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7권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7권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7
퇴직연금술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7권
차례
Chapter 01. 무역 전쟁 - 2
Chapter 02. 냉전과 번영
Chapter 03. 무한시계의 탑
Chapter 04. 성전
Chapter 05. 기만 작전
Chapter 06. 종전
Chapter 07. 통합과 안정 - 1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7권
Chapter 01. 무역 전쟁 - 2
해양 괴물을 처치해 달라는 엘프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다른 이들에게도 버거운 퀘스트겠지만, 특히 루시안에게는 피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땅 위에서는 와이번이나 드레이크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망망대해 위에서는 그가 자랑하는 대지의 힘을 끌어 쓰는 게 불가능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몬스터도 아니고 크라켄은 더욱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엘프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루시안에게 공손한 그들의 태도와는 별개로 엘프는 브라이던에게 갑의 위치였다.
현재 자유항구도시와 무역 전쟁 중인 브라이던은 엘프의 물품을 받아야 확실히 주도권을 뺏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시안은 요구를 덥석 수락하지도, 그렇다고 거절하지도 못했다.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시오.”
일단 시간을 버는 것이 최선이었다.
루시안은 크라켄을 상대할 범선을 만들기로 했다.
일반 범선은 아무리 거대하고 튼튼해도 크라켄 촉수에 한 번 휘감기면 바로 산산조각 난다고 했다.
그 때문에 강철로 된 선박을 주조하도록 명령했다.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셈이다.
“쇠구슬은 물에 가라앉지만, 쇠그릇은 물에 뜬다. 무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피가 중요해.”
일반인은 철제 선박이 물에 뜨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랜스와 조선공은 루시안의 말을 알아들었다.
이들은 튼튼하면서도 물 위에서 무게 중심이 잡힌 선박을 설계했다.
최고의 조선 기술을 가졌다는 자유항구도시 조차 철갑선을 주조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강철은 비싼 자재다.
인간의 몸을 감싸는 판금 갑옷만 해도 비용이 살인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거대한 범선을 통째로 강철로 만든다면 국가 전체의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돈과 자원이 있다고 해도 기술력이 안 될 수 있다. 아직 제대로 된 용접술도 없다.
거대한 강철 주조물을 다룬 적 없는 중세의 기술자들에게 철갑선은 유니콘 같은 전설의 존재였다.
‘하지만 나는 진짜 유니콘이 있지.’
루시안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최고 수준의 제강시설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질 좋은 강철을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조선공, 대장장이, 땜장이 등 브라이던의 모든 기술자들이 달라붙어 철갑선 주조에 투입되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편 루시안은 발렌티노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 중이었다.
“바다에서 먹힐 만한 공격이 뭐가 있을까?”
철갑선이 만들어져서 크라켄의 공격을 버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격 수단이 없으면 소용없다.
루시안은 대지마법으로 대마법사의 경지에까지 올랐지만, 바다에서는 활용할 주문이 얼마 없었다.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마그마 소드와 마그마 미사일은 바다에서 시전이 불가했다.
그는 과감하게 주특기 마법을 버리고 다른 방법으로 공략하기로 결심했다.
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것은 연금술.
연금술에는 단순 포션 제조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연구 분야가 존재했다.
“제가 가진 레시피 중에서 쓸만한 것은 산성 용액이나 맹독 정도입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크라켄을 상대로 먹힐지는 미지수입니다.”
“으음….”
루시안은 고민되었다.
현자 에롤은 늘 전략에서 승리한 채로 실제 전투에 들어가는 것을 강조했다.
무패의 전략은 확실하게 이기겠다고 예상되는 싸움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다와 크라켄이라는 변수가 많은 장소와 상대를 두고 확실하지 않은 전략을 가지고 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크라켄의 새끼라도 잡아 실험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현실적으로 크라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불가능합니다.”
“으음….”
“다른 수단도 있습니다. 액체 화염이라면 물 위에서도 꺼지지 않고 적을 태울 것입니다.”
“액체 화염?”
루시안은 귀가 솔깃했다.
“예. 물로도 꺼지지 않는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다고 합니다. 고대 제국 미토스의 비밀 전략 병기로 쓰여 ‘미토스의 불’이라고도 불립니다.”
“그걸 어디서 구할 수 있겠나?”
루시안은 전설 같은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졌다.
바다 위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을 터뜨리면 크라켄을 죽이진 못하더라도 놀래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미토스의 불처럼 거창하진 않지만 브라이던도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기름을 원료로 한 화염방사기를 개발했다.
액체 화염의 성분이 기름과 다르겠지만 활용법은 마찬가지로 화염방사기를 사용할 것이다.
이미 해당 무기가 있는 루시안으로선 조금만 개조하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액체 화염으로 괴물을 당황시키고 그 틈을 타 거대한 작살 같은 것으로 공격하면 공략이 먹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미토스의 불은 제조법이 사장되어 전설로 남았습니다. 제국에서도 수십 년 동안 비법을 밝혀내려고 노력했지만, 성공 여부가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럼 옛날이야기일 뿐이라는 건가? 다른 실마리는?”
루시안은 침착하게 발렌티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작 옛날 설화만 거론하려고 그가 말을 꺼냈을 리가 없다.
“저는 제국의 대마법사 올브레히트의 제자로 있을 때 그가 소량의 액체 화염을 보관하던 것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영감이 액체 화염도 만들 줄 안단 말인가?”
“올브레히트 본인은 제조법이 없고 불의 대마법사 반드레이크에게 받은 걸로 추정됩니다. 그가 반드레이크를 만나고 돌아온 뒤부터 액체 화염이 생겼지요.”
“음…. 반드레이크…. 그 액체 화염이 확실히 미토스의 불이 맞는가?”
“확인된 바 없습니다. 올브레히트 본인도 직접 사용한 적 없습니다. 저는 우연히 제자들 중 하나가 그것을 실수로 방화한 것을 목격했을 뿐입니다. 그때 물에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번지는 불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미토스의 불이 아니더라도 물에서도 꺼지지 않는다면 활용 가치가 있었다.
‘예전 마법 내기에서 반드레이크는 물에도 꺼지지 않는 이터널 플레임을 다뤘었지.’
루시안은 반드레이크에게 액체 화염의 레시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반드레이크는 지금 어디 있는가?”
“그는 서대륙 자유항구도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현재 집정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더군요.”
루시안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은 자유항구도시 측과 무역 전쟁 중이다.
플로렌 항과 등대 대공사를 진행하며 자유항구와 대놓고 경쟁을 천명했었다.
드워프 강철과 엘란트리스 특산물로 각국의 상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40% 정도의 수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유항구 측과 결탁한 세력이다.
또한 자유항구에서 브라이던 물품에 공식적인 관세를 매기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화물의 하선을 막고 있는 실정이다. 있지도 않은 전염병 위험을 들먹이며 사실상 수출을 거부하는 것이다.
덕분에 자유항구도시로 향했던 상선들은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왔다.
에롤과 루시안이 예상했던 피해지만, 예상했다고 해서 피해가 줄어들진 않았다.
현재는 브라이던 공국 국고로 자국 잉여 생산량을 수매하고 있긴 하지만, 임시방편 수준이다.
앞으로 확장한 경작지에서 더 많은 수확물이 쏟아질 텐데, 제대로 수출로를 확보하지 않으면 국고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수매를 중단하면 당장 수만의 브라이던 농부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경작지 확장과 땅 매입, 대지 주문 스크롤 구매 등 이미 투자한 돈과 시간, 인력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 브라이던의 농업은 무너질 수 있다.
냉전 중이 아니라면 왕국이나 제국에 육로 무역으로 물량을 처분하면 되지만, 지금은 해상 무역에만 기대는 특수한 상황이다.
그런데 아무리 드워프 강철로 미끼를 늘린다 해도, 결국 최대 수출처인 자유항구도시의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브라이던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게다가 미끼상품인 엘란트리스 특산물은 이제 곧 그 물량이 떨어질 것.
크라켄 때문에 직통 항로가 막힌 상황이다.
루시안은 최대한 빨리 타개책을 찾아야 했다.
‘뜨거운 스튜는 급해도 한 숟갈씩….’
그는 현자 에롤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상황이 급박해도 눈앞에 닥친 사건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하라는 조언이다.
루시안은 에롤의 정교한 정책이나 전략보다는 이런 원칙적인 조언에서 마음의 안도를 얻었다.
‘그래 우선 크라켄부터 하나씩 해결해 보자. 첫 단추는 반드레이크.’
그는 텔레포트 대신 큰 범선에 탔다.
화염의 대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 혼자가 아니라 조력자와 동행하기로 했다.
바로 그의 첫 번째 패밀리어, 존존스.
작은 불씨뱀에서 시작했던 존존스는 어느새 폭풍 성장과 진화를 거쳐 재앙급 괴수로 거듭났다.
트롤의 심장을 섭취하여 개체의 한계를 넘는 양적 성장을 했다.
이후 세쌍둥이 흡혈귀의 혈석을 삼켰다. 불, 얼음, 번개 속성의 원소 저항력을 갖추었다.
최근에는 거대 몬스터, 와이번과 바실리스크의 마석을 흡수하여 종의 한계를 파괴하는 진화를 거쳤다.
거대한 한 쌍의 날개와 4개의 다리가 생긴 것이다.
이제 존존스는 영락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머리가 2개 달린 트윈헤드 레드 드래곤.
존존스의 존재를 아는 브라이던 시민조차 두려워하고 겁을 냈다.
그런데 존존스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 위용에 놀라 몸이 굳을 것이다.
주체 못 하고 분비물을 쏟을지도 몰랐다.
자유도시항구의 주민들이 바로 그랬다.
크워어어어어억 ―!
상공 저 높은 곳에서 포효를 지르며 날아가는 쌍두마룡의 존재는 모든 사람들이 생업을 멈추고 벌벌 떨게 했다.
“드래곤이다!!!”
“꺄악!!!”
도시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언제 쏟아 내릴지 모를 불벼락을 피해 도망쳤다.
경비병이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거대한 발리스타를 담당한 병사는 미처 장전할 시간도 없이 자신들 위로 지나간 트윈헤드 드래곤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뭣!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자유항구도시의 집정관은 황당한 소식에 체통도 잊고 고함을 빽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