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룡전 02권
마룡전 02권
마룡전
02
김강현
마룡전 02권
차례
제12장. 구장괴와 육무기
제13장. 합류
제14장. 귀환
제15장. 마룡단
제16장. 천하제일창
제17장. 무림맹
제18장. 비룡각
제19장. 혈우방
제20장. 참마단
제21장. 참마보의 비밀
제22장. 임무
제23장. 청사파
마룡전 02권
제12장. 구장괴와 육무기
두 개의 주루 사이에 있는 넓은 공터. 두 무리의 사람들이 흉흉한 기세를 흩뿌리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금원상단과 상수상단의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금원상단의 무사들 사이에는 강하진이 있었다.
강하진은 묘한 눈으로 상대측 가장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지옥 같은 곳을 떠나면서, 강하진은 그곳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살아남은 동료들에게 각자의 길을 가라고 말한 뒤에 진가장으로 갔다.
‘아마 갈 곳이 마땅치 않았겠지.’
진가장이 남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강하진도 저들과 비슷한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동료들의 신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시시콜콜한 버릇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다들 고향도 가족도 없었으니까.’
구장괴와 육무기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강하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을 보니 강하진은 한숨이 나왔다. 만일 진가장이 사라졌다면 강하진도 저들과 비슷한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상단이나 무가에 붙어 이리저리 싸움터에 끌려 다니는 신세 말이다.
―뭐 하는가. 어서 가지 않고.
다시 전음이 날아오자 강하진은 슬며시 뒤로 빠졌다. 그러면서 구장괴와 육무기를 다시 한 번 쳐다보는 걸 잊지 않았다. 강하진과 또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흠칫 놀랐다. 강하진은 그것을 보며 피식 웃고는 그곳에서 순식간에 멀어졌다.
금원상단 본점으로 가서 지원을 요청하라는 부탁을 들었으니 거리낌 없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다른 탐비각 요원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금랑대주는 강하진이 물러나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적들을 노려봤다. 금호대나 금룡대가 온다면 어떤 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눈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떻게든 해야겠지.’
최대한 시간을 끄는 방향으로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검진이 최고였다. 금랑대가 익힌 검진은 딱 이럴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금랑검진을 펼쳐라!”
금랑대주의 말에 금랑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서 스멀스멀 기세가 피어올랐다. 각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동료의 몸에 스며들었고, 또 그렇게 스며든 기운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흘러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완성된 금랑검진은 참으로 단단해 보였다. 금랑대주는 그제야 자신감에 찬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구장괴와 육무기는 서로를 힐끔거리며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전음을 쓸 필요도 없었다. 십 년이 넘게 함께 뒹굴었다. 그저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고 있을 때, 두 사람 사이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이제 좀 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구장괴와 육무기는 갑자기 들려온 말에 그제야 자신들이 누구를 잡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 미안하게 됐네. 그럴 일이 있었으니 자네가 이해하게.”
용별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 안 하면 어쩌겠는가. 힘없는 자신이 참아야지. 용별성은 갑자기 전의를 불태우는 두 사람을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로구나.’
두 사람이 자신을 놔주자, 용별성은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노려봤다. 금원상단 측 무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뭐지?’
마치 철벽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용별성의 눈으로도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진형이었다. 또한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기운의 흐름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호오. 검진인가? 방어에 중점을 뒀군.”
구장괴가 나직이 감탄을 토해냈다. 용별성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금랑대를 더 자세히 살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의 흐름이 아마 검진으로 인한 것인 듯했다.
‘기운의 흐름까지 이용하는 검진이라니. 웬만한 무가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고급 검진 아닌가.’
용별성은 이해할 수 없었다. 금원상단이 비록 큰 상단이긴 하지만 그래봐야 상단일 뿐이다. 금랑대 정도의 무사들을 보유한 것도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금랑대는 확실히 상수상단의 한검대보다 훨씬 강했다.
“크흠. 뭐 방어에 중점을 뒀다고 해서 공격이 약할 것 같지도 않군.”
용별성은 구장괴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어르신 도와주십시오.”
구장괴와 육무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아무래도 이번 싸움에서는 빠져야 할 듯하네.”
구장괴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용별성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구장괴는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미안하다고 해서 강하진이 속한 곳에 힘을 쓸 수는 없었다. 당장 강하진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없다고 힘을 썼다가 나중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하네. 일이 이렇게 되어 정말로 면목이 없네.”
구장괴와 육무기는 그 말을 남기고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용별성은 멍한 눈으로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헛! 모두 물러나라!”
용별성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명령을 내렸다. 금랑대가 수비적인 검진을 펼친 것이 이럴 때는 정말로 다행이었다. 지금 싸움은 전혀 승산이 없었다. 구장괴와 육무기가 사라진 마당에 어떻게 금랑대를 이긴단 말인가. 지금 금랑대가 펼친 검진을 깰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용별성의 선택을 강요하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금호대다!”
금호대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용별성은 더 지체하지 않았다. 지금 싸워서 몰살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도망가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구장괴와 육무기가 왜 그냥 물러났는지도 알아내야만 했다.
‘그분들은 절대로 무서워서 도망친 게 아니야.’
그 두 사람에게서는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유를 알아내서 해결하면 다시 힘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용별성은 제발 그렇게 되기를 빌었다.
“후퇴하라! 주루는 포기한다! 모두 도망쳐!”
용별성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검대가 그대로 후퇴했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도망가 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금랑대나 금호대도 그들을 쫓지 않았다.
상수상단 소유의 주루 하나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그놈들 대체 뭐야!”
상수상단의 상단주 곽경추는 길길이 날뛰었다. 주루가 박살 났다는 소식보다 구장괴와 육무기가 그냥 도망쳤다는 얘기에 훨씬 더 화가 났다. 그 두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한검대주는 뭐 하고 있나!”
곽경추의 호통에 총관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곽경추가 당장이라도 손에 든 주판을 자신에게 던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검대주 뭐 하고 있느냐니까!”
“그, 그분들과 함께…….”
“당장 불러와!”
곽경추의 서슬 퍼런 명령에 총관이 화들짝 놀라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곽경추는 그 뒤로도 한동안 씩씩대며 화를 냈다. 명색이 상인인지라 방안의 집기를 부수거나 뭔가를 던지지는 않았다. 그저 마구 소리를 지르며 화를 밖으로 분출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화를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냉정하게 생각해 금원상단의 노골적인 시비와 공격에 주루 하나가 날아가 버렸지만 그 정도로 끝났으니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놈들이 어떻게 나올 것이냐인데…….”
함부로 무사를 부려 상수상단의 본점을 공격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엔 명분이 너무 모자란다. 지난번 주루의 일은 주루간의 힘 싸움이 원인이 되었고, 또 그것이 점점 커져 감정의 골이 깊어져 우발적인 사고가 연달아 터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주루를 완전히 박살 낸 것은 상당히 과했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었다. 싸움이 여기서 끝난 건 아니지 않은가. 또한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면 그보다 더 큰 피해를 금원상단에 안겨줄 수도 있다.
“내가 능력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곽경추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단 냉정을 되찾고 나니, 금원상단을 어떻게 상대하는 것이 좋을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금원상단은 상단답지 않게 무력에 투자를 너무 많이 했다. 그 빈틈을 노리면 얼마든지 그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날린 주루 하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계획을 짜는 사이 총관이 한검대주와 함께 돌아왔다. 곽경추는 한검대주를 보자마자 그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분들을 뵙고 있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해명을 듣고자 했습니다.”
곽경추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 뭐라고 하던가?”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말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내 그럴 줄 알았네.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작정을 하고 들어온 거야. 정말 고수이긴 한 건가?”
한검대주는 정말로 곤혹스러웠다. 이제는 자신도 그들이 고수인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인데 곽경추야 오죽하겠는가. 아마 그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점은 충분히 이해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불민하여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닐세. 자네의 잘못이 뭐가 있겠는가. 다 그 두 마리 밥버러지가 잘못이지. 그들은 지금 어디 있나?”
“화월루에 있습니다.”
곽경추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당장 쫓아내게. 더 이상 그놈들에게 돈을 낭비하지 말게. 알았나?”
한검대주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막상 그들을 내치려고 하니 가슴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들은 고수가 분명하다. 한데 이대로 내쳐도 되는 걸까?
“아무래도 그냥 내치는 건 안 될 듯합니다. 그들이 고수인 건 확실합니다. 한데 그냥 무작정 쫓아버리면 어떤 보복을 할지 모릅니다. 이런 시기에 그런 변수를 남겨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한검대주의 말에 곽경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틀리지 않다. 단, 그들이 진짜 고수라는 가정 하에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고수라면 그런 싸움에서 도망갔을 리가 없다.
“후우. 이제 나도 모르겠군. 자네가 알아서 하게. 쫓아내는 걸 기본으로 하되, 기분 상하지 않게 천천히 시간을 들이게. 그리고 더 이상 화월루는 허락할 수 없네. 알겠나?”
한검대주가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그리하겠습니다.”
곽경추는 급히 돌아가는 한검대주를 잠시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총관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제가 나서서 그 사람들을 내보낼까요?”
곽경추가 잠시 총관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힘써보게.”
그걸로 결정이 났다. 총관은 한검대주와는 좀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 사실 그들 스스로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구장괴와 육무기는 용별성의 간곡한 태도에 결국 화월루에서 나왔다. 사실 더 그곳에 있을 염치도 없었다. 원래는 그냥 상수상단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용별성이 하도 만류를 하는 통에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물론 거처의 급은 상당히 낮아졌다.
“끄응. 이거 정말로 난감하군.”
구장괴의 말에 육무기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너무 곤란했다. 사실 미련 없이 상수상단에서 떠나야만 할 상황이었다. 상대에 조장이 있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여기 머문단 말인가.
“과연 조장이 용납하겠수?”
육무기의 말에 구장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우리 조장을 그렇게 뼈저리게 겪고도 아직 몰라?”
“아니까 하는 말이지. 쩝.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나가고 싶긴 한데…….”
“나갈 필요 없다.”
육무기는 자신의 혼잣말에 답하는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구장괴 역시 마찬가지였다. 긴장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봤다.
“너무 오래됐나? 내 목소리를 벌써 까먹은 거야?”
“조, 조장…….”
“님!”
강하진이 빽 소리치자, 육무기가 머리를 긁적이며 헤벌쭉 웃었다.
“님.”
“한데 무슨 말이신가? 그냥 남아 있어도 된다니?”
구장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잘하면 밥값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대로야. 내가 지금 몸담은 곳은 금원상단이 아니라는 뜻이지.”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어제는…….”
“그냥 볼일이 있어서 잠시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다음에 보면 그냥 박살을 내.”
강하진의 말에 육무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미소는 사납기 그지없었다. 이번 일로 속에 쌓인 게 많았는데, 이젠 확실히 풀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거였군요. 어제 미리 알았다면 다 박살을 내 버렸을 텐데. 으흐흐흐흐. 운 좋은 놈들 같으니라고.”
어제의 금랑대와 금호대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육무기와 구장괴가 정말로 마음먹고 나서면 그냥 단순히 패배하는 걸로 끝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여기와는 무슨 관계냐?”
강하진이 눈을 빛내며 묻자, 구장괴와 육무기는 직감적으로 강하진이 자신들을 끌어들이려 한다는 걸 알아챘다. 두 사람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맴돌았다.
* * *
그들이 누구보다 믿고 따르는 사람이 바로 조장 강하진이었다. 그와 함께 한다면 지옥의 불구덩이 속이라도 흔쾌히 따라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