 내놔야 할 것이다.
물론 대책은 몇 가지 마련했다. 또한 이곳에 온 마인들은 존마련의 주요 전력을 제외하면 한 명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림맹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조금 늦긴 하겠지만 무사단을 움직여 저들을 토벌할 것이다. 당연히 그 중심은 비룡각이 될 것이고 말이다.
“음?”
밖을 유심히 살피던 원명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다. 진화루 근방에 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고 있었다. 점포까지 버리고 도망가는 걸로 보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설마, 벌써?”
그 순간, 원명환의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들 정도의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원명환은 눈을 크게 뜨고 기파가 터져 나온 곳을 바라보며 모든 신경을 그곳에 집중했다.
* * *
“젠장. 싸움이 났군. 설마 참마단이 도착한 것인가?”
하지만 참마단이 무한에 들어서면 바로 비룡각의 요원들이 자신에게 그 소식을 알렸을 것이다. 만일 정말로 참마단이라면 그들의 능력이 비룡각 요원들의 이목과 감각을 속일 정도로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하긴, 전례가 조금 있긴 하지.”
그동안 참마단은 임무에서 돌아올 때마다 모두의 눈을 속이고 무림맹의 담을 넘었다. 비룡각이나 비검당, 그리고 순찰당의 이목까지 농락했다. 무한으로 몰래 들어오는 것쯤이야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원명환은 참마단이 아닐 거라는 데에 더 비중을 뒀다. 왠지 참마단은 아닐 것 같았다.
“뭐, 참마단이든 아니든 상관이야 없지만.”
어차피 다 죽여 버릴 것이다. 이번 기회에 무리한 김에 참마단을 완전히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관일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관일수를 포섭하는 계획은 백지화 시켰다. 그 계획 자체가 전 비룡각주인 원규환이 진행하던 일이다. 원명환이 굳이 그걸 이어서 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원명환은 원규환과 상당히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
원명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밖을 내다봤다. 마인들이 이리저리 번잡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왠지 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비명과 괴성이 난무했다. 장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마인이 아닌 자들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고, 마인들은 흉흉한 기세와 마기를 뿜어내며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무력했다.
콰과광!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마인들이 나가 떨어졌다. 그렇게 마인들이 날아가고 남은 자리에 창을 든 사내 한 명이 스산한 눈빛을 뿌리며 서 있었다.
“뭔놈의 마인들이 이렇게 많아?”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힐끗 돌려 진화루를 쳐다봤다. 그 안에 진유현이 있을 것이다. 벌써 무림맹에는 다녀왔다. 아무리 강하진이라도 이곳에 진유현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그냥 알 수는 없었다. 무림맹에서 진유현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이리로 달려온 것이다.
무림맹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렇게 코앞에 마인들이 득실거리는데 말이다. 즉, 정보를 차단한 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진유현이 그런 것을 모르고 움직였을 리 없다. 아마 상당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하진은 진유현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일단 자신이 진유현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안 이상,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강하진은 천천히 걸어가 진화루 입구를 막고 섰다. 그리고 창을 힘차게 한 바퀴 돌린 후, 바닥에 꽂았다.
꽝!
창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반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덤빌 테면 덤벼.”
강하진의 나직한 말에 마인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강하진에게서 풍기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잠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마인들을 헤치며 일단의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새까만 옷에 은은한 붉은 빛이 감도는 검을 들고 있었는데, 그 수가 정확히 서른이었다.
강하진은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등장한 순간 마치 사방으로 죽음의 기운이 뻗어나가는 것 같았다. 강하진은 그저 눈살만 찌푸리고 말았지만 다른 마인들은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커다란 공터가 생겨났다.
“이거 대충 상대할 수 없게 만드는데?”
강하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순식간에 강하진 앞에 원이 생겨났다. 창이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그렇게 속도가 빨라지면서 주위에 있던 기운들이 맹렬히 창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 전 혈검마군과 싸울 때 썼던 마룡포(魔龍砲)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