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8권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8권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8
퇴직연금술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8권
차례
Chapter 01. 통합과 안정 - 2
Chapter 02. 이계의 탑
Chapter 03. 이세계에서 귀환했다
Chapter 04. 황제의 귀환
Chapter 05. 시험의 던전
Chapter 06. 마지막 챕터
Chapter 07. 드라이어드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8권
Chapter 01. 통합과 안정 - 2
“매버릭, 하피와 세이렌을 포획한 모험가 길드에 대한 정보는 좀 알아봤나?”
루시안이 며칠 후 매버릭에게 물었다.
매버릭은 밤낮으로 기록을 뒤진 터라 눈 밑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단서를 찾았습니다, 폐하. 도둑 길드에서 발견한 정보에 따르면, '까마귀 형제단'과 '하수도 물개' 양쪽에 정기적으로 특정한 종류의 해독약을 공급하는 모험가 길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피와 세이렌을 중독시켜 길들이고, 두 도둑 길드에게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고 합니다.”
“그 모험가 길드의 이름은?”
루시안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벡스마이어와 추종자들’이라고 합니다. 다만, 은밀하게 활동하며 외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은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옛 제국의 북부, ‘울부짖는 산맥’ 근처의 외딴 마을이라고 합니다.”
“울부짖는 산맥이라… 험준한 곳이군.”
루시안이 턱을 쓰다듬었다.
“나도 함께 그곳으로 가봐야겠다.”
“폐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매버릭이 살짝 당황한 듯 물었다.
“황성에만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말이지.”
금발의 검사 루시우스로 변장한 루시안과 매버릭.
두 사람은 평범한 모험가 차림으로 여정을 떠났다.
상대 모험가 길드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추가 병력을 대동하지 않았다.
로이와 라인홀트, 엑셀리온 같은 루시안의 맹장들은 이미 전쟁에서의 활약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상대방이 정보에 민감한 도둑 길드와도 연관이 있다 보니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두 사람은 일부러 마법의 힘도 빌리지 않고 마차로 이동했다.
루시안과 매버릭은 오랜만에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들은 한 달 만에 울부짖는 산맥 근처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외지인이 오셨군. 모험가시오?”
마을의 유일한 여관, ‘흔들 바위’의 주인이 살갑게 맞아주었다.
변장한 루시안이 대답했다.
“그렇소.”
“이 외진 곳에는 어쩐 일로 오셨소? 우리 마을은 의뢰 거리나 사냥감이 없을 텐데.”
“이 근처에 실력 좋은 모험가 길드가 있다고 들었소만. ‘벡스마이어와 추종자들’이라고 혹시 들어본 적 있소?”
“흐흥… 소문이란 게 참. 조심해야돼서 말이오. 그렇지 않소? 자칫 아무 이야기나 내뱉다간 그대로 믿어버릴 테니….”
여관 주인이 갑자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해댔다.
루시안이 눈치를 채고 음식 주문을 했다.
“일단 엘프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식사부터 합시다. 여기서 제일 잘하는 음식을 가져다주시오. 맥주도 2잔 내오고.”
루시안은 20코퍼를 냈다.
두 사람이 여관에서 한 끼 값으로 치르기엔 차고 넘치는 금액.
이런 곳에서는 여관 주인이 현지 정보를 잘 알고 있다.
취객들의 테이블 수다를 엿듣기도 하고, 직접 대화도 나누기 때문.
여관주인은 히죽거리더니 동전을 챙기고 쾌할하게 말했다.
“이곳 울부짖는 절벽은 산양 고기가 특산물입죠. 헤헤. 가파른 절벽도 신통하게 뛰댕기는 놈들입니다. 고기가 쫄깃하고 담백하기로 유명합니다. 철판에서 구운 산양 등심 스테이크에 으깬 감자는 어떻습니까? 우리 집만의 특제 소스와 함께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힙니다.”
“알겠소. 그거로 2개 주시오.”
“헤헤헤. 알겠수다! 엘프도 잊을 만큼 맛있게 해드리지!”
잠시 후.
여관 주인이 산양 고기와 흑맥주를 가지고 나타났다.
루시안과 매버릭은 잠시 이곳에 온 목적도 잊고 음식에 빠져들었다.
“루시우스님 이곳 음식이 제법 맛있는데요?”
“그러게 예상하지 못했던 맛이군.”
산양 스테이크는 완성도나 맛에서 어느 궁중 요리 못지 않은 완성도였다.
겉은 바삭하게 구워져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지만, 칼날이 닿자 부드럽게 갈라지며 선홍빛 속살이 보였다. 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입에 넣자, 촉촉한 육즙이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은 은은하면서도 깊은 풍미였다. 특제 소스에 깃든 야생 허브의 향긋함과 숙성된 육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식욕을 자극했다.
곁들여진 다크 에일은 산양 스테이크의 깊은 맛을 더욱 끌어올렸다. 묵직하면서도 투박한 너티(nutty) 향이 고기의 누린내와 기름진 맛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루시안은 천천히 스테이크를 음미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훌륭한 쉐프는 상상력이 뛰어나다.
잘 만들어진 요리를 통해 재료의 히스토리를 상상할 수 있다.
과연 절벽에서 울부짖는 산양이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즉기던 루시안은 여관주인의 말에 눈을 떴다.
“참, 그리고 우리 마을에 머무는 모험가는 따로 없소.”
“그럴리가…?”
루시안은 여관주인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믿었다.
그의 요리에서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벡스마이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옛날부터 이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드래곤의 이름이요.”
“드래곤?”
루시안과 매버릭이 고개를 들었다.
추적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하면서도 다시 뒤엉키는 기분.
그때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묘령의 아가씨가 끼어들었다.
“벡스마이어 이름을 쓰는 녀석이라면 제가 알아요.”
“정말이오?! 알려주시오!”
매버릭이 흥분해서 그녀의 얼굴 앞에 바싹 들이대었다.
여관 소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 말을 이었다.
“사냥꾼 지미가 예전에 순례자들을 만났을 때 이름 대신 스스로를 벡스마이어의 추종자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때 장난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루시안과 매버릭은 눈을 마주보며 끄덕였다.
“그래서 사냥꾼 지미는 어디 있소?”
“마을 동쪽 산양 절벽에 지미의 집이 있는데요…”
매버릭은 소녀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여관을 박차고 나갔다.
루시안은 그를 따라나서며 소녀에게 은화 1실버를 건네 주었다.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두 사람은 소녀의 쾌활한 인사를 뒤로 하고 동쪽 절벽으로 향했다.
“매버릭 아무래도 녀석을 만나기 전에 무장을 제대로 갖추는 게 좋겠다.”
“알겠습니다.”
루시안과 매버릭은 짐에 넣어두었던 드래곤 가죽 갑옷을 착용했다.
두 사람은 곧 산양 절벽 아래 도착했다.
낡은 통나무집 한 채가 위태롭게 절벽 끝에 매달려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집에 닿기도 무리였겠지만 매버릭은 최강의 레인저고 루시안은 블링크 마법을 쓰는 대마법사였다.
매버릭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잠시 후, 굳게 닫혔던 문이 천천히 열리며 당당한 체형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덥수룩한 수염에 위험한 눈빛, 잘생긴 외모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을 풍기는 사내였다.
그가 바로 사냥꾼 지미였다.
“누구시오?”
지미의 목소리는 쉰 듯 낮았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들으러 왔소.”
루시안이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벡스마이어의 추종자'라고 자칭했다는 이야기를.”
지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변했다.
“흥, 쓸데없는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군. 당신들은 뭐 하는 자들이오?”
“우리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왔다.”
매버릭이 한 발짝 나섰다.
“당신이 하피와 세이렌을 잡아 도둑 길드에 넘기고 뒤에서 마약 사업을 부추겼다는 사실을.”
지미는 차갑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 거만한 감정과 분노가 깃들었다.
“인간들이 감히 드래곤 아바타인 나를 심판하러 온 건가? 가소롭군. 너희 미천한 존재들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계의 진정한 지배자는 바로 나, 벡스마이어의 화신이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낡은 통나무집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지미의 깡마른 몸은 순식간에 거대한 힘으로 넘실거렸고, 그의 눈은 붉은 용의 눈처럼 타올랐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마!”
지미가 손을 휘두르자, 그의 주변에 검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지미의 손에는 칠흑 같은 어둠의 검이 형체를 이루었다. 동시에 그의 등 뒤로는 거대한 용의 날개 형상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저 녀석…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버릭이 경악하며 활을 겨눴다.
“저것이 드래곤의 힘인가…?”
루시안의 눈빛은 매서웠다.
지미는 검을 휘두르며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의 검술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듯, 빠르고 예측 불가능했다.
매버릭은 필사적으로 화살을 쏘았지만, 지미는 검을 휘둘러 손쉽게 쳐냈다.
“헬파이어!”
지미가 주문을 외치자, 그의 손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솟아올라 루시안과 매버릭을 향해 덮쳐들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순식간에 검게 타들어 갔다.
무서운 최상위 화염 주문이었다.
“으윽!”
매버릭이 놀라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드래곤 가죽 갑옷은 맹렬한 화염 속에서도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했다.
“네놈의 마법은 통하지 않아!”
루시안이 검을 뽑아 들고 지미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