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3권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3권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3
퇴직연금술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3권
차례
Chapter 01. 자유항구도시 - 2
Chapter 02. 마법사와 대마법사
Chapter 03. 마법사와 연금술사
Chapter 04. 마법사와 사병
Chapter 05. 북부 설원
Chapter 06. 영지 개발
Chapter 07. 궁극의 마법
Chapter 08. 브라이던 요새화 - 1
중세 땅마법사, 요리를 곁들인 03권
Chapter 01. 자유항구도시 - 2
루시안은 서대륙으로 떠나기로 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평생 살 수는 없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라인홀트가 동행을 제안했다.
“경비대장은 마을을 지켜야지.”
“그렇지만, 자유도시는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무법지대나 마찬가지라고 해서….”
“위험하면 마법 쓰면 되니까 걱정 마. 매버릭이랑 다녀올게.”
“알겠습니다.”
루시안은 블루캡 선임병 2명과 매버릭을 대동하고 여정길에 올랐다. 발렌티노도 동행하기로 했다.
플로렌에서 배를 타고 서대륙으로 넘어갔다.
발렌티노가 영주의 참모라는 신분증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배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다.
“서대륙으로 가면 이제 이 신분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발렌티노가 웃으며 말했다.
“플로렌은 그쪽 입장에서도 큰 교역지 중 하나인데, 영주님의 보증이 안 먹힌다고요?”
“서대륙. 특히 자유항구도시는 공화국입니다. 어지간한 왕국 귀족은 귀빈 대우를 못 받지요. 영주님 본인이 직접 가시면 다르긴 하겠지만, 저희들은 일개 자유민이나 다름없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2주의 항해가 끝나고 일행은 자유항구에 도착했다.
자유도시는 첫 느낌부터 플로렌과 달랐다.
상업과 교역의 도시 특징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다들 순박해 보이는 왕국 주민들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대놓고 검을 하나씩 차고 다니고 전부 3, 4명씩 패거리를 이루었다. 상인인지 깡패인지 분간이 힘들었다.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낯설었다.
플로렌이 잘 계획된 도시 느낌이라면 자유항구는 무언가 날것의 느낌이 났다.
신분제가 폐지돼서인지, 아니면 땅의 저주의 영향을 받지 않아 식량난이 없기 때문인지는 몰랐다. 어쨌든 지나다니는 사람들, 거리풍경 하나하나가 자유로워 보였다.
“제가 말씀드렸지만, 여기 자유항구에서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법은 느슨하고, 치안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화국 경비대가 있긴 하지만, 권력자들 일이 아니면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도 손 하나 까딱 안 하죠.”
“그러면 도시 내 질서가 돌아갈 수 있나요? 그냥 힘쎈놈이 다 죽이고 빼앗으면 그만 아닙니까?”
“경비대가 부패하고 무능한 대신 도시를 나눠 지배하는 가문들이 각자 자기 구역을 책임집니다. 그들은 이권에 따라 움직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리의 질서는 지키려고 하지요. 그래도 아마 뒷골목에서는 매일 살인이 벌어질 겁니다.”
“그 정도로 심하다고요? 그러면 왕국 상인들은 이곳에 어떻게 옵니까?”
“그래서 개인 보부상은 엄두도 못 냅니다. 아무리 항로 무역 수익이 좋아도 덩치 큰 상회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플로렌의 경우, 영주님의 직속 상회가 이곳 도시의 엘리트 가문과 교류를 맺고 있습니다.”
루시안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곳 자유항구도시가 오래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꼈다.
‘여기 무슨 브라질이라도 되나???’
야만 중세에서도 힘들 정도면 말 다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빨리 일만 해결하고 돌아가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루시안 일행은 트루포 패밀리라고 불리는 도둑길드를 찾았다.
발렌티노가 신분증과 은화 10실버를 건네자 마부가 딸린 마차 한 대를 내주었다.
“이 자들은 플로렌 영주님과 협정을 맺은 가문 소속입니다. 일종의 하청 길드 같은 거죠. 트루포 패밀리가 저희 플로렌 영주성과 공식적으로 협력관계는 아니지만 그나마 제일 말이 통할 겁니다.”
발렌티노의 설명에 루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안은 10실버가 바가지라고 생각했지만, 도시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그럴만하다고 느꼈다.
이곳에 루시안 혼자 왔었다면 아무런 진척 없이 돈을 뜯겼을 것이다. 아니, 돈만 뜯기면 다행일 것.
“발렌티노 님 도움 감사합니다. 제가 왕국으로 돌아가면 꼭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방금 내주신 10실버까지 포함해서요.”
“하하. 아닙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번에 제 사형, 게슈타드 때문에 또 한차례 고생하셨다니, 제가 괜히 죄송해서…. 아무튼 비용은 제게 맡겨 주십쇼.”
“그래도….”
루시안은 미안함에 말을 흐렸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마차를 세웠다.
상대는 트루포 패밀리의 마부와 대화를 나누는 듯싶더니 갑자기 냅다 바닥에 꽂아버렸다.
“무슨 일이지?”
“저희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매버릭이 로이, 알렉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루시안 사병들은 근육 포션 덕분에 살벌한 근육질 덩치를 자랑했다. 어지간한 양아치들은 감히 말도 못 붙일 포스다.
게다가 매버릭은 산 사자 스킬 포션으로 맹수 고유의 아우라를 뿜어, 보통 사람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무슨 일이오?”
매버릭이 묻자 상대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상대도 물러서지 않고 강대강으로 나왔다.
“공화국의 반역자를 잡는 일이다. 너희들도 이놈들 한패냐?”
그는 깐깐하게 생긴 중갑병이었다.
그의 부하 20명은 전부 통일된 복장과 장비를 하고 있었다.
강철 사슬 갑주에 공화국 문양이 그려진 서코트.
할버드로 무장한 이들은 정식 경비대였다.
만만히 볼 수는 없었다.
“이런 악운이라니…. 평소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기로 유명한 도시 경비대입니다.”
발렌티노가 당황한 듯 말했다.
그가 나서서 중재해보기로 했다.
루시안은 여차하면 골렘을 소환할 준비를 했다.
“우리는 루페란 왕국 사람들이오. 트루포 패밀리에게 마차와 가이드만 빌렸을 뿐이외다.”
경비대는 협조적인 말투를 듣자 한결 풀어진 얼굴을 했다.
“우리는 그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들을 뿐이오. 트루포 패밀리는 공화국 집정관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조직원 전원 체포 명령이 떨어졌소. 당신들이 관계없는 외지인이라고 하나, 그냥 보내줄 순 없소. 일단 같이 가줘야겠소.”
발렌티노는 루시안을 돌아보았다.
루시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다.
가이드만 구했는데, 재수 없게도 가이드 조직 때문에 일이 꼬이게 되었다.
“알겠소. 협조하겠소.”
루시안의 응답에 고조되던 긴장이 풀렸다.
‘어째 이번 여행은 첫 단추부터 잘못되는 것 같은데….’
* * *
“세상에 3달이 말이 되는 소리요! 여기 계신 분은 플로렌 영주님이 총애하시는 남작님이시오!”
발렌티노가 못에 핏대를 세우며 따졌다.
공화국인 자유항구도시에서는 왕국의 신분이 소용없다고 자기가 말했으면서, 지금은 귀족 신분을 방패로 앞세워 따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럴만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소. 집정관님 공식 명령이라….”
눈앞에 답답하게 생긴 관료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상황은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공화국 내 최고위 계층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거기에 연루된 이들이 모조리 숙청되는 중이었는데, 하청 길드인 트루포 패밀리까지 엮였다고 했다.
이들은 즉결 처형 또는 결투 재판에 처해졌다.
루시안 일행은 외지인이기 때문에 처분이 애매한데, 공화국의 관료가 직접 이들의 신분을 확인해야 된다고 했다.
그러려면 플로렌으로 돌아가 영주에게 신분 보증서를 받아야 한다. 왕복 항해에만 순수 한 달이 걸리고, 조사대 결성, 플로렌 체류, 복귀 후 후속 조치를 하는 데 다 합쳐 3달이 걸리는 일.
게다가 비용도 전액 청구된다.
참으로 억울한 상황.
그 3달 동안 루시안 일행은 꼼짝없이 이곳에서 항구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인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 남작님을 3달 동안이나 감옥에 가둬두겠다는 소리요!”
“아니, 감옥은 아니고….”
이들의 말싸움을 들으며 루시안은 머리를 짚었다.
‘어디부터 잘못됐지? 마차가 털릴 때 그냥 도망쳤어야 했나? 아니면 아예 대형 상단과 같이 움직일 걸 그랬나?’
그는 이번 여정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제까지 힘이 곧 법인 중세에서 그는 거의 터치 없이 지내왔다. 자신을 지킬 힘과 능력만 있으면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법이 느슨한 자유항구도시에서 행정적인 절차 때문에 강제로 구속되게 생겼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기다리면 됩니까?”
루시안이 체념한 듯 말하자 관료의 얼굴이 펴졌다.
“일단 아레나 대기소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그래도 감옥보다는 훨씬 나은 곳입니다. 제가 남작님 방은 특별히 신경 써 두라고 전하겠습니다.”
“됐소. 특별 취급은 필요 없고. 신분 증명이나 빨리 진행해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관료가 나가고 루시안 일행은 거대한 창고식 건물에 배치되었다. 이곳에 있는 결투 재판 대기자들과는 달리 이동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경비에게 보고해야 하고 외박은 금지되었다.
그나마 루시안은 남작이라고 침대 딸린 독방을 받았고, 나머지는 그냥 넓은 방에 바닥에서 담요를 깔고 잤다.
다른 구금자들과 다를 바 없는 신세였다.
“이런 니미럴. 그냥 여기 경비 모가지 따고 튑니까?”
로이는 열악한 방 상태를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분하지만, 그랬다간 집정관 암살 죄목을 뒤집어쓰게 되오. 자유도시가 허술해 보이긴 해도 공공 수배령이 떨어지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소. 게다가 마차도 뺏긴 마당에 루시안 님 다리도 불편하신 상태라….”
발렌티노가 루시안을 보며 말을 흐렸다.
로이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일이 벌어진 거, 별수 있겠어? 발렌티노 말대로 괜히 소란 피우지 말고 당분간 조용히 지내.”
루시안까지 거들자 사병들은 입을 다물었다.
한편 루시안이라고 도주를 생각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시장에 갔다 온다고 하고 그냥 사라져버리면 경비들로선 자신들을 찾을 길이 없다. 정말 허술한 행정에 허술한 경비들이다.
쫓아온다고 해도 항구마을 경비 정도는 골렘이 처리가 가능하다. 루시안이 능력이 없어서 참는 게 아니다.
하지만 루시안은 외지인.